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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타자는 어떤 유형의 선수일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홈런타자'일게다. 실제로 많은 투수들이 홈런타자를 두려워하고 있으며, 때론 고의사구 등의 방법을 통해 슬러거를 거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홈런과는 담을 쌓은 '똑딱이 타자들'은 투수에게 아무런 두려움도 주지 못하는 걸까. 당연히 아니다. 때론 안타를 잘 쳐내는 재간둥이들이 무서운 장타력을 보유한 타자들보다 투수를 더 괴롭히는 경우도 많다. 아니, 그렇다면 세상 모든 타자들은 투수에게 두려움의 대상이란 말인가. 지금 장난하나.
사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투수가 두려워한다'는 말의 의미를 먼저 정의내려야 한다. 이는 딱 집어내기 어렵지만, 여러가지 유추는 가능하다. 아마도 모든 투수들은 '좋은 투수'가 되길 원할 것이고, '좋은 투수'를 정의하기 위해 사용되는 몇가지 지표가 있기 때문이다. 압축하자면 통상 야구에서 '좋은 선발투수'로 대우받기 위해서는 '경기당 100개 안팎의 공을 던지며, 6이닝 이상 소화하고, 3점 이하를 실점하는 횟수가 많은 투수'가 돼야 한다.
[사진] 2008년 MLB에서 가장 많은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한 뉴욕 매츠의 요한 산타나. 산타나는 34경기 선발투수로 출장해 무려 28회의 QS를 성공시키며 82%의 QS%를 기록했다. 80%대의 QS 성공율은 전체 리그를 통틀어 산타가가 유일하다.
언뜻 보면 그리 어려울 것 없어보이는 이 조건은 사실 꽤나 까다롭다. 메이저리그 팀은 한 시즌동안 162경기를 치른다. 통상적인 5인 선발체제를 유지할 경우, 한 선발투수가 등판하는 경기는 대략 32게임 정도다. 그렇다면 메이저리그 투수들이 평균적으로 기록한 QS(퀄리티 스타트, 6이닝 이상을 3실점 이하로 막는 것) 숫자는 얼마나 될까. 고작 17.8개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선발투수들이 두번에 한번 꼴로는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아래 표는 각 팀별 경기수(G)와 승수(W), 퀄리티스타트 숫자(QS)를 정리한 것인데, 50%를 넘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AL G W QS NL G W QS
------------------------- -----------------------------
Baltimore 161 68 60 Milwaukee 162 90 84
Boston 162 95 82 Atlanta 162 72 75
Chicago Sox 162 89 93 Chicago Cubs 161 97 84
Cleveland 162 81 84 Cincinnati 162 74 78
Detroit 162 74 67 Houston 161 75 71
Kansas City 162 75 78 LA Dodgers 162 78 79
LA Angels 162 100 92 Washington 161 59 67
Minnesota 163 88 86 NY Mets 162 89 86
NY Yankees 162 89 78 Philadelphia 162 92 88
Oakland 161 75 71 Pittsburgh 162 67 66
Seattle 162 61 73 St. Louis 162 86 78
Texas 162 79 54 San Diego 162 63 76
Toronto 162 86 90 San Francisco 162 72 86
Tampa Bay 162 97 82 Colorado 162 74 68
Florida 161 84 74
Arizona 162 82 95
따라서 이 요소들을 위협하는 타자야 말로 투수가 두려워할만한 선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투수의 능력을 측정하는 지표로는 WHIP(포볼과 안타 허용 갯수를 투구이닝으로 나눈 숫자)이나 ERC(투수가 허용한 포볼과 안타 숫자를 기반으로 계산한 가상 자책점), DIPS ERA(수비요소를 제거한 투수 자책점) 등이 사용될 수 있지만, 오늘 포스트의 촛점은 사실 '타자'에 관한 것인만큼 그냥 위의 서술형 정의를 사용해보자.
똑같은 안타를 맞아도 홈런은 1점을 그대로 헌납해야 한다. 반면 1루타는 뒷수습만 잘해도 실점 없이 이닝을 마무리 할 수 있다. 따라서 당연히 장타력은 중요한 측정요소다. 아울러 '많은 안타'가 '많은 점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타율도 중요하다. 뭐 이거야 당연한 이야기니까 그렇다고 치자.
시각을 돌려 투수의 입장에서 보면, 같은 3점을 허용하더라도 100개 안팎의 투구수를 사용해 5이닝을 채우지 못하면 승리투수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똑같이 범타로 물러나더라도 '초구에 아웃당한 타자'와 '풀카운트 접전 끝에 아웃당한 타자'는 무게가 다르다고 봐야 할 것이다. 또 안타 하나 제대로 쳐내지 못했더라도 포볼을 고르는 능력이 뛰어난 타자의 경우 투수의 투구수를 늘리고 마침내 진루에 성공한다는 점에서 안타 못지 않은 위협요소라고 봐야 한다. 하지만 '홈런'과 '타율'이 야구계에서 톡톡히 대접받는 기록인 반면, 그만큼의 중요성을 가지는 '선구안'과 '출루율'은 천대받고 있다는 점(뭐 요즘에야 좀 나아지긴 했어도..)이 오늘 이 포스트를 작성하는 이유다.
아래 표는 2008년 메이저리그에서 P/PA(타석 당 상대투수의 투구횟수)가 가장 많은 10걸을 추려낸 것이다.
PLAYER TEAM GP TPA P/PA
-------------------------------------
1 N.Swisher CHW 153 588 4.51
2 J.Cust OAK 148 598 4.37
3 A.Dunn CIN/ARI 158 651 4.32
4 B.Abreu NYY 156 684 4.29
5 J.Giambi NYY 145 565 4.29
6 K.Fukudome CHC 150 590 4.29
7 C.Granderson DET 141 629 4.24
8 M.Reynolds ARI 152 613 4.24
9 F.Lewis SF 133 521 4.23
10 M.Cameron MIL 120 508 4.21
* GP : 출장경기수
* TPA : 총 타석수
* P/PA : 타석당 투구수
[사진] 올 시즌 자신을 상대한 투수들로 하여금 타석당 가장 많은 공(4.51개)를 던지게 만든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닉 스위셔. 투수들은 이런 타자들이 가장 짜증나고 까다롭다. 한번 타석에 들어서면 좀처럼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스위셔, 과연 변비라도 걸린 것일까.
모두가 한 타석당 투수로 하여금 4개 이상의 공을 던지게 만들었다. 지난해 NL 투수들은 한 타석에 들어선 타자에게 평균 3.82개의 공을 던졌고, AL 투수들은 3.81개의 공을 던졌다. 즉 2008년 메이저리그 투수들이 평균적으로 타석당 3.81개의 공을 던진 것에 비교해보면 위 10걸의 투구유도력은 상당한 숫자다. 그렇다. 바로 '선구안'이다. 또 아래 표에서와 같이 통상 투수들이 게임당 9.0개 - 9.3개의 안타를 허용한다고 볼 때, 위 투구수 증가는 더 큰 의미를 갖게 된다.
P/PA H/G
---------------------------
AL 3.81 9.3
NL 3.82 9.0
* 각 리그 평균 타석당 투구수(P/PA) 및 경기당 안타수(H/G)
하지만 아직도 통상 타자의 능력을 측정하는 최고의 지표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바로 '타율'이다. 3할 이상을 치면 '훌륭한 타자'로 대접받고, 2할 초중반의 타율로는 '좀 덜떨어진 타자'로 취급받는다. 그렇다면 2008년 메이저리그에서 투수들을 많이 괴롭힌 위 10걸의 타율과 리그 평균타율을 비교해보면 어떨까.
PLAYER TEAM OBP L-OBP AVG L-AVG
-------------------------------------------------
1 N.Swisher CHW .332 .335 .219 .267
2 J.Cust OAK .375 .335 .231 .267
3 A.Dunn CIN/ARI .386 .331 .236 .260
4 B.Abreu NYY .371 .335 .296 .267
5 J.Giambi NYY .373 .335 .247 .267
6 K.Fukudome CHC .359 .331 .257 .260
7 C.Granderson DET .365 .335 .280 .267
8 M.Reynolds ARI .320 .331 .239 .260
9 F.Lewis SF .351 .331 .282 .260
10 M.Cameron MIL .331 .331 .243 .260
* OBP : 출루율
* AVG : 타율
* L-OBP : 리그 평균 출루율
* L-AVG : 리그 평균 타율
올해 메이저리그에서 투수들로 하여금 타석당 가장 많은 공을 던지게 한 상위 10명의 타자 중, 타율이 리그 평균 이상인 선수는 고작 3명에 불과하다. 만일 '타율'을 제1지표로 삼을 경우, 이들은 대부분 '별볼일 없는 선수'로 전락하게 된다. 하지만 출루율로 비교하면 어떨까. 10명 중 8명이 리그 평균 이상의 출루율을 기록했다. 별볼일 없는 것으로 판정됐던 타자들이 돌연 훌륭한 출루머신으로 재평가된다.
야구는 힘좋은 선수를 가리는 역도경기가 아니다.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척도로 삼는 피겨스케이팅도 아니다. 야구는 루상에 나간 주자가 다시 홈으로 돌아와야 점수가 나는 경기다. 그리고 많은 점수를 내는 팀이 이긴다. 그렇다면 승리의 핵심요소는 다름 아닌 '많이 진루하는 것'이다. 그래서 출루율은 아마도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수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고등학교 야구부에서는 타석에서의 인내심을 가르치는 데에 소극적인 반면, 홈런을 비롯한 큰 스윙에 따른 장타를 주문하는 데 열심이다. 선수들 역시 큰 주목을 받아 프로팀에 입성하기 위해 이같은 지침에 충실하고 있으며, 스카우터들은 '야구선수'가 아닌 늘씬한 몸매의 '모델'이나 괴력을 소유한 '보디빌더'를 찾는데 더 혈안이다. 프로야구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타자는 '홈런타자'인 것이 당연하게 됐고, 출루율이 훌륭해도 타율이 떨어지면 '2류 선수'로 취급받고 있다. 이거 이러면 안되는 거 아닌가. 출루율도 설 자리를 만들어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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