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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직사임

  • 등록일
    2010/07/02 10:04
  • 수정일
    2011/08/09 11:25

지난해부터 맡아왔던 미조직비정규실장 직을 7월1일부로 놓게 됐다.

보직사임을 두고 주변 사람들과 더 많이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았겠다는 점이 가장 안타깝지만,

사실 이번 사건을 거치면서 가장 놀랐던 점 중의 하나는,

민주노총 임원의 실업금여 부당수급 문제에 대한 내 개인의 문제의식과 달리

내-외부의 토론이 빈곤했다는 점.

주변 사람들과 많이 상의하지 못한 데에는 내 게으름이나 성정 탓도 있겠지만,

이런 조직 안팎의 '평온함'도 있지 않을까.

 

아래는 보직사임을 앞두고 미비특위 동지들에게 보낸 편지. 기록 삼아 이곳에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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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실장 이승철입니다.
지난해 9월이었던가요,

처음 미비실로 발령을 받은 뒤 미비특위 동지들에게 편지를 드려야지 생각했었는데,

결국 이제야 보내게 됩니다.

그런데, 편지의 내용은 많이 다를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지난 6월16일 제출한 보직사임서가 25일 상집에서 수리됐습니다.

해임 발효일은 7월1일입니다.
 
보직사임서를 제출한 이유는 복잡하지 않습니다.

저는 노우정 부위원장의 실업급여 부당수급 사건이 최초로 보도된 직후 열린

상임집행위와 임원-실장 연석회의 등 공식 회의에서

‘이 사건은 일반적인 퇴직 간부의 실업급여 수급과는 다른 문제로,

특히 (사건 발생일은 그 전이라고 할지라도) 민주노총 현직 임원이 직접 연관된 사건인 점에서

향후 사건 추이에 따라 민주노총의 지도력 문제로 비화될 것인 만큼,

본인 스스로 사퇴하거나 비정규 담당 임원 역할을 조정하는 것이 옳다’는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그리고 노 부위원장은 6월10일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와 14일 사무총국 전체회의에

‘기타보고’ 형태로 ‘미비담당 임원 역할을 더욱 열심히 할 것’ 등의 내용을 담은 사과문을 제출했습니다.

그리고, 제 고민은 시작됐습니다.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실장은 비정규 담당 임원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역할을 지고 있는 자입니다.

따라서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해당 임원의 사퇴를 주장했던 제가

계속 비정규 담당 임원을 맡기로 한 노 부위원장과 함께 사업을 펼치는 것은

정치적으로나 도의적으로나 맞지 않습니다.

또 개인적으론 사과문의 내용 자체를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이 편지는 제 주장을 펼치거나 사태의 올바른 해결방안을 공방하는 용도가 아니니,

이에 대해서는 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임원의 결정에 맞는 실무책임자를 선임하는 것이

총연맹의 미조직비정규 사업을 위해서도 올바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난해 미비실장 발령을 받으며 가장 힘을 싣고 싶었던 사업은

2기 전략조직화 사업과 최저임금 투쟁이었습니다.

그래서 지난해 공전하고 있던 2기 전략조직화 사업의 가닥을 다시 잡아

미비특위와 의결기구 결정을 거쳐 8월 본격 시행을 목표로 추진해 왔습니다.

최저임금 투쟁 역시 가계부 조사 사업 등 준비사업에 조기 돌입하고,

투쟁 강도 역시 예년보다는 조금 더 높여보고자 했습니다.

여전히 조직 안팎의 비판이 많고, 저 역시 만족하기엔 턱없이 부족하지만,

전혀 성과가 없거나 사업이 정체되진 않았다고 스스로를 위안하기도 합니다.
총연맹의 미비사업 안정화도 목표 중 하나였고,

새 지도부가 들어서며 인선의 영향을 받지 않은 유일한 부서가 되기도 했습니다.

성원의 유지가 ‘사업 안정화’와 동의어가 될 순 없지만,

미비사업의 안정화를 바라는 미비특위 동지들의 뜻이

일정정도 지도부의 의지와 일치해 생겨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측정가능한 지표가 있는 것은 아닐테지만, 미비실 내부의 합력을 높이는 것 역시 목표 중 하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보직사임을 맞는 저 역시 안타깝고 죄송한 마음입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미조직-비정규 사업은 한 사람의 ‘개인기’로 활성화 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며,

조직적인 힘이 모아질 때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 조건을 종합해 보건데, 제가 이 일의 적임자라 볼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2기 전략조직화 사업처럼 진행되던 사업의 연속성 문제는 발생할 수 있을 테지만,

그런 이유라면 모두가 어떤 상황에서도 옴짝달싹할 수 없습니다.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지금 저는 총연맹 미조직비정규 담당 임원을 보좌해 일하기에

부적합한 처지입니다.

아무리 수십 번 돌이켜 생각을 해봐도, 이번 사건 처리과정이 납득되거나 동의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본’이라 생각되는 점이 동의되지 않는 상황에서 호흡을 맞춰 일하긴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해당 임원의 결정이 내려진 상태에서,

제가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행할 수 있는 방법은

그나마 제 직위와 권한을 놓는 것뿐입니다.

대중간부가 내뱉은 말과 행동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르는 법이며,

임원 사퇴와 역할변경을 요구해온 제게는 보직사임이 ‘책임’의 한 형태입니다.

미비특위 동지들의 많은 양해와 용서를 구합니다.
 
아마도 당분간은 기존 미비실 국장단 중 한 분이 ‘직무대행’ 형태로 운영하게 될 것이고,

새로 발령이 날 미비실장을 통해 2기 전략조직화 사업과

최저임금 투쟁(및 평가), 하반기 파견법 개악과 유연근무제 등 자본의 고용유연화 전략에 맞선 투쟁이

더욱 내실 있게 이뤄질 것이라 믿습니다.

저는 새로 발령 받을 자리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형태로 민주노조운동에 복무하겠습니다.

2기 전략조직화 사업은 그 맥락이 유실되거나 사장되지 않도록 성실히 이월작업을 진행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모두들 건승하십시오.
 
2010년 6월 29일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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