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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운동에 지구화 시대 국가의 의미는?

<진저> 1998년 7월호

원 제목 = `국가와 좌파'에 대한 여성운동가 쥬디 리빅 (Judy Rebick) 인터뷰

 

진저의 기획 인터뷰로 리오 파니치(Leo Panitch) 교수에 이은 것입니다. 이 여성은 캐나다 여성운동단체인 ‘여성 지위에 관한 전국 행동위원회(NAC)’의 의장을 지낸 적이 있는 인물입니다. 캐나다의 특수한 상황 이야기가 파니치 교수 인터뷰 때보다 더 많이 나와, 이해하기가 조금 어려운 인터뷰입니다. 파니치 교수의 생각과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을 눈여겨 볼만할 것 같아 소개합니다. 이 인터뷰 또한 이정훈님이 번역해주신 것을 제가 손봤습니다.


 

 

여성 지위에 관한 전국 행동위원회(NAC)의 전 의장 쥬디 리빅이 국가 안에서 그리고 국가에 대항해 형성되는 여성운동, 다른 사회운동과 연대를 바탕으로 한 여성운동의 미래에 대해 진저와 대화했다.

 

▲ 진저 : 국가에 대항하는 행동주의와 조직화는 지금에서는 10-20년전과 상당히 다른 것을 뜻합니다. 요즘은 단지 현상태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승리처럼 보입니다. 특히 캐나다 복지국가가 자신에 대한 공격을 스스로 주도하는 상황을 고려할 때 이 문제를 감당하려면 좌파가 어떻게 조직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리빅 : 나는 좌파가 1988년 자유무역 논쟁 때 덫에 걸렸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당시 상황의 그릇됨에 대해 말하지 않은 채 당시 상태를 옹호하기 시작했습니다. 확실하게 여성운동과 좌파 - 신민주당(NDP) 좌파 -는 현재 형태의 복지국가를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복지국가가 최우선이라는 환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유무역에 관한 논란 과정에서 우리는 "아무튼, 캐나다가 미국보다 낫고 우리나라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악화를 막아야만 한다"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1930년대 이래 우파쪽으로 기울고 있는 사민주의는 복지국가를 근본적으로 옹호하는 것을 자신의 존재 이유로 보는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좌파내 우파는 대안이 없는 곳에 있었고, 반면 좌파와 여성운동은 현상태를 유지한다는 덫에 걸렸습니다.

 

반면에 자유주의자들은 복지국가를 수호하길 포기했습니다. 복지국가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지지하는 자유주의적 부분은 지배계급안에 항상 존재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복지국가를 포기했을 때 그것을 -원한다면- 보호할 세력으로는 좌파만 남았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우리가 행동위원회에서 단순히 감축은 안된다는 것이 아니라 좀더 급진적인 해결책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지만 우리의 연합 상대방에 의해 압박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압박을 받은 것은, 그들이 우리에게 "하지마"라고 말해서가 아니라 자유무역 논란중에 매우 긍정적이고 그 이후에도 계속 그런 연합을 그들과 형성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탈퇴할 생각이 없는 각종 그룹이 참여한 이 연합에는 부정적인 면이 한가지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70년대에 여성운동은 적극 행동계획(affirmative action)을 위한 싸움을 원했지만, 노동조합은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여성운동은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사실, 스텔코(캐나다 최대 제철회사=옮긴이)가 여성 입사를 허용하도록 요구하는 싸움에 전미철강노조(미국, 캐나다 연합 노조단체=옮긴이)는 반대했습니다. 그래서 여성운동은 회사는 물론 노조를 상대로 싸움을 벌였습니다 - 정확하게 그랬습니다. 노조는 일단 수긍을 한 뒤에는 재빨리 동참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알다시피 한 그룹이 연합에서 탈퇴하거나 앞서 나가거나 때로는 연합에 적대적이 되는 것은 요즘은 시도하기 아주 어렵습니다. 우리 모두 공격을 받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행동위원회가 샬로트타운 합의(Charlottetown Accord) 토론에서 그렇게 했는데, 그것은 여성운동내에서 2년동안 토론한 바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행동위원회는 그 토론에서 초반부터 주도권을 쥐었습니다.

 

액스워디(Axworthy) 사회정책 검토 과정에서 우리가 할 수 있었지만 못한 것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제안은 생활비와 보편적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수준의 연간 수입을 보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빈곤 산업(poverty industry)을 -가난한 이들이 그렇게 부르죠- 폐지하라는 거죠. 국가가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을 위해 매년 4만~6만달러의 임금을 중산층에게 지불하는 이 전체 체계를 없애라는 것입니다. 그 체계를 없애고 돈이 직접적으로 가난한 이의 주머니로 갈 수 있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실업보험 문제를 제기하게 됩니다. 점차적으로 실업보험 체계를 폐지하고 단기 실업자와 장기 실업자의 구분을 없애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소수 실업자만 실업보험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노동운동은 아마도 기꺼이 그 문제를 검토하려고 할 겁니다. 그러나 3,4년 전만해도 그들은 그렇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행동위원회는 이러한 생각에 거리를 둬야했을 겁니다. 그런데, NAPO(National Association of Professional Organizers로 추정 곧 전국 직업조직자 협회, 바로 밑 이 단체 홈페이지의 자체 소개를 참고하세요.=옮긴이)도 연간 수입 보장이 우파의 관념이라고 생각했기에 반대했습니다. 그들은 복지산업을 좋아하지 않지만 우파가 우리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이 점에서 나는 노동시간 단축과 연간수입 보장을 결합시켜 주장하는 것이 수입보장과 완전고용에 관해 이야기하는 새로운 방법이 될거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은 마찬가지입니다. 그 때 나는 이 주장을 폈지만, 당시 행동위원회의 아주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더 진전시키지 못했습니다.

(** 전국전문조직자협회는 조직 상담자, 연설가, 교육훈련가, 저자, 조직화 상품 생산자 등을 회원으로 하는 비영리 전문직 협회이다. NAPO는 전세계에 회원을 두고 있는 조직가들의, 조직가들에 의한, 조직가들을 위한 유일한 전국적 협회이다.=이 설명으로도 어떤 단체인지 잘 모르겠군요.)

 

자신을 방어-유지-하는 데 보낸 이 긴 기간동안의 결과로 좌파에 영향을 끼쳐온 정치적 보수주의는 깨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깨지는 방식은 논쟁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서고 새로운 전략과 전술을 개발할 때는 논쟁이 생깁니다. 사람들은 지금 논쟁을 두려워합니다. 우리는 단지 우리가 동의하는 것에 대해서만 말합니다.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 것에 대해선 침묵합니다. 음, 그것의 핵심은 무엇일까? 내가 말하는 것은 공손함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성과도 주지 못합니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나는지는 이해할만 하지만 벗어나야 합니다. 이런 행동이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좀더 밀어붙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파의 추락 (Decline of the right)

내가 보기에 또 다른 문제는, 우리가 우파의 강력한 힘을 지금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완전히 틀린 것입니다. 우리가 현재 말하는 것처럼 그들은 이미 퇴락하고 있습니다. 삼년전이 그들에겐 전성기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직도 약속을 지킬 수 없습니다! 내가 뜻하는 것은 그들의 커다란 약점에 맞서자는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합니다. 그들은 적자를 줄였습니다. 그들은 사회복지제도를 처참히 뭉갰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좀더 나졌다고 느낄까요? 삶이 나아가고 있다고 느낄까요?

 

우리는 그들의 힘을 과대평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낙태 투쟁을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나에게 "쥬디, 당신은 절대 이길 수 없어. 정부, 경찰, 법정 모두 당신에게 반대하고 있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항상 불가능한 것에 대해 적극적입니다. 나는 지금이 더 나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통제 밖에 있는 국제적 힘이 주도하는 광범하게 퍼진 이념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국가적 수준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대안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믿지 않더라도 그것의 영향을 받습니다.

 

우리의 기가 꺾였다고(demoralized) 생각합니다. 그래서 당신이 연간수입(annual income)이라는 아이디어를 소개하기 시작할 때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이것은 실제로 반대 제안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한 메커니즘일 뿐입니다.

 

적자는 실재했다. (The deficit was real)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국가의 재정위기가 있었던 것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적자는 실재했습니다; 매워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좌파에게 또 하나의 문제점입니다. 일종의 음모이론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1달러당 40센트를 은행에 줬다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전망은 뭔가? 이 적자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내가 생각하기에 좌파의 반응은 아주 아주 느렸습니다. 당신이 아는 것처럼, 적자가 문제가 아니라고 우리가 말했을 때 그것은 설득력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문제라는 걸 알았습니다. 우파에 관해 그동안 토론하면서 내가 배운 것은 우리의 힘은 대안이 될 수 있는 가치를 제안하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우파가 할 수 있었던 것 중 하나는 좌파를 낭비꾼(big spender)으로 묘사하는 것입니다. 우파는 자신들을 재정적으로 책임을 지며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좌파는 큰 낭비꾼이며 큰 정부를 지향한다고 규정합니다. 음, 그것은 내가 생각하는 좌파 - 심지어는 사민주의적 좌파까지도 -는 아닙니다. 사민주의적 정부는 이 나라에서 가장 재정적으로 책임감 있는 정부입니다. 그것은 우파냐 좌파냐와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파가 그렇게 하는 것을 그냥 뒀습니다. 그들에게 그러한 식으로 논란을 규정하게 했고, 그것은 우리에게 약한 기반이었습니다. 누가 큰 정부를 원하겠습니까? 나는 큰 정부를 원하지 않습니다.

 

▲ 진저 : 국가 외부에서 대안적 조직화를 추구하는 그룹들이 제안하는 역제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를 들면, 많은 그룹은 지역사회개발과 식품이나 다른 생필품의 생산과 유통의 대안적 형태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이 효과적인 전략입니까?

 

▲ 리빅 : 이런 것들은 좋은 제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조직화 방식이 나올 수 있는 바탕입니다. 그러나 두 가지를 동시에 해야 합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각 사람이 각각 다른 부분을 맡는다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권력으로부터 등을 돌리면 당신은 매우 작은 소수만을 위한 대안으로 끝내야 하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대응 주장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내 말 뜻은 이것이 60년대 히피족과 급진주의자들 사이에 벌어진 토론같다는 것입니다. 히피족은 중산층 젊은이들의 작은 그룹을 위한 것에 불과한 대안 문화와 사회를 만들려 했습니다. 작은 그룹만을 위한 대안을 만들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정부가 많은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국가의 힘을 다루지 않고 그 힘을 제한하려고 싸우지도 않고, 적어도 가끔은 국가가 대다수 사람의 이익을 위해 활동한다고 주장하지도 않으면; 이런 수준에서 싸움을 벌이지 않으면 그 수준에서는 어떤 목소리도 내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아무도 당신이 말하는 것을 들으려하지 않기 때문에 당신은 어떤 운동도 조직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점조직식 일대일 운동을 만드는 것입니다. 파시스트 국가에서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권위주의 독재국가에서도 지하조직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제 생각에는 다수에게 접근하는 통로가 있으며 그것을 이용해야 합니다. 권력에게 진실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진보적인 세력은 국가적 규모의 논쟁에 참여해야 합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라져 버리게 됩니다.

 

▲ 진저 : 좌파에게 가장 큰 도전 중 하나는 좀더 확장된 연합을 만들기 위해 운동세력 사이를 넘나드는 것입니다. 노동운동과 함께 반 빈곤(anti-poverty) 활동가들을 연결하거나 또는 반인종차별주의 활동을 페미니스트 조직의 활동과 통합시키는 등의 활동을 하면서 말입니다. 개별 노조의 일부에서 그러한 노력이 시도됐습니다. 예를 들면, 가난 반대 온타리오 연합(Ontario Coalition Against Poverty) 또는 NAPO(전국 직업조직자 협회?)와 연대를 형성한 것입니다. 현장 전반의 관점에서 좀더 많은 세력을 대표하는 연합을 바탕으로 한 운동을 구축하려 했던 당신의 경험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 리빅 : 음, 이것은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조합이 움직이면서 강력한 적대자가 됐기 때문에 136조 법률을 철회하려는 해리스(Harris) 정부가 있는 곳 곧 온타리오에서 당신은 지금 그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반대 편에 온타리오의 경우와 같은 힘이 없기 때문에 복지정책 변화를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60년대 또는 70년대에 지녔던 것과 같은 것이 없으면 사람들을 조직화하기는 매우 힘듭니다. 복지제도의 축소가 노동법률의 변화만큼 자신들에게 중요하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게 하기는 매우 힘듭니다. 그들은 아마도 수표를 보내거나 노조 총회에서 결의를 통과시킬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실제로 거리로 뛰쳐나가는 것 또는 파업하겠다고 위협하는 것 - 그것은 요즘 같은 시대에 생길 수 있는 연대의 수준으로는 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가장 약한 사람들은 나가 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은 이미 일어났습니다.

 

해리스가 처음 했던 두가지가 무엇입니까? 복지 예산을 21% 줄이고 평등고용법을(the employment equity legislation) 취소시킨 것입니다. 가장 주변부에 있는 집단이 소수 민족과 가난한 이들입니다. 물론 연합체에는 더 많은 집단이 있습니다. 여성운동 이외의 경우 소수 민족 또는 가난한 이들이 많이 참여하는 경우를 보기 어렵습니다. 토론토 메가시티 싸움에서는(Toronto Megacity fight) 거의 못봤습니다. - 대부분 백인이었죠. 노조가 136조 법률에 대항해 싸웠던 것처럼 이 새로운 142조 법률에 대해서도 싸워야 한다고 노동운동 내부에서 주장해야 합니다. - 그러나 이것은 매우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정말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의 하나가 이런 연대입니다.

 

원문: www.web.net/~beng/ginger

번역: 이정훈

(윤병삼님께서 위의 전국전문조직자협회(NAPO)의 자체 소개문을 직접 번역해주시고 몇가지 잘못된 번역을 꼼꼼하게 지적해주셔서 내용을 고쳤습니다.)

2004/07/15 16:22 2004/07/15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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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화의 언어

피터 마쿠스(Peter Marcuse)

<먼슬리 리뷰> 2000년 7/8월호

원 제목 = (The Language of Globalization)

 

컬럼비아대학 도시계획학과 교수가 쓴 글로, 지구화 논의에 주로 등장하는 언어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는 지구화라는 말은 개념이 모호하며, 이런 모호함 때문에 쟁점이 은폐된다고 지적합니다. '국가' '인적 자본' '통치' '자유시장' 등등의 용어 사용도 문제삼고 있습니다. 특히 그가 강조하는 것은, 지구화 (또는 세계화)의 물적 기반으로 여겨지는 정보산업 기술의 진보는, 지금 나타나고 있는 지구화 곧 '경제권력의 지구적 집중'과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술의 진보를 다르게 이용했다면 다른 지구화 (대안적 지구화)가 가능했고 지금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새로운 국제주의를 위해서는 지구화 찬양자들의 언어 분석과 언어의 명확화가 시급하다고 말합니다.


 

 

지구화의 언어는 관심을 뚜렷하게 기울일 가치가 있다. 지구화라는 단어부터 보자. 이 단어가 쓰이는 대부분의 경우는 개념이 없다. 예컨데 1970년 이후 그 전과 달라진 것 같은 것 모두를 단순히 나열한 목록이다. 달라진 것이란, 정보기술의 진보일 수도, 항공 수송의 이용 확대일 수도, 외환 투기일 수도, 국가간 자본 흐름의 확대일 수도 있다. 또는 문화의 디즈니화거나 대규모 판촉활동이거나, 지구 온난화거나, 유전공학이거나. 아니면 다국적 기업의 힘 또는 노동의 새로운 국제 분할 또는 노동의 국제간 이동 또는 개별 국가의 권한 축소 또는 포스트모더니즘 또는 포스트포드주의 등등. 문제는 단어의 무분별한 사용 문제 정도가 아니라는 데 있다. 지적인 면에서 보면, 용어의 이런 흐리멍탕한 사용은 원인을 결과와 분리하고 누가 누구에게 어떤 일을 벌여서 무슨 결과를 유발했는지를 분석하려는 노력을 흐뜨린다. 정치적인 면에서 보면, 이 용어를 모호한 상태로 방치하고 이 용어가 스스로 생명이 있는 어떤 실체로 전환하도록 트릿하게 허용해 이 용어가 힘을 얻게 하며, 사람의 의지에서 벗어난 피할 수 없고 저항할 수 없는 어떤 존재로 물신화하게 된다. 용어사용의 투명성 결여는 또한 지구화에 대한 논의의 다른 요소들에도 분석적이고 정치적인 결론을 내기 어렵게 만든다. 나는 여기서 문제가 되는 영역을 개괄하고 중요한 몇가지 차별화를 제안할 것이다.

 

먼저 지구화 자체의 개념 문제. 이 글에서 다시 지구화는 해 아래 새로울 것이 없는 것이라고 반복할 필요는 없겠지만, 지구화가 자본주의의 특정한 한 형태이며 자본주의적 관계의 (지리적인) 넓이와 깊이를 (나날이 인간 삶의 여러 측면에 파고듦으로써) 확장하는 것이라는 지적만큼은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1970년 이후 자본주의적 관계의 발전에는 서로 구별되는 두 측면이 있다. 보통 지구화라는 규정으로 뭉뚱그려지는 이 두 측면은, 기술의 발전과 권력집중의 심화다. 기술의 진보를 경제권력의 지구적 집중과 분리시키고 이 둘의 조합이 어떻게 계급 관계를 바꿨는지를 살피는 것은, 분석을 위해서나 정치적 전략을 위해서나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기술의 진보와 경제권력의 집중화, 이 두가지의 결합은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정보기술 진보로 가능해진 컴퓨터화와 통신 속도의 증가, 대륙을 넓나들 수 있는 중앙의 통제 범위 확장, (여객 및 화물용) 교통수단의 속도 증가와 효율성 향상, 생산 유연화의 촉진, 일상 업무의 자동화,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지금 목격하고 있는 경제 권력 집중화의 실질적인 심화에 필수적인 요소들이다. 그러나 이런 기술의 진보는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이용될 수도 있었다. (기술의 의도했던 용도가 달랐다면 이용방식 또한 상당히 다를 수 있었겠지만.) 기술 진보는 일정한 양의 재화와 용역을 힘 덜 들이고 생산하거나, 일정한 노력으로 더 많은 양을 생산하는 것을 의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이 이런 식으로 풀리지 않고 있다. 기술이 이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권력을 쥔 자들이 자신들의 힘을 넓히고 모으는 쪽으로 기술을 이끌고 활용했기 때문이다. 기술은 계급간 힘의 균형을 바꾸는 데 이용됐다. 관심을 기울일 부분은 이 부분이지 기술 자체가 아니다.

 

기술의 지구화와 권력의 지구화를 구별하는 것은 단지 분석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이는 "두가지가 분리됐다면 어떤 가능성이 있었을까?" 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우리는 현재 기술의 지구화와 권력의 지구화의 결합을, 다른(대안적) 지구화 (alternative globalization)의 가능성을 강조할 수 있는 용어 곧 현존하는 지구화 (really existing globalization)라고 불러야 한다. 현존하는 지구화의 악영향를 자유주의적 전망에서 반대하는 이들 뿐 아니라 좌파적 전망에서 반대하는 이들도 이에 대한 적절한 대응 문제에 관해서는 분열되어 있다. 세계무역기구에 대항한 시애틀의 슬로건 곧 "고칠 것인가 내칠 것인가 (fix it or nix it)", 지난 4월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에 대항한 워싱턴 시위에서 제시된 슬로건 곧 "줄일 것인가 죽일 것인가 (shrink it or sink it)", 또 우리가 (협상) 탁자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기를 원하는가, 다른 탁자를 원하는가 아니면 탁자 자체를 원하지 않는가에 관한 의문, 이 모든 것은 목표에 대한 상반되는 감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문제는 실로 까다롭다. 그러나 적어도 다른 지구화를 생각할 수 있다는 깨달음은 목표에 대한 논쟁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지구화를 현존하는 지구화라고 부르는 것은, 가능성을 더 넓게 열어놓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구화에 대한 개별국가의 통제력 약화 또는 소멸에 대한 잦은 언급 또한 개념적, 언어적 명확성이 필요하다. 힘없는 국가라는 신화는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한 지적인 분석을 모호하게 하는 개념이다. 자본주의 체제가 국제적으로 확산되면서, 산업화 세계의 자본주의 체제가 제대로 작동하게 만드는 국가의 행위는 중요성이 늘고 있지 줄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각국이 자본 또는 재화의 움직임을 통제하지 않는다면,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국가권력의 포기이지 권력의 결여가 아니라는 것이다. 국제 산업계의 이권이 세계무역기구를 중요하게 보는 점, 관세협정, 정부의 협정에 포함된 권리 이행과 정부의 지적 재산권 보호 등은, 개별 국가의 중요성 증가가 아니라면 적어도 중요성 지속을 보여준다.

 

게다가, 물신화의 강력한 요소가 "국가(state)"라는 용어의 사용에 아주 두드러진 정치적 편향을 띤 채 자주 스며들고 있다. 이는 균질적인 국가의 오류 (fallacy of the homogenous state)라고 부를만한데, "경쟁력있는 국가" (또는 내 전공 분야에서라면 "도시들의 경쟁력"에 대한 지속적인 요구) 또는 북쪽이나 남쪽 "국가들"의 이익 또는 손해 등을 운운하는 정식화에서 나타난다. 국가들과 도시들은 그 안에서도 서로 나뉘어있다. 한 국가의 어떤 단체 또는 계급 또는 특정의 이해에 유리한 것은 다른 집단에는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정부는 일정한 자율성을 분명히 갖고 있으며, 이런 제한된 의미에서 국가 또는 도시는 특정 정치지도자들과 관료들 또는 좀더 폭넓게 보면 정권의 특정한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행위자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더 정확하게 말하면, 정부는 다양한 이해에 반응하며 특정한 이해가 정부의 행위 대부분을 규칙적으로 지배한다. "국가적 이익" 운운은 보통 어떤 특정한 이해를 은폐한다. 정부가 그 안에 사는 모든 사람을 대표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현실을 모호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국제 관계에 대한 "미국"의 지배를 언급하는 것에는 - 한가지 면에서는 중요하지만 - 마찬가지로 미국 정책을 지배하는 사람들과 이 정책 형성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을 명확히 구별하는 것이 요구된다. 이는 다른 나라에도 마찬가지다. 이 점은 남쪽 국가에서 온 개인들이 자국 정부와는 아주 다른 태도를 보인 시애틀의 몇몇 논의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국가와 국민의 구별이, 국가의 정치적이고 공식적인 행위의 측면에서 중요하다면 경제적 대표성의 측면에서는 훨씬 더 중요하다. 국제 경제 협상에서 국가를 대표하는 이들은 그 국가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균질적으로 대표하지 않는다. 여기서 균질성은 협상자리의 이해 관계의 특성으로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말하자면 자신들의 계급적 성격과 유사한 부문별 밑바탕에 따라 갈라지는 산업 및 금융적 이해관계의 집단인 것이다. 핵심적인 분리는 국가간이 아니라 계급간 분리이다. 균질성은 한 국가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계급 내부에 있다는 것이다.

 

지구화 논의에 등장하는 다른 언어는, 지구화 지지자들이 퍼뜨리는 것이긴 하지만, 종종 비판자들 사이에서도 쓰이면서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모호하게 만든다. 예컨데 "인적 자본(Human capital)"은 뜻을 꽈놓은 것이다. 이는 "노동 기술(또는 기능)(labor skills)"이라고 부르면 문맥에 적합한 것이다. "통치(Governance)"는 작은 정부의 완곡표현이며 이렇게 이해해야 마땅하다. "자유(free)" 시장은 무료 공교육 경우처럼 아무런 댓가가 없는 일은 그물다. 정확한 용어는 "사적 시장(private markets)"이며, 이 사적 시장은 사람의 자유 대부분을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제한한다. "개혁(Reform)"은 물론 언론들이 쓸 때는 사유화를 뜻한다. 무분별하게 쓰이는 "생산자 서비스(producer services)"는 "생산자"의 사회적 의미를 배제시킨다. 증시보고서 인쇄는 "생산자 서비스"라고 불러선 안된다. 인쇄자는 기계를 작동시키는 노동자지 "서비스 제공자(service providers)"가 아니다. 생산자라는 말이 어떤 실질적인 내용을 담아야 한다면, 주식중계인은 생산자라고 부르면 안된다.

 

이런 문제들은 단지 용어의 문제가 아니다. 현존하는 지구화 때문에 생기는 병폐에 맞서려고 하는 다양한 조직 사이에 뚜렷한 공감대가 아직 형성되지는 못했다. 가장 온건한 목표는 단순히 참여와 투명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보다 더 자유주의적인 관점에서는 지구적 기구들의 구조 개편과 규제를 요구한다. 급진적인 관점에는 일국 차원과 국제적 차원에서 현재의 지구적 기구들을 완전히 없애거나 정치, 경제적인 관계가 전혀 다른 체계로 대체하라는 요구가 들어 있다. 시애틀 이후 논의는, 미국 의회, 무역대표부, 국제연합의 미국 대표부 또는 다양한 국제기구와 단체의 미국 대표에게 특정한 행동을 요구하는 것 같은 국가 차원의 조직적 요구로 집약되지 못하고 있다. 많은 단체와 개인이 목표와 정책과 행동요구를 정식화하는 어려운 일에 매달려 애쓰고 있다. 특정한 관점에 입각한 요구가 꼭 다른 관점의 요구와 충돌하는 것은 아니다. 목표의 공통점과 차이, 전략과 전술의 공통점과 차이는 더 깊은 생각과 명확화를 요구하고 있다. 용어의 모호함은 단기적으로 연합전선 구축을 촉진하지만, 더 강력하고 장기적인 협력은 서로에 대한 완전한 이해에 기반을 두는 법이다. 기술의 지구화와 권력의 집중화의 차이를 유념하고, 대안의 지구화를 계속 논의 대상으로 유지하고, 힘없는 국가라는 신화를 버리고 균질적인 국가의 오류를 피하고 지구화의 오웰적 언어(Orwellian language)의 덫을 조심하는 것은, 장기적인 목표와 다음의 행동단계에 대한 공통된 합의를 끌어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 피터 마쿠스는 컬럼피아대학 건축, 계획, 보존 단과대학의 도시계획학과에서 가르치고 있다. 그는 "지구화하는 도시들: 새로운 공간적 질서?"(옥스포드: 블랙웰, 2000)의 공동 저자이다.

* Peter Marcuse teaches in the Division of Urban Planning in the School of Architecture, Planning, and Preservation at Columbia University. He is co-editor of Globalizing Cities: A New Spatial Order? (Oxford: Blackwell, 2000)

 

 

원문: www.monthlyreview.org/700marc.htm

번역: 신기섭

2004/07/15 16:09 2004/07/15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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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새로운 파시스트들

유리 프라사드(Yuri Prasad)

<소셜리스트 리뷰> 2001년 5월호

원 제목 = (EUROPE'S NEW FASCISTS)

 

2001년 5월 당시 이탈리아 선거에서 극우 파시스트들이 승리할 조짐을 보이던 때,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에서 활동하는 파시스트 정당들의 전략을 분석했습니다. 진보세력은 유럽의 극우파의 파시스트적 본질을 폭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류석원님께서 번역해주신 것입니다.


 

 

이탈리아 선거에서 극우파가 승리할 조짐이 어렴풋이 보이고 있다. 유리 프라사드(Yuri Prasad)는 유럽에서의 파시즘의 위험성과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는 그들의 문제점들에 주목하고 있다.

 

'민중의 경제 - 예!, 세계화 - 아니오!' 이것은 시애틀이나 프라하의 시위에서나 나왔을법한 슬로건이건만 그렇지 않다. 그것들은 독일의 민족민주당(National Democratic Party, NPD)의 강령에 있는 몇 가지 슬로건들이다. 민족민주당은 고양되고 있는 정치적 양극화와 반자본가적 정서에 호응하려는 파시스트 정당이다. 앞의 것에는 이민자들을 기생충들로 공격하고, 뒤의 것에는 기업주들을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존재로 각각 공격하고 있다. 민족민주당의 변호사이자 '이론가'인 호르스트 말러(Horst Mahler)는 인도 출신의 정보기술 전문가들을 고용하려는 정부에 대한 자기 당의 반대를 언급하면서, "사적 이윤의 카르텔은 국가를 통제하면서 인민들을 배반해왔다"고 말한다. 사장들은 독일인들을 자르고 ‘외국인들을’ 쓰면서 부를 불리고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민족민주당과 더불어, 독일민족당(German People's Union, DVU)과 공화당 (Republikaner Party)과 같은 다른 극우정당들도 '4백만의 이민자들을 돌려보내고, 4백만명에게 실업수당을 박탈하라'라는 단순한 이민자 반대 주장을 펴고 있다. 이는 히틀러 나치당의 주장과 오싹할 정도로 유사한 슬로건이다.

 

현재 파시스트들의 성장 계획은 두가지 방향의 접근을 포함하고 있다. 첫째, 파시스트들은 밑 바닥에 있는 절망적인 사람들의 대부분과 연계해야 한다. 미래의 기회가 보이지 않는 십대들과 장기 실업자들이다. 이들에게 파시스트들은 그들의 거친 얼굴을 내민다. 이민자들, 소수자들, 그리고 집 없는 이들에 대한 공격을 조직하는 이 거리의 깡패들은 자신들이 '민족해방구'라고 부르는 것을 창출하려 시도하며, 힘 없는 자들에게 권력의식을 제공한다. 독일에서 지난해동안 '극우파의 공격'은 1만5951건으로 59%나 상승했으며, 이는 2차대전 이후 최고 수준에 달하는 것이었다. 최악의 공격들 중에는 동부 도시 데사우(Dessau)의 한 공원에서 스킨헤드족들이 한 모잠비크인 계약직 노동자를 구타하여 살해한 사건과, 네 명의 자칭 파시스트들이 집 없는 사람을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둘째, 이 나치들은 민주적 과정에서 그 '체통'을 지키려고 한다. 선거를 통해 그들은 대중운동을 이룰 수 있는 대중적 지지의 기반을 세우고자 한다. 그들은 경제 위기로 도출된 불안과 두려움을 이용하고, 중소 기업가와 환멸을 느낀 '전문가'들을 목표로 삼아 그들의 냉소주의와 사소한 편견들을 동원하려고 한다.

 

독일에서는 이러한 전략이 역효과를 불러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극우파의 성장에 중요한 걸림돌 하나는, 그들이 1930년대 나치의 재판임이 쉽게 드러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번영을 누리는 뒤셀도르프(Dusseldorf)에서 있었던 유대교회 폭발사고는 민족민주당을 금지시키라는 대중적 요구로 발전한 분노의 물결을 불러일으켰다. 수백명의 나치들을 수천명의 반나치들이 압도하면서 신문에는 나치 반대 행진과 집회가 정기적으로 보도되고 있다. 인종주의 공격에 대해 광범한 격분은 곧 '나치들'이 '체통'이라는 탈을 잃어버리고 최근의 선거에서 나쁜 결과를 얻는 것으로 귀결되게 했다. 올해 3월에 바덴-뷔르템베르크(Baden-Wurttemberg)에서 있었던 지방선거에서, 공화당은 지방의회에 의석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 5% 득표에 실패했다.

 

구 동독 지역에서의 '나치' 지지 투표는 훨씬 늘었으며 폭력은 더 일상화하고 있다. 브란덴부르크에서 실시한 최근 설문조사에서, 젊은 남성의 76%는 그들이 '유태인 친구를 사귀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고 답했다. 불행한 사실은, '나치들'이 더 고립될수록 그들은 혼란스러워진 자신들의 지지자들한테 '체통'보다는 '직접 행동'에 나서도록 충동질한다는 점이다. 반면에, 주류 우파인 기독민주당(CDU)은 '독일인의 자부심'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캠페인을 벌임으로써, 인종주의자들의 표를 끌어오려는 시도를 해오고 있다.

 

손 더럽히기 (Gettings their hands dirty)

오스트리아에서는 '나치들'이 체통을 얻을 통로를 찾은 것으로 보여졌다. 1999년 총선에서 외르크 하이더(Joerg Haider)의 자유당(Freedom Party, FPO)은 연정에 참여하기 충분한 27%의 득표율을 획득 하였다. 하이더는 스스로를 철저히 근대적인 정치인으로 표현했으나, 자신을 파시스트 우파와 연결짓는 발언을 수없이 했다. 그의 당은 최근 비엔나 지방선거에서 이민 반대를 정강으로 채택하고 선거에 임했다.

 

자유당은 2차대전 종전 이후 오스트리아를 통치했던 두 당이 오스트리아 국민들의 이익에 반하여 행동하는 것을 비난하고 공격함으로써 그 명성을 얻게 되었다. 자유당은 늘 스스로 깨끗한 두 손을 갖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이제 그 당의 정책들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자유당내 지방경찰청장과 자유당 반대자들의 주소 목록과 관련된 정치적 부패 스캔들은, 점잖은 척하는 그들의 허울을 없애는 데 일조했다. 반 유태인 발언과 이민자들에 대한 언어적 공격들이 주기적으로 나타나면서, 아무도 자유당의 인종주의를 의심하지 않게 됐다. 지난달 하이더는 오스트리아의 유태인 공동체 지도자를 '불결하다'고 비난했다. 이것은 왕성한 반파시스트 운동을 불러왔다. 그리고 경제 위기에 대처하는 연립정부의 방법은 세금을 올리면서도 복지제도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매우 나쁜 평판을 가져왔고, 자유당이 '보통의 오스트리아 사람'을 옹호한다는 주장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비엔나 선거에서 자유당 지지도는 20%를 약간 웃돌 정도로 크게 떨어졌고, 하이더의 인종주의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한 녹색당의 지지도는 12%가 넘을 만큼 상승했다.

 

1995년에 장 마리 르 펜(Jean-Marie Le Pen)이 이끄는 프랑스 국민전선(Front National, FN)은 유럽 극우파 최고의 희망이었다. 지난번, 프랑스 유권자들이 3만명 이상 거주 지역의 시장들을 선출했을 때, 국민전선은 보결선거에서 차지한 한 곳을 포함해 지중해 인근 심장부의 세 시청을 완전히 장악함으로써 약진했다. (당선된 세 도시는 인구 20만명의 남부 군항 툴롱과 인구 10만의 오랑쥬, 마리냥 등 세 곳이었다. 당시까지 국민전선은 단 한번도 4천명 이상 거주하는 지역에서 승리한 적이 없었다. - 한국일보 1995년 6월 20일치 10면 : 옮긴이). 많은 해설가들은 주류 우파 정당들과 지역내 연합을 이룬 국민전선의 능력은, 이제 그들이 영구적인 정치체가 되었음을 뜻한다고 지적하면서 낙담하였다. 그러나 그 해 12월에 폭발한 거대한 물결의 노동자 투쟁과 그 이후에 재현된 반인종주의 운동은 국민전선의 희망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르 펜이 공개적으로 파업 물결을 공격했던 반면에, 여론조사는 국민전선에 투표했던 이들 다수가 파업을 지지하였음을 보여주었다. 점차, 국민전선의 집회들은 대규모 반대에 직면하게 됐고, 국민들은 명확히 좌파 쪽으로 기울어졌다. 전진해 나가던 것이 멈춰지게 되자, 국민전선은 둘로 쪼개어지게 되었다. 르 펜의 야심만만한 오른팔이었던 브뤼노 메그레(Bruno Megret)는 공화국국민운동(National Republican Mo vement, MNR)이라는 새로운 정당을 만들었는데, 이 당 역시 국민전선처럼 공개적으로는 파시즘과 거리를 두려 애쓰고 있다. 1999년 선거에서 두 당 중 어느 당도 6% 이상 득표하지 못했다.

 

최근 지방선거에서 파시스트 우파는 1990년대에 승리했던 도시들을 계속 휘하에 둘 수 있었지 만, 그 존재는 엄청나게 줄었다. 1995년에 국민전선은 3만명 이상이 거주하는 지역 중 185개에서 2위 이내에 들었다. 지난달 현재, 국민전선과 공화국국민운동은 205개가 넘는 같은 규모의 지역구에서 모두 합쳐 고작 41개 지역에서만 2위 이내에 들어 있다. 오랑쥬(Orange)에서는, 국민전선의 시장이 선거에 나서면서 '오랑쥬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은 국민전선과는 관계없는 일이다. 프랑스 어디에서나 사람들은 정치에 대해 깊은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 이것이 내가 정당의 공천후보자가 아닌, 개인 자격으로 출마한 이유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달에는 이탈리아에서 우파의 선거연합이 이뤄질 것으로 보여진다. 새처(Thatcher)를 충 실히 따르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Silvio Berlusconi)가 이끄는 자유의 집(Pole of Liberty)은 1994년에 이탈리아사회운동(Italian Social Movement, MSI)에서 그 이름을 바꾼 국민동맹(National Alliance, NA)과, 북부리그(Northern League)의 구성원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 두 당은 각료 자리를 얻게 될 것이다. 이탈리아사회운동과 이를 뒤이은 국민동맹은 무솔리니의 파시스트당(Fascist Party)의 직접적인 계승자들이다 . 당명을 바꾼 것은 전술상의 변화를 의미했다. 국민동맹의 지도자이자 부총리에 오를 것으로 예측되는 지안프랑코 피니(Gianfranco Fini)는 그의 당을 '후기 파시스트'라고 묘사하고 있고, 이탈리아사회운동이 1993년 지방선거에서 엄청난 약진을 한 이후 '체면 차리기로 방향 선회'를 결정했다.

 

국민동맹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파시스트 과거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보여주는 데 골몰해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단절 작업이 지역 단위에서 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을 것이다. 국민동맹의 지역 책임자인 마리오 드 크리스토파로(Mario De Cristofaro)는 파시스트들이 권력을 잡은 1922년의 슬로건들을 적어서 마무리한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 달력을 올해 만들어서 당원들을 기쁘게 했다.

 

남부 이탈리아인들이 북부의 노동력이 부족한 지역으로 이주하는 걸 막고자 하는 공개적 인종주의, 지역주의 정당인 '북부 리그'는 정부 내의 파트너가 될 것이다. 그들은 롬바르디아(Lombardy)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내세운 노골적인 인종주의를 그들의 반국가적 수사와 결합해왔다. 베를루스코니의 거대한 개인 재산과 미디어 제국의 통제에도 이 정부가 불안정해질 것이라고 의심할 만한 이유들이 있다.

 

선전포고 (Declaration of war)

우익에 귀기울이는 청중을 형성하는 데 일조한 경제 위기는 관직에 있는 우익 자신들을 약화시 키기도 한다. 베를루스코니는 선거 포스터들에서 그 자신을 '일하는 사람들의 대통령'으로 그렸으나, 그의 정책들은 이탈리아 소규모 경영자의 정책이나 다름없다. 그의 10가지 계율은 실질적인 세금 감소, 고용주의 해고 방지 조처 완화, 사회복지 비용 감소 등을 포함했다. - 간단히 말해서, 만약 이것이 이행된다면, 노동자에 대한 선전포고이며 대규모 산업분쟁을 유발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

 

유럽 어디에서나 파시스트 우파는 주요 딜레마들에 직면하고 있다. 그들이 선거에서 급격한 지지를 받을 때 그들은 체통을 지키고 주류 우파들과 동맹하는 노선을 추구하도록 하는 압력을 느끼고 있다. 이는 연정에 참여할 가능성을 열어 두는 반면에, 그들 자신의 계급질서 내 긴장을 조성시킨다. 심지어 제의 받을 연정체가 없을 때에라도, 체통의 문제는 악당들과 스킨헤드들에 대해 고삐를 죄는 대가를 수반한다. 유럽에서 극우파의 핵심 성공 요소의 하나는 사회로부터 가장 이반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그들의 능력이었다. 계속 그렇게 하려면, 그들은 그들의 도시 깡패들과 인종주의자들의 공격을 지속시켜야 하고, 거리를 장악해 국가권력을 쥐자는 수사들을 유지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들은 정치정당으로 합법화하려는 자신들의 주장을 훼손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파시스트 정당들이 연정에 참여하게 될 때, 그들은 (예산) 감축 및 노동자들과 가난한 이들에 손해를 끼치는 과정에 개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런 공세는 자신들에게 종종 환멸을 느끼는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이다.

 

파시스트들이 시도한 모든 돌파구는 새롭게 제기되는 저항과 만나왔다. 새로운 운동들은, '체 통을 지키는' 극우가 파시스트임을 폭로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위협은, 파시스트 정당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과거를 버리거나, 자신들의 반대자들을 물리적으로 공격하든가, 아니면 이 두가지를 모두 시도하는 방향으로 그들을 계속 압박한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약점들을 이용하고자 한다면, 반파시스트 운동은 '후기 파시스트' 정당들의 주장들을 꿰뚫어보아야 한다. 프랑스에서는 1980년대 동안, 크고 힘찬 반인종주의 운동이 존재해왔다. 그 운동은 국민전선의 인종주의를 반대했지만, 그것을 파시스트 정당으로 규정하는 데는 실패했다. 사실상, 이것은 국민전선이 집회를 열고 행진할 수 있게 했으며, 이는 그 당이 열망하는 체통을 부여하는 데 일조했다. 그것은 또한 후퇴를 하긴 했지만 국민전선이 여전히 존재하면서, 성장을 위한 더 적당한 상황을 기다릴 수 있게 만든다.

 

우리가 이 전쟁을 몇 번이고 치러야한다는 사실은, 유럽에서 경제적, 사회적 위기의 깊이와 파시스트 조직의 회복력 및 그들의 재창출 능력 모두에 대한 유언임을 의미한다.

 

 

원문: www.socrev1text.abelgratis.co.uk/pubs/sr252/prasad.htm

번역: 류석원

2004/07/15 16:05 2004/07/15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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