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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대와 386세대

 

 

‘어느새 어영부영 살아오게 돼버린 나의 머릿속에는 잡다한 개념들과 황망한 이상들로 가득 차 있다.’

 

 

지금 소위 20대를 마무리하는 29살이 된 나에게 지난 20대를 돌이켜보는 일은 마치 소독차 연기 속에서 뭣도 모르고 좋아하다, 멀어져 가는 차의 뒤꽁무니를 바라보는 것만큼이나 허망하다.

 

 

누군가는 취직하고 누군가는 결혼하고 누군가는 백수로 지내고 있는 나의 친구들의 삶이 어떻든 간에 그(녀)들은 아직 살아있다.

 

아니 그렇지 않고 20대가 언론들의 글 노리개 감으로나마 산화되어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 것은 전적으로 미디어의 책임이지 20대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탓이 아니다.

 

 

한국사회는 유독 세대담론이 많다. 멀게는 X세대에서부터 지금의 2.0세대 그리고 그 ‘잘난’ 386세대 등등 까지…….

 

 

누구하나 규정을 바라지도 않고 규정의 필요성이 제기 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있어 보이는 글을 쓰고 싶어 안달 난 혹은 마치 세대 담론이 그럴싸한 사회과학적 용어라도 되는 것처럼 말도 안 되는 조합논리를 내세우며 세대론을 제시하는 ‘과학자’들과 비평가들을 마주하게 될 때 본의 아니게 나는 어느 세대에 속하는 지 자문하게 된다.

 

 

88만원 세대 그 것이 나를 규정하는 ‘사회과학’적 ‘용어’다. 아니 ‘88만원을 벌지도 못하면서 매달 88만원에 가까운 돈을 써야하는 세대’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오늘 놀라운 기사를 접해야 했다. 한겨레 2008년 5월 14일자 8,9면에 걸친 기사

 

‘2.0 세대’ 386부모 ‘뜨거운 피’ 물려받았다

 

자유분방하게 크며 사회비판 의식 배워 송경화 기자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10대들의 ‘배후’는 누굴까? 전문가들은 이들 10대의 부모인 이른바 ‘386 세대’를 지목한다. 1980년대 민주화 시대를 거친 부모의 사회비판적 ‘유전자’가 자녀들한테 자연스럽게 전이됐다는 것이다. 김종엽 한신대 교수(사회학)는 “386 세대의 부모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보수화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자녀들에게 ‘현실과 타협하면서 살아라’고 가르치진 않는다”며 “386부모 아래서 자라면서 부모로부터 사회비판의식을 의식·무의식적으로 학습했던 10대들이 지금 촛불을 들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지난 10일 중3 딸과 함께 서울 청계광장 촛불집회에 참가한 김상철(42)씨는 “현장이야 말로 살아있는 교육이라고 생각해 참가했다”며 “현장에서 현실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지 아이와 함께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 2004년에도 가족과 함께 탄핵반대 촛불집회에 참가했다. 촛불집회에 참가한 김지인(18·진명여고3)양은 “집안 분위기가 엄숙하지 않아 어떤 문제든 자연스럽게 꺼낼 수 있다“며 “아버지에게 ‘청계광장에서 자유발언을 했다’ 말했더니 무슨 말을 했는지 아버지가 먼저 관심을 가져줬다”고 말했다.

 

하지만 20대에게 10대들의 이런 ‘당돌함’은 낯설다. 취업준비생 안경원(26)씨는 “우리 때는 (부모들한테) 의견을 말해면 ‘버릇없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렇게 몇 번의 좌절을 겪으면 스스로 체념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은수(27)씨도 “집에서 부모님과 깊은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어색한 일이었고 지금도 어색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386 세대인 40대의 진보적 성향이 보수성향의 20대를 뛰어넘어 그들의 자녀인 10대에게 영향을 끼치는 ‘격세유전’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 지난해 17대 대선의 투표 성향을 보면, 20대는 당시 이명박 후보에 42.5%, 이회창 후보에게 15.7%의 표를 던졌다. 이명박 후보 지지율에선 30대(40.4%)를 앞섰고, 이회창 후보 지지율에서는 어떤 연령대보다 가장 높게 나타났다. 김 교수는 “이른바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20대와 달리 지금의 10대들은 경제적 결핍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노파심에 적기는 하지만) 현재 정부의 무능한 협상을 반대하는 집회의 의미를 훼손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도 심지어 이들의 ‘배후’가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설사 있다고 한들 그 것이 이 집회의 가치를 떨어뜨린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이 기사에서 인용되는 소위 전문가들의 논리가 무척 터무니없음에 놀랄 따름이다.

나는 솔직히 10대들의 ‘배후’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런 배후를 알아야 하는 사회적인 요구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만약 그 ‘배후’가 있다면 그 것은 현재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비합리적이고 비인권적인 교육과 저 무능한 정치집단의 실체가 본격적으로 드러남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지 ‘격세유전’을 거치면서 형성되는 ‘진화론’적인 ‘배후’가 아니다.

 

 

기사 제목만 보고 차마 민망해서 제대로 글을 읽기도 힘들었지만 그 내용을 보면 볼수록 실로 ‘진보’ 일간지 기자가 쓴 기사가 맞는지 의구심이 든다.

 

 

386세대의 개념적 정의가 무엇인가?

 

 

'386' 세 숫자에는 각각의 뜻이 들어 있어, '3'은 1990년대 당시 30대를, '8'은 1980년대에 대학에 다닌 1980년대 학번을, '6'은 1960년대에 태어난 사람을 뜻한다. 즉,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1990년대에 30대였던 세대가 바로 386세대이다.

 

두산백과사전

 

 

당당히 백과사전에도 기재된 386세대의 개념적 정의는 익히 알다시피 이렇다.

일부 ‘학출’ 정치인들과 1987년 6월 항쟁을 이끌었던 세대들을 일컫는 데 주로 ‘쓰이’는 말이다.

 

단순히 말해서 대단히 협소한 정의이다.

 

 

정말 멍청하게 물어보자면 소위 386세대 부모님을 두지 않은 10대의 학생들 혹은 학생이 아닌 청소녀(년)들이 이글을 봤을 때 어떤 생각을 할 것인지 염두 해 두지 않았는가?

 

 

만약 이 기사의 의도가 부모님의 ‘뜨거운 피’를 물려받았다고 자랑스러워하는 ‘학생’들을 북돋아 주는 거라면, 그래서 지난 노무현 정권 때 욕이란 욕은 다 얻어먹었던 386세대들의 그 ‘뜨거운 피’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것이라면, 그래서 ‘보수’ 성향의 20대들의 잠자고 있는 ‘진보성’을 일깨우는 것이라면, (이 기사는) 유감스럽게도 지난 수년간 ‘운동권’이 탈피하지 못했던 ‘자위행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리라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우후죽순처럼 번져나가던 진보진영의 반성논의는 이제 사라지고 10대들의 자발적인 집회참여가 다 386부모를 뒀기 때문이라는 ‘멘델의 유전법칙’같은 논리가 등장 하는 것을 보면 그 간 진보진영이 엄청난 ‘피해의식’을 겪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20대의 보수화 경향에 대해서 어떤 대안적 분석이 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분명 20대들 중에서도 386세대 부모를 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더 많을 것이다.

 

 

그네들에게 88만원 세대라는 저주스런 딱지를 안겨주고서는 ‘격세유전’에 따라 2.0세대와 386세대 간의 화합의 장을 마련해주는 것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기만적인 행태 속에서 ‘진보’ 일간지가 해야 할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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