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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5년 2월 연합뉴스가 워싱턴 발 기사를 내고, 각 신문사가 받아서 썼다. '국제'라는 타이틀을 붙인 미국 사설 단체가(Population Action International) 연구물을 하나 내놓았는데, 한국이 공식적인 '물 부족'에 해당하는 나라라는 것이다. 전 세계 나라들 강수량을 인구로 나누어보니, 남한은 강수량에 비해 인구가 과도하다는 내용이었다. 북한은 물 풍족 국가로 분류되었다. 비가 잘 오지 않을 것 같은 아프카니스탄도 물부족국가는 아니었다. http://www.mediagaon.or.kr/jsp/search/SearchKindsView.jsp
2. 얼마 후 정부가 이걸 받아서 해마다 3월 22일 물의 날에 내는 공식 선전물에 싣기 시작했다.
3. 얼마 후에는 유엔 무슨 보고서에 이 자료 내용이 인용되었다고도 말하기 시작했다. PAI는 유엔 산하 기관이라고 알만한 사람들이 써댔다. 환경부에서도 유엔이 정한 공식 '물부족 국가'라고 떠들기 시작했다.
4. 교수들과 학생들이 정부 보고서와 신문기사를 인용해서 논문을 썼다. 의심할 바 없이 한국은 '유엔이 정한 물부족 국가'가 되었다. 댐 건설 계획 수립에도 이 자료가 반영되고, 또 재탕되었다. 영월 동강댐 건설 논쟁에서도 정부측 인사들이 지겹도록 '유엔이 정한 물부족 국가'를 써먹었다. 최열 같은 활동가들도 그 사실은 별 의심을 하지 않았다.
5. PAI가 유엔 소속도 아니며, 유엔 자료에 공식 인용된 적도 없으며, 분석도 단순하고 조잡하기 그지 없다거나 목적도 다르다하는 비판이 일자, 정부 자료에서 그 내용이 사라졌다. 변명도 없이. 교수 '님'들이 생산한 논문은 아직도 그대로 돌아다닌다. 철회도 삭제도 없이. 미친듯이 벌어지는 강 막기 사업의 선전 근거로도 여전히 살아 활동중이다.
6. 연합뉴스는 2011년 3월 22일 서울발 기사에도 1995년 2월 워싱턴발 기사를 재탕한다. 이번에는 세계 화장실협회(WTA)도 같이 들어갔다.
http://www.yonhapnews.co.kr/advisory/2011/03/22/2201000000AKR20110322109000022.HTML?template=3557
7. 검토없이 기사를 올린 통신사 기자, 의심없이 그대로 신문에 싣는 언론사들과 환경단체들, 댐 건설 선전에 혈안인 정부, 어용 교수들이 서로 인정과 지지를 확인하는 일을 반복하다보니, '작은 오류 혹은 거짓말'이 수많은 사람들의 '신념'으로 굳어졌는가보다. '국제'자가 들어간 기관, 워싱턴에서 영어로 자료를 내는 미국 단체에 대한 무한 신뢰, 또 UN을 뒤집어쓰고 나오는 이상한 권위가 어우러져, 15년이 넘어 벌어지고 있는 '사소한 사기극' 풍경이다.
8. 해방 정국에서 중요한 사건들을 만들어내고 국면을 왜곡시켜버린 기사들, 이를테면 신탁통치 관련 기사들-도 '워싱턴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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