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희망이 땅인가, 죽음의 땅인가
2003년도 정부의 고용허가제 도입과 미등록노동자 강제 추방이 결정되었다.
강제추방 공포에 지쳐 전동차 앞으로 뛰어내려서 세상을 떠난한 이주노동자의 소식, 경고음과 함께 라디오에서 나온 불법체류 외국인을 신고하라는 방송 등이 강제추방 공포에 빠진 이주노동자들에게 큰 충격이 됐다.
당시 40만 이주노동자들 중 80%가 미등록노동자이며 이들에게 이제 희망의 땅이 죽음의 땅으로 되어가는 한국. 단속에 걸려서 잡힐 때까지 어딘가에 숨어 있을까, 열심히 일하는 것이 죄가 되어 쫓겨나야만 하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겨낼까.
우리가 한국사회에서 함께 걸어온 역사를 생각해본다.
1997년도 외환위기 때 한국경제를 다시 살리기 위해 우리는 월급을 반만 받고 사장님과 라면 함께 먹으면서 노력했다. 어떤 이주노동자들은 본인들이 가진 금품을 기부하여 한국경제 되살리기에 적극 참여했다.
2002년도 월드컵 경기 때 우리도 빨간 티를 입고 빨간 머리띠를 메며‘대한민국’이라고 외치며 한국 팀을 응원하러 광화문 거리에 나갔다. 우리의 힘찬 박수와 목소리 그리고 한국 국민들의 박수와 목소리 모두 다 하나가 되어 한국을 지배했다. 이를 보면 우리는 기쁠 때도 함께 힘들 때도 떠나지 않고 곁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는 한국 국민들에게 진정한 친구라는 뜻이다.
좋은 친구가 되어 함께 살아왔는데 이제 법제도를 도입한다면 당연히 우리와 함께할 수 있는 제도가 되어야 하는데 왜 우리를 쫓아내는 제도를 만드는 건가? 제도에 따르면 체류 4년 미만자는 합법화, 4년 이상 체류자 13만 명 에게는 강제추방이다.
가슴이 아프다.
우리가 한 번 닦고 버린 휴지 조각이 되는 건가? 오랜 친구를 쫓아내는 것이 올바른 방법인가?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정부의 비인간적 강제추방에 대비하기 위해 여러 준비를 했다. 어떤 이주노동자들은 몇 달 동안 숨어 있기 위해 친구들이랑 방을 얻어 지내기를 했다.
어떤 이주노동자들은 주로 낮에 하는 단속을 피하기 위해 밤에만 일하기로 했다.
하지만 나와 버마공동체 회원들은 부천외국인 노동자센터와 함께 우리의 권리를 위해 농성투쟁하기로 했다.
우리는 2003년 11월 15일 저녁에 명동성당 앞으로 버스를 빌려서 갔다. 농성투쟁을 할 이주노동자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이 명동성당 앞에서 모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알고 지냈던 소띠하와 내가 얘기하게 됐다. 우리 둘은 그때서야 서로 제대로 얘기하게 되는 것이다. 소띠하가 내게 자기가 유레카밴드에 대해 관심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본인도 대학교 때 밴드 활동했고 베이스기타 쳤다고 했다. 나도 소띠하가 베이스 친다는 걸 그때 알게 됐다. 그래서 내가 우리 농성하면서 같이 노래하자고 말했다.
11월 15일 저녁에 명동성당 앞 계단에서 수많은 이주노동자이 모였다.
수많은 시민사회단체도 모였고. 우리는 우리의 권리 그러니까 노동자의 권리를 요구하는 구호들을 외쳤다. 밤이 깊어갈수록 날씨도 추워진다. 우리 모두가 명동성당 앞 성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줄줄이 앉아 도시락으로 저녁 먹고 침낭으로 온몸을 덮어 밤을 새웠다. 날씨가 너무 춥기 때문에 추운 것 너무 싫어하는 내게는 지옥 같은 밤이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성공회 성당 쪽으로 옮기게 됐다. 어떤 이주노동자들과 단체들은 명동성당 앞에서 남아 농성했다. 왜 따로 하게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밤새 구호 함께 외치며 친해진 이주노동자들, 한국인들과 다 같이 농성을 하고 싶었다.
▲2003년 강제추방저지 농성중
농성 첫날에 만든 노래 ‘우리가 원하는 건’
농성 시작하는 그날 저녁 나는 똑같은 구호들만 외치고 있는 것보다 더 재미있게 외칠 수 있게 모두구호들을 노래로 만들었다. 그 노래는 지금까지 여러 곳곳에서 열린 수많은 이주노동자 집회 때 사용하게 된 ‘우리가 원하는 건’이라는 곡이다.
우리가 원하는 건
STOP! STOP! STOP! CRACK DOWN
WE ARE LABOR
WE WANT LABOR’S RIGHTS
투쟁 투쟁 투쟁
강제 추방 반대 한다
우리는 노동자
우리는 노동자 권리 보장해
투쟁 투쟁 투쟁
(작곡/사- 소모뚜)
노래 들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