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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와 역사
지난번에 “노동자와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지난번 공부한 내용을 다시금 복습하는 의미에서 역사발전에 몇 가지 원칙을 재확인합니다.
1. 역사를 인식하기 위한 몇 가지 원칙
☞ 변화
모든 사물은 변화한다. 영원불멸한 것은 없다. 모든 사물은 스스로 변화하여 다른 어떤 것이 된다.
☞ 변증법
사물의 본질은 운동이며 과정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진리를 깨닫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광범위하게 승인된 방식들 중 하나가 변증법이다. 변증법은 본래 그리스의 대화술․문답법으로부터 출발했다. 대화할 때 서로 다른 의견을 이야기하다가 나중에 합의를 이루는 과정
☞ 모순
모(矛)는 창이고 순(盾)은 방패다. 이렇게 두 개의 서로 상반되는 관계를 모순이라고 한다.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변화가 바로 운동이다. 운동이란 모순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이다. 사회운동이 올바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현실의 모순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과제를 올바로 설정하고 활동 계획을 세우고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효과적인 실천할 수 있다. 모순은 사물의 내부에도 있고(내적 모순), 외부에도 있다(외적 모순).
☞ 대립
모순된 관계는 서로 대립한다. 우리는 사물에 존재하는 대립을 냉정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대립을 그냥 인정하고 가만히 있다면 아무 발전도 있을 수 없다. 모든 사물은 대립을 극복하고 해결하면서 통합하는 과정을 거쳐 발전한다.
☞ 부정과 지양
낡은 것을 극복하고 긍정적인 것을 보존하는 변증법적 부정의 과정을 ‘지양’이라 한다.
☞ 변화에는 규칙이 있다
① 양질 전화의 법칙 (변화의 형태에 관한 법칙)
: 작은 양적 변화가 점차 쌓이면 결국 한계를 무너뜨리고 근본적인 질적 변화를 일으킨다는 법칙이다. 물을 예로 들면, 열을 가해 온도를 높이면 점차 분산력이 높아지는 현상이 축적되다가(양적 변화) 그 변화가 계속되어 온도가 100도에 이르면 그때는 액체와 전혀 다른 성질의 기체(수증기)가 돼버리는 것(질적 변화)이다.
노동조합 활동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양적인 변화만을 생각하면 조합주의나 집단이기주의에 빠져 발전하지 않는다. 노동조합 활동 경험이 싸이면 그때는 노동운동을 정치 세력화한다든가 하는 새로운 질적 변화가 필요하다. 반대로 성실한 노력을 꾸준히 하지도 않으면서 질적인 변화에만 집착하면 한 방에 모든 일을 해치우려는 조급증에 빠지게 된다. 질적인 변화를 내다보면서 꾸준히 양적인 변화를 이루어나가는 태도와 함께, 양적인 변화가 어느 수준에 달했을 때는 거기에 머물지 않고 질적인 변화로 바꾸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② 대립물 통일의 법칙 (변화의 원인에 관한 법칙)
: 모든 사물은 내부에 서로 다른 요소가 상호연관과 상호부정의 상태에 있다는 법칙이다. 사물은 그 내부에 대립물 사이의 갈등을 발전의 원동력으로 갖추고 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사물은 자기 혼자 독단적(獨斷的)으로 존재할 수 없고 언제나 자기에 반대되는 것, 반대되는 현상과 대립하거나 때로는 서로 섞이기도 한다.
다시 물을 예로 들면, 응집력과 분산력이 서로 갈등하면서 평형을 이루고 있다가 분산력이 응집력보다 훨씬 커지면 수증기로 변화하고, 온도가 낮아져 응집력이 분산력보다 훨씬 커지면 얼음이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변화와 발전을 지향하는 세력과 기득권을 고수하려고 하는 세력으로 나뉘어진다.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지배/피재배계급, 자본가/노동자계급, 보수세력/진보세력으로 나누어진 어느 집단에 소속되기 마련이다.
③ 부정의 부정 법칙 (변화의 과정에 관한 법칙)
: 전 단계를 뛰어넘는 질적인 변화는 단순히 전 단계를 말살시키는 것이 아니라 전 단계보다 더욱 우수하고 긍정적인 것으로 복귀한다는 법칙이다. 한번 부정하고 나서 또 한 번 부정하면 다시 원래의 것으로 돌아간다. 수학을 예로 들면 아주 쉽다. +1을 부정하면 -1이 되는데, 여기서 한 번 더 부정하면 다시 +1이 된다. 다만, 이때의 부정의 부정 단계는 최초의 시작보다 훨씬 풍부해진 처음으로 되돌아간다는 원리이다.
보리를 예로 들면, 보리 씨앗이 땅 속에 묻혀 썩어서 보리줄기가 된다. 보리줄기는 씨앗의 ‘부정’이다. 그 보리줄기는 더 많은 보리 씨앗을 맺으면서 죽음으로써 다시 한 번 ‘부정’의 과정을 밟는다.
2. 인간의 역사 - 사회란 무엇인가?
☞ 생산력과 생산관계
생산은 자연을 대상으로 해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다.
생산은 한 개인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생산이 사회적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사람들 사이에 생산관계가 형성된다. 생산관계란 생산물의 생산에서 교환․분배․소비에 이르는 과정에서 사람들 사이에 생기는 관계이다.
이 생산관계는 생산수단의 소유형태에 따라 달라진다. 즉 생산에 필요한 건물․도구․기계․원료․땅․공장 등 생산수단을 누가 소유했느냐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땅이나 기계, 공장 같은 것을 사회의 성원 전체가 공동으로 소유하는 사회적 소유가 하나이고, 이 생산수단을 소수 개인들이 소유하는 개인 소유가 다른 하나이다.
생산수단을 사회적으로 소유하는 경우 : 생산하여 만들어진 생산물이 모두의 것이 되고, 이것이 분배․교환되는 것도 평등하게 이루어진다.
생산수단을 개인적으로 소유하는 경우 : 생산수단을 가진 사람이 생산물도 소유하고 생산한 사람의 노동의 성과를 빼앗게 된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지배와 복종의 관계가 생겨나고 생산수단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는 노동의 성과를 뺏고 뺏기는 적대적 관계가 생겨난다.
여러 다른 생산관계가 나타나게 되는 기초는 그 사회의 생산력이다. 생산력이란 글자를 풀면 생산하는 힘이다. 이 생산력은 사람이 생산에서 자연과 맺게 되는 관계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옛날에는 나무를 톱으로 잘랐는데 지금은 기계톱으로 많은 나무를 순식간에 잘라낸다. 그러니까 사람의 육체적․정신적 힘과 노동 수단이 결합해서 생산물을 만들어 내는 힘이 곧 생산력이다. 생산력은 인류 사회가 시작된 이래 꾸준히 발전해 왔다.
한 사회의 생산력과 생산관계가 통일되어 생산의 형태를 이루는 데 이것을 생산양식이라고 한다. 이 생산양식이 사회의 기초를 이룬다.
☞ 사회의 구조
사회에는 생산-경제적 관계 이외에 또 무엇이 있는가? 사회에는 정치적․법적․종교적․문화적․교육적 관계가 존재한다. 그것은 정치활동, 법, 국가, 학교, 교회, 언론 등에서 펼쳐지는 관계다. 또 사람들의 사회적 의식도 사회를 이루는 요소가 된다. 이러한 여러 관계와 의식은 기본적으로 경제적 관계로부터 나온다. 복잡한 그물망처럼 얽혀있는 사회적 관계의 전체 중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일차적인 경제적 관계를 그 사회의 경제적 토대라고 한다. 즉 그 사회의 토대란 물질적 생산관계에서 인간 간에 형성된 경제적 관계 즉 생산관계이다. 그 외의 정치․교육․종교․문화적 관계와 사회의식 등을 상부구조라고 한다. 경제적 토대가 정신적․의식적 관계인 상부구조를 규정한다.
○ 노동 : 물질적 부를 생산하기 위한 인간의 목적의식적인 활동. 노동은 인간에게만 유일한 것이며, 인간 그 자체를 창조하는 행위이다. ○ 생산수단 : 노동수단과 노동대상으로 구성 ○ 노동수단 : 생산에 필요한 도구, 기계 설비와 건물, 수송수단, 운하, 전기 송신망 등 ○ 노동대상 : 인간의 노동력을 투여하는 대상으로 자연 또는 어느 정도 가공된 대상. 목재, 광석, 동식물, 수자원, 합성수지 등 ○ 생산력 : 인간의 육체적・정신적 힘과 노동수단이 결합하여 생산물을 만들어내는 힘으로 생산력은 인류사회가 시작된 이래 꾸준히 발전해 옴 ○ 생산관계 : 물질적 부의 생산, 교환, 분배, 소비되는 과정에서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 ○ 생산양식 :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결합관계 ○ 토대 : 사회의 일정한 역사적 발전 단계에서 사회적 생산관계의 총체, 생산력의 특정한 발전 수준과 관련된 관계 ○ 상부구조 : 정치, 철학, 법, 예술, 종교와 그 밖의 여러 가지 사회관, 그리고 이에 조응하는 제도들로 구성 ○ 사회구성체 : 인류 역사상 다섯 가지의 사회 - 원시공동체, 노예제, 봉건제, 자본주의, 공산주의(그 첫 번째 국면인 사회주의)는 각기 역사적으로 규정된 고유한 경제적 토대와 그에 조응한 상부구조의 유기적 통일체로 이들 각각의 사회를 사회구성체라고 한다. |
3. 인류 역사의 발자취 - 역사의 발전 법칙
원시공산제 사회 => [노예제 사회 => 봉건제 사회 => 자본제 사회] => ?
1) 원시 공산제 사회
인간이 처음에 만든 세계는 계급도 분열도 없는 사회였다. 그 당시의 생산력은 아주 낮았고, 무리를 지어 집단적으로 사냥하고, 열매를 주워오는 것이 일반적인 생산방식이었다. 이런 생산력 아래서의 생산관계는 공동소유였다. 연령별, 성별로 분업이 발생했다. 성별분업을 보면 불을 지킨다든가 아이를 낳고 생활을 꾸리는 등 사회생활에서 여자들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래서 여자들이 존중되는 모권 제도를 가진 사회였다.
당시에는 사람이 자연을 지배하기보다는 자연의 힘이 인간의 삶과 생활을 오히려 지배했다. 그래서 당시에는 힘센 동물이나 신령스러운 나무, 돌 같은 것을 섬기고 믿는 신앙(토템사상, 애니미즘)이 생겨났다. 이처럼 상부구조인 사람들의 의식, 종교 등은 토대인 경제에 의해 규정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원시사회 내부에서 생산력이 발전한다. 동물을 길들여 기르면서 목축업이 생기고 식물을 재배하면서 농업이 발생했다. 목축업을 하는 종족과 농업을 하는 종족이 발생하여 사회적 분업도 발생했다. 이렇게 생산력이 발전하고 분업이 이루어지자 종족끼리 남는 생산물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또한 노동 도구가 발전되어가면서 이 도구를 만드는 일도 전문화되어 수공업자가 생겨났다.
여기서 생산력과 생산관계 모순이 발생하였다.
노동도구가 발전하여 청동이나 철로 만든 금속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을 때 사람들은 반드시 씨족전체가 공동으로 일할 필요는 없게 되었으며 오히려 한 가족이 따로 떨어져서 일하는 것이 편리하고 더 능률을 올릴 수가 있었다. 또 각각 다른 조건에서 일하여 얻는 생산물을 다 모아 놓고 평균적으로 분배하는 것은 각 생산력의 발전을 저해하였다. 공동소유, 공동생산이라는 원시 공산제 사회의 생산관계가 생산력을 발전시키는데 오히려 장애가 되었다. 원시 공산제 시기에는 없었던 가족이 생겨난 것이다. 이렇게 하여 여러 가족들이 모여 농촌 공동체가 만들어 졌다. 농촌 공동체에서는 토지가 공동소유로 남아 있었으나 각 가족들은 노동도구를 개별적으로 갖고 개인경지를 운영하였으며, 생산물도 공동으로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과 가족의 소유로 넘어갔다. 이것은 생산력이 발전함에 따라 개인 소유가 발생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사유재산 제도가 생긴 다음부터 빈부격차가 심해졌다. 원시 공산제 사회의 우두머리나 장로들은 자신들의 지도적 지위를 이용해서 교환해 온 물품이나 남는 물품을 자기 소유로 하거나, 공동체의 재산을 여러 가지 수단으로 약탈해서 개인 소유로 만들었다. 이들은 더욱 부유해져 귀족이 생겨났다.
이때 생산력은 더욱 발전하여 잉여생산물이 생겨났다. 옛날에는 예를 들어 20명이 일해도 겨우 먹고 살았는데, 이제는 20명이 일하면 23명이 먹고 살만큼 생산력이 발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3명분의 생산물을 잉여생산물이라 한다. 잉여생산물이 생산되자 전쟁에서 잡아 온 포로를 죽이는 대신에 그들을 부려먹는 것이 더 유리하게 되었다. 부유한 특권귀족들은 전쟁에서 잡아온 포로들을 더 많이 자기의 노예로 사용하면서 그들의 노동력을 착취하였다. 인류사회 최초의 계급인 노예와 노예소유주가 발생한 것이다.
2) 노예제 사회
노예제 사회로 넘어오면서 국가가 발생했다. 국가는 옛날부터 항상 있었던 것이 아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계급사회가 나타나면서 생긴 것이다. 노예가 생기자 노예들은 당연히 반항하게 된다. 이에 따라 착취자와 피착취자 사이에 투쟁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착취자들은 피착취자들의 반항을 진압하기 위해 강력한 권력기관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렇게 정치, 정치권력이라는 상부구조를 변화시킨 것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변화였다.
노예제 사회의 생산관계는 농업, 목축업이 분화되어 발전한 생산력에 기초한 것이었는데, 땅과 노동도구-생산수단을 가진 노예주와 이들에 의해 착취되는 노예계급으로 분열하여 적대적인 생산관계가 발생한다.
노동도구(노예)의 발전 없이 생산력의 발전이 일어나기는 힘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억압과 착취에 견디다 못한 노예들의 반란이 여기저기서 일어났다. 대표적인 예로 스파르타쿠스는 9만 여명의 노예들을 이끌고 3년간이나 싸웠다.
또 노예제 국가의 군사력의 기초는 소생산자들, 즉 농민과 수공업자들이었다. 노예가 일찍 죽고 자식을 낳지도 못했는데 날이 갈수록 노예가 더 많이 필요하게 되자 전쟁은 더욱 심하게 일어났다. 그러나 전쟁에 차출되고 늘어나는 세금의 부담에 짓눌려 농민과 수공업자들이 몰락했다. 그리하여 노예제 국가의 군사력이 약해지고 노예의 숫자가 줄어들면서 노예가격이 치솟고, 값싼 노예노동에 의해 얻어지던 경제적 이익은 사라져 갔다.
이렇게 노예제의 생산관계가 더 이상 생산력을 발전시키지 못하게 되는 모순에 빠지게 되자, 새로운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것은 자유농민이나 노예에게 땅을 조금씩 나누어주고 농사를 짓게 하여 수확의 일부를 거둬들이고, 그 대신 자유농민과 노예에게 각종 의무를 부과하는 방법이었다. 새로운 생산관계가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땅과 노예를 완전히 소유한 노예주라는 계급이 지배하던 노예제 사회는 몰락했다. 노예제사회 몰락의 원인은 당시의 노예 - 노예주라는 생산관계가 더 이상 생산력을 발전시키지 못하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에 기초해있으며, 노예들의 저항과 계급투쟁이 사회를 뒤흔든 것이었다.
3) 봉건제 사회
봉건제 생산양식은 노예제 사회가 무너져 가는 와중에서 농민, 노예들에게 토지를 나눠주고 그 수확물을 대가로 받아가는 과정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그러나 토지라는 생산수단이 개인적으로 소유되어 농업공동체 안에 불평등이 심해지고, 점차 몇 명의 귀족들 손에 토지가 집중되었다. 이들은 농민대중을 자신의 지배 아래 두고 정치권력을 장악하여 왕이 되었다. 왕은 측근 귀족들에게 자신의 땅을 나눠줬는데 이 땅을 봉토라 한다. 봉토를 받은 사람들을 영주라고 했는데 봉건영주의 땅은 농노들에 의해 경작되었다. 농노란 봉건영주에게 신분적으로 예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농노라고 불려진다.
봉건제 사회의 생산관계는 대규모의 봉건적 토지소유와 봉건영주에 대한 농노의 인격적 예속에 기초한다. 모든 토지는 영주의 것인데, 일부는 자신의 직영지로 하고 나머지는 농노들에게 나누어주어 경작하게 했다. 농노는 땅의 사용권을 받는 대신 영주의 직영지에서 일주일에 사흘씩 노동해야 했고 자신의 땅을 떠날 권리도 없었다. 영주가 농노에게 부역노동을 강제할 수 있었던 것은 농노가 영주에게 인격적, 신분적으로 예속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이 예속은 영주가 농노에게 행사할 수 있었던 물리적 폭력, 신분법, 관습 등 ‘경제외적 강제’에 의해 유지되었다. 영주는 ‘초야권’까지 갖고 있었다.
또한 영주는 자체의 무장력으로 기사단을 갖추고 있었는데 이렇게 하여 형성된 봉건제 하의 계급들은 영주, 농노, 기사계급과 도시의 수공업자, 상인들이었다. 농노들은 노예에 비해 생산에 의욕을 갖게 되었고 생산력은 점점 발전해 나갔다. 이런 다양한 생산물을 교환하는 일도 더욱 활발해져서 상인계급이 늘어갔으며 또한 수공업 역시 발전하였다. 그리고 철을 가공하는 방법에 일대 혁신이 일어나 용광로가 등장했으며 나침반, 지도가 발명되어 조선과 항해술에도 혁명이 일어났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회의 분업은 더욱 발전했고, 생산의 발전은 세계로 넓어져 갔다. 그러자 그때까지의 수공업 방식으로는 늘어나는 상품의 수요에 대처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고용노동에 기초한 대규모의 자본주의적 생산이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즉 도시의 수공업자 중 몇몇 소수 장인들은 자본주의적 기업가가 되고, 다른 많은 수공업자들은 생산수단을 잃어버리고 임금노동자가 되었다. 이리하여 자본주의적 관계가 봉건제 내에서 점차 형성되어 갔다.
자본주의는 또 다른 방식으로도 발전했다. 상인으로 대변되는 상업자본이 농민과 수공업자의 생산을 직접적으로 종속시키기 시작했다. 처음에 상인은 상품교환의 중개자였으나, 후에는 소생산자들에게 원료를 제공하거나 돈을 대여해주었다. 따라서 소생산자들을 경제적으로 상인에게 의존하게 되었다. 상업자본은 다음 단계로 고립된 수공업자를 하나의 건물로 모아 임금 노동자로 일하게 했다. 상업자본은 산업자본으로, 상인은 산업자본가로 전화하였다.
자본주의는 또한 지방에서도 성장하기 시작했다. 상품 생산이 발전하자 농노들이 부역노동으로 영주의 땅을 경작하던 노동지대는 교역이 발달하면서 생산물을 바치는 현물지대로, 다시 화폐지대로 바뀌어 갔다. 화폐관계의 발전은 농민을 도시 부르주아와 무산농민으로 계층화했다.
이처럼 자본주의적 생산은 도시와 농촌 모두에서, 봉건제 내부에서 성장했다. 봉건제의 종말은 역사적 필연이 되었다.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이 발전해 가고 부유한 상인과 수공업자들이 활기를 띠면서 영주들의 농민에 대한 수탈은 더욱 극심해 졌다. 이리하여 농민들은 봉기를 일으켰는데 이것은 봉건제의 뿌리를 뒤흔들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에 홍경래의 난이나 전봉준의 동학농민전쟁 같은 것들도 봉건적인 착취와 억압에 대한 농민들의 투쟁이었다.
봉건영주들은 농민봉기가 점차 확산되어 지방으로 전국적 규모로 일어나게 되자 보다 강력한 중앙집중 권력인 절대왕정을 이루어 갔다. 강력한 중앙 집중 권력으로, 농업과 상공업에서 권력을 유지해야만 버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절대 왕정의 권력에 힘입어 농민들을 토지에서 내쫒아 노동자로 만들고, 식민지를 약탈하여 돈을 모은 것은 신흥자본가들이었다.
결국 생산력의 발전에 더 이상 걸맞지 않게 된 봉건제의 생산관계는 무너져 갔다. 봉건적 착취에 대항한 농민봉기는 봉건제를 뒤흔들었고 결국 붕괴시켰다. 봉건 영주에 대한 투쟁은 부르조아에 의해 지도되었는데, 그들은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지배 계급이 되기 위해서 봉건 영주에 대항하여 일어난 농노의 봉기를 이용하였다. 이것이 자본주의를 본격적으로 전개시킨 시민혁명이었다.
♠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의 비밀 “자본의 원시적 축적” ♠ 봉건제사회의 태내에서 성장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더욱 급속히 발전시킨 것은 소위 ‘자본의 원시적 축적’이었다. 자본주의적 생산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첫째는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된 대량의 노동력이 존재하고, 둘째는 자본으로 사용할 수 있는 거액의 화폐가 소수에게 집중되어야 한다. 자본의 원시적 축적이란 이 두 가지 조건을 국가권력의 손을 빌어 일거에 폭력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한다. 첫째 조건은 농민을 토지로부터 강제로 추방하여 도시의 거리로 내모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를 ‘엔클로져 운동’이라고 한다. 엔클로져라는 말은 울타리치기라는 뜻이다. 엔클로져 운동은 2차례에 걸쳐 일어났다. 두 번째 조건은 식민지에 대한 약탈, 식민지 무역과 노예무역, 국제 고리대금업, 각종 국채발행 등의 방법으로 달성되었다. 소위 원시적 축적과정은 폭력과 강제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탄생에 얼마나 커다란 역할을 했는가를 분명히 보여준다. 생산수단을 완전히 박탈당한 거대한 부랑자 집단의 발생과 몇몇 개인의 손에 축적된 막대한 자금은 무자비한 폭력에 의해 창출되었던 것이며, 이것들은 “피에 물들고 불에 타는 문자로 인류의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사실이다. 여기에 자본주의 탄생의 비밀이 있다. “자본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 몸의 털구멍으로부터 피와 오물을 뚝뚝 흘리면서 이 세상에 탄생한 것”이다. |
4) 자본주의 사회
봉건제사회에서 자본주의사회로의 이행은 역사적 진보였다. 신흥 자본가계급은 공장제 생산방식을 도입하여 많은 노동자를 고용하고 대규모 생산을 주도했으며, 차츰 새로운 생산 기술과 기계를 이용하였다. 그러나 봉건제의 지배계급인 영주 계급의 특권이 자본가들의 경제적 진출을 가로막았다. 몰락을 앞둔 영주들의 가혹한 착취에 대항한 농노들의 반란에 자본가 계급이 가세했다. 이 자본가 계급은 시민혁명의 과정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고 정치권력을 장악했다. 결국 새로운 생산력에 장애가 되는 봉건 계급, 봉건제가 몰락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형성된 자본주의 사회는 어떤가?
먼저 생산수단에 대해서 살펴보자. 이전 봉건제 사회와 달리 자본주의 사회는 공장에 모여서 기계로 생산하게 되었다. 봉건제 사회에서는 개별적으로 소유했던 생산수단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집단적으로 모여서 생산수단을 운영하는 사회적 생산수단의 형태로 바뀌었다.
자본주의 사회에 들어서면서 봉건제 사회의 개인적 생산이 서로 연결되는 사회적으로 바뀌었다. 생산물도 개인의 생산물에서 사회적 생산물로 바뀌었다. 이제는 공장에서 생산된 의류, 가전제품 등은 수많은 노동자가 공동으로 만들어낸 생산물이다. 따라서 노동자들 가운데 아무도 “이것은 내가 만들었으므로 나의 생산물이다”라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양상을 생산의 사회화라고 말한다. 생산의 사회화는 이전 사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약적인 생산력의 발전을 가져왔다.
그러나 생산은 사회적으로 이루어지는데 생산수단과 생산물은 자본가가 개인적으로 소유한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기본모순이며 여기서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그 모든 모순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기본 모순으로 인해 어떤 문제들이 생겨나는가?
첫째, 노동자와 자본가 계급간의 대립이다. 생산의 직접적 담당자인 노동자는 생산수단과 분리되어 있고, 굴리면 굴릴수록 더 많은 자본이 자본가의 손에 집중되면서 노동자와 자본가간의 대립은 더욱 심화된다. 노동자들은 평생토록 노동을 하면서 자신이 생산해 낸 잉여생산물, 즉 잉여가치를 자본가에게 착취당할 수밖에 없게 된다. 여기서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간의 대립과 화해할 수 없는 적대적 모순이 발전해 간다.
둘째, 상품생산을 지배하는 법칙이 강화된다. 자본간의 경쟁은 걷잡을 수 없게 치닫고, 개별적인 각 공장, 회사의 치밀한 사회적 조직과 전체 생산의 사회적 무정부성이 모순을 일으킨다. 각각의 개별 공장에서는 정확한 계획에 입각해 작업 공정이 나뉘고 분업이 이루어져 생산한다. 그러나 사회 전체로 볼 때는 자본가들이 이윤을 얻기 위해 생산하기 때문에 생산이 무정부적으로 마구 행해지고 있다. 독점이 강화되어 몇 개의 독점체가 생산을 주도하고 있다고 해서 근본적인 문제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생산수단과 생산물이 과잉생산 되어 생산과 소비의 모순인 공황, 생산력의 낭비, 자연의 파괴, 비생산적 부분으로의 자본 투자 등의 문제가 나타난다. 즉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자본가의 사적 소유에 기초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는 장애를 일으키게 된다.
이렇게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 생산력과의 모순이 심화되고, 자본주의의 발전이 진행됨에 따라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계급 사이의 대립과 모순 역시 더욱 깊어진다.
“자본가계급이 싫든 좋든 촉진하지 않을 수 없는 생산의 진보는 경쟁에 의한 노동자들의 고립 대신에 연합에 의한 노동자들의 단결을 가져온다. 이처럼 대공업의 발전과 더불어 자본가 계급이 생산물을 생산하고 점유하는 기반 자체가 자본가 계급의 발밑에서 무너져 간다. 자본가 계급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무덤을 파는 일꾼을 생산하는 셈이다.”
5) 새로운 사회와 노동자 계급
지금까지 원시 공산제 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까지의 인류 사회의 발전과정을 살펴보았다. 지금까지의 학습을 통해 자연만이 아니라 사회와 역사에도 변화․발전의 방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선사시대를 빼고 실증적 기록이 남아있는 노예제부터 따지면 인류의 역사는 약 5천년쯤 된다고 한다. 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인류역사는 마치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처럼 한쪽 방향으로만 진행되어왔다.
인간의 역사가 흘러온 시간을 돌아보면, 최초의 인간사회인 원시공동체는 수 만년 동안 지속되었다. 노예제는 기원전 4,000년 이집트, 인도, 중국 등에 등장해 서기 5세기말 로마제국이 붕괴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봉건제는 중국에서는 2,000년 이상 지속되었으나, 서유럽에서는 5세기 로마제국의 붕괴 때부터 17-18세기까지 지속되었다. 자본주의는 17세기 영국에서 시작되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으며, 사회주의는 1917년 러시아에서 첫 선을 보인 후 자본주의와 체제경쟁을 하고 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열심히 땀 흘려 일하며 사는 계급이 있고, 편하게 놀고먹는 계급이 있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사회계급은 나뉘어져 있었다. 그런데 인류의 역사는 그 시대의 열심히 땀 흘려 일하는 계급의 권리와 자유가 점차 확대되는 방향으로, 편하게 놀고먹는 계급의 권력은 점차 축소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때로 전진하고 후퇴하기도 하지만 그 방향은 역사이래 바뀌지 않았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혹자는 역사의 종말을 말하며, 자본주의의 영속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인간의 역사는 원시 공산제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변화․발전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변화․발전해 나갈 것이다. 현재 세계를 휩쓸고 있는 신자유주의도 인류역사 발전의 흐름을 거스르기 때문에 언젠가는 부정되어질 것이다. 노예제도가 몰락한 것처럼, 똑같은 맥락으로 신자유주의는 몰락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민중의 주체적 투쟁과 실천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노예제에서 봉건제로 이행과정에 노예들의 봉기와 투쟁이, 봉건제에서 자본제로 이행하는 과정에 자본가들과 농민의 투쟁이 있었다. 이렇듯 인간역사가 발전해 나가는 데는 역사 담당 주체들의 피나는 투쟁이 있었던 것이다. 노예제 사회의 노예가, 봉건제 사회의 농민투쟁이 낡은 사회를 새로운 사회로 교체시키는 원동력이었듯이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넘어 보다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갈 주체와 원동력은 노동자․민중인 것이다.
그럼 노동자계급이 지향하는 최고의 완성된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서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사회에서는 아무도 독점적인 활동영역을 갖지 않으며, 각자는 자신이 원하는 어느 분야에서라도 자신을 훈련시킬 수 있고, 사회가 생산을 전반적으로 규제함으로써 내가 오늘은 이것을, 내일은 다른 것을 할 수 있게 하고, 아침에 사냥 가고 오후에 고기 잡으러 가며, 저녁에는 가축을 돌보고 저녁식사 후에는 비판에 몰두할 수 있게 되어, 나는 사냥꾼이나 어부, 목자나 평론가와 같은 전문인이 되지 않고도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6) 역사 담당 주체의 피나는 노력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렇게 자유와 권리가 확대되는 역사 발전 과정에는 그 ‘주체’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고대 시대 노예의 피 어린 역사는 영화 ‘스팔타쿠스’에서 그 일면을 볼 수 있고, 중세 시대 농노의 해방 전쟁은 ‘토마스 뮌쳐’ 등에서 그 모범을 본다. 역사의 강물은 그렇게 ‘밀고 가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도도하게 흐르는 것이 가능했다.
노동자가 역사를 똑바로 이해하는 것은 역사의 강물을 밀고 가는 삶에 자신감을 준다. 지금은 고통스러울지라도 끝내는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이 노동자의 인생을 보람 있게 만드는 것이다. 역사와 경제를 이해하는 올바른 철학이 우리들 내딛는 발걸음에 힘을 더하는 것이다.
7) 노동운동의 합법칙성
노동운동은 언제나 일정한 속도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침체국면에 빠지기도 하고, 고양국면으로 돌아서기도 한다. 정체되기도 하고, 비약적인 발전을 하기도 한다. 패배하기도 하고, 승리하기도 한다. 이것이 노동운동 발전의 합법칙성이다. 언제나 동일하게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고비를 겪으면서, 마치 고개를 넘는 것처럼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발전한다.
외형상 침체국면은 바꾸어 말하면 노동자들의 요구와 불만이 축적되는 시기이다. 이러한 불만과 요구는 언젠가 반드시 표출된다. 침체 가운데서도 노동운동 역량은 쉼 없이 고양․축적되고 있는 것이다. 정체는 반드시 비약적 발전을 준비한다. 축적된 불만은 다음의 고양국면을 향해서 나아가는 과정이다. “어려울 때는 버티는 쪽이 이긴다”거나 “노동자는 승리할 때까지 패배한다”는 말은 그런 뜻이다.
침체국면을 지나 노동운동이 비약하고 고양되는 시기가 되면, 조직은 놀라울 정도로 확대되고, 투쟁전술이 광범위하게 구사되며, 정치적 투쟁의 수준이나 이념도 급속하게 발전한다. 87년, 88년의 노동자 대투쟁과 96년말과 97년초를 뜨겁게 달군 총파업투쟁은 그 대표적 예다. 이와 같이 노동운동은 침체와 고양, 정체와 비약, 패배와 승리를 거듭하면서 역사를 끌고 가는 기관차의 역할을 하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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