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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전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성탄절 아침에 입관식을 하였고, 그 다음 날에 발인을 하였다. 부모님과 막내 동생은 아직 전주에 있다. 나와 내 동생은 먼저 서울에 올라왔다.
위로가 필요한 시간들이었고 실제로 위로를 여기 저기서 받기는 했지만 내가 엄마를 위로해드려야 했기 때문에 마음껏 위로 받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 욕망을 표현할 방법을 잘 모르겠고, 그러다 보니 잘 표현하지도 못했다. 발인을 하는 동안,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은 상 중에 내가 한 작은 말실수가 계속 나의 마음 한 구석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참 재미없는 시간들이라고 농담 삼아 한 말이, 그 말이 계속 내 귓가를 맴돈다.
지루했던 것은 사실이다. 접수대에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계속 부조금을 받고, 주차 확인증에 무료 주차 도장을 찍어주는 일을 맡았다. 그런데 내가 했던 말을 내려놓지 못하겠다. 시신을 땅 바닥에 내려 놓을 때에도, 흙을 내려 놓는 순간에도 그 말은 가만 내려 놓을 수가 없었다.
입관식을 지켜보고, 그리고 아주 가까이서 이제 핏기 하나 없는 할머니의 얼굴을 보았다. 그 무표정한 얼굴을 바라보며 엄마는 엎어져 우셨다. 삼촌들은 각자의 가족에 안겨 내가 여태 한번도 보지 못했던 당신들의 모습을 드러냈다. 멈출 것 같지 않던 그들의 울음과 나의 눈물은 잦아들었다. 삼촌들과 엄마는 어느새 장례절차에 관하여, 부조금에 관하여 이야기했다.
적어도 그 순간 죽음은 삶을 냉소하게 만들었다. 죽음은 너무 자명하게 보였기에 그 냉소도 내가 여태까지 접해왔던 그 어떤 냉소보다도 선명했다. 냉소는 내가 지향하는 모든 가치와 목표와 이상의 찬란함을 단순간에 잿빛으로 만들어버린다. 이 냉소는 그러나 너무 설득력이 강하다. 여타 다른 냉소가 어떤 논리나 설득으로 타파가 된다면, 죽음이 불러오는 냉소는 이미 세상에서 가장 견고한 합리성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놓았다.
나는 불현듯 그 냉소에 휘말리지 않는 윤리를 구축하여 살아가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애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일부터는 기분이 어떻든 일단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로 마음 먹었다. 잘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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