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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사태 정리

나중에 기억하기 위해서 내 마음대로 정리해둔다.

 

1. 사태의 핵심은 “누가 범인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당내 비례대표 선출을 위한 당원 투표에서 부정이 저질러졌고 선거 관리가 부실했다”는 것이다. 왈가왈부 말이 많은데 눈 있는 사람은 그냥 진상보고서 보면 된다. 별로 복잡할 것 없다. 부정·부실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진상조사 보고서 전문

 

2. 대립의 핵심 쟁점도 비교적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다. 이른바 당권파는 부정·부실 선거라는 보고서의 결론이 사실 자신들을 겨냥한 것이라고 여기는 반면 진상보고서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총체적 부정·부실 선거는 당 전체의 책임이라는 뜻이라고 본다. 상식적으로는 당 전체의 책임이라는 지적이 맞지만 내막을 보면 당권파의 심정도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당대표와 경쟁 부문 비례대표가 모두 책임지고 사퇴하면 당권파가 피해를 더 보게 되기 때문이다. 비례대표 1번 윤금순은 인천연합이 지지한 후보이지만, 2번 이석기, 3번 김재연(청년비례대표)은 당권파쪽에서 민 사람들이다. 결국 당권파쪽 사람이 두명이나 국회의원 자리를 포기해야 하는 반면 참여계나 진보신당계는 당선권 비례대표가 없으니 손해볼 것 없다. 울산연합쪽도 손해볼 게 없기는 마찬가지다. 사태가 소수인 당권파(이른바 경기동부연합과 광주전남연합 중심 세력)와 다수인 나머지의 대립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 연유가 여기 있다.

 

3. 둘 사이의 접점이 없는 가운데 사태는 폭력으로 치달았다. 5월4일 운영위원회는 의장인 이정희가 회의 진행을 방해해 파행을 겪었다. 의장이 회의를 방해하다니,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사태다. 5월12일에 열린 중앙위원회도 상상을 넘어서기는 마찬가지였다. 당권파쪽 사람들로 추정되는 이들이 조준호 등 대표단을 폭행하고 단상을 점거하면서 회의를 무산시킨 것이다. 결국 두 회의 모두 전자회의로 마무리 됐다.

 

4. 각 계파가 이번 사태에 대처한 방식에 대한 내 생각

 

1) 당권파(이른바 경기동부연합과 광주전남연합 중심 세력): 주장의 핵심은 내부 논의도 없이 성급하게 외부에 부정·부실 선거라고 단정적으로 발표함으로써 당에 먹칠을 했다는 것이다. 급조된 당인 데다가 열악한 지역 상황을 고려할 때 부실은 어느 정도 피하기 어렵다는 점, 게다가 부정의 주체가 드러나지 않은 데서 알 수 있듯이 누군가 의도적으로 부정을 저질렀다는 확증도 없다는 점 등을 내세운다.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주장이다. 다만 이는 전적으로 당내에서 비공개로 논의할 때나 할 수 있는 얘기다. 비례대표 득표율 10%의 제3당이 공개적으로 할 수 있는 주장은 아니다.

특히 이들이 강조하는 게 당원의 명예가 소중하다는 것인데, 이는 이율배반적인 주장이다. 당원의 명예가 소중하면 밖에서 막가파식이라고 보지 않도록 조심해야 마땅함에도 이런 자세는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 인터넷으로 생중계되는 와중에 이정희는 부정 의혹에 직·간접적으로 관계된 이들의 실명을 공개적으로 거론했다. (경주의 누구씨, 서울 성동의 누구씨 해가며 연락해보니 해명이 되더라는 식으로 발언했는데, 당원의 명예가 정말 소중하다면 이렇게 실명을 거론할 수는 없다. 변호사라는 이정희의 위선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들이 내세우는 당원의 명예는 그저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수사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사태를 원만히 해결해 당을 지키겠다는 의지도 전혀 느낄 수 없게 대응하고 있다.

 

2) 진보신당계(심상정, 노회찬, 조승수 등으로 대표되는 세력): 이들은 과거에도 비슷한 막가파식 대응을 겪어본 이들이다. 그 절정은 일심회 사건 처리다. 이 사건은 민주노동당 당원 정보를 북한에 넘겨준 것이 확실한 최기영을 제명하자는 요구를 자주파가 거부한 일이다. (최기영은 지금도 통합진보당에서 직함을 갖고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들은 민주노동당이 예전과 달라졌다고 주장하며 합당 했다. 이런 주장은 착각임이 명백히 드러났다. 민주노동당 핵심 세력은 변함이 없었고, 진보신당계는 합당의 명분을 잃었다. 이번 사태에서도 이들은 사태 해결을 주도하지 못하고 있다. 심상정, 노회찬 등의 당선이 목표가 아니었다면 이들은 철저히 실패했다는 평가가 온당하다. 이제 이들 앞에 기다리는 것은 다른 세력(특히 참여계)에 기대어 목숨을 이어가는 수준이 아닐까 싶다.

 

3) 참여계(유시민, 천호선 등으로 대표되는 세력): 이런 저런 계산으로 합당했을텐데, 그 계산은 거의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전북 남원순창에서 강동원 후보가 당선한 것을 빼면 얻은 게 없다. 하지만 묘하게도 부정선거 사태를 통해 큰 정치적 승리를 얻었다. 당내 부정을 해결하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합리적 투쟁 세력으로 입지를 굳힌 것이다. 정치적 계산은 모두 빗나갔으나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굳건한 믿음과 전투력만은 높이 산다. 이것이 이 세력의 최대 자산이고 힘이다. 나는 이념적으로는 이 세력에 동의할 수 없지만 이 점만큼은 높이 산다. 노무현의 유산이라는 게 바로 이것이고, 이 점에 있어서만큼은 한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세력이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내용이 없는 절차로만 이해하면, 다시 말해 절차적 민주주의만 강조하면, 패권주의로 흐를 위험이 있다. (이는 노무현의 유산의 어둠에 해당한다.) 지금 이들의 행태가 그런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회의에서 열심히 논의를 한다, 할말 다 하라고 한다, 그리고 합의점이 없으니 투표하자고 한다, 이에 당권파가 반발한다(이정희가 회의 진행을 방해하면서 합의를 강조했는데, 의도를 배제하고 보면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위기를 돌파하려면 구성원의 합의 특히 내용에 대한 합의라는 힘이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물론 이정희의 의도가 너무 뻔하다), 이에 대해 참여계는 비민주적인 작태라면서 표결을 강행한다.

 

이런 행태는 사실 당권파가 옛 민주노동당에서 계속 해온 바다. 그들은 결국 합의가 안되니 표결하자고 했고 숫자로 상대를 이겼다. 차이가 있다면 당권파는 내용의 정당성이 없었고 지금 참여계는 내용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참여계의 정당성은 그들이 그렇게 강조하는 절차에서 나온 게 아니라 주장의 정당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다만 한계는 이 주장의 정당성이 전적으로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주장의 정당성”이라는 점이다.

참여계의 한계는 내용의 정당성이 쟁점이 될 때 시험받게 될 것이다. 예컨대 참여계가 주장하는 대로 투명한 당내 투표 시스템이 갖춰지고 당원 총투표를 했는데, 이번 사태에서 가장 큰 책임은 참여계에 있다는 식의 결과가 나온다면 참여계는 내용의 정당성을 내세우며 돌파할 능력이 있을까? 절차의 민주성만으로 진정한 민주주주의는 실현되지 않는다. 절차만 강조하면서 얻을 수 있는 최대치는 기껏 “자유주의 수호”다. 참여계가 “진보”라는 이름에 걸맞은 집단이 될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하다면 통합진보당은 통합자유당으로 전락할 것이다.

 

4) 인천연합, 울산연합, 민주노총 주류(국민파): 이들은 넓은 의미에서 경기동부연합 계열과 같은 자주파다. 물론 조직 논리상 서로 경쟁하고 반목하기도 하나 결정적인 국면에서는 당권파와 힘을 합쳐온 세력이다. 그래서 이번 사태에서 당권파와 거리를 두는 걸 보면서 개인적으론 가장 의외로 생각했다. 당권파가 얼마나 독주를 심하게 했길래, 하고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나로선 별로 거론할 게 없는 집단이다. 이들은 패권주의 측면에서 경기동부연합과 다름 없는 모습을 보인다고 비판받던 이들이다. 자신들의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없다면 신뢰하기 힘든 집단이다. 물론 민주노총 주류(국민파)는 민주노총이라는 조직을 우선 고려해야 하는 점 때문에 조금 다를 수 있지만, 아무튼 더 할 말 없다.

 

5) 파벌 사정을 잘 모르는 많은 당원들: 내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고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픈 이들이다. 얼마간 진보적이며 상식이 승리하기를 바라는 소박한 마음을 지닌 이들이 큰 상처를 받지 않으면 좋겠다. 이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애를 쓰면 합리적이고 얼마간 진보적인 정당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정당의 모습이 비록 내가 생각하는 급진적인 진보정당은 아닐지언정 그 자체로 소중한 성과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파벌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들의 “상식과 양식”을 무기로 당원 참여 민주주의를 쟁취하길 기대한다.

 

5. 전망

통진당 중앙위는 5월14일 전자 투표를 실시해 대표단 사퇴, 강기갑을 위원장으로 하는 혁신비상대책위 구성을 결의했다. 막판까지 저항하던 당권파의 장원섭 사무총장은 이날 물러났다. 이로써 당권파의 저항은 일정 부분 진압(?)됐다. 그럼 통진당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누구도 예상하기 어렵다. 이 소식을 막 접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다. “강기갑이라니... 강기갑이라니...” (이게 무슨 뜻인지는 그저 상상에 맡긴다. 머지 않아 알게 되겠지)

2012/05/14 13:01 2012/05/14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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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고민 변천사

** 기억해두고 정리하기 위해서 쓰는 내 경험 얘기다. 모두 영어로 된 사회과학 서적 번역 경험이니, 다른 언어, 다른 종류 번역의 경우로 일반화하기 어려울 소지가 있다. **

 

내가 번역을 시작한 때는 대략 1990년대 말이다. 이 때 내가 가장 중시한 것은 의미 전달이다. 원문의 뜻이 훼손되지 않는 한도에서, 문장을 나누기도 하고, 문장을 풀어서 번역하기도 했다. 뜻을 알기 어려운 번역문들을 보면서 “차라리 내가 하자”고 마음 먹은 게 번역을 시작한 동기여서 이런 태도를 취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번역을 시작하는 단계에서라면 누구나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2000년에 나온 <이제는 미국이 대답하라>가 이런 자세로 번역한 책이다.)

 

조금 지나니, 번역문이 원문의 문투나 느낌은 담지 못하고 모두 내 문투로 재구성된 것을 깨닫게 됐다. 그래서 마음을 바꿨다. 원문의 어감, 문체를 최대한 살려보려고 했다. (2004년에 나온 <싸이버타리아트>는 이런 자세로 번역한 책이다. 이 책을 이렇게 번역한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다. 저자는 정식 경로로 학자가 된 이가 아니라 현장 운동 경험을 축적한 연구자이고 그래서 그런지 문체가 보통의 학자들과 많이 달랐다. 이런 특성을 최대한 반영하는 게 올바른 번역이라고 생각했다. 그 결과 조금 독특한(?) 번역문이 나왔다.) 

 

그러다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원문의 문장 구조까지 최대한 반영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도치된 문장을 그대로 유지한 채 번역하고(도치는 보통 강조다), 부사의 위치를 원문 문장 구조에 가장 가깝게 배치하고, 관계대명사로 연결된 문장을 앞부분부터 순서대로 번역했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원문 구조를 번역문에 반영했다. (2005년에 나온 <탈근대 군주론>부터 이런 자세가 번역문에 반영됐을 것이다. 이 또한 번역을 맡게 된 책의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 이 책은 정식 교육 과정을 거친 학자가 서양 사상을 두루 거론한 자신의 박사 학위 논문을 확장한 것이다. 논문의 엄격함을 고려하고 수없이 많은 인용문을 제대로 다루려면 문장 하나 하나, 단어 하나 하나에 충실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렇게 작업하니 번역문이 '우리말답지 않다'는 소리가 조금씩 들렸다.(사실 내 번역에 대한 독자 반응은 거의 없다. 워낙 읽는 이가 적은 책들이다. 내가 듣는 얘기는 대체로 출판사쪽 평가다.) 이른바 번역투와는 조금 다른 것이지만, 많은 사람은 차이를 두지 않았다. 당연하다. 그래서 다시 고민에 빠졌다. 이제 목표는 원문의 의미 전달에 충실하고 원문 구조도 최대한 유지하는 '한국어다운 번역’이 됐다. 이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원문의 문장 구조에 충실하면 '한국어다운 번역'이 나오기 아주 힘들다. 당연히 뒤따르는 것이지만 번역문이 너무 어렵다는 얘기들도 들렸다. 독자들이 이해하기 쉬운 번역이 “가장 잘된 번역”이라는 게 요즘은 상식처럼 퍼져 있으니 내 번역은 잘된 번역과 아주 거리가 먼 셈이다.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번역해야 하는 건 번역자의 지상과제지만, “쉬운 번역이 가장 좋은 번역”은 절대 아니다. 어려운 책은 번역문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어려운 학술서를 중고생도 술술 읽을 수 있게 번역하면 그건 번역이 아니다. (이건 “번역자의 윤리” 문제이기도 하다.) 관련 지식이 없으면 읽기 어려운 책은 아무리 애써도 역시 어려운 번역서가 된다. 한국에서 번역 대상이 되는 사회과학 서적들이 보통 이렇다. 책 한권을 잡고 6개월쯤 씨름한 번역자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을, 관련 지식이 없는 일반 독자가 잡자마자 머리 속에 쏙쏙 들어가게 번역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두 부류다. 하나는 천재, 다른 하나는 사기꾼! 둘 다 될 수 없는 나는 “번역을 그만할 때가 왔다”고 느꼈다. 이게 아마 <진실 말하기>를 끝낸 2008년 초일 것이다.

 

번역문은 필연적으로 한국어와는 다른 어떤 '낯선 요소’가 있다고 변명을 해보지만, 읽는 사람들은 그저 무능한, 그리고 게으른 번역자의 핑계로 여길 뿐이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욕이나 먹지 않으면 다행인 일, 그만 두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번역에서 손을 떼고 지내다가 이런 저런 사정으로 다시 번역을 하게 됐다. 곧 출판될텐데, 이 책을 번역하면서 다시 자세를 조금 바꿨다. “무조건 쉬운 번역이 최고”라는 독자들한테, 원문 구조까지 충실히 반영한 번역이 무슨 쓸모가 있을까 고민했다. 그 결과 내 번역 자세가 결국 맨 처음 번역하던 때와 비슷해졌다. (그래도 출판사의 기대에는 한없이 미달한다. 독자들의 기대는 더 말할 것도 없겠고.)

 

그러던 와중에 번역 공부 모임에 도움을 주는 일이 생겼고, 이 경험이 나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줬다. 오역이 많고 읽기 어려운 번역문이 나오는 구조를 조금 이해하게 된 것이다.

 

엉터리 번역문은 

첫째, 글의 맥락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데서 나오고,

둘째, 영어에 한정한 얘기지만 동사, 특히 조동사의 뜻을 정확히 모르는 데서 나오고,

셋째, 단어의 기본 뜻(밑바탕에 깔린 뜻)을 모르는 데서 나온다는 깨달음이다.

(예컨대 보통 persuade를 “설득하다”로 번역한다. 그런데 이 단어의 기본 뜻을 “설득해서 무엇무엇을 하게 하다”로 머리에 담아두지 않으면 반대말인 dissuade를 번역할 때 어려움을 겪는다. “설득하다”의 반대말이라니?? persuade가 “설득해서 무엇무엇을 하게 하다”로 자리잡고 있으면 dissuade를 “설득해서 무엇무엇을 단념시키다”로 번역해야겠다는 생각이 쉽게 떠오를 수 있다.)

 

이제 내 번역관은, 원문의 문맥을 정확하게 판단해 전달하고, 특히 조동사의 번역에 신경을 쓰며, 무엇보다 원 저자가 쓴 각각의 단어 뜻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한국어 단어를 찾는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게 됐다.

 

내 변역 태도를 정리하면 이렇다.

 

1. 먼저 원문의 의미에 최대한 충실하게 번역한다. (번역자를 개입시키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어차피 번역은 “번역자의 독해 결과”이다. 하지만 목적을 잊으면 안된다. 번역은 번역자의 작업 결과를 선보이는 것이 아니라 원 저자의 이야기를 “언어를 바꿔 전달하는 것”이다.) 

 

2. 원문의 문장 구조, 느낌, 문체, 어감 따위를 최대한 살려서 번역한다. (이 작업을 하다보면, 번역자 나름의 '한국어 문장 구조'를 만들어내는 데까지 가기도 한다. 예컨대 한국어에 없는 관계대명사로 연결된 문장을 앞 부분부터 번역해서 뒷부분과 연결시키는 방식 따위를 나름대로 만들어내야 한다. 뒤에서부터 번역하면 쉽지만, 이는 서양 언어 문장 순서를 뒤집는 것이고, 결국 글쓴이의 생각 흐름 또는 논리 흐름도 뒤집는 것이다.)

 

3. 한국어 어법에 어울리는 문장을 찾되, 특히 원어 단어의 본래 뜻에 가장 가까운 한국어 단어를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 (이 작업에는 답이 없다. 다만 이른바 '윤문'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원문의 의미에 충실하고 원문의 구조에 충실한 것이 대전제다.)

 

이상으로 10여년 동안 책 몇권 번역한 경험을 정리해봤다. 직업으로서 번역을 택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쪼개서 번역을 해보려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직업 번역가가 되려는 이들한테 이런 고민은 사치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빠르게 번역하는 요령이다. 아니면 굶어 죽는다. 서글프지만 한국 번역계의 냉정한 현실이다.)

2012/04/27 13:36 2012/04/27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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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그날

(이성복 시인이 1970년대 말에 쓴 시) 

 

그 날 아버지는 일곱 시 기차를 타고 금촌으로 떠났고

여동생은 아홉 시에 학교로 갔다 그 날 어머니의 낡은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전방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그 날 역전에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서성거렸고

몇 년 후에 창녀가 될 애들은 집일을 도우거나 어린

동생을 돌보았다 그 날 아버지는 미수금 회수 관계로

사장과 다투었고 여동생은 애인과 함께 음악회에 갔다

그 날 퇴근길에 나는 부츠 신은 멋진 여자를 보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점치는 노인과 변통(便桶)의

다정함을 그 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 날 시내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 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 마치 30년 뒤를 예언한 것처럼 내겐 다가온다.

2012/04/23 09:52 2012/04/23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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