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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민주주의의 파괴. 권력의 '방송장악'

KBS스폐셜 <언론과 민주주의-베를루스코니의 이탈리아> 시청기

“방송업계는 모두 실어증과 공포에 사로잡혀 있으며, 모두 스스로 검열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기자들 열에 아홉은 베를루스코니의 의해 직접적으로 경력이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베를루스코니는 기자들에게 훌륭한 경력을 만들어 줄 수도 있고 그들의 경력을 망칠 수도 있다.”


언론을 실어증과 공포로 몰아넣고, 자진검열을 하게 만든 사람. 기자들의 경력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사람은 베를루스코. 그는 이탈리아의 총리다. 그는 이탈리아의 최고 권력자이자 최고의 부자이기도 하다. 민영방송사 <미디어세트>와 신문사, 출판사, 영화사를 소유한 미디어재벌이자, 익히 잘 알고 있는 AC밀란의 구단주이기도 하다.
한 손엔 권력을 다른 한 손엔 언론을 움켜쥔 이탈리아의 절대권력자 베를루스코니.
그는 성공한 기업가 이미지를 바탕으로 ‘경제살리기’를 내세우며 정치에 입문. 94년 창당 100일만에 총리가 돼 세상을 놀라게 했고, 올해엔 재선에 성공해 이탈리아 최초의 3선 총리 자리를 차지했다.
그의 재선의 비결은 두가지로 뽑을 수 있다.
첫째, 좌파정권의 무능함을 부각시킨 파상공세. 그는 눈물과 피와 세금을 말하는 좌파보다는 ‘세금을 줄이고 국민을 더 부유하게 만들 수 있는 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둘째, ‘경제살리기’ 자신이 어려운 여건에서 성공한 점을 부각시키고, 국민들도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그의 선동은 이탈리아의 표심을 사로잡았다. 그는 40%의 지지로 어렵지 않게 재선에 성공했다. 특히 금융과 패션의 중심지인 부자도시 밀라노에서는 80%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그의 정치성공의 기반은 ‘방송장악’에 있다. 그는 방송을 정치에 이용한 이탈리아 최초의 정치인으로 거론된다.

그가 소유하고 있는 민영방송사 <미디어세트>는 이번 총선에서 ‘총리만들기’ 역할을 톡톡히 했다. <미디어세트>는 올 총선에서 두 가지 사회적 이슈를 집중보도했다.

첫째로 집시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보도로 ‘불안감’을 조성해 보수의 표심을 흡수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탈리아 좌파의 텃밭인 남부농업지역의 표를 분산시키기는 이슈들을 제기했다. 세계 3대 미항인 나폴리의 ‘쓰레기대란’과 ‘다이옥신 치즈’ 문제 등을 집중보도 했다. 좌파의 텃밭은 흔들렸다. '이탈리아를 쓰레기처럼 망친 좌파 정권'에 등을 돌리게 만든 것이다.

자신이 소유한 민영방송을 이용한 정권재창출! 이것이 '최초의 3선 총리 탄생'의 비결이다. 

<미디어세트>는 권력유지 이외에도 심지어 '사주의 불법행위' 옹호하기 위한 '홍위병'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98년 그는 뇌물과 탈세 혐의로 징역형이 선고받았다. 그러자 <미디어세트>는 사주의 불법을 옹호하기 위해 사법부를 맹렬히 비판했다. ‘정치인들을 모두 제거하고 그들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것이 이탈리아 판사들이 하는 것’리라며 몰아부쳤다. 진실을 가린채 좌파에 의한 ‘정치적 고소’이자 좌파판사에 의한 부당한 재판으로 매도했다. 이로 인해 진실을 밝히고자 노력했던 재판부와 다른 언론사들은 '최대 권력자인 총리'와 더불어 '언론'과의 힘겨운 전쟁을 치뤄야만 했다.

 

          < 이 만평은 미디어충청 박원종 님께서 그린 만평입니다. >

 

권력의 방송장악. 언론인들은 <미디어세트>와 베를루스코니의 인터뷰는 ‘사장과 직원’의 인터뷰에 불과하다고 꼬집는다. ‘해고’ 등의 보복을 각오를 하지 않는 한 비판적 인터뷰는 애시당초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방송사를 소유한 절대권력은 '권력획득을 위한 선거'와 '사주의 불법행위 옹호' 등 다양한 방법으로 방송 '사유화'를 통해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

방송의 단맛에 심취한 그는 손길은 이탈리아의 공영방송사인 ‘RAI’에도 뻗혔다. 집권 2기인 2001년부터 공영방송 장악이 노골화된 시기다. 이사회 장악이 첫 수순이었다. 이사회 5명 중 3명을 측근인사로 갈아치웠다. 이사회는 베를루스코니의 최측은 ‘사카’를 RAI사장으로 임명했다. 곧 국장급 인사도 물갈이됐다. 그 뒤 공영방송 RAI는 베를루스코니의 발 아래 놓였다. 측근 사장과 국장들은 베를루스코니의 비위맞추기 방송으로 공영방송이 전락한 것이다.

이후 새로운 뉴스보도 방침이 탄생했다. 이른바 ‘샌드위치 뉴스’ 정치적 공방이 큰 사안에 대해 ‘정부-야당-여당’ 순으로 입장을 듣는 것이다. 야당의 입장도 방영되기에 얼핏 공정한 보도일 듯 싶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시청자들은 ‘마지막 입장’을 옳게 느끼기 마련이다. 시청자들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한 것이다. 공정히 보도되지만 늘상 정부가 일방적으로 승리할 뿐이다. 정부 권력에게 ‘사유화’된 방송으로 전락한 것이다.

 

          < 이 만평은 미디어충청 박원종 님께서 그린 만평입니다. >

 

이탈리아에서는 ‘노동자의 시위’를 생중계한다. 2003년 베를루스코니는 이라크에 3천명을 파병하기로 결정했다. 반전여론이 거세지면서 로마에 300만명이 운집했다. 공영방송 RAI가 생중계 ‘반전시위’ 방송에 나설 차례다. 하지만, RAI의 생중계 방송차량의 시동은 걸리지 않았다. 총리의 측근들로 구성된 경영진이 기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생방송을 중단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국민의 여론을 전달해야 할 공영방송의 '카메라출동'은 ‘베를루스코니 산성’에 막혀 버렸다.

비판적 언론에 재갈물리기도 감행됐다. 여당 측근 인사가 과반를 넘은 이사회는 '비판적 언론인'에 대한 숙청을 감행했다. 이로 인해 RAI는 해직파문에 휩쓸렸다. 시사프로그램 진행자 ‘루타치’는 방송에서 출연자에게 베를루스코니의 부정과 비리를 캐물었다. 베를루스코니는 눈엣가시같은 ‘루타치’ 제거 작업에 돌입했다. 그를 범죄자로 매도하고 이사진에게 해고할 것을 강요했다. 불가리아에 방문한 그는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국민의 방송을 범죄적인 용도로 이용하고 있다. 새로운 이사진은 더 이상 이런 일이 발생되지 않도록 하기 바란다.”라고 공식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그는 '루타치' '비아지' '산토로' 등의 '숙청 대상자'를 직접 언급했다. 그 결과 루타치가 진행하던 시사프로그램은 폐지됐다. 이탈리아의 가장 존경받는 기자인 비아지도 5년간 방송출연을 하지 못했다. 산토로 역시 마찬가지 신세였다.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인은 측근 이사회에 의해 언제든 쫓겨날 수 있는 것이다.

그와 함께 초기 <미디어세트>를 운영해 왔던 사람은 이 문제를 이렇게 언급했다. “미디어로부터 쫓겨날 수도 있다는 두려움. 언론계의 중요한 직위에 있는 사람은 누구도 총리에게 대항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 미디어세트 세 개 채널과 공영방송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직간접적으로 베를루스코니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방송업계는 모두 실어증과 공포에 사로잡혀 있으며 모두 스스로 검열하고 있다.” 결국 이탈리아 방송은 그의 서슬퍼런 칼날 앞에 무릎 끓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총리직에서 물러났던 전임 좌파 정권 시절 샌드위치 뉴스는 폐지됐다. 공영방송의 독립성도 어느 정도 회복됐다.그러나, 올해 재선 이후 이른바 ‘가스파리 법’이 통과됐다. 공영방송을 총리의 발 아래로 종속시키기 위해 재경부 장관에게 이사 추천권을 부한 것이다. 이로써 다시 여당측 인사가 이사회의 과반을 차지하게 됐다. 이 법은 한 달뒤부터 시행된다. 신임 사장에서부터 국장들까지 대폭적인 교체가 예상된다고 한다. RAI의 방송 노동자들은 '민주주의의 절대후퇴'를 심각히 걱정하고 있다.

 

           < 이 만평은 미디어충청 박원종 님께서 그린 만평입니다. >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성공신화를 국가경제로 이어가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그의 재임시기 이탈리아의 경제성장률은 0에 가깝다. 2001년 이후 이탈리아의 GDP는 EU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의 <미디어세트>는 간신히 팬티만 걸친 여성이 자신의 가게를 홍보하는 것을 톱뉴스로 내보내고 있다. 민영방송의 선정성은 공영방송에도 여파를 끼치고 있다.

베를루스코니는 '방송장악'을 통해 시청자이자 유권자들에게 그럴싸한 쇼로 정치권력 장악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상의 내용은 방송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방송 다시보기를 적극 권유합니다.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이탈리아의 방송장악. 비단 다른 나라의 일만은 아닐 듯 합니다. 더불어 방송을 정치에 최초로 이용한 독일의 ‘괴벨스’를 다룬 EBS의 ‘지식채널e'로 꼭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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