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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0' 파레토의 법칙과 야구

  • 등록일
    2008/04/14 20:34
  • 수정일
    2011/08/09 15:44

** 아래 글은 경제학 법칙을 빙자한 괴담수준의 글로, 과학적 분석을 기대하신 분은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ㅎ

 

 

최근 요미우리 자이언츠 이승엽 선수의 부진을 두고 말들이 많다.

‘팀의 간판’이라 할 수 있는 4번 타자로 시즌을 시작한 이승엽은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며 5번 타순을 거쳐 6번까지 내려앉았고, 급기야 이번주 2군행을 통보받았다.

물론 이승엽의 2군행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승엽은 일본 진출 첫해였던 2004년부터 지금까지 모두 네 차례에 걸쳐 2군을 오르내렸다. 하지만 일본적응기라 할 수 있는 2004년을 제외한 두차례는 성적부진이 아닌 ‘부상’을 이유로 했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런 이승엽의 고전을 두고 이승엽은 원래 슬로우 스타터라는 ‘낙관론’과 근본적인 치유가 필요하다는 주장의 ‘신중론’이 모두 나오고 있지만, 어찌되었든 2군행이 반가운 일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전문가들은 ‘내리 찍는 타격 폼이 문제’라는 진단을 내놓기도 하고, ‘요미우리 타선의 짜임새 부족’을 이유로 들기도 한다. 수술한 왼손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 정말 그래서일까.



[사진] 요미우리 자이언츠 이승엽 선수의 타격모습. 요즘 그리 행복하지 않을게다.

 

경제학용어 중에 ‘파레토의 법칙(Pareto principle)’이란 게 있다. 이는 '전체 결과의 80%가 전체 원인의 20%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우리에게는 ‘20-80 법칙’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탈리아 인구의 20%가 이탈리아 전체 부의 80%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Vilfredo Pareto : 1848~1923)의 이름에서 유래된 ‘파레토의 법칙’은 진화를 거듭하며 주식투자와 마케팅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되고 있다. 마케팅 영역에서 나타난 것이 바로 상위 소수그룹(매출의 80%를 차지하는 20% 그룹)을 타겟으로 하는 ‘귀족 마케팅’ 혹은 ‘프레스티지 마케팅’이다.

 

‘파레토의 법칙’은 이밖에 많은 형태로 응용돼 사용되고 있다. 예컨대 하루 종일 걸려오는 전화 중의 80%는 전화를 자주 하는 친근한 20%가 하는 것이고, 교수가 한 시간 강의 동안에 전달한 지식의 80%를 이해하는 학생은 불과 20%밖에 안 된다는 식이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특정한 표본 집단에서도 ‘파레토의 법칙’이 예외 없이 나타난다는 가설이다. 즉 전국 1등부터 100등까지 우수한 학생 100명을 골라서 모아놓아도 20명은 성적저하 현상을 겪으며 퇴보한다는 것이다. 하긴 생각해보면 (색안경인지도 모르나) 17대 국회 보좌관 시절, 10명의 민주노동당 의원 중 2명 정도가 특히나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여하간, 이정도면 ‘파레토 괴담’ 수준 아닌가.

 

다시 이승엽으로 돌아와 보자.

이승엽 선수가 소속된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14년 연속 일본 최고 페이롤(연봉총액) 지위를 누리고 있는 부자구단이다. 요미우리의 2008년 페이롤은 53억1000만 엔으로, 이는 12개 일본 프로야구 구단 중 최고액이다. 50억 엔 이상의 연봉총액을 기록한 구단은 요미우리가 유일한데, 이는 페이롤이 가장 낮은 히로시마 카프에 비하면 3.5배 이상에 이르는 규모다. 그렇다면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투자 대비 수익’이 당연히 높아야 할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물론 야구는 최고 수준의 팀과 최저 수준의 팀 격차가 2할을 넘기기 힘든 경기다. 지난해 메이저리그에서 최고 승률을 기록한 보스턴 레드삭스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승률은 .593(96승66패)이었고, 최하 승률은 탬파베이 레이스의 .407(66승96패)이었다. ‘사기 선수’ 다섯 명만 갖춰도 8할 승률이 가능한 농구와는 다르다. 2008년 4월11일 현재 미 프로농구 최고승률은 .795(보스턴 셀틱스, 62승16패)인 반면, 최저승률은 .179(마이애미 히트, 14승64패)에 불과하다.

야구경기의 경우, 개별 선수의 성적도 성적이지만 투타의 밸런스와 라인업의 짜임새, 투수진 운용 등에 따라 성적이 좌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 파레토의 법칙을 적용시켜 보면 어떨까. 파레토의 주장에 따르면, 아무리 ‘날고 기는’ 선수들 25명을 모아놔도, 그중 20%는 ‘삽질’을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20%에 이승엽이 걸렸다고 생각한다면.

뭐 이 정도에서 멈춘다면 그냥 ‘웃고 넘어갈 수준’의 농이 되겠지만, 야구는 ‘파레토의 법칙’을 설명해주는 현상이 너무나 많이 발생해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악의 제국’ 뉴욕 양키스에서 벌어진 최근 몇 년간의 ‘돈지랄’이다. 대박을 터뜨린 뒤 돌연 “마운드에 서는게 무섭다”고 고백하고 나락으로 빠져버린 칼 파바노를 비롯한 양키스의 수많은 ‘먹튀’들(제이슨 지암비, 존 리버, 케빈 브라운, 에스테반 로아이자 등)의 이야기는 이미 이곳 저곳에서 너무나 많이 언급됐으니 여기에서 재론하지 않겠다. 오늘은 양키스의 대표적인 카운터 파트너라 할 수 있는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최근 몇 년 동안 나타난 ‘파레토 괴담’을 살펴보자.

 

보스턴 레드삭스는 2006년 시즌 막판 토론토 블루제이스에 밀리며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소속 다섯 팀 중 3위로 추락했다. 레드삭스의 부진에는 많은 요소가 작용했겠지만, 그 중 하나는 ‘안방마님’ 제이슨 베리텍이었다.

베리텍은 1997년 데뷔 뒤 지금까지 보스턴 레드삭스의 주전포수로 활약하고 있으며, 강력한 리더십과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캡틴 베리텍’이란 별명을 갖고 있다. 2003년 아메리칸리그 올스타에 뽑혔고, 2005년에는 올스타와 실버슬러거에 동시에 선정되기도 했다.

 

Jason Varitek

Year  Ag  Tm    G   AB    H   HR   AVG   OBP   SLG

----------------------------------------------------

2002  30  Bos  132  467  124  27  .266  .332  .392

2003  31  Bos  142  451  123  31  .273  .351  .512

2004  32  Bos  137  463  137  30  .296  .390  .482

2005  33  Bos  133  470  132  30  .281  .366  .489

2006  34  Bos  103  365  87   19  .238  .325  .400

2007  35  Bos  131  435  111  17  .255  .367  .421

 

2004년과 2005년 연속해서 30홈런을 쳐내며 8점대 중후반의 OPS(OBP+SLG)를 찍어주던 베리텍은 2006년 들어 타율이 2할3푼 대로 하락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했다. 홈런 역시 2002년 이후 처음으로 20개를 넘지 못하는 등, 장타력에서도 문제를 드러냈다.

이 해에 보스턴은 젊은 에이스 조시 베켓을 영입하고, 2007년 월드시리즈 MVP로 뽑힌 마이크 로웰을 3루수에 배치하는 등 나름의 전력보강 조치를 내린 상태였다. 제국의 품에 안긴 자니 데이먼 대신 발군의 수비력과 리드오프로서의 능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던 코코 크리스프를 새 중견수로 맞이하기도 했다. 이거 많이 보던 그림 아닌가. 전력보강 뒤 ‘누군가’의 부진. ㅎ

물론 베리텍이 맡고 있는 ‘포수’라는 포지션은 체력소모가 많고 노쇠화가 빨리 찾아오는 보직이다. 따라서 베리텍은 그저 ‘늙어가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베리텍은 한 살을 더 먹은 2007년에는 OPS .788을 기록하며 나름 제기에 성공했다. 과연 베리텍은 2006년 ‘파레토’를 만난 것일까.

 

 

[사진] 보스턴의 주장 제이슨 베리텍. 2006년과 2007년, 과연 누가 진짜 '베리텍'이란 말인가..

 

Coco Crisp

Year  Ag  Tm    G   AB    H   HR   AVG   OBP   SLG

----------------------------------------------------

2002  22  CLE  32   127  33   1   .260  .314  .386

2003  23  CLE  99   414  110  3   .266  .302  .353

2004  24  CLE  139  491  146  15  .297  .344  .446

2005  25  CLE  145  594  178  16  .300  .345  .465

2006  26  BOS  105  413  109  8   .264  .317  .385

2007  27  BOS  145  526  141  6   .268  .330  .382

 

2002년 8월15일, 한국의 광복절을 맞아 클리블렌드에서 데뷔한 코코 크리스프는 2004∼2005 시즌을 풀타임으로 소화하며 광활한 수비범위와 쓸만한 타격실력으로 일약 ‘스타 중견수’로 떠올랐다. 보스턴은 2006년 FA자격을 얻어 양키스로 떠난 데이먼을 대신할 중견수로 크리스프를 꼽았고, 팬들은 환호했었다.

하지만 크리스프가 보여준 2006년 시즌은 ‘재앙’ 수준이었다. 타율은 데뷔 이후 최악인 .264까지 떨어졌고, 장타력 역시 이전 시즌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465->.385)

결국 크리스프는 지난 시즌 중간 신예 엘스버리에게 주전 중견수 자리를 빼앗기다시피 했고, 올해에도 사실상의 백업맨으로 활약하고 있다. 대부분의 야구전문가들은 보스턴이 크리프스를 붙잡고 있는 유일한 이유로 ‘적절한 시점에서의 트레이드 카드 활용’을 들고 있다. 파레토와의 만남은 짧지만 강렬한가보다.

 

 

[사진] 수비 하나는 여전히 명품인 코코 크리스프. 이 사진에선 보이지 않지만, 괜시리 도와주고 싶은 인상의 소유자다.

 

Julio Lugo

Year  Ag  Tm        G   AB    H   HR   AVG   OBP   SLG

--------------------------------------------------------

2002  26  HOU      88   322  84   8   .261  .322  .388

2003  27  HOU/TBD  139  498  135  15  .271  .333  .410

2004  28  TBD      157  581  160  7   .275  .338  .396

2005  29  TBD      158  616  182  6   .295  .362  .403

2006  30  TBD/LAD  122  435  121  12  .278  .341  .421

2007  31  BOS      147  570  135  8   .237  .294  .349

 

2007년 파레토와 눈이 맞은건 훌리오 루고였다.

휴스턴과 탬파베이 등을 거치며 실력을 검증받은 루고는 이미 오래 전부터 보스턴의 ‘위시 리스트’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2007년에 이르러서야 빨간양말을 신게 됐다. 하지만 입단 첫해 그의 성적은 ‘안습’ 그 자체.

2할대 후반을 꾸준히 찍어주던 그의 타율은 .237로 추락했고, 장타율도 4할 밑으로 내려앉았다. 특히 1번 혹은 2번 타순에서 리드오프 역할을 기대했던 루고가 기록한 출루율 .294는 최악이었다.

일단 올시즌 루고의 출발은 매우 좋다. 일본에서 열린 개막 2연전에서 6타수3안타를 기록한 것을 비롯, (아직 시즌 초반이긴 하지만) 지금까지는 순항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2007년 루고의 문제는 타석에서의 인내심이나 파워부족이 아니라, 안타생산능력의 저하였다. 지난해 루고의 홈런-2루타-포볼 비율은 예전과 비슷했지만, 출전경기수 대비 안타는 예전의 기록에서도 한참 떨어질 정도였다. 만일 루고가 안타생산 능력을 예전처럼 높일 수 있다면, OPS 역시 100포인트까지 상승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해 루고와 함께 지냈던 파레토 씨는 어디로 떠났을까.

 

 

[사진] 1년보스턴 팬들의 '공적'이 돼버린 훌리오 루고. 2008년 시즌 들어서는 그나마 3할대 쳐주는 몇 안되는 선수 중 하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리 미움받는지 궁금하다면 당신은 레드삭스 팬이 아니다"라는 말까지 있다.

 

David Ortiz

Year  Ag  Tm    G   AB    H   HR   AVG   OBP   SLG

----------------------------------------------------

2002  26  MIN  125  412  112  20  .272  .339  .500

2003  27  BOS  128  448  129  31  .288  .369  .592

2004  28  BOS  150  582  175  41  .301  .380  .603

2005  29  BOS  159  601  180  47  .300  .397  .604

2006  30  BOS  151  558  160  54  .287  .413  .636

2007  31  BOS  149  549  182  35  .332  .445  .621

2008  32  BOS  12   43   3    1   .070  .231  .140

 

아무래도 파레토의 ‘새 연인’은 오티즈인가보다.

.070. 이건 특급 마무리투수의 방어율이 아니다. 오티즈가 2008년4월14일 현재 기록 중인 타율이다. 물론 아직 12경기밖에 소화하지 않았고, 그런 이유로 프랑코나 감독도 오티즈를 여전히 3번 타순에 배치하고 있지만 ‘박수를 쳐 줄만한’ 기록이 아님은 분명하다. 43타수 3안타는 메이저리그 간판타자가 기록해도 되는 성적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진] 요즘 파레토와 열애중인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빅 파피' 오티즈.

 

흔히들 야구는 ‘멘탈 스포츠’라고 한다. 오죽하면 ‘정신적인 이유로 공을 제 위치에 던지지 못하는 병’인 ‘스티브 블레스 증후군’이란 ‘야구질병’까지 있겠는가. 올시즌 이승엽이나 오티즈를 비롯해, 앞에서 언급된 모든 선수들 역시 ‘일시적인 부진’일 수도 있고, 타격기술의 퇴보일 수도 있다. 일시적인 부진이나 타격 매커니즘의 문제라면 훈련과 교정을 통해 극복이 가능할 것이고, 또 부디 그러길 바라지만, 만일 ‘파레토 괴담’의 피해자라면... 믿거나 말거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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