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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을 긴 전망에서 파악하기: 1968년과 현재의 미국

아메리카합중국 대통령 선거 이후 이 나라를 어떻게 볼 것인가와 관련해서 흥미를 끄는 글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아메리카의 젊은 좌파세력들이 운영하는 블로그인 레프트 후크(Left Hook)에 올라온 글입니다. 필자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없지만, 1968년 상황과 현재 상황을 대비한 것이 흥미를 끕니다. 길지 않으니 금방 읽을 수 있을 겁니다.

 

 


사물을 긴 전망에서 파악하기: 1968년과 현재(Putting Things in Perspective: 1968 and Now)

- 조너 버치(Jonah Birch, 컬럼비아대학)

 

오늘날 사람들에게 부시에 대해서 말할 때 좌파들이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는 비교가 1968년 리처드 닉슨의 대통령 당선이라고 생각한다. 그 해 선거는 사회 양극화가 심해지고 베트남전쟁에 대한 분노가 커지는 상황에서 치러졌다.

 

1968년 봄, 구정 공세는 미국의 베트남 점령이 현지에서 얼마나 인기를 얻지 못하고 허약한 것인지 보여줬다. 물론 닉슨은 우파 공화당원이었으며, 1950년대에는 부도덕한 반공주의자로 이름을 날렸다. 그의 선거운동은 아주 반동적인 공약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그의 공약은, (비록 전쟁을 끝낼 ‘비밀계획’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베트남 전쟁을 지지하고, 법원의 인종차별 철폐 명령에 반대하며, “법과 질서”에 초점을 두고, ‘흑인의 힘(블랙 파워)’과 여성 권리 운동에 반대하는 현상 유지를 강하게 옹호하는 내용이었다.

 

그의 경쟁상대인 허버트 험프리는 “자유주의적” 민주당원이고 린든 존슨의 부통령이었다. 험프리도 베트남 전쟁을 지지했다. 막판 선거유세 때는 군대를 철수하고 싶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그는 닉슨만큼이나 미국 지배계급에게서 혜택을 받은, 그야말로 기존권력에 속한 인물이었다. 어떤 면에서도 “운동”의 후보가 아님이 명백했다. 전쟁을 지지하기는 했지만 그는 반전 운동 세력 상당수의 지지를 받았다.

 

미국이 베트남에서 벌이고 있는 학살에 적극적으로 반대한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예비선거 때 민주당으로 되돌아갔는데, 그건 (2004년 예비선거에서 민주당내 좌파 주자였던) 데니스 쿠시니치와 (기성 정치에 도전한) 하워드 딘을 섞어놓은 것같은 유진 맥카시 후보 때문이었다. 쿠시니치와 딘처럼 맥카시가 후보 지명전에서 험프리에게 졌을 때 그는 자신의 지지자 모두를 전쟁을 찬성하는 민주당원들에게 넘겨줬다. 결국 닉슨은 험프리를 100만표 이내의 근소한 차이로 눌렸는데, 이는 미국 역사상 몇 안되는 적은 표 차이다.

 

물론 많은 좌파들은 참담해했다. 그들은, 선거 결과가 미국 대중들의 의식이 다시 우경화했음을 보여줬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건 완전히 틀린 것이었다. 전쟁을 지지하는 두 후보간에 벌어진 1968년 선거는 미국이 베트남에서 벌이고 있는 일에 대한 국민투표가 아니었다.

 

사실, 닉슨의 당선 직후 미국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한 대중적 급진화를 겪게 된다. 1969년에는 300만명의 사람이 스스로를 혁명가라고 칭했다. 전쟁 반대는 계속 확산되어 갔으며 특히 노동계급과 빈민층에서 두드러졌다. 베트남인들의 지속적인 저항과 베트남에 파병된 군인들의 반란은, 결국 미국이 베트남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만들면서 반전 운동의 확산을 재촉했다.

 

게다가 닉슨 개인의 정치성향은 비록 심히 반동적이었지만, 사회운동의 힘이 그에게 일련의 양보를 강제했다. 닉슨 아래서, 연방정부의 사회사업 예산이 실질적으로 늘었고, 소수자 권익을 위한 적극 행동 프로그램이 최초로 만들어졌으며, 낙태가 합법화했다. 또 (4년동안이었지만) 사형이 위헌이라고 선언됐다.

 

좌파는 이제 아주 분명한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조지 부시가 지지하는 모든 걸, 그리고 그가 하려는 모든 걸 반대한다. 그러나 부시의 재선은 1968년 닉슨의 당선처럼 게임이 끝난 걸 뜻하지 않는다. 또 이 나라의 국민들이 그저 우파이며 그것이 모두라는 의미도 아니다. 좌파는 존 케리와 민주당이 결코 할 수 없었던 일을 해야 한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태에 대한 진정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많은 여론조사는, 이 나람 사람들이 특히 자신들의 삶과 미래가 허약하게 노출되어 있으며 불안정하다고 느낀다는 걸 지속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은 해답을 찾고 있으며 비난할 상대를 찾고 있다. 그들이 전해 듣는 유일한 해법이 반동적인 것이라면 그들은 그 방향으로 갈 것이다.

 

그러나 좌파가 이라크 전쟁에 대한 점증하는 분노에 대해, 정체된 임금과 실업에 대해, 감당할 수 없는 의료보험과 인종 차별에 대해 말을 꺼낼 수 있다면, 우리는 사람들에게 진보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운동을 창출할 수 있다. 이 기획에는 우군들이 있으며, 가장 중요한 우군은 이라크의 저항과 현지에 파병된 군대 내부에서 커지고 있는 반감이다. 미국의 지배계급은 지금 심각한 모순에 직면해 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잊을 수 없다. 부시의 재선이 우리를 죽이게 되는 유일한 경우는, 우리가 의기소침해서 운동을 포기할 때뿐이다.

 
영어원문 읽기 번역: 신기섭
2004/11/09 15:14 2004/11/09 15:14
2 댓글
  1. kuffs 2004/11/10 00:38

    바쁘신데도 좋은 글 소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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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겨울장미 2004/11/10 02:46

    흑... 그럼 미디어참세상 칼럼 써 주세요. 몇 달째 '연중'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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