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일은 세계노동절 120주년. 120년 내걸었던 '8시간 노동 쟁취'는 여전히 전 세계 많은 노동자들에게 숙제로 남겨져있다. 특히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은 여전히 법전 안에서만 존재한다. 2004년 8월부터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인정하는 고용허가제가 실시되고 있지만, 이들의 열악한 작업 조건과 저임금은 '상식'처럼 굳어졌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불법체류 노동자들이 활개치고 돌아다니게 해서는 안 된다"라며 이들의 삶을 더욱 옥죄고 있다. 한국인들이 더 이상 꿈꾸지 않는 공간에서 꿈을 꾸는 사람들. 이들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 '죽거나 혹은 떠나거나'를 선택해야 한다.

소모뚜씨(35)의 명함에는 직함이 여러 개 새겨져 있다. 'MWTV(이주노동자의 방송)' 대표,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 2004년 결성된 '버마행동' 총무, 이주노동자들이 결성한 밴드 '스탑크랙다운'의 보컬·작곡·기타리스트… 날래 보이는 작고 마른 몸으로 그는 자신을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날라 간다. 어디 한 군데 편히 앉을 시간도 없을 정도로 소모뚜씨는 바빴다. 그와 인터뷰는 이동 중인 전철 안에서 주로 이뤄졌다.

소모뚜씨를 만난 4월29일, 그는 언론시민단체 활동가 14명이 낸 '공영방송 국민 컨설팅 보고서'의 공저자로 참여해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발표회를 가졌다. 오후에는 매주 토요일 방송되는 OBS 라디오 < 다문화 톡톡 > 의 진행을 위해 인천으로 향해야 했다. OBS 라디오 < 다문화 톡톡 > 의 김희성 PD는 "이주노동 당사자가 직접 라디오를 진행하는 것은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장일호 매주 토요일 방송되는 OBS 라디오 < 다문화 톡톡 > 의 진행하는소모뚜(맨 오른쪽)

이날은 인천여성의 전화 김성미경 회장이 게스트로 출연해 이주여성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프로그램인 '아시아 이주 여성 마을'을 소개했다. MWTV의 대표이기도 한 소모뚜씨가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방송이 끝난 후, 소모뚜씨는 김성미경 회장이 일하는 곳을 방문해 둘러보고 방송 계획을 짜느라 여념이 없었다.

서울에서 인천으로, 다시 서울로… 서울 가리봉동에 있는 보증금 50만 원짜리 작은 단칸방은 집이 아닌 '자는 곳'이다. 그는 다음 날 스탑 크랙다운 공연을 하러 대전으로 간다고 했다. 빼곡한 스케줄을 듣고 있던 기자가 놀라워하자, 소모뚜씨가 말했다. "얼굴을 드러내고 다닐 수 있으니까, 다른 사람(이주노동자) 몫까지 열심히 살아야 해요. 그 사람들 생각하면 힘들 수가 없어요"

여느 이주노동자들과 달리 소모뚜씨는 이 곳 저 곳 얼굴을 드러내놓고 다닐 수 있다. 공장 같은 '현장'에서 일하기보다, 현장을 '찾아다니는'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한국에서 버마 민주화를 위해 활동하는 그가 '인도적 지위' 비자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적 지위 인정은 난민과는 다르다. 인도적 지위는 난민 요건이 충족되지 않더라도 인도적 차원에서 일정 기간 체류허가를 내주는 것이다. 법률로 규정된 것이 아니고 법무부 지침으로 시행되는 것이어서 신분이 불안하지만 당장 추방될 염려는 없다. 현재 소모뚜씨는 난민 신청 소송 중이다.

물론 소모뚜씨도 처음부터 '활동가'로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가 한국에 들어온 지도 벌써 15년, 스무 살 때이다. 버마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아버지는 정치적으로는 올곧았으나, 경제적으로는 무능력했다. 그러나 소모뚜씨는 민주화 운동을 했던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했다.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한국행을 결심했다. 한국에서 일하면서 돈도 벌고, '민주화 운동'의 선배격인 한국에서 버마를 도울 일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모뚜 '주임'에서 '활동가'가 되기까지

처음 한국에 와 들어간 곳은 박스를 만드는 공장이었다. 묵묵하고 성실하게 8년을 일했다. 그 공장은 '소모뚜 주임'이라는 직책을 붙여준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2003년, 고용허가제 도입을 앞두고 정부의 미등록 이주 노동자 단속이 심해졌다. 추방되거나, 자살을 선택하는 '친구'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어쩌면 주임으로 눈 딱 감고 일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럴 수 없었다. 이주노동자들이 성공회 성당 앞에 농성장을 꾸렸는데 '주임' 소모뚜도 그 현장에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모인 이주노동자들이 외친 구호, '스탑크랙다운(Stop Crack Downㆍ단속을 멈춰라)'은 그대로 밴드 이름이 됐다. "피부 서로 달라도/문화 서로 달라도/우리 서로 아름 다음 동지/혼자 가는 것보다/함께 가면 좋은 걸/함께 사는 이 세상 우리를 위하여.(스탑크랙다운 노래 < 와 > 中)" 그들은 그렇게 '함께 살자'라고 한국말로 노래했다.

농성이 마무리 되면서 소모뚜는 소화기 압력계를 만드는 공장에 들어갔다. 소모뚜의 '강행군'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월~토요일까지 일하고, 단 하루 쉬는 일요일이면 밴드 연습을 하거나 공연을 가졌다. '버마행동'이 꾸려진 것도 그 즈음이었다. 2005년 MWTV가 만들어지면서는 제작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일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다. 사장은 늘 소모뚜를 배려해주곤 했다.

 



 
ⓒ한향란 스탑크랙다운 공연

그러다 지난해 10월 스탑 크랙다운의 멤버인 미노드 목탄, '미누'라고 불리던 '유명한' 한 이주노동자가 강제 추방 됐다. 미누의 추방과 함께 소모뚜씨 역시 '미누의 친구'로 언론에 입길이 오르내렸다. 어느 날 사장이 소모뚜씨를 불렀다. "네가 열심히 활동하는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부지런히 활동하는 줄은 몰랐다. 혹시나 정부에서 압력이 올까 무섭다. 일 정리 해달라" 추방당한 것은 미누씨 뿐만이 아니었다. 그렇게 소모뚜씨는 일자리에서 '추방' 당했다. 그리고 돌아보니 2003년 결성 된 스탑 크랙다운의 멤버 5명 중 남아 있는 사람도 둘 밖에 되지 않았다.

공구 대신 소모뚜씨는 카메라를 들었다. MWTV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 그에게 MWTV는 단순히 방송이 아니다. 그는 "MWTV를 통해 만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스스로 찾아다니면서 노동법, 산재,
최저임금법 등을 공부했다. 취재 차 만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도 매주 월요일 성공회대 민주사회교육원이 운영하는 노동대학에 꼬박꼬박 참여해 강의를 듣곤 한다.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로 국내 기업의 상황이 나빠지면서 이주노동자들은 또 한 번 실직의 벼랑 끝으로 몰렸다. 정부는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수를 제한하는 '건설업 취업허가제'를 도입했고, 기존에 회사에서 부담하던 기숙사비와 식대 등을 이주노동자 월급에서 공제하는 방안 도입 등을 논의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인도적 차원에서 시행되던 취학 아동을 둔 미등록 이주 노동자 부모들의 한시적 체류 허용도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우는 이명박 정부 들어 중단 됐다. 노동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라도 선 구제하고 후 통보한다'라는 지침을 삭제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체불임금을 상담하러 가면 노동부는 문제 해결에 앞서 법무부에 신고부터 하게 했다.

누구보다 이런 현장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움의 '속살'을 잘 알고 있는 소모뚜씨는 말한다. "이주노동자들에 나라를 떠나올 때, '엄마,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오는 것 아니에요. 너무나 절박하기 때문에 떠나오는 경우가 많죠. 저 역시 그랬구요. 이주노동자들, 한국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 싼 값으로 일해요. 미디어에서는 명절 때 TV에 한복 입고 나와 한국말로 노래하고, 한국 음식 잘 먹는…그런 모습만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카메라를, 마이크를 놓을 수가 없어요. 아직 알려야 할 현실이 더 많으니까요"

장일호 기자 / ilhostyle@sisain.co.k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5/03 14:21 2010/05/03 14:21
Tag //

 

기사입력2010.01.03
 
밴드의 뜨거운 공연 장면. 맨 왼쪽이 소모뚜.

[아시아경제 김수진 기자] '오늘은 나의 월급날 가슴이 두근두근합니다 / 한참동안 받지 못했던 월급을 돌려준대요 / 나의 소중한 가족들 사랑하는 부모님 / 이제는 나의 손으로 행복하게 해줄게요 / 오 사장님 안녕하세요 / 오 사모님 내 월급을 주세요'(스탑크랙다운 2집 수록곡 '월급날')

'아이언 크로스'는 미얀마에서 가장 인기 있는 헤비메탈 밴드이다. 밴드의 기타리스트 칫산마웅은 한국에도 이름이 알려져 있을 정도다. 이들을 보고 음악에 빠진 청년은 한국으로 건너와 이주노동자가 됐다.

공장에서 일하면서도 음악을 잊지 않았던 그는 2003년 11월 성공회성당의 농성장에서 이주노동자 밴드 '스탑크랙다운'을 결성했다. 그후 6년, 두 장의 앨범을 내며 꾸준히 활동해오던 밴드는 지난 10월 주축이었던 미누의 강제추방 이후 단 1명이 남은 원맨밴드가 됐다. 여전히 '스탑크랙다운'을 이끌어나가고 있는 그 사람은 ‘아이언 크로스’의 팬이었던 음악청년, 소모뚜씨다.

지난해 11월26일 홍대에서 열렸던 밴드 결성 6주년 기념 공연 '미누야 보고 싶다'의 감상을 묻자 소모뚜씨는 담담했다.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어요. 우리는 무언가를 바라고 밴드를 한 것이 아니에요. 모두가 사람이고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국적이 다른 멤버들이 모여 '다문화밴드'를 6년이나 꾸려 올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도 강제로 추방당해야 한다는 것이 슬펐어요. 하지만 우리가 쪼개져 있는데도 공연을 하고 예전같은 호응을 얻을 수 있다는 건 기뻤습니다. 비록 흩어지게 되었지만 우리는 큰 충격을 받지 않아요. 멀리 떨어져 있어도 우리가 하나라는 마음만 가지고 있으면 되니까."

소모뚜가 기타를 치고 미누는 노래를 부른다. 밴드 연습중이다. 왼쪽이 소모뚜, 오른쪽이 미누.


인터뷰 내내 그는 '우리 모두가 똑같은 사람'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했다. 스탑크랙다운 밴드 멤버, 이주노동자 방송국 MWTV 대표, 미얀마 민주화를 위한 '버마행동' 총무 등 수많은 직함을 지닌 그가 제시하는 다문화사회의 원칙이 거기서 출발한다. 사람이기에 같을 수밖에 없고, 다문화사회는 서로의 공통점을 찾아 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다문화 교육 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미얀마, 네팔, 방글라데시, 몽골 등 여러 나라 사람들이 참여하는 다문화교육 모임도 만들어 놓았다. 외국인근로자 인권을 위한 모임이라는 단체 중심으로 초등학교를 찾아가서 한 시간 정도 다문화교육을 진행한다.

"가르치고 나면 아이들의 변화를 피부로 느껴요. 한 시간이라도 우리 서로 정들고 행복할 수 있으니까. 서로 다르지만 우리는 똑같은 사람으로 잘 지낼 수 있다는 걸 아이들은 이해해요. 수업이 끝나고 같이 사진을 찍을 때 거리낌 없이 저한테 어깨동무를 하죠."

음악에 대한 그의 사랑은 각별하다. 가장 강력한 소통 수단으로서 음악을 신뢰한다. 그래서 그는 밴드 활동을 택했다. 음악으로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음악은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어요. 음악은 사람들을 화합하게 해 줘요. 힘든 사람들에게 위로가 돼요." 음악에 대해 얘기할 때 그는 잔뜩 흥분한 어조였다. 처음으로 전자 기타를 안아 봤을 때 충격에 빠졌다고 했다. 마치 자기 자식을 안은 기분이었단다.

미얀마 사원 사진이 담긴 현수막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언젠가는 고국 미얀마로 돌아가는 것도 소모뚜의 꿈이다.


한국에 와서 그가 놀란 점 역시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음악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이었다. 서점에 가면 기타 교본이 있고 인터넷으로 원하는 악보를 다운받을 수 있다. 미얀마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좋아하는 메탈리카의 악보 하나 얻기도 힘들었다. 그는 음악의 기초를 오로지 독학으로 익혔다.

"음악에 열 두 개의 음이 있다는 것, 코드 구성, 그런 걸 전부 혼자 터득했어요. 그만큼 어렵게 만나왔기 때문에 음악은 내게 너무나 소중합니다. 내가 음악인지 음악이 나인지 모를 정도로 사랑해요."

그는 '스탑크랙다운'밴드의 활동이 그 자체로 희망이라고 말했다. 무대에 선 그들의 모습을 보며 이주노동자들은 용기와 자신감을 얻는다. 처음에는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왔지만, 이제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것이 그가 한국에 온 이유가 됐다.

그래서 그에게 국경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모두가 평등하고 행복하 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그는 고국 미얀마를 염려하는 만큼 한국의 현실을 걱정한다. "한국에 살면서도 차별 없고 편한 세상을 원했어요. 내 나라뿐만이 아니라 내가 와 있는 곳에도 더 많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활동을 시작한 거죠."

그는 다니던 공장을 그만두고 이주노동자 문제를 중심으로 한 문화 활동가로 변신했다. 이미 다국적 밴드를 꾸리며 다문화사회를 실천하고 있는 그는 미래를 낙관한다. 동료들의 추방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서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해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다. 항상 일을 찾고 일을 벌이는 것이 자신의 일상이란다.

지금 한국에서의 삶이 행복하냐는 질문에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힘들고 어렵지만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요. 행복해요. 어디에 있었어도 지금같은 활동을 했을 거예요."

김수진 기자 sjkim@asiae.co.k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1/04 19:54 2010/01/04 19:54
Tag //

‘공정여행’으로 희망을 나눠요 

2009년 12월 06일

지유림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그물망 ‘이매진피스’가 5일 마포구 소재 성미산 학교에서 제3회 ‘희망을 여행하라!’ 축제를 열었다.

이날 열린 축제는 ‘여행은 소비가 아닌 관계’라는 슬로건으로 다양한 여행소품을 만들어 보는 여행공작소, 팔레스타인 올리브 오일로 스파게티 만들기, 공정무역 커피 나눔, 공정무역을 통해 얻은 설탕으로 달고나 만들기, 여행자 평화 헌책방, 여행자 벼룩시장 등 다양하고 풍성한 프로그램들로 마련됐다.

   
▲ 공정무역을 통해 얻은 설탕으로 달고나 만들기. ⓒ천지일보(뉴스천지)
   
▲ 저렴하게 책을 구입할 수 있는 ‘여행자 평화 헌책방’에서 아이들의 책 읽는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더불어 공정 여행자들의 기발한 생활 노하우를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다. ‘우리 안의 아시아, 우리 안의 국경’을 통해 참여한 시민과 아이들로 하여금 마음이 따뜻해지는 의미 있는 시간이 진행됐다.

이때 이주노동자 음악밴드 스탑크랙다운의 기타리스트 소모뚜 씨와 방글라데시에서 온 쇼하크 씨가 참여해 주민들과 소통의 시간을 가졌다.

   
▲ 이주노동자 밴드 스탑크랙다운의 기타리스트 소모뚜 씨와 주민들의 소통의 시간. ⓒ천지일보(뉴스천지)

이날 소모뚜 씨는 이주노동자들의 실태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오랜 시간 한국에서 일을 했다”는 말로 시작해 “지난 1997년 IMF로 인해 사회뿐 아니라 회사도 어려울 당시 사장님과 함께 라면을 먹으며 한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었다. 또 2002년 월드컵 때는 운동을 잘하는 브라질을 응원하는 대신 사랑하는 대한민국을 응원했다”며 “우리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이 아플 때에도, 기쁠 때도 함께했다. 비자라는 도장이 없을 뿐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단체 ‘이매진피스’. 그들이 말하는 ‘공정여행’이란 여행이 단지 취미와 휴식활동을 넘어 지출되는 여행비용 속에 대기업의 과도한 수익 회귀 구조가 있지는 않은지, 현지인들의 환경과 문화를 파괴하고 있지는 않은지, 인권을 침해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고려한 ‘희망 여행’이다.
요즘 환경과 인권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열린 축제 ‘희망을 여행하라’는 환경과 인권, 평화를 사랑하는 ‘착한 여행 문화’를 만들어 가는 행사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한편, 이날 모인 수익금은 전 세계 분쟁지역 평화도서관 만들기에 쓰인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12/09 14:38 2009/12/09 14:38
Tag //

스탑크랙다운 6주년 기념공연, 희망을 노래하다
 
 
 
배문희기자
 
 
ⓒ박현수기자

합정동 지하의 작은 공연장에 사람들이 발 디딜틈도 없이 몰려 들었다. 곧이어 공연장에서는 재즈부터 락,
가야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악소리와 '와와'하는 사람들의 환호 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걸까?
 
지난 11월 28일 합정동에 자리한
소규모 전시장겸 공연장인 요기가표현갤러리에서 다국적노동자밴드 '스탑크랙다운'의 6주년 기념공연이 열렸다.
 
이날 공연장에는
이주노동자들부터 대학생과 직장인, 이주노동자 관련 단체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사람들 80여 명이 모였다.
 
스탑크랙다운은 2003년 정부의 강제추방에 맞서 이주노동자들이 농성을 벌였던 서울 태평로 성공회대성당에서 결성됐다. 스탑크랙다운 멤버들은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노래로 전하고
한국인과 이주민들을 잇는 소통의 다리를 마련하기 위해 망치스패너 대신 기타와 마이크를 들었다.
 
멤버는 네팔에서 온 미누(보컬),  버마에서 온 소모뚜(기타)와 소띠하(베이스),
인도네시아에서 온 해리(키보드), 한국인 송명훈(드럼) 등 5명으로 결성됐다. 현재 미누와 해리씨가 강제출국돼 이번 공연을 함께 하지 못했지만 관객들의 열기는 그 어느때보다도 뜨거웠다.
 
이날 공연에는 주인공인 스탑크랙다운 외에도 민중노래패 '
꽃다지', 티벳가수 카락뱀, 캐비닛싱어롱즈, 연영석, 아나야, 뇌태풍, 뭐라도, 춤추는 소라 라무, 정민아, 레인보, 배꼽(푸른꿈 고등학교 밴드) 등 국적과 장르를 초월한 다양한 음악가들이 게스트로 참여해 열기를 더했다.

ⓒ박현수기자

게스트로 참여한 밴드 ‘뇌태풍’의 보컬 류태씨(25)는 미누가 그랬듯 빨간
목장갑을 끼고 노래해 눈길을 끌었다. 손목이 잘린 노동자들의 애환을 표현한 빨간 목장갑은 ‘미누의 상징’이었다. 그는 "미누씨를 추억할 만한 것이 뭐가 있을까 생각한 끝에 빨간 목장갑을 선택했다"며 "근처 가게에서 500원에 샀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공연 중간에는 특별
이벤트로 네팔에서 생활하고 있는 보컬 미누씨가 한국인 친구들에게 보내는 영상편지가 소개됐다. 스피커 고장으로 미누씨의 음성을 들을 순 없었지만 관객들은 미누씨의 목소리를 마음으로 전해 들었다. 
 
좁은 공연장을 가득 메운 80여 명의 관객들은 공연 내내 환호했으며 공연의 막바지에 스탑크랙다운 2집 앨범 '자유'에 실린 '와'를 노래하자 전부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며 한데 어울렸다.
 
'
피부 서로 달라도, 문화 서로 달라도, 우리 서로 아름다운 동지, 혼자 가는 것보다 함께 가면 좋은 걸. 함께 사는 이 세상 우리를 위하여'
 
자유의 노랫말처럼 피부 서로 달라도, 문화 서로 달라도 함께 소통하며 살아간다면 진정한 다문화 사회로 가는 길이 열리지 않을까. 이날 공연에서 스탑크랙다운은 관객들과 하나가 돼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불렀다. 스탑크랙다운이 노래를 통해 가장 하고 싶었던 말, 그건 사람이었다.

 

 
문화저널21 배문희기자
baemoony@mhj21.com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12/04 01:17 2009/12/04 01:17
Tag //

“진정한 소통은 마음을 여는 것” 

 

기사 보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11/10 19:55 2009/11/10 19:55
Ta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