타미플루 강제실시를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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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기장
  • 등록일
    2009/09/07 13:35
  • 수정일
    2009/09/07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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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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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미플루 강제실시를 허하라 [한겨레21 2009.09.04 제776호]
 
[초점 | ‘신종 플루’ 비상사태]
구매 능력 있는 국가만 대상으로 약을 공급하는 제약회사들…
대유행에 맞서 값싼 카피약 제조·공급해야
 
 
 
 
         
 
 
현재까지 신종 인플루엔자(H1N1·이하 신종 플루)의 보편적인 치료제는 스위스계 제약회사 로슈가 생산·판매를 독점하는 오셀타미비르(Oseltamivir), 즉 ‘타미플루’(Tamiflu)다. 2004년 과학전문지 <사이언스>는 백신이 광범위하게 보급되기 전까지, 혹은 그 이후에도 타미플루가 인플루엔자의 대유행에 맞서는 유일의 방어책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도 그랬고 지금에 와서는 더욱 분명해진 문제점은 세계적 대유행과 같은 비상시에 사용할 수 있는 치료제의 비축분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개발도상국과 제3세계 국가에서는 특히 그러하다.

 
 
» 의약품 특허는 국가 간 치료의 양극화, 국가 내 치료의 양극화를 불러온다. 스위스 로슈사에서 생산해 국내에 수입한 타미플루를 관계자가 점검하고 있다. 사진 연합
 
 
 

 

“공산주의 국가에서나 있는 일”?

 

2004년 AI(조류 인플루엔자·H5N1)가 아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전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퍼지면서, 세계보건기구(WHO)는 ‘인구 대비 최소 20%’(약 12억 명)에 해당하는 분량의 치료제 확보를 권고했다. 덕분에 로슈는 2005년 1조달러의 이득을 챙겼으나, 타미플루 가격은 1인분에 60달러에 이르면서 국제적인 비난 여론에 직면했다. 게다가 로슈가 공장을 완전 가동해도 앞으로 10년이 걸려야 WHO의 권장량에 맞출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4년이 지난 현재 타미플루의 수요와 공급 간극은 더욱 커진 상황이다. 선진국이 타미플루를 경쟁적으로 확보하면서, 개발도상국과 제3세계 국가의 수요까지 감당할 분량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로슈의 타미플루 연간 생산량은 고작해야 4억 명의 인구만이 복용할 수 있는 분량이다. 그 결과 현재 타미플루는 최고 4~5배 폭등한 가격에 팔리기도 하며, 남미 국가에서는 1인분에 90달러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정부가 10월까지 확보할 수 있는 신종 플루 치료제는 500만 명분이나, 이 중 현재 비축한 220만 명분이 유효 기간 만료를 앞두었다. 심각한 공급 부족에 직면한 것이다. 10월부터 신종 플루가 본격적인 대유행을 할 것이라는 예측 속에 타미플루에 대한 정부의 ‘강제실시’(Compulsory License) 발동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강제실시란 특허권자의 의사에 상관없이 특허받은 발명품을 타인이 사용할 수 있게 한 제도다. 물론 특허권자에 대한 일정한 보상이 있고, 이후 특허권자의 권리가 소멸되거나 정지되지도 않는다. ‘실시’란 특허발명의 이용, 즉 생산·판매 등을 총칭하는 말이다.

특허법이 특허권자 보호와 함께 사회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천명하고 있기에, 강제실시는 특허 제도의 필수적인 장치다. 세계무역기구(WTO)의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TRIPs) 제31조, 그리고 우리나라 특허법 제106조와 107조에서도 강제실시를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얼마 전 한 언론 보도에서 인용된 보건복지가족부 관계자의 “(강제실시는) 공산주의 국가에서나 있는 일”이라는 발언은 황당함을 넘어 우습기까지 하다.

특허법에 따르면, 정부는 국가 긴급사태나 기타 극도의 위기 상황, 혹은 공공의 비영리적 사용을 위해 필요한 경우 강제실시를 발동할 수 있다. 질병이 대유행하는 상황에서 높은 의약품 가격으로, 혹은 공급이 불충분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할 우려가 큰 지금이 대표적인 경우다. 실제로도 강제실시 요구가 빗발치는 대상이 바로 의약품이다.

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 등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대다수 발명품들은 보통 수백에서 수천 개의 특허발명으로 구성됐다. 그러나 의약품은 원료가 되는 물질이 그것이 가진 특허의 전부이기 때문에, 특허권자인 제약회사는 의약품의 생산과 판매 등 보급 전 과정에 걸치는 독점이 가능하다. 반면, 복제도 쉽기 때문에 독점이 깨질 경우 가격이 독점 때와 비교할 수 없이 크게 떨어진다. 이것이 바로 전세계 시장을 독점하며 천문학적인 이익을 얻는 제약회사가 강제실시 이야기만 나와도 경기를 일으키는 이유다.

 

미국, 가장 많이 강제실시를 하는 나라

 

타미플루 부족 사태에서 보듯, 특허권을 가진 제약회사가 생산을 독점한 상황에서 약의 공급이 수요를 충족하지 못할 때, 제약회사는 구매할 능력이 있는 국가만을 대상으로 약을 공급한다. 이로 인해 질병이 부유한 사람들은 피해가고 가난한 사람들만 공격하는 치료의 ‘부익빈 빈익부’ 현상이 발생한다.

로슈의 한국 지사장인 울스 플루어키거는 이를 잘 설명해준 인물이다. 지난해 7월, 시판 허가 이후 4년째 판매되지 않는 에이즈 치료제 푸제온(Fuzeon)의 국내 공급을 요구하는 환자들에게 그는 “의약품 공급에 관한 문제는 해당 국가 국민이 해당 의약품을 구매할 능력이 있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1987년 최초의 에이즈 치료제인 지도부딘(AZT) 개발 이후 수십 종의 에이즈 치료제가 개발돼, 현재 선진국에서는 에이즈를 당뇨와 같은 만성 질환처럼 다스리고 있음에도, 매년 200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고 그들의 대다수가 아프리카에 사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약값을 지급할 능력이 되는 나라 역시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기는 마찬가지다. 2008년 1월31일 미국 의회예산처(CBO)의 보고에 따르면, 2007년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16%에 이르는 총 의료 비용은 현재 추세대로 증가하면 2082년 GDP의 100%에 이르게 된다. 충격적인 의료비 증가의 주된 원인으로 특허 의약품의 높은 가격을 꼽았다. 제약회사의 의약품 특허 보호 기간이 1년씩 증가할 때마다 미국인들이 내야 하는 의료 비용은 60억달러에 이른다.

이 때문에 대다수 국가들은 특별한 요건을 제한하지 않고 폭넓은 경우에 강제실시를 인정함으로써 의약품 공급을 늘리고 가격을 낮춘다. 미국은 전세계에서 강제실시를 가장 많이 하는 나라다. 미국은 9·11 사태 이후 탄저병 확산에 대처하기 위해 2001년 독일의 바이엘사가 공급하는 치료제인 시프로(Cipro)에 대해 강제실시를 고려했고, 결국 바이엘사가 시프로의 가격을 낮춘 바 있다.

 

발동되면 한두 달 뒤 약의 출시 가능해

 

1953년 미국의 세균학자 조나스 솔크 박사는 소아마비 백신을 발명했다. 1960년대 이후 소아마비 발병 환자 수는 획기적으로 줄었으며, 우리나라는 2000년 10월 소아마비의 종식을 공식으로 선언했다. 백신의 빠른 보급으로 소아마비가 박멸에 이르게 된 데에는 솔크 박사의 공로가 크다. 그는 백신 발명 이후 여러 제약회사로부터 특허를 넘겨달라는 제안을 받았으나 모두 거절했다. 한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누가 백신의 특허를 가지고 있느냐는 질문에 솔크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들이라고나 할까요. 특허라는 건 없어요. 태양을 특허 낼 수 있습니까?”

 

타미플루 부족 현상은 의약품의 공급에서 이러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함을 알려준다. 만성적인 의약품 부족 현상과 가격 폭리 정책을 낳는 의약품 독점 공급이 과연 유효하고 적절한 방식인지 되묻게 한다. 강제실시는 그 대답 중 하나다. 국내 제약회사 2~3곳이 이미 필요한 원료를 확보할 수 있는 계약까지 체결한 상황이며, 강제실시가 발동된다면 바로 한두 달 뒤에 타미플루와 같은 약의 출시가 가능하다.

강제실시가 후진국에서나 쓰는 충격적이고 원시적인 방법이며 국제사회의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라는 일각의 우려는 앞서 언급한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근거 없는 소리다. 오히려 강제실시를 바라보는 정부 관계자들과 몇몇 국회의원들의 사고방식이 후진적이고 충격적이며 원시적이고, 국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는 행태다.

 

홍지은 정보공유연대 IPLeft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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