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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가부장제 이론의 발전과 사회주의 페미니즘 6

3. 자본주의 가부장제에서 노동과 사회의 성 분업 : 새로운 페미니즘 이론을 향하여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상호 연관성을 분석하려는 과정에서 생시는 문제들 중의 하나는 우리의 언어가 가족과 경제를 분리된 체계로서 다룬다는 점이다. 그러나 위계적인 노동의 성별 분업은 이 두 가지가 만들어 내는 문제를 해결해 준다. 자신의 생물학적 성에 따르는 인간의 행동, 목적, 목표, 욕망 그리고 꿈을 규정해 주는 노동과 사회의 성별 분업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기초를 이룬다. 이 성별 분업은 여성과 남성을 그들을 대표하는 위계적인 성 역할로 분리하고 그 역할과 관계되는 의무들을 가족 영역과 경제 영역으로 구조화시킨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상호 의존성에 관한 이러한 진술은 가부장제가 자본의 필요에 부응할 뿐만 아니라 자본이 가부장제의 필요에 부응한다는 점을 가정하고 있다. 누군가가 자본주의는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하여 가부장제를 필요로 한다고 말할 때 그는 성적 위계 체계로서 남성의 우월성이 (28) 자본주의에 필요한 질서나 통제를 자본주의에게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 진정으로 주목하고 있다. 이러한 가부장제 통제 체계는 사회와 경제적 체계를 부드럽게 기능하도록 하는 데 필수적이며, 그리하여 결코 그 토대는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주장은 남성 우월 체계로부터 나타나는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통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겉보기에, 이익과의 관계와 사회적 통제와의 관계가 가부장제와 뒤엉켜 있으며(그렇지만 결코 서로에게 환원될 수 없다), 자본주의는 완전한 과정이 된다. 각 체계의 특수한 요소들은 다른 체계에 의해 필요한 것이 된다.

 

자본주의는 가부장제를 이용하며 가부장제는 자본의 필요에 따라 규정된다. 이러한 진술은 앞의 주장, 즉 하나의 체계가 다른 체계를 사용하는 동시에 다른 체계의 특성을 지키기 위하여 다른 체계의 필요 주변에서 다른 체계를 조직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유지시킨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체계는 자신의 특성을 잃어 버릴 것이며 이와 더불어 자신의 독특한 가치를 잃어 버리게 될 것이다. 가능한 한 단순하게 이것을 말한다면, 누군가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가부장제(남성 우월성)는 정치적 통제를 위해 사회에 성적인 위계 질서를 제공할 것이지만, 하나의 정치적 체계로서 경제적 구조로 결코 환원될 수 없다. 반면에 이익 추구를 원동력으로 삼는 경제적 계급 체계로서 자본주의는 가부장적 질서를 이용한다. 이 둘(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은 둘 중의 이것 또는 저것이 아니라 둘의 특수한 혼합물인 사회의 정치 경제를 함께 형성한다. 이렇게 과도하게 단순화시킨 진술은 몇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 진술은 이 두 영역 모두에 존재하는 관계들을 끊어낸다. 예를 들면, 자본주의는 사회의 경제적 계급 관계들과 그 관계들을 작업장 내에서 조직화하는 것으로부터 나타나는 일련의 통제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진술은 모든 점에서 두 체계 사이의 조화를 가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좀 더 발전된 자본주의로 나아가 보면, 이러한 관계 맺음이 얼마나 쉽지 않은지를 볼 수 있다. 노동력 부문(경제적 계급 영역-옮긴이)에 여성의 편입이 점점 더 늘어나면, 가부장적 가족 관계들과 관련된 몇몇 통제는 허물어지게 된다(이중 노동은 보다 분명해진다(the double day becomes more obvious)). 그러나 여성을 노동력 부문에 게토화시키는 것은 동시에 사회의 성적인 위계 체계를 손상시키지 않도록 하는 여성의 위계적인 통제 체계를 성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유지시키는 것이다. 가부장적 (29) 위계와 통제에 대한 복종은 바로 다음과 같은 사실, 즉 값싼 노동을 구한다는 것이 여성을 노동력 부문의 모든 부분들로 완전히 통합시킨다는 것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나타난다. 비록 여성의 노동이 값 싸다고 하지만, 사회의 필수적인 질서 그리고 이와 더불어 여성 노동의 싼 가격 모두를 유지시켜 주는 통제 체계는 여성이 (가사노동으로부터-옮긴이) 노동력 부문으로 분리돼 들어감으로써 보호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성의 이중 노동(woman`s double day)과 불평등에 대한 정당화는 오늘날 점점 더 약화되고 있다.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와 여성 삶의 현실 사이에 모순이 있다는 점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록 모든 여성이 어머니(그리고 비노동자)로서 규정된다고 할지라도, 미국 여성의 약 45%(3천 8백 6십 만 명)가 임금을 지불 받는 노동력 부문에서 일을 하고 있고, 거의 대부분의 노동이 집에서 이루어진다. 전체 노동하는 여성의 4분의 1 가까이가 독신이다. 19%는 과부이거나 이혼했거나 별거 중이다. 그리고 나머지 26%는 년 소득 1만 달러 이하의 남성과 결혼한 여성이다. 그러나, 지배 이데올로기 내에서 여성은 노동자로 규정되지 않기 때문에, 여성은 노동에 대한 임금을 받지 못하거나 남성보다 더 낮은 임금을 받는다. 여성을 어머니로서 성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그녀를 임금이 지불되지 않는 집안 노동에 머물게 하거나 그녀에게 부과된 성적인 열등성 때문에 그녀를 낮은 임금에 고용할 수 있도록 한다. 실업률이 문제라면, 여성은 전혀 일을 구할 수 없거나 더 낮은 비율로 일을 구하게 된다. 노동과 사회의 성적 분업은 여성이 임금을 받는 경제 영역에 있다고 하더라도 손상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된다. 이데올로기는 여성을 일하는 어머니로 규정함으로써 이러한 상황에 순응한다. 그리고 두 개의 일은 한 개 일에 해당하는 임금 가격보다 더 적은 가격으로 수행된다.

 

가사노동에 포함된 모든 과정은 현존하는 사회가 영원히 지속될 수 있도록 해 준다. (1) 여성은 가부장적 구조들(가족, 주부, 어머니 등)을 이런 역할 수행을 통해 안정화시킨다. (2) 동시에, 여성은 임금을 받는 노동력과 그렇지 못한 노동력 모두로 새로운 노동자를 재생산한다. 여성은 사회의 남성들과 아이들을 돌본다. (3) 여성은 또한 저임금으로 노동력 부문에서 일한다. (4) 여성은 소비자로의 역할을 함으로써 경제를 안정화시킨다. 생산의 또 다른 측면이 소비라고 한다면, 자본주의의 또 다른 측면은 가부장제이다.

 

사회와 노동의 이런 성적 분업이 (30) 자본주의에 선행한다고 하더라도, 그 분업은 발전된 자본주의의 필요 때문에 점점 더 제도화되었고 특히 핵가족의 측면에서 규정되었다. 이제 그 분업은 전(前)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루었던 것보다 더 많은 형태와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전(前)자본주의사회에서 남성, 여성 그리고 아이들은 집, 농장 또는 경작지에서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을 생산하기 위해 같이 일하였다. 여성은 아이를 낳고 기르는 사람이었지만, 일을 구성하는 방식은 이러한 성적 역할 구분의 영향 아래에 있었다. 산업 자본주의가 시작되면서, 남성은 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나서 임금 노동 경제로 편입되었다. 여성은 집안에 갇히기 시작했고 많은 여성들이 공장에서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남성에 의해 점점 더 비생산적인 존재로 여겨졌다. 여성들은 성 역할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배타적으로 여성의 역할만 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여성이 산업 자본주의 이전에도 어머니였지만, 이것은 배타적인 역할이 아니었다. 반면에 산업 자본주의에서 여성은 가정주부가 되었다. “프롤레타리아트 쪽에서 보면, 가정주부는 발전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중적 특성을 지닌 노동자로 나타난다.” 여성이 집안에서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노동은 노동으로서 인정되지 않았다. 생산적 노동이 임금 노동, 즉 잉여가치(자본)를 생산하는 노동으로 규정되었다.

 

따라서 사회의 생산 조건들은 가족 내에서의 생산, 재생산 그리고 소비를 규정하고 또한 그런 형태를 구체화시킨다. 그렇게, 또한 가족의 생산, 재생산 그리고 소비 양식은 상품 생산에 영향을 준다. 이것들은 모두 정치 경제를 규정한다. 정치적 질서와 통제 체계가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이윤이 통치 계급에게 기본적으로 우선되는 영역인 자본주의 가부장제 경제 영역에서 사회와 노동의 성적 분업은 특별한 목적에 기여한다. 이 분업은 가족을 통해 사회를 안정화시킨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노동, 다시 말해서 가사노동을 조직하는데, 이 가사노동에는 무임금이거나(가정주부), (집안일을 하는 노동자에게 지불되는) 얼마 안 되는 임금(limited pay)이거나 또는 (임금이 지불되는 노동력 부문에서의) 불평등한 임금의 경우가 있다. 이 마지막 범주는 계급 구조 내에서의 노동의 성별 분업에 따라 여성에게 궁극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보여 준다. 임금을 지불 받는 노동자로서 여성의 지위는 이윤 계기를 둘러싸고 조직된 사회의 위계적인 성적 분업의 직접적 반영인 여성으로 존재한다는 측면에서 규정된다.

 

(31) 모든 개별적인 남성이 그들을 위해 수행되는 노동(labor)과 연관하여 이익을 얻는 반면에, 한 계급으로서 부르주아지는 여성 노동(women`s work)의 기본적인 배치로부터 이윤을 얻는다. 계급과 상관없이, 남성들은 (이익을 얻는 정도가 다를지라도) 그들이 가부장제 사회 안에서 얻는 여러 특권의 체계로부터 이익을 얻는다. 이데올로기와 남성 위계 구조가 사회의 기초가 아니었다면, 여러 특권으로 이루어진 체계는 그 자체 결코 성립될 수 없었을 것이다. 계급 체계를 통해 만들어진 인위적 욕구들과 함께 노동과 사회의 성별 분업을 유지시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위계이다.

 

가족을 유지하고자 지배계급의 욕망은 최대 이익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위계적인 질서를 사회에 부여하는 노동 분업에 가족을 문화적이고 정치적으로 연루시키는 것으로 나타난다. 일단 노동의 성별 분업이 변화한다면, 특히 자본주의 질서와 관련하여 도전을 받게 된다면, (특히 가정에 영향을 미치지만, 전체 사회에 폭넓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일의 여러 구성 형태 중 하나도 도전을 받을 것이다. 이러한 도전은 삶의 거의 모든 측면에 스며들어 있는 자유로운 노동 풀(pool), 그리고 값싼 노동 풀(pool)뿐만 아니라 성적 위계 그 자체인 기본적인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사회 구성을 위태롭게 만든다. 사회의 성적 위계를 함축하고 있는 권력 배치로부터 도출되는 그러한 질서와 통제는 해체될 것이다.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 기본적으로 두 가지 종류의 일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때, 우리는 노동자들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변경시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은 계급이 여성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는 단순히 여성이 계급 범주에 꼭 들어맞는 방식을 재검토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범주 자체를 재정의해야 한다. 우리는 여성의 복잡한 현실과 그러한 현실에 대한 여성의 의식과 관련하여 계급을 정의할 필요가 있다.

 

현재 계급 범주는 현재 기본적으로 남성의 측면에서 규정되고 있고, 여성은 그녀의 남편이 맺는 생산수단과의 관계를 기초로 하여 계급에 귀속된다. 여성은 자율적인 존재로 보이지 않는다. 여성이 중간 계급(middle-class)으로 불리는 것은 어떤 척도에 따른 것인가? 중간 계급 여성의 지위가 중간 계급 남성의 지위와 상당히 차이가 날 때 그녀의 삶이 노동 계급 여성의 (32) 삶보다 훨씬 “편하다고” 말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가사노동자(houseworker)로서) 전혀 소득이 없는 여성은 누구이며 그녀의 남편이 중간 계급이기 때문에 중간계급이라고 불리는 여성은 누구인가? 그녀는 그 자신의 방식으로 돈을 버는 그녀 남편과 똑같은, 그녀의 삶을 넘어서는 자유, 자율성, 통제권을 가질 수 있는가? 그녀의 지위는 남은 임금의 직업을 가진 독신 여성의 지위와 어떻게 비교되는가?

 

 

명확하게 상위 계급 또는 중간 계급(자세하게 이것들이 무엇을 의미하건 간에)이라는 딱지를 붙인 남성은 자신의 상대방인 여성보다 더 많은 돈, 권력, 안전, 그리고 선택의 자유를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여성은 전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남성의 부양에 의존하고 있는 아내이고 어머니이다. 그리고 주인(남성-옮긴이)은 무엇을 베풀지만 거두어 갈 수 있다.

 

 

나는 이러한 물음들을 통해서 계급 표식이 의미가 없다거나, 또는 계급 특권이 여성들 사이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또는 가정주부들(가사노동자들)이 하나의 고유한 계급이라는 것의 의미를 담고 있지 않다. 그러나, 여성으로서 우리가 가지는 현실적인 유사성이 무엇인지를 다루기 전까지 우리의 현실적인 계급 차이가 무엇인지를 알 수 없을 것이라는 의미는 담고 있다. 나는 우리가 여성과 남성들 사이의 관계와 계급 구조, 생산과 재생산, 가사노동과 임금노동, 그리고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 등의 측면에서 여성들 사이의 권력 차이에 대한 의문을 다루는 단어와 개념적 도구들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이후라야 우리는 여성을 조직하기 위한 우리의 이해에 대해 이것이 어떤 효과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함께 일할 수 있게 될 때 우리는 우리의 유사성과 차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차이가 우리를 갈라놓는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유사성은 이러한 갈등들을 재규정하는 그 무엇이 된다. 페미니즘 계급 분석은 전체로서의 경제 영역 안에서 여성들이 수행하는 노동과 관련하여 여성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구별, 즉 가정 밖에서 일하는 여성들 사이(전문직 여성 대 비전문직 여성 사이), 가사노동자들(가정 밖에서 일하지 않는 가사노동자 그리고 가사노동자이면서 또한 밖에서 일하는 여성 사이), 생활 보조금을 받는 여성들, 실업 여성들 그리고 전혀 일을 하지 않는 부유한 여성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구별로부터 시작해야만 한다. 이러한 계급 구별들은 더 나아가 인종과 결혼 상황과 연관하여 규정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33) 이러한 각각의 범주에 속하는 여성들이 다른 범주에 있는 여성들의 경험들을 재생산, 아이 양육, 섹슈얼리티, 소비, 가정 유지라는 행위 속에서 어떻게 공유하는지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 페미니즘의 이러한 계급 탐구 분석에서 우리가 앞으로 발견하게 되는 것은 하나의 복잡하고 다양한 패턴인데, 다양한 눈금을 가진 이러한 페미니즘의 개념화는 여성의 현실적인 삶과 경험 속에서 나타나는 성과 계급 차이들의 복잡성을 반영한다.

 

 

 

이 모델은 사회의 성적 위계와 자본주의 사이의 기본적인 관계 맺음이라는 문맥 안에서 계급 차이에 주목하도록 만들 것이다. 희망적이게도, 사회주의 페미니즘 분석은 본질적으로 분리된 체계가 아닌 이러한 체계들 사이의 관계 맺음을 계속 탐구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이러한 페미니즘 계급 분석은 앞으로 여성의 서로 다른 경제적 현실을 다루게 될 것이지만, 이 분석을 통해서 크게는 (34) 가부장적이고 자본주의적인 필요라는 문맥 속에서 규정되는 여성들을 보게 될 것이다. 여성은 여성으로서 비슷한 경제적 지위를 가지지만, 현실적인 경제적 계급 차이들을 경험하는 가족 구조를 통해 여전히 분리되어 있다. 이러한 검토를 통해 고립된 가정 속에서가 아니라 사회적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여성의 잠재력을, 소외되거나 마음이 내키지 않는 일이 아닌 창조적 일을 하기 위한 여성의 잠재력을, 잘못된 의식에 대립하는 것으로서의 비판적 의식을 위한 여성의 잠재력을, 그리고 섹슈얼리티의 새로운 개념들로부터 나타나는 무제한의 섹슈얼리티를 위한 여성의 잠재력을 현실화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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