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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술 한 잔...

난 이혼하고 난 후, 경제적으로 넘 힘들어서 부모님댁에 들어와 기생하고 있다. 특히, 강제전보로 7시 전에 출근해야 하는 입장에 있다보니 다섯살 난 아들을 양육하기가 힘든 면도 있다..7시 전에 아이를 맡아 주는 곳은 한 곳도 없기 때문이다..그래서 더욱 어쩔 수 없이 부모님댁에 머무르고 있다...그러나, 하루빨리 부모님댁으로부터 독립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이다...왜냐면,

 

난 내가 소위 "운동"이라는 것을 하면서, 이 사회의 소외당하고 억압당하는 사람들의 해방이라는 것을 나름대로 꿈꾸며 실천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혼 과정에서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그동안 난 내가 억압자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난 이 사회에서 40년 가까이 남성으로 살고 있었다. 더욱이 난 장남이다. 이 사회에서 - 남성중심문화의 사회 속에서, 특히 장남으로서 - 난 사회발생적(자연발생적의 반대 개념^^:)으로, 체득적으로 남성으로서의 온전한 "권위"와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운동에서든, 생활에서든...

 

결혼 후, 가정에서 나는 무소불위의 가장이었다.."운동"이라는 것을 한답시고 나에게 전 아내는 식모나 다를 바 없었다. 나는 그 잘난 대의를 위해 "운동"을 하고, 전 아내는 그런 나를 뒷받침할 수밖에 없다는...내가 생각했든 생각하지 않았든...그런게 나의 모습이었다..."운동"이라는 명찰이 달랐을 뿐이지, "돈벌어다 주는" 남성으로서 이 사회의 남성과 별반 다를 게 없었던 것이다.

 

또한, "운동판"에서도, 선배와 후배의 관계는 "나이"와 "경험" 그리고 "특별한 경력"이라는 전제에서, 남성적 문화인, "군사적 위계 질서"와 "권위", "성차별"과 "성역할"의 형태로 내 몸에 자연스레 배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동지라 일컬었던 "여성"들을,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남성"(여기서 여성은 더욱 말할 것도 없이)들을, 보이지 않는 폭력으로 억압하고 있었던 것이다. 짱돌을 던지는 것은 남성의 몫이라면, 짱돌은 깨는 것은 여성의 몫이라든가, 대단한 경력의 선배에게 주눅든 나의 모습이라든가, 내가 옳기에 넌 틀렸으니 넌 활동가도 아니라든가 하는....성역할에 기반한 성차별과 이분법적 사고 방식 등에서 말이다.

 

난 이혼의 과정에서 - 소위 "정상적인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깨뜨리는 행위가 얼마나 비난받고 있으며, 그 과정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배제되고 있는지 - 도덕적 엄숙주의, 가족주의 등을 통하여 - 조금이나마 알게 되면서, 소위 "주류"로 일컬어지는 것에서 벗어나 있는, 경계의 사람들이 어떤 심정일지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소위 "정상적인 가정"를 박차고 나온 사람이 남성이면 사람들은 그나마 "대단한 용기"라고 말하고, 그 사람이 여성이면 "무슨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보는 세상에서, 난 남성이라 그나마 덜 고통스러울 것이지만 말이다....웃기는 세상이다....

 

그리고....

이번에 집에서 생긴 일도 아직 내가 벗지 못한, 남성으로서의 권위...그 연장선일 뿐이었다.

난 이혼하고 난 후, 부모님댁에 들어가야 했을 때, 다시는 위와 같은 일을 되풀이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그러나....난 아버지와는 집안의 권력을 다투는 꼴이었고, 그 사이에서 어머니는 여전히 두 남자의 식모일 뿐이었다....

아버지는 같은 식탁에서 밥 먹다가도 바로 옆에 주전자가 있으면서 어머니에게 물 따르라고 시키는 사람이다...전형적인 마초다...어머니는 묵묵히 물을 컵에 따라 준다...나는 그런 아버지를 정말 싫어했고 싫어한다...그러나 실상 현상이 좀 달랐을까? 난 아버지랑 다를 바 없었다....

 

내가 얼마 전, 술 먹고 한참 늦게 들어 왔다...아니, 몇 번 그랬다...집에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다면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겠지만, 부모님과 함께 있다는 이유로 부모님께 부탁하고는 한다...어제는 아버지가 나에게 엄청 화를 내셨다...이유는 하나였다...이혼한 놈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정신차리지 못한 다는 것이었다...아버지가 살아온 배경을 알기에 아버지를 원망하는 마음은 이미 예전에 정리되어서 아버지의 말은 무시할 수 있었다...왜냐면, 아버지 자신은 어떠했는지 모르는 거니까...하지만 어머니의 이야기가 충격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네 아버지를 뒷바리지 한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너의 뒷바라지까지 해야 하냐? 그걸 생각하면 네가 괘씸하다. 이혼한 녀석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면서"

물론, 어머니는 나의 이혼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신다. 어머니로서는 믿고 있었던 아들이 하늘을 무너지게 한 꼴일 것이다. 그럼에도 난 어머니의 그 말 - "이혼한 녀석" 운운이 아니라 "너의 뒷바라지"라는 말 - 이 넘 충격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살기 시작한 후, 부모님과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내가 아들이랑 단 둘이 사는 걸로 생각하고, 나름대로 노력했지만....나의 생활의 많은 부분은 사실 어머니를 또다른 "식모"로 은연중에 설정하고 있지는 않았을까...하는 것이 나의 충격이었다..

 

내가 직접 어머니에게 맡기지 않고 나랑 아들의 빨래를 하고, 어린이집 준비물을 챙기고, 반찬거리 재료를 나름으로 준비하고, 부모님의 이야기를 잘 들으려고 노력하고, 되도록 집에 일찍 들어 오려고 하고..늦을 일이 있으면 미리 말씀드리고...

그랬다손치더라도....은연중에, 말 하나 행동 하나에 혹시 어머니를 또 다른 "식모"로 생각하는 것이 없지 않았을까? 여성으로서 어머니가 계시니까 좀 더 내가 남성으로서의 여유를 부린 것은 아니었을까? 그나마 내가 챙긴들 부족한 부분은 있을 터...그걸 "부"가 아닌 "모"에게 강요하게 되는 이 구조 속에서 어머니는 나에게 보이지 않는 또다른 식모는 아니었을까?

 

어머니가 그런 말씀을 하셨다는 것이 충격이 아니라, 그 말 자체가 충격이었다...

이 사회에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 초등학교도 못 가시고, 막내딸로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평생 그저 온갖 희생과 억압을 운명으로 알고 살아오신 그 사람....

난 지금 나름대로 한다고 하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나름대로 한다"는 게 내 몸에 배인 남성으로서의 할 만큼이라는 것에 대한 나의 변명은 아닐까...

 

그래서, 하루빨리 독립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존재가 의식을 규정하는 것...그건 맞는 말이다...내가 여성이 아니라서 여성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내가 여성이 되려는 만큼 내 의식과 실천은 변하지 않겠는가...가사노동이 여성의 몫이 아니라, 가사노동이 온전히 여성의 몫으로 남아 있는 이 사회에서, 내가 그 몫을 온전히 해내는 그 순간..그만큼 내 삶은 생활 속에서의 억압과 그 극복을, 또 다른 측면에서 느끼고 의식하고 실천하지 않겠는가...그러면서 내가 더욱 달라지지 않겠는가....그동안 소위 "주류"속에 있었다면(ㅋ~~주류와 비주류의 개념은 영 마뜩치 않지만...그동안 내가 그런 분류를 당연히 생각했었으니까), 그렇지 않은 곳에 대한 "나"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이냐가 나를 더욱 다르게 만들지 않을까? 나는 교육노동자로서 정규직이지만 비정규직과 연대하는 것의 시작은 이런 일상에서의 나의 변화부터가 아닐까?

 

하루빨리 독립하고 싶다는 것은...낭만적 사랑의 꿈일 수도 있을 것이다..왜냐면, 생각만큼 현실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당장, 독립할 돈도 없지만, 독립해서 산다면 난 나의 생활 패턴이 지금과는 참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어쩌면 그것이 나에게 두려운 것일 수도 있다..그래서 여러 가지 이유로 독립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을 것이다...그래서 여전히 난 마초적이다.....

 

달라지려고 한다지만, 달라지려고 노력했다지만....난 아직도 내가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서, 그것이 두렵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어머니의 말 한마디가 곱씹어져서, 어머니에게 넘 죄송해서 오늘도 술 한 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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