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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사태와 몇가지 법적 비유

  • 분류
    단상
  • 등록일
    2010/11/23 23:53
  • 수정일
    2015/05/06 18:50
  • 글쓴이
    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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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사태 때문에 오늘 하루 공부 분량을 다 날렸으니, 이에 대해 글이라도 하나 써야겠다. 우선 내 신분이 신분인 만큼, 연평도 사태를 둘러싼 국제법적 쟁점에 대해 건조하게 다뤄보겠다.

 

몇몇 사람들은 남북한이 휴전 상태이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이 국제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법은 평시상태와 전시상태를 나눠서 판단하지 않는다. 남북한 일방의 무력사용의 위법성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남북한의 특수한 관계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UN헌장 제2조 제4항은 무력사용금지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이에 따라 UN의 모든 회원국은 어떠한 유형의 무력사용도 할 수 없다.  무력사용(use of force)이란 국가가 정규군 등을 이용하여 다른 국가에게 행하는 군사적 활동 일체를 포함하며, 여기에는 다른 국가의 반란단체를 무장시키고 훈련시키는 것까지 포함된다.

 

UN헌장은 무력사용금지의 원칙에 대한 예외를 단 세 가지만 허용한다. 첫째는 자위권, 둘째는 안전보장이사회에 의한 군사적 강제조치(제53조에 의한 지역협정 또는 지역기구에 의한 집단적 제재조치도 포함), 셋째는 구적국의 침략정책 재현에 대한 무력사용이다.

 

구적국이란 2차세계대전 전범국가인 독일-이탈리아-일본을 지칭한다. 이 세 나라 중 어느 하나가 침략정책을 재현할 경우 이들에 대한 무력은 허용된다. 이는 거의 사문화된 규정이다. 이번 사건에서 북한의 무력사용은 안전보장이사회와는 무관하다. 결국 북한의 무력사용이 자위권에 해당하는지만 검토하면 된다.

 

UN헌장 제51조는, UN회원국에 대한 무력공격이 발생한 경우, 안전보장이사회의 조치가 있기 전까지 해당국의 개별적, 집단적 자위의 고유한 권리를 인정한다. 여기서 '무력공격'의 해석이 굉장히 까다로운 문제로 등장한다. '무력공격(armed attack)'은 '무력사용(use of force)'과는 약간 다른 개념이다. 국제사법법원은 Military and Paramilitary Activities in and against Nicaragua 사건에서 무력공격을 "정규군에 의한 국경침입 또는 정규군의 그것과 규모와 효과가 유사한 용병에 의한 국경침입"이라고 해석[안진우, 이종훈 공저, 국제법요해 제3판, 피데스도서출판, 210p.]한다. 또한 이런 자위권의 행사가 적법하기 위해서는 상대국의 무력공격에 비례하는 수준의 대응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에 비추어 볼때, 북한의 무력사용은 UN헌장 제51조의 자위권 행사요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위법한 무력사용이 된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무력사용은 한국정전협정(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사령관 및 중공인민지원군 사령원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을 위반하고 있으며 민간인에게도 무차별적인 무력사용을 했기 때문에 제네바 제4협약(전시에 있어서의 민간인의 보호에 관한 1949년 8월 12일자 제네바협약)을 위반하고 있다. 이런 북한의 무력사용에 대응한 한국군의 공격은 국제법상 자위권의 요건을 갖춘 무력사용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다.

 

 

건조하게 쓴다고는 했지만 막상 써놓고 보니 내용이 많아졌다. 국제법 원칙들이야 참 화려하지만 저 원칙들이 거의 휴지조각에 가깝다는 것은, 힘겹게 나열한 나로서는 인정하기 싫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내가 글의 제목에서 명시한 '법적 비유'는 조금 다른 이야기에 관한 것이다.

 

이번 사태를 맞이하며 참 많은 사람들이 북한은 어차피 예측불가이며 정상적인 행동을 하는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화해무드를 조성하지 못한 이명박 정부에게 사태의 책임을 돌리고 있다. 이 '담론'에는 북한을 비정상국가로 확정지으려는 함의가 담겨 있다. 더 나아가, 북한은 비정상국가이기 때문에 북한이 무슨 짓을 하든 그건 전적으로 북한 책임이라고 말하기 힘들다. 주변국이 알아서 조심을 해야 한다. 여기서 북한은 마치 형법상의 심신장애자처럼 취급된다.

 

형법 제10조는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않고, 그 능력이 미약한 자의 형은 감경한다고 규정한다. 북한을 이 맥락에 대입시킨다면 북한은 (제대로 된)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거나 그 능력이 미약한 자가 될 것이다. 이런 자를 책임무능력자라고 하니, 북한은 '책임무능력국가' 정도가 되겠다.

 

누가 북한을 책임무능력국가로 지정할, 내지는 선고할 권한이 있는지, 어떤 경우에 그것이 인정될 수 있는지에 대한 (사실 무의미한) 논의는 일단 제쳐두자. 저 맥락을 계속 따라간다면 북한이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사실상 없다는 것은, 북한 인민이 자신의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북한의 현실과 연결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북한을 책임무능력국가라고 부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다.

 

강경대응을 하려는 자는 책임무능력자를 엄하게 다뤄 훈련시키려는 자이겠고, 평화적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자는 책임무능력자를 살살 달래서 책임무능력자가 엄한 짓을 하지 않도록 만드려는 자이겠다. 흥미롭게도 이들은 어쨌거나 북한은 책임무능력자이며, 앞으로도 책임무능력자일 것이라는 전망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책임무능력자는 말 그대로 무능력자, 훈련되지도 않고 살살 달래지지도 않는다.

 

이 시점에서 요구되는 바는 오히려 북한의 책임능력을 회복시키는 것이겠다. 북한 인민들이 자신들의 주권을 획득하여, 의사를 결정할 능력을 얻는 과정이 필요하다. 북한 공동체의 복원이라고 다르게 말해보겠다. 이것은 동시에 남한 공동체의 복원도 요청하는 작업이다. 마찬가지로, 남한이 얼마나 책임능력을 제대로 가지고 있는지를 재고하자는 것. 이 공동체가 제대로 자리를 잡아야 남한과 북한이라는 두 공동체간에 어떤 성질의 연결과 갈등이 있는지가 조금 더 명확하게 다가올 것이다. 그때야 비로소 평화의 조건에 대한 유의미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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