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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야구선수 요시다를 응원한다

  • 등록일
    2008/12/04 19:02
  • 수정일
    2008/12/04 19:02

 

최초의 여자 프로야구 선수의 탄생을 두고 일본이 떠들썩한 모양이다.
2009년 출범하는 간사이리그 소속 고베 나인크루즈(Kobe 9Cruise)는 지난 12월2일 요시다 에리(16)와 정식 입단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나인크루즈의 나카타 요시히로 감독은 “요시다의 첫 등판은 한신 타이거즈와의 연습경기가 될 것”이라고 밝히며 ‘마케팅 차원의 선수선발’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나카타 감독은 또 “요시다는 승리하는 경기에 기용될 것”이라며 그녀를 중간계투요원으로 활용할 뜻을 비쳤다. 비록 신생 독립리그 소속이긴 하지만, 여성이 프로야구선수로 활동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은 작지 않은 뉴스임에 분명하다.

 

[사진] 일본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프로야구 선수가 된 요시다 에리(16).

 

카나가와 현립 가와사키 키타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요시다는 지난 11월 실시된 간사이리그 트라이아웃(입단 테스트)을 훌륭한 성적으로 통과했다. 수백명에 이르는 야구선수가 몰려 시작된 트라이아웃은 총 3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요시다는 2회에 걸친 테스트를 통해 추려진 82명의 선수를 상대로 실시된 최종 3차 트라이아웃에서 1회를 무안타, 무실점, 1볼넷, 1삼진으로 틀어막으며 돌풍을 일으켰다. 결국 고베 나인크루즈가 요시다를 7순위(전체 27순위)로 지명하며 프로야구 입성에 성공했다. 요시다를 야구로 이끌었던 그녀의 오빠는 나란히 출전한 트라이아웃에서 탈락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연식야구를 시작한 요시다는 중학교에 진학한 뒤에는 1루수로 활약했다.  투수로서의 선수생활이 본격화된 것은 고등학교 진학 뒤부터다. ‘투수 전업’ 기간이 불과 2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드웨어도 불리하다. 키 155cm, 몸무게 50Kg의 요시다는 동년배 남자 선수들에 비하면 왜소하다 못해 초라해 보인다. 그런 그녀가 프로리그에 입성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프로야구 역사를 통틀어도 찾아보기 어려운 ‘언더핸드 너클볼러’이기 때문이다.

 

[사진] 요시다 에리의 투구모습. 흔치 않은 구종인 ‘너클볼’을 주무기로 사용하는 데다가, 언더핸드 투수라는 점이 그녀의 강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너클볼의 이름은 ‘손가락 관절(Knuckle)로 잡아 던지는 공’이란 뜻에서 유래됐지만, 공을 잡는 법은 투수마다 조금씩 다르다. 오히려 요즈음에는 관절보다 손가락 끝으로 잡는 방식이 더 선호된다. 이렇게 던지게 되면 자연스레 공의 회전이 줄어든다. 공에 회전이 없기 때문에 공 주변의 공기 흐름은 솔기에 걸려 혼란스러운 난기류가 되고, 이로 인해 예측할 수 없는 움직임을 갖는 ‘너클볼’이 만들어진다.

 

어디로 휠지 모르는 공이 너풀너풀 날아 들어오니, 타자는 물론 포수도 공을 잡기 어려워진다. 현역시절 포수로 활약했던 조 토레 감독은 “너클볼은 받는 것이 아니라 막는 것”이라고 말했고, 보스톤의 주전포수 제이슨 베리텍은 “그러니까, 너클볼을 잡는 것은 젓가락으로 파리를 잡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곤란하긴 던지는 투수도 마찬가지다. 제구에 어려움을 겪게 되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폭투가 많아진다. 윌리 스타겔은 “너클볼을 스트라이크 존으로 던지려는 건 길 건너 이웃집 우편함에 나비를 던져 넣으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사진] 다양한 너클볼 그립.

 

요시다가 너클볼을 주무기로 삼은 과정은 단순했다. 중학교 시절 메이저리그 경기를 보다가 보스톤 레드삭스 소속의 팀 웨이크필드의 투구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요시다는 “웨이크필드롤 보고 저런 공이라면 여자인 나도 오랫동안 투수로 활동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녀는 직접 녹화한 비디오를 수도 없이 되돌려 보며 혼자 힘으로 너클볼을 습득했다. 엄청난 스피드와 힘이 난무하는 그라운드에서 살아남기 위한 요시다의 선택은 성공적이었다. 실제로 너클볼 투수의 경우 어깨에 무리가 적어 오랜 선수생활을 보장받는 면이 있다. 다시 말해 일반적인 투수에 비해 너클볼러는 ‘노장’이 많다는 것이고, 이는 뒤진 신체조건으로도 선수생활이 가능하다는 점을 뜻한다.

 

실제로 메이저리그 최고의 현역 너클볼러인 팀 웨이크필드(보스톤 레드삭스)는 1966년 생으로 내년이면 43세가 되지만, 1992년 데뷔 이후 16년째 투수로 활동해 오고 있다. 웨이크필드에 앞서 활동했던 너클볼러들도 다른 투수들에 비해 오랜 기간 투수생명을 유지해왔다.

 

   Name           Career       Win  Retire Age

------------------------------------------------
Dutch Leonard     20 years     191     44
Hoyt Wilhelm      21 years     122     49
Phil Niekro       24 years     318     48
Joe Niekro        22 years     221     43
Tom Candiotti     16 years     151     41

 

한국에도 여자 야구선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가장 유명한 선수는 안향미씨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안향미의 야구인생은 그리 순조롭지 않았다고 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한 안씨는 그 뒤의 인생이 ‘모진 홀대와 시린 외로움의 시간’이었다고 고백했다.
호주팀 초청으로 참가한 미국 세계여자야구대회에서 4번 타자를 맡고, 전국여자야구대회에서 7홈런-8할대의 타율을 기록할 만큼 그녀의 실력은 뛰어났다. 하지만 한국야구계는 가부장 그 자체였다. 고등학교 졸업 뒤 두 개의 프로팀에서 입단 테스트를 치렀지만 모두 낙방했다. 어떤 구단에서는 그녀에게 “선수 말고 카운터에서 일하는건 어떠냐”고 묻기도 했단다. 야구선수를 하겠다는 사람에게 저런 식의 대화는 모멸감을 불러오기 충분했을 터다. 하긴,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야구장에는 "여자 기자가 들어오면 하루 종일 재수 없다"며 출입을 금할 정도로 보수적이었다는 말도 있다.

 

[사진] ‘여자 야구선수’로 한국사회를 견뎌가며 결국 2007년 한국여자야구연맹 창립을 이끌어낸 안향미 선수.

 

요시다는 80Km/h대의 너클볼과 100Km/h대의 직구를 주무기로 사용한다. 객관적으로 빠른 공은 아니지만(오히려 야구선수 치고는 매우 느린 공이지만), '언더핸드 너클볼러'라는 특징은 그녀를 주목받게 한다.  요시다는 자신의 생일인 1월17일과 최초의 여자 프로야구선수 탄생을 의미하는 내년 나이 17세를 의미하는 17번을 배번받았다고 한다. 부디 그녀가 ‘성적 마케팅 도구’가 아닌 ‘당당한 프로야구선수’로 활약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고베 나인크루즈의 오너도 화제다. 나인크루즈의 모기업은 지역에서 생수 제조 및 판매를 하는 회사로, 여성인 히로타 카즈요(47) 씨가 사장이다. 이 회사가 나인크루즈를 창립함에 따라 자연스레 '야구계의 첫 여성 오너'도 탄생하게 된 것.
카즈요 씨는 일본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독립 리그의 이념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 밀착, 사회공헌에 찬성해 야구단 설립을 결단하게 됐다"면서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경기를 통해 고베를 건강하게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일본 프로야구단 오릭스의 팬클럽 회원인 세 명의 딸들도 엄마의 결단에 큰 지지를 보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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