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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마구, 이퓨스

  • 등록일
    2010/07/13 13:57
  • 수정일
    2010/09/13 12:11

좌완 중 역대 최다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전설적인 투수 워렌 스판은 이렇게 말했다.
“타격은 타이밍이고, 투구는 타이밍을 빼앗는 것이다”
야구에서 비롯되는 모든 희로애락의 출발점인 투구와 타격에 대해, 이 보다 더 간결하고 정확한 설명을 찾아보기 어렵다.

 

[사진] 전설적인 좌완투수 워렌 스판. 당시 스판과 쉐인의 '원투펀치'는 '스판 그리고 쉐인, 그리고 비가 오길 기도하라'는 시가 보스턴 포스트지에 실릴 정도로 대단했다.

 

눈 한 번 깜빡할 시간이 흐르기도 전에 투수의 손을 떠나 홈플레이트를 지나치는 야구공을 ‘보고’ 쳐낸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타자들은 피나는 연습을 통해 공의 궤적을 ‘학습’하고, 그렇게 학습된 내용에 따라 조건반사적인 반응을 통해 타격을 완성시킨다. 때로 해설자들이 “공이 지저분하다”고 표현하는 것은, 공의 움직임이 ‘학습된 내용’과 달리 형성될 때 쓰이기도 한다. 따라서 많은 투수들은 ‘지저분해지기 위해’ 자신만의 그립을 연구하고, 또 연구한다. 야구팬들은 공이 이미 홈플레이트를 지나친 뒤에 타자가 헛스윙을 하는 장면에 환호하고, 멀뚱히 쳐다보다 공을 지나쳐 보내버리는 순간에 열광한다. 이 모두가 ‘타이밍’을 둘러싼 계산싸움의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타자에게 ‘빠른 공’이 위협적인 이유는, ‘느린 공’이 있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빠른 공을 가진 투수라고 하더라도, 늘상 그 공만 던지다가는 몇 회 지나지 않아 ‘약빨’이 떨어지며 얻어맞기 일쑤일 게다. 불세출의 투수들이 대부분 강력한 직구와 더불어 체인지업과 같은 ‘오프 스피드 피치(Off Speed Pitch)’나 그럴듯한 변화구 하나씩을 기본 옵션으로 장착하고 있는 이유도 이와 같다. 칠흑같이 어두운 방 안에 있던 사람이 밖으로 나왔을 때 견디기 힘든 눈부심을 겪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이퓨스(Eephus)는 매우 흥미로운 구종이다. 매우 극단적인 오프 스피드 피치인 ‘이퓨스’는 타이밍 싸움에서 타자를 혼란시키는 효과와 더불어, 당하는 이의 기분까지 상하게 할 수 있는 ‘1석2조’의 효과를 보이기 때문이다. 이퓨스는 말하자면 과거 동네야구에서 선보이던 ‘아리랑볼’과 비슷한 구종인데, 매우 매우 느린 속도로 던지는 공을 총칭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말로만 설명하기 어려우니, 아래 동영상을 참고하자.

 

 

[동영상] 일본출신 투수 카즈히토 타다노의 ‘이퓨스’ 투구 모습. 딱 봐도 당하면 기분 상하게 생긴 공이다. 내가 타자라면....보기만 해도 짜증이 치밀어 오르지 않겠는가.

 
  

2010년 시즌에서 ‘이퓨스’를 던지는 투수는 LA 다저스의 빈센트 파디야(Vincente Padilla)뿐이다. 파디야는 올 시즌 7월6일 현재까지 등판한 8경기에서 총 56개의 이퓨스를 던졌다. 이는 전체 투구 중 7.2%의 점유율로, 직구(46.2%)와 싱커(26.1%) 다음으로 이퓨스를 즐겨 사용했다. 파디야의 이퓨스 56개 중 55.4%가 스트라이크였으며, 19.6%의 공에 타자들이 스윙을 했다. 1.8%는 헛스윙이었고 3.6%는 파울이었으며 14.3%만이 인플레이 상황에 놓였다.

 

파디야는 초구 혹은 원 스트라이크 상황에서 이퓨스를 즐겨 던졌다. 56개의 이퓨스 중 27개가 초구였으며, 15개는 ‘0-1’ 상황에서 나왔다. 파디야는 이퓨스를 통해 잔뜩 긴장한 채 타석에 들어선 타자의 김을 빼고, 후속투구에 대한 적응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의도로 쓰였을 것이다. 아래 그림은 파디야의 투구를 측면에서 관찰한 궤적이다. 직구 등 타 구종에 비해 이퓨스는 2피트(60Cm) 정도 차이가 난다. 평균 구속 56마일(90Km)의 공이 하늘 높이 솟았다가 내려온 뒤에, 92.5마일(149Km)의 직구가 날아들면 타자로선 헛손질하기 십상이다.

 

[그림] 파디야의 구종별 궤적. 파란색 역삼각형이 이퓨스다. 직구(빨간색 사각형) 궤적과 비교해보면 그 위력을 알 수 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많던 적던 이퓨스를 구사했던 투수는 립 서웰(Rip Sewell)과 케이시 포섬(Casey Fossum), 스티브 해밀턴(Steve Hamilton), 필 니크로(Phil Niekro), 랜디 존슨(Randy Johnson), 데이브 라로쉬(Dave LaRoche), 가즈히토 타다노(Kazuhito Tadano) 등 15명에 불과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이는 아마도 ‘이퓨스’란 공을 처음 선보였던 립 서웰일 것이다.

 

[사진] 이 사람이 바로 립 서웰. 1938년부터 1949년까지 피츠버그에서 활약하며 통산 143승 97패의 성적을 남긴 서웰은 ‘이퓨스의 창시자’로 불린다.

 

사실 이퓨스는 ‘비극의 산물’이었다. 1941년 12월7일, 일본군이 진주만을 습격한 바로 그 날 서웰은 친구와 플로리다주 오칼라에서 사슴사냥을 하던 중 친구가 실수로 쏜 사슴사냥용 산탄총에 맞는 사고를 당했다. 4주간의 입원치료에도 불구하고 오른발에 박힌 총알 몇 개는 끝내 빼낼 수 없었고, 의사는 "이제 야구는 잊어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총격사고는 비극이었지만, 덕분에 서웰은 2차 세계대전에 징집되지 않았다. 당시 미군은 신체검사를 통해 난시와 난청, 극심한 우울증, 평발 등에 대해서 징집 제외 판정을 내렸는데, 서웰은 오른발에 박혀있는 총알 때문에 면제 판정(4-F)을 받았다. 한참 전성기에 이른 수많은 선수들이 ‘육군’으로 트레이드되는 동안 서웰은 야구를 계속 할 수 있게 됐지만, 문제는 그의 선수생명이었다.

 

ㅅㅂ, 야구공 대신 수류탄 던지게 됐삼

 

1942년 봄, 서웰은 스프링캠프가 열리는 캘리포니아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의 가방 안에는 붕대와 소독약이 가득 담겨 있었다. 하루에 두 번씩 상처부위를 깨끗이 소독하지 않으면 발을 쓸 수 없을 것이란 의사의 충고 때문이었다. 오른발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은 투수에게 치명적이다. 우완투수인 서웰에게 오른발은 힘을 실어야 할 축이기 때문이다. 결국 서웰의 직구는 힘을 잃었고, 커브 역시 밋밋해졌다. 서웰은 새로운 무기가 필요했다. 그 결과가 바로 ‘이퓨스’였다.

 

따지고 보면 이퓨스의 창시자는 바로 사슴. "그 총 내가 맞았으면 이퓨스는 탄생하지 않았을 거임"

 

이퓨스의 첫 피해자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딕 웨이크필드(Dick Wakefield)였다. 웨이크필드는 서웰이 이퓨스를 던지자 타석에서 공이 날아오는 동안 두 번 스윙을 하려다 멈춘 뒤 결국 세 번째 타이밍에 스윙을 했다가 땅에 엎어지고 말았다. 이 장면을 목격한 피츠버그의 외야수 반로베이스(Maurice Van Robays)가 이 아리랑공에 ‘이퓨스’란 멋진 이름을 지어줬다. “이퓨스가 무슨 뜻이냐”는 질문에 반로베이스는 “이퓨스는 아무 뜻도 아니다. 그 공은 투구도 아니니까('Eephus ain't nothing, and that's a nothing pitch)”라고 답했다. 정작 서웰 자신은 “난 그 투구에 이름 붙일 생각이 없다. 그냥 던질 뿐(I don't name 'em, I just throw 'em)”이라고 말하는 바람에, ‘이퓨스’는 공식 이름이 돼버렸다. 야구 데이터 사이트에서도 ‘이퓨스’를 공식 구종으로 분류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퓨스’가 ‘아무것도 없음’을 뜻하는 히브리어 ‘efes'에서 유래된 설도 있다.

 

[사진] 반로베이스, 6년동안 통산타율 .267에 볼넷(139개)보다 많은 삼진(155개)를 기록한 그가 야구사에 남긴 것이라곤 ‘이퓨스’란 이름이 전부다.

 

이퓨스가 실전에서 처음 사용된 것은 1941년 4월17일이다. 피츠버그의 선발투수로 출장한 서웰은 시카고 컵스의 타자 돔 달레산드로(Dom Dallessandro)에게 이퓨스를 던져 삼진을 뽑아냈다. 컵스는 ‘이퓨스가 부정 투구’라며 당장 항의에 나섰지만, 내셔널리그 심판위원장 빌 클렘(Bill Klem)은 ‘적법한 투구’라고 답변했다. 바야흐로 신구종 ‘이퓨스’가 중원에 화려하게 등장한 것이다.

 

[사진] 서웰이 사용한 이퓨스의 그립. 적절한 힘 조절을 통해 공을 높이 던져야 하기 때문에, 생각처럼 구사하기 쉬운 구종은 아니라고 한다.

 

이퓨스 등장 초기 타자들은 이퓨스를 일종의 ‘모욕적인 행위’로 받아들이고 격렬하게 반응했다. 세인트 루이스의 3루수 위트니 구로스키(Whitey Kurowski)는 타석에서 자기 앞을 지나쳐가는 이퓨스에 침을 뱉어 맞췄다. 신신내티 레즈의 유격수 에디 밀러(Eddie Miller)는 타석에서 서웰이 던진 이퓨스를 손으로 잡아 다시 투수에게 던져버렸다.

 

      

[사진] “이게 공이냐 똥이냐” 성깔을 이기지 못해 이퓨스에 격렬하게 항의한 두 의인. 왼쪽이 구로스키, 오른쪽이 밀러.

 

서웰은 ‘이퓨스’를 장착한 첫 해인 1942년 17승을 올렸고, 이듬해인 1943년과 1944년에는 각각 21승을 쓸어담으며 전성기를 맞았다. 서웰의 이퓨스는 선수시절 내내 단 한 개의 홈런도 허용하지 않는 위력을 보였으며, 특히 1943년에는 무려 265.1이닝을 투구하는 동안 고작 6개의 피홈런밖에 기록하지 않는 위엄을 드러냈다. 1949년 서웰이 은퇴한 뒤, ‘이퓨스’도 함께 종적을 감췄다. ‘이퓨스’가 다시 야구장에 등장한 것은 1980년대 데이브 라로쉬(Dave LaRoche)가 다시 선보이며 부터다. 애초 강속구 투수였던 라로쉬는 노쇠화와 함께 직구가 힘을 잃자 ‘이퓨스’를 선택했고, 이는 대성공이었다.

 

150Km가 넘는 강속구에 타자들이 헛스윙을 남발하고, 때론 그 빠른 공이 타자의 배트에 정확히 맞아 순식간에 직선적인 반작용 운동을 벌일 때, 야구장은 환호로 뒤덮힌다. 나 역시 온통 고요하던 야구장이 투수의 와인드업과 함께 일제히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변하는 그 순간을 사랑한다. ‘빠른 스피드’는 보는 이의 몸과 마음을 잔뜩 당긴 활시위처럼 팽팽하게 긴장시키는 중요한 요소이며, 그래서 야구경기를 보는 내내 관중은 긴장과 평온, 수축과 이완을 수도 없이 반복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런 ‘스피드의 장’인 야구장에서, 이퓨스는 일종의 반전이다. 느림이 빠름을 압도하고, 투구 때마다 펼쳐지는 투타의 두뇌싸움 속에 타이밍이 타이밍을 빼앗는 그 순간은 매혹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빈센트 파디야를 통해 ‘이퓨스’란 희귀구종을 볼 수 있는 우리는 축복받은 야구팬들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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