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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터 없이는 못 살아~ [제 845 호/2008-12-03]

영하로 떨어지는 기온은 우리를 움츠리게 하고 사람들은 난방기구 옆으로 모이게 마련이다. 기온이 저하되면 우리 몸이 열을 밖으로 발산하게 되어 신체는 도망가는 열을 지키거나 보충하기 위해 다른 열원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 일상생활에서 가장 흔히 사용하는 난방기구로 히터를 꼽을 수 있는데, 그 원리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히터에는 어떤 원리와 종류가 있는지 한번 알아보도록 하자.

히터의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열의 이동에 대해 간단한 기본 지식이 필요하다. 열이 이동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이다. 열전도, 대류, 복사가 그것이다. 열전도는 가열된 금속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뜨거운 커피에 차가운 수저를 담그면 반대편 끝까지 달아오르는 것이 전도 현상의 예이다. 하지만 열전도 자체는 곧바로 난방에 이용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대류는 주로 기체나 액체에서 열이 이동하는 방식이다. 기체와 액체처럼 분자운동이 활발한 물질은 열을 받을 경우 운동이 더욱 거세지면서 부피가 팽창한다. 질량의 변화 없이 부피가 늘어나면 결국 단위부피당 질량이 줄어들면서 가벼워진다. 그리고 부력을 얻는다. 위로 올라간 기체 (또는 액체)는 상승하다가 열원으로부터 멀어지면서 뜨는 힘을 상실하고 아래로 떨어진다. 이 과정에서 얻은 열을 주변에 전달하는 현상이 대류이다. 대류는 전통적인 난방 방법이다. 한복판에 놓고 방 전체를 데우는 난로나, 금속관에 뜨거운 물 또는 증기를 통과시켜서 대류열을 만드는 이른바 스팀이 대류 현상을 이용하고 있다. 대류 현상은 실내 전체의 온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는 반면 효과를 얻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히터는 열전달의 면에서 볼 때 인류가 가장 오랫동안 열의 혜택을 받아왔던 태양과 기본적으로는 같다. 즉 열복사 현상을 이용한다. 절대 영도보다 온도가 높은 모든 물체는 외부로 전자기파를 발산한다. 이 전자기파를 받은 물체는 그 에너지의 일부를 얻는다. 이것이 복사이다. 앞서 언급한 난로도 대류 현상만을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난로 가까이에 손을 대보면 아직 실내가 추워도 열을 느낄 수 있는데 이것 역시 열복사의 결과이다. 히터는 열복사의 효율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 특별히 고안된 난방장치이다.

히터는 전자기파 중 적외선을 인공적으로 발생시켜 가열 대상에게 쏘아 보내는 장치라고 보면 된다. 가시광선을 분해해보면 빨간색에서 보라색까지 걸친 스펙트럼을 볼 수 있는데 빨간색에 가까울수록 파장이 길다. 적외선은 한자어의 뜻 그대로 빨강보다 더 파장이 긴 전자기파를 말한다. 가시광선의 영역을 벗어나므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열을 그만큼 잘 전달한다. 적외선 중에서 파장이 짧은 것을 근적외선, 긴 것을 원적외선으로 구분하고 있다. 전자기파는 파장이 길면 흡수가 잘 되는 성질이 있다. 따라서 적외선은 열전달 능력이 뛰어나며 이 원리를 히터에서 그대로 이용한다. 전기 히터의 뒷면에 반사판이 달려있는 것도 복사되는 적외선을 한 방향으로 집중시켜 난방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히터들은 동일하게 전기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면서도 종류가 다양하다. 이 중 할로겐램프 히터, 석영관 히터는 전기에너지를 받아 가열되면서 적외선을 발사하는 발열 방식의 종류에 따른 구분이다. 기본적으로 전열기구들은 특정 도체의 물성을 활용한다. 즉 이상적인 초전도체가 아니라면 전기회로상에서 도체는 저항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손실되는 전류는 곧 에너지의 형태로 변환된다. 빛을 강하게 발하는 물질은 조명기구에, 열의 비중이 높은 물질은 전열기에 사용하는 것이다. 난방이 목적인 히터의 경우 당연히 유입된 전기 에너지에 비해 더 강한 적외선을 내뿜는 물질을 사용한다. 하지만 효율과 동시에 내구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그에 맞는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

할로겐램프 히터는 필라멘트의 수명과 효율을 높이기 위해 전구 안에 할로겐 기체를 채운 램프를 이용한다. 석영관 히터는 석영관 안에 전열선을 통과시키는 형태이다. 석영관이란 무수규산의 순도를 높인 제품으로, 고온에서 내구성이 강하고 열팽창성이 작으며 적외선의 투과성이 높다. 일반적으로 할로겐램프 히터는 전원을 넣고 열이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으며 전력 소모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대신 초기 구입비용이 석영관 히터에 비해 높다. 석영관 히터는 가격이 약간 낮은 대신 전력 소모가 많은데, 어디까지나 기본적인 수준의 비교이므로 제품을 구입할 때는 특성을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 좋다.

그 외에 원적외선, 근적외선 히터라는 구분도 있다. 이런 특성을 강조하는 제품들의 경우 치료 기능까지 있다고 선전하는 경우가 많은데 단순히 ‘원적외선’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의료 효과가 확실하다고 믿는 것은 자중하는 편이 좋겠다. 물론 원적외선과 근적외선 사이에 상식적인 차이는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전자기파는 일반적으로 파장이 길수록 침투력이 강하다. 따라서 원적외선은 물체의 표면뿐 아니라 내부까지 침투할 수 있다. 하지만 발열체의 온도는 근적외선이 높고, 따라서 더 많은 열을 전달한다. 그러나 전기제품이라는 것은 부분적인 개선에 따라 효율이 크게 차이 나므로 본인이 중점을 두는 히터의 용도를 염두에 두고 제품을 고르는 편이 좋다.

전기 히터는 빠른 난방 효과라는 장점이 있지만 구매 시 그만큼 고려해야 할 점도 많다. 히터가 실내 공기를 빠르게 건조시킨다는 점은 잘 알려졌으니 겨울철 건강과 직결되는 습도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또한 모든 전열기구가 가지는 위험성, 즉 화재 예방도 잊으면 안 된다. 비정상적으로 과열될 경우의 대비책은 있는지, 히터가 넘어졌을 경우 어떤 차단장치가 돼 있는지 등은 반드시 따져봐야 할 요소이다. 근래의 제품들은 회전기능이나 송풍기능을 첨가하기도 하므로 편의성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차가운 겨울을 난방기구 없이 지내기는 어렵다. 소규모 인원이라면 역시 히터가 제격이다. 지혜롭게 고른 히터로 추위를 이기고 건강하게 겨울을 보내는 것은 어떨까.

글 : 김창규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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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터 없이는 못 살아~ [제 845 호/2008-12-03]

영하로 떨어지는 기온은 우리를 움츠리게 하고 사람들은 난방기구 옆으로 모이게 마련이다. 기온이 저하되면 우리 몸이 열을 밖으로 발산하게 되어 신체는 도망가는 열을 지키거나 보충하기 위해 다른 열원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 일상생활에서 가장 흔히 사용하는 난방기구로 히터를 꼽을 수 있는데, 그 원리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히터에는 어떤 원리와 종류가 있는지 한번 알아보도록 하자.

히터의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열의 이동에 대해 간단한 기본 지식이 필요하다. 열이 이동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이다. 열전도, 대류, 복사가 그것이다. 열전도는 가열된 금속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뜨거운 커피에 차가운 수저를 담그면 반대편 끝까지 달아오르는 것이 전도 현상의 예이다. 하지만 열전도 자체는 곧바로 난방에 이용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대류는 주로 기체나 액체에서 열이 이동하는 방식이다. 기체와 액체처럼 분자운동이 활발한 물질은 열을 받을 경우 운동이 더욱 거세지면서 부피가 팽창한다. 질량의 변화 없이 부피가 늘어나면 결국 단위부피당 질량이 줄어들면서 가벼워진다. 그리고 부력을 얻는다. 위로 올라간 기체 (또는 액체)는 상승하다가 열원으로부터 멀어지면서 뜨는 힘을 상실하고 아래로 떨어진다. 이 과정에서 얻은 열을 주변에 전달하는 현상이 대류이다. 대류는 전통적인 난방 방법이다. 한복판에 놓고 방 전체를 데우는 난로나, 금속관에 뜨거운 물 또는 증기를 통과시켜서 대류열을 만드는 이른바 스팀이 대류 현상을 이용하고 있다. 대류 현상은 실내 전체의 온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는 반면 효과를 얻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히터는 열전달의 면에서 볼 때 인류가 가장 오랫동안 열의 혜택을 받아왔던 태양과 기본적으로는 같다. 즉 열복사 현상을 이용한다. 절대 영도보다 온도가 높은 모든 물체는 외부로 전자기파를 발산한다. 이 전자기파를 받은 물체는 그 에너지의 일부를 얻는다. 이것이 복사이다. 앞서 언급한 난로도 대류 현상만을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난로 가까이에 손을 대보면 아직 실내가 추워도 열을 느낄 수 있는데 이것 역시 열복사의 결과이다. 히터는 열복사의 효율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 특별히 고안된 난방장치이다.

히터는 전자기파 중 적외선을 인공적으로 발생시켜 가열 대상에게 쏘아 보내는 장치라고 보면 된다. 가시광선을 분해해보면 빨간색에서 보라색까지 걸친 스펙트럼을 볼 수 있는데 빨간색에 가까울수록 파장이 길다. 적외선은 한자어의 뜻 그대로 빨강보다 더 파장이 긴 전자기파를 말한다. 가시광선의 영역을 벗어나므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열을 그만큼 잘 전달한다. 적외선 중에서 파장이 짧은 것을 근적외선, 긴 것을 원적외선으로 구분하고 있다. 전자기파는 파장이 길면 흡수가 잘 되는 성질이 있다. 따라서 적외선은 열전달 능력이 뛰어나며 이 원리를 히터에서 그대로 이용한다. 전기 히터의 뒷면에 반사판이 달려있는 것도 복사되는 적외선을 한 방향으로 집중시켜 난방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히터들은 동일하게 전기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면서도 종류가 다양하다. 이 중 할로겐램프 히터, 석영관 히터는 전기에너지를 받아 가열되면서 적외선을 발사하는 발열 방식의 종류에 따른 구분이다. 기본적으로 전열기구들은 특정 도체의 물성을 활용한다. 즉 이상적인 초전도체가 아니라면 전기회로상에서 도체는 저항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손실되는 전류는 곧 에너지의 형태로 변환된다. 빛을 강하게 발하는 물질은 조명기구에, 열의 비중이 높은 물질은 전열기에 사용하는 것이다. 난방이 목적인 히터의 경우 당연히 유입된 전기 에너지에 비해 더 강한 적외선을 내뿜는 물질을 사용한다. 하지만 효율과 동시에 내구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그에 맞는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

할로겐램프 히터는 필라멘트의 수명과 효율을 높이기 위해 전구 안에 할로겐 기체를 채운 램프를 이용한다. 석영관 히터는 석영관 안에 전열선을 통과시키는 형태이다. 석영관이란 무수규산의 순도를 높인 제품으로, 고온에서 내구성이 강하고 열팽창성이 작으며 적외선의 투과성이 높다. 일반적으로 할로겐램프 히터는 전원을 넣고 열이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으며 전력 소모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대신 초기 구입비용이 석영관 히터에 비해 높다. 석영관 히터는 가격이 약간 낮은 대신 전력 소모가 많은데, 어디까지나 기본적인 수준의 비교이므로 제품을 구입할 때는 특성을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 좋다.

그 외에 원적외선, 근적외선 히터라는 구분도 있다. 이런 특성을 강조하는 제품들의 경우 치료 기능까지 있다고 선전하는 경우가 많은데 단순히 ‘원적외선’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의료 효과가 확실하다고 믿는 것은 자중하는 편이 좋겠다. 물론 원적외선과 근적외선 사이에 상식적인 차이는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전자기파는 일반적으로 파장이 길수록 침투력이 강하다. 따라서 원적외선은 물체의 표면뿐 아니라 내부까지 침투할 수 있다. 하지만 발열체의 온도는 근적외선이 높고, 따라서 더 많은 열을 전달한다. 그러나 전기제품이라는 것은 부분적인 개선에 따라 효율이 크게 차이 나므로 본인이 중점을 두는 히터의 용도를 염두에 두고 제품을 고르는 편이 좋다.

전기 히터는 빠른 난방 효과라는 장점이 있지만 구매 시 그만큼 고려해야 할 점도 많다. 히터가 실내 공기를 빠르게 건조시킨다는 점은 잘 알려졌으니 겨울철 건강과 직결되는 습도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또한 모든 전열기구가 가지는 위험성, 즉 화재 예방도 잊으면 안 된다. 비정상적으로 과열될 경우의 대비책은 있는지, 히터가 넘어졌을 경우 어떤 차단장치가 돼 있는지 등은 반드시 따져봐야 할 요소이다. 근래의 제품들은 회전기능이나 송풍기능을 첨가하기도 하므로 편의성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차가운 겨울을 난방기구 없이 지내기는 어렵다. 소규모 인원이라면 역시 히터가 제격이다. 지혜롭게 고른 히터로 추위를 이기고 건강하게 겨울을 보내는 것은 어떨까.

글 : 김창규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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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 발견 분쟁, 교통 정리되다 [제 844 호/2008-12-01]

에이즈(AIDS), 자궁경부암. 모두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질병이다. 바이러스는 해마다 수많은 생명을 빼앗아가는 원흉이자 라틴어로 독(virus)을 뜻하는 미생물이다. 그러나 ‘독도 잘 쓰면 약이 된다’고, 바이러스도 잘만 이용하면 사람을 살릴 수 있다. 달갑잖은 불청객인 바이러스의 실체를 밝히고 또 그것을 이용해 암 백신까지 개발한 주인공이 있으니, 바로 올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의 한 명인 독일 암 연구소의 하랄트 추어하우젠 박사다.

유전자와 단백질 껍질뿐인 바이러스엔 자신을 복제하는 데 필요한 효소가 없다. 그러나 바이러스의 가장 큰 무기는 사람 같은 숙주 세포 안으로 뚫고 들어가 증식하는 능력이다. 이 능력 때문에 바이러스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감염시키며 성공적으로 살아남는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은 이런 바이러스를 연구한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 노벨상선정위원회는 2008년 10월 6일, 추어하우젠 박사 외에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을 일으키는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를 발견한 프랑스 파스퇴르 연구소의 프랑수아즈 바레시누시 박사와 뤼크 몽타니에 박사를 공동으로 선정했다. 이들은 암과 에이즈라는 치명적인 질병의 원인균을 발견함으로써 예방과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는 길을 연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흔히 에이즈라고 불리는 후천성면역결핍증에 걸리면 인체의 면역 기능이 떨어진다. 따라서 에이즈 환자는 사소한 질병에 걸려도 목숨을 잃기 쉽다. 현재 에이즈에 걸린 사람은 4000만 명이 넘으며, 작년 한 해 에이즈로 사망한 사람은 210만 명에 달한다. 이 중 어린이도 33만 명이나 된다. 에이즈 환자는 매년 250만 명씩 늘어난다.

에이즈 첫 환자는 1981년 미국 의학계에 공식적으로 보고되었다. 당시 세계 각국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혈우병 환자와 동성연애자 사이에서 발견됐다. 괴질로 알려진 이 질병으로 폐렴증상이 발생했고, 면역결핍으로 인해 사망까지 이르게 됐다. 순식간에 전 세계는 알 수 없는 이 질병으로 공포에 빠졌다. 과학자들은 에이즈바이러스의 규명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그런데 1983년, 프랑스의 바레시누시와 몽타니에 박사가 에이즈바이러스인 HIV를 세계 처음으로 혈액에서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성매매와 수혈 등이 에이즈의 발병 원인임을 규명해냈다. 에이즈 극복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는 순간이었다. 정체불명의 존재였던 에이즈의 실체가 두 사람에 의해 베일을 벗게 됐을 뿐 아니라, 이것은 에이즈 치료에 효과를 보이는 항바이러스제 개발로 이어지게 되었다.

에이즈바이러스는 8~12시간마다 복제를 하고 그때마다 돌연변이를 일으킨다. 바레시누시와 몽타니에 박사는 HIV가 일반 유전정보 전달 방식과 정반대인 역전사(retro-transcription) 방식을 통해 번식한다는 점과, 대량 바이러스 복제를 통해 임파구 세포를 손상시켜 면역 시스템을 파괴한다는 특성을 찾아냈다. 역전사는 레트로바이러스(Retrovirus, 자신의 유전암호를 숙주의 DNA에다 복사하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에서만 관찰되는 현상이다. 역전사 바이러스들은 다양한 병을 일으킬 확률이 높다. 따라서 이 결과는 면역결핍 환자의 림프구 세포가 레트로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결정적인 증거다.

바레시누시-몽타니에 박사팀이 이번에 노벨상을 받은 것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이들이 처음 발견한 HIV 바이러스를 놓고 당시 미국국립보건원(NIH)의 로버트 갤로 박사와 최초 발견에 대한 논쟁이 붙었기 때문이다. HIV를 처음 발견한 바레시누시-몽타니에 박사는 당시 세계 최고의 미생물 석학이었던 갤로 박사에게 논문과 사진을 보내 확인을 부탁했다. 갤로 박사는 1979년 레트로바이러스를 발견했는데, 이는 암과 관련해 발견된 최초의 바이러스여서 그의 명성이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었기에, 두 사람은 자신들의 연구를 미국 과학학술지인 사이언스에 게재하기 위해 갤로 박사의 추천을 받고자 한 것이다. 바이러스 이름도 HIV가 아닌 LAV(Lymphadenopathy Associated Virus, 임파종 결합 바이러스)였다.

그런데 얼마 후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바레시누시 박사와 몽타니에 박사의 연구결과가 나온 1년 뒤인 1984년 5월, 갤로 박사가 사이언스지에 자신이 에이즈 환자의 림프구에서 HIV를 발견했다는 논문을 발표한 것이다. 갤로 박사가 발견했다는 에이즈바이러스는 HTLV라고 불렸다.

이때부터 에이즈 바이러스를 누가 먼저 발견했는가를 두고 프랑스와 미국 간에 소송까지 걸며 대논쟁이 시작되었다. 국가간 분쟁은 양국 정상간 다툼이 되기도 했다. 이들 간의 싸움은 1987년 3월 정치적으로 끝이 났다. 프랑스와 미국은 바레시누시-몽타니에와 갤로를 에이즈 바이러스의 동시 발견자로 인정하고 바이러스 발견에 대한 권리를 양쪽에 똑같이 나누도록 약속했다. 발견자들도 1990년 이 문제를 두고 더 이상 싸우지 않기로 합의했다. 이때 에이즈바이러스는 LAV도 HTLV도 아닌 HIV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바레시누시-몽타니에 박사가 이번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니 두 사람은 최초 발견자로 ‘승인’을 받은 셈이다. 또한 이로써 HIV 발견자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1981년 첫 환자가 발생하여 2년 후인 1983년에 그 질환을 일으키는 병원체를 찾아낸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과학사상 이처럼 단기간에 특정 질환의 원인을 규명한 적은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에이즈바이러스는 아직까지 100%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은 실정이다. 하지만 현재의 의학 수준으로 에이즈에 감염되더라도 10년 이상 조절하면서 생명에 큰 지장 없이 살 수 있다. 요즘은 마치 성인병과 같이 에이즈의 관리와 조절이 가능하다. HIV의 증식을 억제할 수 있는 항바이러스제가 어느 바이러스보다 많이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에이즈를 완전히 치료할 수 있는 백신을 개발할 일만 남았다. 백신은 바이러스 치료의 원조다. 몽타니에 박사는 4년 안에 에이즈를 치료하면서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직까지 에이즈 치료제가 없는 만큼, 에이즈 백신 개발 또한 훗날 노벨 생리학상감이 아닐까.

글 :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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