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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와 지역주의

  • 등록일
    2008/10/27 15:22
  • 수정일
    2008/10/27 15:22

 

 

한국 프로야구가 (재벌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특정 지역을 연고로 해 태동하고, 또 초창기 해당 지역 선수에 대한 무제한에 가까운 드래프트권을 인정하면서, '프로야구=지역주의'라는 식의 등식이 성립한 적도 있다.

 

지금이야 많이 나아졌지만,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해태 타이거즈의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남행열차'로 시작한 응원 열기가 7-8회쯤 '김대중'을 연호하는 것으로 진화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럴때면 TV 중계에는 캐스터와 해설자의 목소리만 맹숭맹숭 나오고, 야구장 현장의 오디오는 모두 꺼지는 황당한 일도 많았다.

80년대 프로야구 초창기 시절, 유행처럼 번졌던 '프로야구 어린이 회원'도 지역주의를 그대로 대변했었더란다. 롯데 자이언츠의 모자나 점퍼를 두르면 자연스레 '경상도 출신'이 돼야 했으며, 타이거즈를 응원하면 '전라도 깽깽이'로 낙인찍혀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광주 사람들은 타이거즈의 우승으로 '선생님의 낙선'을 위안했으며, 지지리 운도 없던 삼성의 연이은 한국시리즈 고배를 '그 지역 출신 대통령이 부덕한 탓'으로 해석하는 신기를 발휘하기도 했다. 깔끔하고 신사적인 분위기의 LG 트윈스의 등장은 그래서 '서울 깍쟁이'들의 환호를 받았고, 베어스가 떠난 충청도에선 "아무리 핫바지라지만 야구팀까지 뺏기냐"는 볼멘 소리가 나왔다.

 

요즈음에야 이런 분위기가 많이 퇴색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비내리는 호남선'과 부산 갈매기' '아름다운 서울에서'는 인기 응원가로 불리고 있고, 타지역 출신이 기아나 롯데, 삼성을 응원하기란 조금 부담스럽다.

 

이런 시덥잖은 이야기를 꺼내든 이유는, 보스톤 레드삭스와 탬파베이 레이스가 격돌한 올 메이저리그 ALCS 경기에 응원나온 탬파베이 '출신' 소녀의 저 피켓 때문이다. 미국 프로야구도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만큼(물론 해당 지역 출신 선수에 대한 배타적 드래프트권 따위는 없다), 홈팀 팬들의 응원이 압도적인게 인지상정이이다. 지역 야구팀이 연고지 이전을 추진하면 반대집회도 열리고, 프로스포츠 팀을 자기 도시에 유치하겠다는 선거공약이 나오기도 한다. 한국만큼 '압도적'이진 않지만, 자기 지역 야구팀에 대한 배타적 애정은 다 마찬가지인가보다.

 

물론 레이스가 연고지로 삼고 있는 탬파베이는 플로리다주에 위치한 도시로, '휴양지' 내지는 '실버타운'으로 불려 타지역 사람들이 유난히 많다고 한다. 그래서 탬파베이에는 연고지 팀인 레이스를 응원하는 사람보다 뉴욕 양키스나 보스톤 레드삭스, LA 다저스, 시카고 컵스 등 '전국구 팀'을 응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래도 집에서 이 문구를 만들어 종이에 쓰고, 보스톤 레드삭스의 모자를 꾹 눌러 쓴채 수많은 탬파베이 팬들에 섞여 앉아 자기 팀을 응원했을 이 귀여운 꼬마의 사진을 발견했을 땐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탬파에서 태어났지만, 그건 제 잘못이 아니에요. 가자, 레드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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