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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린 들판을 밟아갈 때

 

踏雪野中去 (눈 내린 들판을 밟아갈 때에는)

不須胡亂行 (모름지기 그 발걸음을 어지러이 하지 말라 )

今日我行跡 (오늘 걷는 나의 발자국은)

遂作後人程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리라)

 

서산대사(西山大師)의 시를 읽을 때마다

생각과 말 행동거지를 바르게 하는 것을 떠올린다.

하지만 필부중의 필부의 발자욱이 누가의 이정표가 되겠는가마는...

최소한 타자의 오류와 부족함으로부터 자신을 정당화하고 정립하는 근거로 삼기보다는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을뿐 화이부동(和而不同)의 마음은 잊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또한 화이부동은 단순히 좋은 게 좋은 것이라하여 원칙없이 화합하기 보다는 

타자와 조화롭게 살되 의를 굽혀 좇지는 아니한다는 뜻으로, 

남과 화목하게 지내지만 자기의 중심과 원칙을 잃지 않음을 일컫는다고 하니

물론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2006년 새해 아침에 반면교사와 화이부동을 떠올리는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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