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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티(솔향)마을 별 헤는 밤,
작은 마음으로 농사짓는 농부 이야기
산으로 둘러싸인 한 눈에 보기에도 조용하고 아늑한 마을.
마을 주위에 소나무가 울창하여 솔티 마을이라 이름 붙여진 곳에서 조호범님이 2년 넘게 삶터를 꾸리고 있다. 소박하고 아름다운 마을처럼 작은 마음으로 귀농생활을 하고 있다는 그를 1박 2일간의 일정으로 만났다.
솔향 마을에 넋 놓고 취해
마을에 도착하고선 이미 알고 있던 사이인지라 가볍게 인사를 하고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하니 마을구경을 하잔다. 안 그래도 골짜기에 위치한 마을이 퍽 맘에 들었던 터라 선뜻 그러마 하고 같이 나섰다. 뒷산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올라가며 간만에 눈앞에 펼쳐진 자연의 풍경에 탐방을 왔다는 사실도 잊고 그만 넋을 놓고야 말았다.
“도시에서 온 사람들은 이런 조용함에 매력을 느끼지만, 저는 때때로 도시의 시끌벅적함이 생각나요” 연신 감탄하며 바라보고 있노라니 호범씨가 넌지시 말을 건네어 온다. 무엇이든 한쪽 모습으로만 판단할 수 없지만 이렇게 산길을 걷는 게 너무 좋아 ‘그렇겠네요.’ 건성으로 대답하고 다시 눈길을 돌린다.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을 산에 묻힌 작은 마을과 주변으로 정리된 밭들. 은빛으로 빛나는 비닐 아래 생명을 틔우고 있을 마늘.
소박하지만 여유가 넘치고 그래서 아름다운 마을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개인적인 감상은 뒤로 미루고 탐방으로 돌아오면 호범씨가 살고 있는 곳은 안솔티 마을이라고 불리는데 예전에는 28가구 이상 살았는데, 지금은 3가구 밖에 없다고 한다. 대구에서 살다 귀농하신 부부와 이곳이 고향이신 어르신 부부, 그리고 호범씨가 마을인구의 전부지만 그렇기에 가족같이 지낼 수 있는 곳이었다.
저, 이렇게 지내고 있어요.
“2009년 12월에 내려왔으니까 2년이 조금 넘었네요.”
가볍게 마을구경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아주 약간 쌀쌀해진 몸을 상지차(뽕나무 가지로 만든 차)로 녹이며 본래 목적에 충실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횡성에서 현장귀농학교를 마치고 이곳으로 바로 내려왔는데, 가까운 친척도 없지만 고향인지라 조금이라도 비빌 언덕이 있는 곳이 좋을 것 같아 귀농지로 택했다고 한다.
호범씨는 중학교 때 대구로 옮긴 뒤 주로 대구에서 지냈다고 한다. 인드라망과 인연을 맺기 전에는 해외봉사단 활동으로 약 2년 간 몽골에서 지냈고, 귀국해서 실상사귀농학교에 입학하고 이어 현장귀농학교를 다녔다고.
집은 빈집을 공짜로 쓰고 있고, 화목보일러를 설치한 것 외에 특별히 수리 할 필요도 없는 혼자쓰기에 딱 알맞은 집이었다. 밭은 임대를 해서 쓰는데 약 1,300평 정도 되고 작년에는 마늘, 감자. 메밀, 콩 등을 심었다고 한다.
“젊은 층이 들어왔으면 싶지만, 쉽지 않은 길이라 또 함부로 말하기 어렵네요.”
호범씨는 30대 중반으로 홀로 귀농했는데 마을에 동년배가 없어 외롭지 않냐 했더니 나온 대답이다. 무엇이 쉽지 않으냐고 다시 물으니 ‘거의 모든 것’이란다. 귀농이란 것, 거기다 혼자이다 보니 삶터를 마련하는 것부터 농사까지 모든 문제를 스스로 알아서 해결하야 하는 것이 쉽지 않더라고.
또 30대 젊은 층은 상대적으로 경제적인 면에서 덜 여유롭기 때문에 초기자본을 많이 투입할 수 없는 면도 빼놓을 수 없고. 호범씨도 작년까지는 안동에서 일을 하면서 반농반업 생활을 했었다고 한다.
난 아직 몰라.
호범씨나 탐방을 간 두 남자 모두 30대 중반의 같은 또래라 자연스레 이야기는 젊은 층의 귀농에 관한 것으로 옮겨갔다. 요즘 젊은 층에서도 귀농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진 것 같은데 호범씨는 모순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젊은 층이 귀농해서 농촌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으면 좋겠지만 반대로 도시에서 여러 많은 경험을 쌓고 귀농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단다. 물론 각자의 판단에 따라 이루어질 일이겠지만 역시 사는 건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젊고, 결혼도 안한 총각이 혼자 귀농했다고 하면 처음에 마을에서 주목을 받게 되요.”
귀농인구가 점차 늘어 익숙해졌다 해도 어쨌든 누군가 새로이 마을에 들어왔다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텐데 거기다 젊은 총각이라고 하면 단번에 마을 이슈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솔직히 부담스럽긴 하다. 도시에서는 받아보지 못한 관심도 그렇고, 마을 어르신과의 관계, 또래문화가 부족한 것 등 귀농이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지만 거기다 젊은 층은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어 조금 더 어렵지 않을까 싶다. 이런 저런 것들을 무난하게 풀어내는 것이 그것이 귀농생활의 첫 출발일 것이다.
그럼 호범씨는 무슨 생각으로 젊은 나이에 귀농했을까.
‘귀농하기 전에는 이유가 분명했는데 지금은 왜 귀농했는지, 어떻게 하면 잘 사는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알쏭달쏭한 대답이다. 여러 가지 사정, 이유로 귀농을 결심하고 실행했지만 산다는 것이 꼭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또 하루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기에 이유를 따지기보다 그냥 살아간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것 같다고.
그래 아직 귀농이 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심지어는 내가 왜 이곳에 있는지도 잘 모르는 우리 젊은이들(?) 이지만 마을 어르신의 말씀처럼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없기에 그렇게 한 계단씩 묵묵히 올라가는지도. 그렇게 가다보면 요즘 지인이 추천해준 노래의 가사처럼 작은 연못에서 시작된 길이 드넓은 바다로 이어질 것이고, 그 험한 길을 같이 걸어갈 사람들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별 헤는 밤에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동네 어르신들께 인사를 드리러 나섰다. 윗집에 사시는 분은 대구에서 사시다가 귀농하셨는데 손수 집을 많이 고치셨다고. 아궁이에 나무로 불 떼는 향기가 좋다며, 그 때문이라도 귀농하고 싶다고 옆에서 갑열님이 말한다. 힘든 일이지만 내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 또 매력이니까. 그리고 뒷집에 사시는 어르신 부부께도 인사를 드렸는데 어르신 인생이야기부터 오랜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말씀까지 기회가 되면 어르신 인생 탐방기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냥 흘러들을 얘기가 없었다. 호범씨를 손자같이 아들같이 생각해주시는 것 같아 더욱 좋았고.
그렇게 인사를 마치고 선물 대신 사간 삼겹살과 소주를 벗 삼아 다시 이야기꽃을 피웠다. 30대 노총각의 최대 현안(?)인 결혼문제부터 귀농에 대한 것 까지 무궁무진하게 이어졌다.
술기운에 기록을 못한 것이 아쉬울 만큼 많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지금 생각나는 건 빨리 결혼해야 한다는 것 정도^^ 외에도 농활프로그램 같은 것을 통해 서로 교류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 농업과 농사짓는 분들의 가치에 대해 근본적인 인식전환이 필요하다는 그래서 농사짓는 분들께 기본소득을 제공해야 한다는 나름 심각한 토론도 있었다.
그리곤 별을 노래하기(?) 위해 다시 나섰다. 인공적인 불빛이 하나도 없는 산골에서 하늘 가득 밝은 빛을 발하는 별을 보며 걸었던 산책. 별 말이 없어도 마음으로 통할 것 같은 그런 밤이었다. 별이 빛나는 밤에 귀농탐방의 낭만을 정말 맘껏 누렸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작은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낭만적인 밤을 보내고 맞은 아침. 어제 남은 고기와 김치로 김치찌개를 끓여 먹고, 나무 장작을 몇 개 패며 좋아라 했다. 30대 중반의 아저씨 셋이 그렇게 천진난만(?)하게 새로운 하루를 맞았다. 마을에 일이 있어 호범씨와 함께 나서며 귀농탐방을 마쳤는데, 솔향마을에서 별과 사람에 취한 멋진 귀농탐방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나에게만 멋지면 안되는데.....
마지막으로 호범씨가 운영 중인 블로그의 글귀를 적어본다. ‘내 고향 솔티에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작은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솔직히 어떤 마음인지는 잘 모르지만 솔티마을에서 내가 느꼈던 그 따뜻함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 그렇게 살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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