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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하지 않아...

영화봤다. "후회하지 않아"

게이의 사랑 이야기...아니, 인간의 사랑 이야기...

세상엔 수많은 빛깔의 사랑이 있다.

그건 누가 허용하건 허용하지 않건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자본과 남성가부장 문화가 '허용'하지 않는 사랑은 '위험'한 사랑이 되어, 사랑이 상처가 되어 버린다...그래서 그 사랑은 더 아름다운가 보다...

 

극 중, 재민이가 수빈이에게 말한다.

"난 네가 좋아. 그냥 좋아"

맞다.

"그냥"도 분명한 이유이다. "그냥" 좋은 걸 어떡하란 말인가.

난 그렇다. 정말 좋으면 이유를 잘 모르겠다. "그냥" 좋다. 소주도 그냥 좋고, 담배도 그냥 좋다. 소주가 쓰기 때문에 좋다면, 쓰지 않을 땐 안 좋은가? 담배를 피면 긴장이 풀려서 좋다면, 긴장이 없을 땐 담배가 안 좋은가?

 

수많은 빛깔의 사랑에 이러쿵저러쿵 쓸데없는 연애학 개론을 읊어 대지 말자...

 

극 중, 수빈이가 재민이에게 말한다.

"밤마다 빠는 자지 중에 네 자지가 특별한 이유가 뭔데?"

재민이가 말한다.

"내 것은 하나니까, 네 것도 하나니까"

소설 [어린 왕자]에서 어린 왕자는 여우를 통해서 수많은 장미 중에 그의 장미꽃이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 뿐이라는 걸 깨닫는다. 장미꽃은 많지만 그 중에 나의 장미꽃은 오직 '하나'인 것이다.

시인 김춘수의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것이다...

 

수많은 빛깔의 사랑은 또한 이 세상의 단 하나인 사랑이기에 각각의 사랑은 그토록 애절하고 아름다운 것이다..누가 누구를, 무엇이 무엇을 사랑하건 간에 말이다.

 

난 재민이와 수빈이가 서로의 성기를 만지며 서로를 확인할 때 마음이 짜릿했다.

시리즈 영화 [다세포 소녀]에서, 스위스에서 유학 온 럭셔리(?)한 꽃미남 안소니는 외눈박이의 트렌스젠더 남동생 '두눈박이'를 사랑하게 된다. 그 이야기 중간에, 두눈박이가 사실은 트렌스젠더라는 것을 알게 된 안소니에게 두눈박이가 이렇게 묻는다. "넌 나의 어디가 좋아?" 망설이다가 안소니가 말한다. "너의 영혼이 좋아"...두눈박이의 마음을 얻지 못한 안소니는 트렌스젠더 클럽의 가수에게 어떻게 하면 되는지 묻자, 그 가수가 말한다. "육체와 영혼은 따로 있는 게 아냐."

 

사랑은 마치 몸을 떠나 존재하는 고귀한 어떤 정신인 것마냥 이야기들 한다. 웃기지 마시라.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부터 육체와 관련된 모든 것은 천한 것이고, 정신과 관련된 것은 고귀한 것인냥 그렇게 자본은 노동을 배제시켜왔던 것이니께....육체와 정신은 온전히 하나니께..참참, 그런다고 트렌스젠더가 꼭 성전환 수술을 의미하거나 전제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영화 곳곳에서의 관객들의 반응 중, 내가 섬찟하게 느꼈던 것은...'섬찟'이 맞다...게이호스트바에 종사하는 종업원들을 '년'이라고 불렀을 때 관객들이 '우하하하' 웃었다는 것이다.

게이호스트바인 'XLarge'의 사장은 그 곳의 종업원들을 모두 '년'이라고 부른다. '이 년', '저 년'....왜 '놈'이 아닐까? 성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모두 '년'으로 호칭되는 것은 어쩌면 그동안 남성가부장문화 속에서 '어머니'로서 숭상하는 듯 하면서도 유독 '남성'만의 '어쩔 수 없다'는 성욕을 위해, 그것을 해결해 주기 위해 매춘이 '필요'하다는, 그러면서도 성노동에 종사하는 여성들은 철저히 비하시키는, 괴상망칙한 남성 지배 논리 속에서 자연스레 자리잡은 또 다른 성폭력, 인간폭력이 아닐까?

 

게이호스트바에 종사하는 종업원들을 '놈'이라고 불렀을 때, 여성에 대한 남성지배논리가 무너지는- 소위 몸 파는 일은 여성이 남성의 '어쩔 수 없는 성욕', '해결해 주지 않으면 사회가 불안해진다는 남성의 성욕'을 위해 해야 하는 것임에도, 남성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면 여성에 대한 남성 지배의 한 축이 무너지는 -  참을 수 없는 남성들의 분노(사실은 남성들의 끔찍한 두려움)가 내면에 도사리고 있지 않을까?

 

난 씁쓸했다...웃을 수 없었다...왜 웃었을까?...난 슬펐다...그러면서 섬찟했다...어쩌면 우리 속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성노동자(여성)들이 '년'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성'노동자'이기도 너무 버거운 세상이지만 말이다...꼭 성노동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아직도 '여성'은 이 사회의 '시민'으로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내 오바인가???????

 

후회하지 않아.......

난 나의 사랑을 후회하지 않는다...그럴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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