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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산인가?

역사소설 <매월당 김시습>(이문구 지음, 문이당, 1992)에서 마음을 머물게 하는 글월이 있어 발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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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으로 가는 길은 산이 산처럼 있고 바다는 바다처럼 있어서 예나 한가지로 풍광이 명미한 편이었다. 그러나 산수와 뜬구름만으로 일러서는 아니 될 것이 또한 풍광이기도 하였다.

풍광은 모름지기 민생과 더불어서 이야기되어야 마땅한 것이었다.

풍광이란 것이야말로 민생이 피폐하고 암담한 다음에는 비록 금강산의 만물상이라고 하더라도 천하제일 강산은커녕 한갓 꿈자리 사나운 바위츠렁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삼척으로 가는 길이 바로 그러하였다. 바다는 사납고 산은 거칠었다. 갯가난 산기슭에 잔뜩 웅송그리고 있는 인가들의 꼴이 그만큼 볼썽사납고 너절한 탓이었다. 그런가 하면 후미진 변방답게 사납고 거친 것이 제격이라 할 길바닥은 영판 딴판이었다. 말 그대로 탄탄대로가 그것이었다. 길이 훤하고 판판한 정도로 인가가 찌부러들고 우그러져서 대낮에도 어스름녘처럼 어둑할 뿐이었다. 그 동안 삼척에서 금강산까지 중앙의 대소 관원들과 고량자제들의 관광행각이 여북이나 잦았으며, 외방의 수령방백과 토반호족들의 유람 행렬이 오죽이나 질탕하였으면 길이 나도 이렇게 났겠는가 싶은 것이었다. 길이 이렇게 되기까지는 얼마나 호된 부역으로 민력(民力)을 쥐어짰을까. 고을 아전들은 그를 기화로 하여 또 얼마나 바삐 뛰어다니며 민생을 주장질하여 제몫을 여투기에 급급했을 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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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쪽)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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