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마지막 수업

 

마지막 수업

 

째각째각째각... 초침이 정각을 향해 분주히 옮겨가고 있습니다. 딩동댕동. 세 시 정각이 되자 어김없이 수업시작을 알리는 경고방송이 흘러나옵니다. 또각 또각 또각. 귀에 익은 선생님의 구둣발 소리. 그 소리가 복도와 교실 사이의 경계창 사이를 헤집고 교실 안으로 안으로 파고듭니다. 교실 공기를 자극하던 구둣발 소리가 잠시 멈춘 사이, 드르륵 교실문이 열립니다.

복도의 한기를 몰고 들어온 선생님의 낯빛도 차갑습니다. 교실 문을 닫고 단상 앞으로 무겁게 무겁게 발길을 옮깁니다. 두 팔을 뻗어 손바닥으로 단상을 딛고 고개를 숙인 선생님은 한 동안 꼼짝도 안합니다. 얼마간의 숨 막힌 정막을 깨뜨린 것 역시 고개를 들어올린 선생님입니다.

충혈된 눈의 초췌한 모습. 미세한 얼굴 근육의 떨림이 느껴지는 선생님은 마지막 힘을 쥐어짠 듯 입을 열었습니다. “오늘은 마지막 수업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번 수업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우리도 잘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어두운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 건 그 때문입니다.

인수위 점령군 들어온 이후 공부시간 중 ‘미국어 몰입 교육’을 내세우며 우리말 사용을 금지했습니다. 이제 수업 시간 중에 우리말을 입 밖에 내서는 안 됩니다. 친절한 인수위 점령군은 혹여 있을 불상사를 우려해 ‘그 때 그 시절’ 동영상을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내선일체와 황국신민화 시대의 영상입니다. 수업시간에 ‘금지된 우리말’을 사용할 때 가해진 끔찍한 체벌에 모든 학생들이 찔끔찔끔 오금을 저렸습니다.

선생님은 수업시간 동안 한글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낮은 목소리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느덧 수업을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딩동댕동. 벨이 울립니다. 인수위 점령군 시대의 수업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종이 울립니다. 내일부터 수업시간에 우리말글을 쓸 수 없음을 알리는 종이 울립니다.

선생님은 어쩔 줄 모르는 당황스런 모습으로 안절부절 하십니다. 그러나, 이내 한숨을 내쉬며 창백해진 얼굴로 우리를 등 뒤로 하고 칠판을 마주봅니다. 오른손으로 백목을 들었습니다. 떨리는 손에 힘을 주어 칠판에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써 갑니다.

“한국어 만세!”

 


이제 얼마 안 있으면 한국인 알퐁스 도데가 탄생할지도 모릅니다. 정말이지 점령군의 횡포는 매한가지입니다. 총을 들지 않았을 뿐이지 인수위의 행태도 다를 바 없습니다. 지난 1월 30일에는 <영어공교육 완성을 위한 실천방안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공청회입니다. 사전을 찾아보았습니다. 한자로는 公聽會로 씁니다. 사전적 의미로는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기관이 일정한 사항을 결정함에 있어서 공개적으로 의견을 듣는 형식]을 말합니다. 말 그대로 국민의 의견을 들어야 합니다. 헌데, 이번 공청회는 참으로 독특합니다.

공청회를 하루 앞두고 예행연습을 진행했다 합니다.  토론자들을 사전에 모아놓고 공청회 진행과 내용에 대해 입맞추기를 한 겁니다.  공청회가 잘 짜여진 각본의 공연으로 바뀐 셈입니다.  리허설까지 하는 공청회는 유사 이래 처음일 듯 싶습니다. 드높은 악명을 자랑하는 박정희, 전두환마저도 미처 생각치 못한 놀라운 발상의 공청회입니다.

편파적 토론자 선정도 문제입니다. 토론자 중 ‘반대’ 입장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습니다. 발제자와 토론자의 명함만 봐도 반대가 없음은 세 살박이 코흘리게도 알수 있습니다.  토론자는 인수위 상임자문위원.  패널은 인수위 자문위원 1명, 영어몰입교육 논문 발표자 2명, 인수위 위원장 추천 교수 1명, 이명박 후보 지지단체 학부모 대표 1명입니다.  반대자가 있을 턱 없습니다.  

여기엔 싹자르기식 토론자 배정도 한 몫했습니다.  교육단체도 끼워넣어야 모양새가 될 것 아닙니까?  모양새를 위해 교총이 패널로 섭외되었습니다.  그러자 비판여론이 일었습니다.  교육단체엔 전교조도 있고 참교육학부모회도 있기 때문입니다. 편파성 시비가 일자 도마뱀 꼬리자르기 식으로 교총패널을 잘라 버렸습니다.  전교조의 패널 진입 차단을 위해 선빵을 날린 셈입니다.  반대여론의 싹을 잠재운 공평무시(公平無視)한 행정에 탄복할 따름입니다.

폐쇄적인 공청회 운영의 논란도 있습니다. 방청객을 10명으로 한정했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참석을 시도한 이들과 경찰간 출입을 둘러싼 마찰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를 두고 세입자와 철거민 사이의 몸싸움과 경찰력 충돌이 빚어지는 ‘건설업자 재개발 공청회’와 다를 바 없습니다.  사정이 이러니 향후 5년의 계획을 충실히 토론할 수 없습니다.  1시간 30분만에 후다닥 토론회를 졸속적으로 마쳤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사전을 검색해보면 공청회는 두 가지가 나옵니다. 公聽會와 空聽會가 그것입니다. 空聽會는 [참여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공청회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 합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公聽會보다는 空聽會가 사업추진엔 훨씬 실용적이라 판단하는 정부의 탄생이 머지 않았음을 또렷이 기억해야 합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