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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학교 이야기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의 학교 이야기!



“여보세요.”

“거기 오리 가르쳐 주는 곳입니까?”

“네? 오리요? … 혹시 오리농법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니. 그냥 오리요. 제가 오리를 좀 키워보고 싶어서”

“아~, 저희는 그런 내용을 다루지는 않고 있습니다.”


사무실에 있다 보면 종종 이런 문의전화를 받게 된다. 바로 ‘귀농학교’ 때문이다. 내가 현재 일하고 있는 곳은 생명평화 가치관을 실현하고자 하는 ‘인드라망생명공동체’라는 단체인데, 우리 단체의 주요한 일 중 하나가 귀농학교이다. 그렇다보니 평상시 귀농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또 귀농을 하는데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궁금해 이런저런 문의를 해오곤 한다. 하지만 간혹 예상을 벗어나는 질문이 있어 당황스러울 때도 많다.


그런데 ‘귀농’이라는 말은 이젠 제법 알려져 익숙하고, 알겠는데 대체 ‘귀농학교’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귀농을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 있었나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귀농을 원하는 사람이나 귀농에 관심 있는 사람, 혹은 아직 귀농은 아니더라도 생태적인 삶에 관해 무엇인가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학교이다. 넘 간단한 설명인가. 그렇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인드라망에서 하고 있는 세 가지 귀농학교 중 최근에 내가 직접 진행을 한 불교귀농학교 24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 보자.


지난 연말, 사무실 내 업무에 변동이 생기면서 올 봄부터 내가 귀농학교를 담당하게 되었다. 다른 귀농학교 프로그램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일단 서울 양재동 사무실 교육센터에서 진행되는 불교귀농학교 이야기를 하면, 1998년 시작되어 10년이 넘게 이어져 오고 있는데, 지난 3월부터 5월까지 24기가 진행되었다. 24기의 개강식 날, 20대에서 60대까지 정말로 다양한 사람들이 수업을 듣기 위해 모여 있는 것을 보고는 처음에는 ‘이게 정말 잘 될까? 잘 할 수 있을까’는 걱정을 많이 했다. 귀농학교 프로그램도 처음 담당하는데다, 남 앞에 서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란 걸 그동안의 짧은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는 터라 다른 때보다 더 많이 걱정하고, 고민했다. 50여명이나 되는 사람들 앞에서 처음 입을 열었을 때는 ‘내가 말은 제대로 하고 있나’하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프로그램을 잘 운영해야 한다는 진행자로서의 걱정도 있었지만 보다 큰 걱정거리는 다양한 연령이나 모습만큼 귀농에 대한 생각도 각자가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가 생각하는 귀농의 의미를 잘 전달할 수 있을지, 오신 분들에게 그것이 도움이 될지 하는 고민이었다.  


그렇게 나와 불교귀농학교 24기의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잘 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을 안은 채 어쨌든 해야 할 일은 해야 하기에 귀농학교의 시작을 알렸다. 첫날, 첫 시간에 내가 가장 먼저 한 말은 ‘마음공부’이다. 인드라망 귀농학교는 농사기술이나 농촌에서 잘 먹고 잘 사는 법이 아닌 농촌으로 왜 돌아가야 하는지, 농촌에 돌아가면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 그런 것들을 배우고, 서로 이야기하는 마음공부의 장이라는 것이었다.

귀농학교도 나름 학교인지라 강의나 실습도 있고, 모둠활동이나 과제물도 있다. 물론 끝까지 함께하면 수료증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마음공부라는 기대에 어긋나는(?) 말로 귀농학교를 연 까닭은 수강생 분들이 귀농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돌아보고,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이 농업이나 농촌이 홀대받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귀농에 관심을 갖고 귀농학교까지 찾아 왔다면 농촌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아닌 귀농을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것, 요컨대 귀농이라는 형태를 통해 살고자 하는 삶의 방식에 대한 올곧은 생각이 가장 중요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인드라망 귀농학교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 어쩌면 지겨울 정도로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것이 마을공동체와 단순소박한 생태자립적 삶이다. 참고로 귀농학교의 교육이념도 ‘조화로운 삶’, ‘더불어 사는 사회’, ‘생명을 살리는 농업’이다. 이러한 이념 속에는 자본에 의지하고 않고, 좀 단순하고 가난하지만 스스로 주체가 되는 삶의 양식으로의 변화라는 가치지향과 이러한 삶을 사회적으로는 마을공동체라는 형태를 통해 일구어 나가길 바라는 희망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귀농학교에 오는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이유를 갖고 있다. 그 이유들을 들어보면,


"귀농학교에 오게 된 건 도시에서 사는 것에 회의가 생겼기 때문이다. 컴퓨터 앞에서

주로 일을 하는데, 사는 게 사는 거 같지가 않았다. 다르게 살고 싶어서 귀농학교에 오

게 됐다."


"귀농이 어떤 것인가, 귀농의 삶이 어떤 것인가 알고 싶어서 왔다."


"어렸을 때 오랜 기간 시골 외갓집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입학해서도 시골에 가서 오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 때의 풍경과 냄새,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잊지 못해 언

젠가는 저런 곳에서 살아야겠다는 막연한 동경을 품고 있다.”


대략 이 같은 것들이다. 첫 강의가 끝나고 나면 함께 둘러 앉아 마음나누기 시간을 갖게 되는데, 그 때 귀농학교를 오게 된 이유를 들어보면 대부분의 분들이 도시에서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농촌에서 다른 의미를 찾고자 귀농학교에 오시는 것 같다. 물론 좀 더 구체적으로 실제 귀농을 할 때 도움을 받고자 오시는 분들도 있다. 그렇다 보니 인드라망의 가치지향적인 귀농교육에 대해 수강생들의 반응도 엇갈린다. 막연히 귀농을 생각하고 오기는 왔는데 강의를 듣다보니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좋아하시는 분들이 있는 반면, 너무 이념적이라며 부담스러워 하시는 분들도 있다.


여하튼 이렇게 귀농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잘 모르는 분들에게 실제 귀농하신 분들로부터 본인들의 삶의 이야기를 듣고, 생태적인 삶에 관한 강의를 들으면서 귀농의 의미와 귀농 이후의 삶에 관해서 함께 고민을 해보는 것이 인드라망 귀농학교의 모습이다. 


그런데 귀농학교가 이렇게 무겁고 딱딱한 것만은 아니다.


“귀농학교에서 좋은 사람 많이 사귀시면 좋겠습니다.

여러 인간관계 중에서, 귀농학교에서 맺는 인간관계는 좀 남다른 면이 있습니다.

함께 꿈을 꾼다는 것은, 허울뿐인 연대와는 또 다른 의미이기도 합니다.

세대를 넘어, 좋은 인연 만나시면 좋겠습니다.”


위의 글은 이번에 24기 귀농학교를 듣고 졸업하신 분 중 한분이 현장실습을 다녀온 뒤 소감을 적은 글 중 일부이다. 이처럼 귀농학교는 ‘도반’을 만나는 과정이기도 하기에 강의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들 외에 또 다른 즐거움이 있다. 귀농학교 강의는 통상 화, 금요일 저녁에 진행되기에, 일터에서 혹은 삶터에서 하루를 바쁘게 보내고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멀리 양재동까지 오게 된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교육센터에 모여 함께 강의를 듣고 모둠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새로운 활기가 흐르는 것을 느끼게 된다. 처음에는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과연 잘 어울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지만 귀농이나 생태에 관한 관심으로 전혀 알지 못하던 사람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고, 귀농학교가 끝난 이후에도 자발적으로 모임을 꾸려가는 걸 보면 신기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번 기수 분들도 처음에는 서로 어색해하더니 제법 시간이 흐르자 언제 그랬냐는 듯 먼저 정겹게 인사하며, 웃음꽃을 피우며 끝가지 함께 해주셨다. 귀농학교가 끝난 뒤에는 자발적으로 졸업여행까지 다녀올 정도니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지난 졸업여행에서 어느 분은 ‘내 나이에 이렇게 젊은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고, 때론 농담을 할 수도 있다는 것만으로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귀농학교는 ‘귀농’이란 주제로 함께 비슷한 꿈을 꾸는 사람들이 모여 꿈을 나눌 수 있는 열린 공간이기도 한 것이다.


귀농학교 프로그램 중에는 강의 외에 두 가지 형태의 실습이 있는데, 바로 텃밭실습과 지리산 실상사지역으로의 현장실습이 그것이다. 이 두 번에 걸친 실습은 강의로는 충당되지 않는 현장의 경험을 보충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도반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경기도 의왕에 있는 인드라망 텃밭에서의 실습은 평수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수강생들이 직접 땅을 일구고, 씨앗도 심는 과정을 통해 농사에 대한 작은 경험을 하고, 같이 땀을 흘리고 음식을 나눠먹는 나름의 문화로 서로에게 다가가는 과정이 된다. 물론 인드라망 텃밭은 어떠한 농약도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으로 재배한다. 참고로 올해 실습에서는 감자를 기본으로 상추, 쑥갓, 근대, 아욱, 시금치, 들깨 등 다양하게 심었다. 지리산 실상사지역에서의 현장실습은 2박 3일을 함께 보내며 주변 농지에서 일도하고, 지역에 계신 귀농자분들과의 만남의 시간을 갖기도 하고, 염색체험을 하기도 했다. 이번에는 특별히 아직 부족하지만 서로의 귀농계획을 발표하고 듣는 시간을 갖기도 하였다. 이렇게 서로 몸으로 부대끼며 현장실습을 마치고 다시 서울에서 만나게 되면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나는 양

스스럼없이 서로를 대하게 된다.


이렇게 인드라망 귀농학교의 두 달간의 일정이 진행된다. 물론 아직 부족한 것도 많고, 때론 귀농학교에 대한 비판도 듣곤 한다. 그리고 모두가 같은 생각으로 임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비슷한 희망과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일이 아닐까 싶다. 귀농학교 강의를 해주시는 선생님 중에 귀농은 ‘농심(農心)’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말을 해 주신 분이 계셨다. 콩 한쪽도 나눠 먹을 수 있는 마음,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꿈꾸는 귀농이 아닐까. 졸업여행까지 다녀오면서 어느새 나와 24기 귀농학교 분들과의 공식적인 일정은 끝이 났지만 서로 함께 꾸는 꿈을 나누기 위한 우리들의 이야기는 아직이다. 귀농학교 이야기는 지금부터가 다시 시작이다.


친구의 부탁으로 작성한 원고,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놈이지만 기록삼아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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