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분류 전체보기

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2/13
    "민주노총 조직-의식 괴리로 고립 위기" -조돈문교수
    울산까마귀
  2. 2008/02/13
    김승교 변호사에게 (펌)
    울산까마귀
  3. 2008/02/13
    ‘배타적 지지’가 새로운 흐름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펌)
    울산까마귀
  4. 2007/01/25
    블로거 손학규님께
    울산까마귀
  5. 2007/01/25
    80년대와 싸우자
    울산까마귀
  6. 2006/09/20
    백설공주와 파업
    울산까마귀

"민주노총 조직-의식 괴리로 고립 위기" -조돈문교수

"민주노총 조직-의식 괴리로 고립 위기"

조돈문 "조직은 정규직 생존자, 의식은 비정규직 재취업자"

 

 

 

 

민주노총이, 계급의식이 보수적인 정규직 중심으로 조직돼 있어, 조직적 위축이나 이완을 겪게 되리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카톨릭대 사회학부 조돈문 교수는 지난 24일 비판사회학대회에서 발표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노동계급 계급의식'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조돈문 교수는 2003년 조사된 788개의 사례를 분석하여 이같은 결론을 얻었다.

 

조돈문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1997년 이후 노동자들의 의식이 보수화되었는데, "지난 10년 동안 노동계급이 경험한 노동조건 및 삶의 조건 악화에 비추어보거나 아니면 중남미 국가들의 신자유주의 10년 경험 뒤 좌파정당의 집권붐 추세에 비추어보아도 한국 노동계급의 의식 보수화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고 밝히고 있다.

 

조직은 정규직 생존자, 의식은 비정규직 재취업자

 

조돈문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여타 계층에 비해 노동계급의 보수화 정도는 약하다. 한편 노동계급 내부에서의 의식 차이도 양극화되어, 1991년에는 정규직이 더 계급의식적이었지만, 2003년에는 비정규직이 더 계급의식적이다.

 

그런데 비정규직의 조직률은 1.9%로 거의 노동조합이 조직되어 있지 않은 반면 정규직의 조직률은 16.2%로 노동조합을 주도하고 있었다.

 

또, 일자리 이동 유형에 따른 계급의식에서도 차이가 나타난다. 일자리를 지킨 생존자는 계급의식이나 반신자유주의 의식이 가장 저발달하였고, 일자리를 옮긴 재취업자는 계급적대의식과 반신자유주의 의식이 발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정규직 생존자가 39.3%의 높은 노동조합 조직율을 보이고 있어 현재 노동조합운동은 정규직 생존자라는 특전적 부문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고 조돈문 교수는 분석한다. 민주노총에서도 정규직 생존자의 경우 11.6%로서 노동계급 전체 평균 3.1%보다 월등히 높은 조직률을 보이고 있다.

 

조직 형성과 이데올로기 형성의 미스매치

 

조돈문 교수는 이와 같은 계급의식과 계급조직의 차이에 의해 민주노총이 "정규직 생존자 속에서 고립되며 조직적 위축 혹은 노동조합 결속력 하락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 전망한다. 그는 또 "현재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총파업 투쟁을 전개하면서도 낮은 동원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계급형성 구심점 이행의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조돈문 교수는 "정규직 생존자가 여전히 민주노조운동의 구심점을 형성하고 있으나 더 이상 계급형성의 구심점은 아니며, 계급형성의 구심점은 비정규직 재취업자로 이동하였다"고 진단한다. 조돈문 교수는 "조직적 형성과 이데올로기적 형성의 미스매치(mismatch)"를 극복해야 노동계급 형성에 성공할 수 있다는 결론을 제시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김승교 변호사에게 (펌)

출처:http://comm.kdlp.org/index.php?main_act=board&board_no=2&art_no=569571&jact=art_read

 

너는 국가보안법 판결문은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명백한 해당 행위자 최기영을 조봉암 사건, 인혁당 사건 등 극악한 독재 정권하에서 조작된 보안법 판결문으로 희생된 자들 속에 슬쩍 끼워 넣는다. 그러나 지금 이 나라는 수많은 민주열사들의 피로 네가 주장하는 그 암울한 독재 시대의 어둠은 걷어내고 최소한 일반 민주주의 원칙과 상식은 지켜지는 나라가 되었다. 해당 행위자 최기영이 이 나라의 사법부가 증거까지 조작하여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한 희생자라면 최기영을 변호한 너는 무엇을 변호한 것이냐?

 

네가 인용했듯이 대법원은 명백한 증거가 없거나 확증할 수 없는 사항은 모두 무죄로 판결하였고, 명백한 증거가 있는 사항만 유죄로 판결하였다. 이 명백한 증거는 대부분 전자기억 장치에 저장된 증거물로 수사관 등이 조작할 수 있어 압수 즉시 봉인하고 내용을 열어 볼 때는 봉인 확인 및 조작 여부 등을 변호인 등의 확인 하에 수사가 진행되었음을 판결문에 분명히 하고 있다. 물론 최기영이 작성하여 북한 간첩에게 보고한 내용은 국가 기밀이 아니라 국보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너의 주장은 피의자를 변호해야 되는 변호사로서는 가능할지 모르나, 해당 행위자 최기영이 국보법 피해자니 제명은 안 된다는 주장이야말로 미친 당원이 아니라면 말할 수 없는 억지에 불과하다.

 

더구나 너는 최기영이 북한 간첩에게 보고한 정치동향보고서가 당의 기밀이 아니므로 당원정보 유출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술자리에서 누구나 떠벌릴 수 있고 인터넷에도 넘쳐나는 정보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이 정도를 당규 위반으로 몰아 해당 행위로 단정하여 제명하려는 것은 순전히 불순한 정치적 의도라고 주장한다. 한 술 더 떠 문제가 된 당원 명부도 총무실에서 제작해서 당직자나 분회장, 출입기자들에게 배포한 인명수첩 수준이라고 주장한다.

 

너 김승교 보아라.

민노당 중앙당 간부 아무개가 술을 먹으면 성질이 지랄 같고 북핵 문제에 대해 반북적인 성향이 있다는 등의 정보가 어디 인터넷에 떠돈단 말이냐? 어느 당원이 술자리에서 떠도는 뒷담화 수준의 정보를 낱낱이 정리하여 간첩에게 보고한단 말이냐? 이런 행위가 중앙당 간부 당원이라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해당 행위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냐. 그럼에도 명백한 해당 행위자 최기영을 국보법 피해자 운운하며 일부 정파가 국보법 피해자를 보호하기는커녕 정치적 희생물로 삼는다고 미친 소리를 늘어놓고 있다. 최기영은 보호 받아야할 국보법 피해자이기에 앞서 당원의 인권을 유린한 명백한 해당 행위자이며 나아가 이 나라의 상식과 보편타당한 가치인 개인의 인권을 짓밟은 공적임을 너는 알아야 한다.

 

너 김승교 보아라.

백번 천 번을 양보하여 최기영이 보고한 내용이 술자리 뒷다마 수준으로 당의 기밀이 아니므로 해당 행위가 아니라고 하자. 그렇다면 극악한 독재 정권이 판치던 때에 정보원들이 민간인들을 사찰하여 어느 날 누구를 만나 무슨 잡담을 나눴다는 정보보고서는 국가 기밀 사항도 아니고 사찰 당한 그 사람이 속한 단체의 중요 정보도 아니니 아무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것이냐? 북한 간첩에게 넘겨진 당원 명부도 인명수첩 정도라 아무 문제가 안 된다는데 한 나라의 정당 사무부총장이라는 자가 당원 명부를 북한 간첩에게 넘겼는데 아무 문제가 안 된다니, 내가 만약 너 김승교를 비롯하여 종북주의자로 의심되는 도봉구 당원 명부를 정리하여 국정원에 넘겼어도 당원 인명수첩 정도로 아무 문제가 안 된다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겠느냐?

 

너 김승교 보아라.

이 나라는 최소한의 상식과 개인의 인권이 보호되고 인정되는 사회로, 극악한 군사 독재 정권하에서 사람의 인권 정도는 희생되고 무시되어도 아무 문제 되지 않는 북한과 다르니라. 당원의 사생활과 정치적 양심을 짓밟으며 정치사찰을 하여 간첩에게 보고한 자를 국보법 피해자라 주장하고 이런 국보법 피해자를 보호하기는커녕 제명 시키는 것은 미친짓이라고 외쳐대는 너야말로 당원들을 우습게 알고 이 나라와 이 사회의 수준을 얕잡아 본 것이다. 그러나 당원들과 국민들은 너의 미친 주장을 믿을 만큼 그렇게 미쳐있지 않음을 알기 바란다. 지금이라도 최소한의 양심이 남아 있어 부끄러움을 안다면 당원과 국민 앞에 무릎 끓고 사죄함이 마땅할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배타적 지지’가 새로운 흐름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펌)

레디앙에서 퍼온 것 같은데 글쓴이와 출처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네요

-----------------------------------------------------------------------------------------------------

 

‘배타적 지지’가 새로운 흐름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노동현장에서 활동하면서 보고 느낀 조직노동자에 대한 진단을 간단히 요약해볼까 합니다. 민주노총의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지지 때문에 신당창당이 힘을 받기 힘든 것 아니냐며 걱정하는 동지들에게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기 위해서입니다.

 

 

동전의 양면

 

87년 이래로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이들은 나머지 90%에 비해 상대적으로-이것은 분명히 상대적일 뿐입니다- 높은 임금과 사내 복지를 누리고 있습니다. 아직 보편적 고용안정망이 없는 한국에서, 당연히 이들이 누리는 삶의 질은 그 회사에 계속 다닐 경우에만 해당됩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통상 자기 회사가 잘나가기를 바랍니다. 이는 특히 IMF 이후 노조 힘만으로 자신을 방어하기 힘들 수 있다는 것을 체감한 뒤 더해졌습니다.

 

한편, 노동자들은 이것으로도 부족해 임금과 퇴직금을 미리 빼 주식시장에 투자하기도 합니다. 우리사주 등으로 회사 주식을 소유하면서 주가가 높아지기를 기대하기도 합니다. 조합원들에게 노동조합이란, 회사가 잘 나갈 때 실리를 많이 따내고 회사가 잘 나가지 않을 경우에도 구조조정을 막거나 완화시켜주는 ‘보험’ 정도인 셈입니다. 그러나 이놈의 보험을 완전히 믿지도 않습니다. 이것도 역시 IMF 이후 더심해졌습니다. 한마디로 노동자들은 현명하거나 혹은 영악합니다. 다른 말로, 노동자들의 미래는 불투명하고 불안합니다. 이것이 현 시기 노동자대중을 표현할 수 있는 동전의 양면입니다.

 

 

배타적 지지의 이면

 

일반 노동자들의 계급적 이해관계는 단순합니다. 현재와 미래에 먹고살 만한 수준의 돈과 그것을 보장해주는 일자리(=고용)입니다. 그것을 국가나 사회가 보장해주지 않으므로 오로지 회사와 그 대척점에 있는 노동조합이라는 전선에 그들의 계급적 이해관계가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노동자들의 정치의식 각성을 가로막아왔고, 그동안 진보정당들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물결이 몰아닥친 신호탄이기도 했던 IMF체제는 노동자들의 의식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자신의 이해관계가 기업 내의 노-사간의 전선만으로 방어되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으로 체득한 셈이었습니다. 이것은 경상도와 전라도 그리고 충청도로 나뉘어 있던 보편적 정치의식에 자신의 계급적 이해관계를 방어하고 대변해 줄 정치세력이 필요하다는 대의를 덧씌우는 학습효과가 되었습니다.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이 대통령 후보와 민주노동당 대표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조직노동자로 하여금 자신의 계급적 이해관계를 국가와 사회로 집중시키기 위한 불가피한 측면이 컸다고 봅니다. 덕분에 민주노총의 민주노동당 배타적지지는 어렵지 않게(?) 결의될 수 있었습니다.

 

 

아마추어 민주노동당

 

그러나 기대했던 민주노동당은 국민승리21 이후 10년 만에 수명을 다했습니다. 관심을 갖고 집중해봤더니 ‘아마추어’였단 말이죠. 통일운동단체인지 봉사활동단체인지 모를 단체 수준으로 당을 운용한 자들이 1차 책임이겠죠. 보험 하나 들고 주식투자 하나 하려고해도 전문상담을 받는 마당에, 아마추어에게 자신의 생명줄과 같은 계급적 이해관계를 ‘올인’할 리 만무합니다. 다시 강조하건데, 미래가 불투명할수록 더 영악해지는 게 대중입니다. 이미 아마추어로 규정한 것에 대한 불신은 신뢰로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망가진 민주노동당이 프로페셔널한 심상정 의원에 의해 혁신이 되어 대중에게 다시 신뢰받는다는 설정은 대중을 너무 모르는 것입니다.

 

 

프로페셔널한 자신감

 

따라서 새롭게 만들어져야 할 진보정당은 지극히 대중적이어야 합니다. 언론의 폭발적 관심은 우리의 운동이 대중적임을 역으로 입증해줍니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방침을 갖고 있는 민주노총으로부터 외면 받는다는 생각은 착각일 뿐입니다. 민주노총 상층부로부터 외면받기는 하겠지요. 민주노총을 이유로 겁내거나 주저할 이유가 없습니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아래로 흐르려는 관성을 가진 물과 같은 대중의 의식을 가둬두거나 제어할 권위조차 이미 없어진 지 오래입니다. 지금의 공중전이 다행스럽게도 일부언론을 통해 조합원에게 읽히고 있습니다. 프로페셔널한 자신감을 가지고 움직여야할 때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블로거 손학규님께

 

손학규 전 지사님.

 

님께서 박유기현대차노조위원장에게 보낸 편지를 읽고 한 말씀 올릴까 합니다.

 

저는 울산시민입니다. 현대차에 근무하지는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님이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된다면 우리나라 정치사에 있어서 큰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합리적 성향의 통합의 리더쉽을 갖추었다는 님이 후보가 된다는 것은 한나라당이 더 이상 수구꼴통이 아닌 대화가 가능한 보수정당으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기때문에 그렇다고 합니다. 저도 이 말에 동의하면서 정치이념상 분명히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내심 님의 선전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번 편지를 읽으면서 제가 판단을 잘못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님은 외국인투자자들이 노사분규때문에 한국에서 철수한다는 얘기를 서두에 하셨습니다. 노동자들이 근무여건 좋은데 다른 이유로 파업한다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저 보다도 더 잘 알리라 생각합니다. 민주노총의 총파업 조직율이 30%가 안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노조조직율이 10%에 못미치는 것을 감안하면 노사분규가 떠나는 원인이라는 것에 머리를 끄덕이기 힘들군요. 일한 만큼의 대가를 주지않고 날로 먹을려고 한다면 그것은 이 땅에서 내쫓아야할 투기자본입니다. 작년 11월 21일 YTN뉴스는 "국내10대 재벌이 사내에 쌓아둔 돈이 약 150조원"이라고 보도하였습니다. 이 돈만이라도 국내 제조업에 제대로 투자하도록 한다면 외국인투자자에 목을 멜 필요는 없을것 입니다. 이러한 자금을 국내생산에 투자하도록 하는 것이 정치인의 역할 아닌가요? "어디다 대고 지적이야?" 라는 유행어가 있습니다. 그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두번째로 귀족노조라 하셨습니다. 한국은행은 올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일만팔천불이라 발표했답니다. 2005년을 기준으로 1가구당 가족수가 2.9명이니깐 가구당 소득이 52,200불이 되어야 평균이 됩니다. 1불당 1000원으로 어림잡아 계산해도 5200만원입니다. '평균치'를 살고 있는 사람을 귀족이라 한다면 이 나라 정말 문제 많은 사회 아닙니까? 이런 어처구니 없는 사회를 만든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그 선봉에 님과 같은 정치인이 있지 않습니까? 국민에게서 '희망'을 빼앗아간 것은 이런 기형적인 사회구조가 아닌가요? 현대차노조원이 평균소득을 받기때문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겁니까? 불과 10년전까지만 해도 세계부호대열에 얼굴도 못내밀던 이건희, 정몽구 회장이 세계100대 부호에 들어 그것도 중상권에 진입하여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때, 이 땅의 노동자들은 겨우 평균을 받아 귀족의 호칭을 받다니요. 도대체 일한 자의 몫을 가로챈 주범이 정규직노동동자입니까? 자본가입니까?

 

손지사님! 노조는 회사가 대화에 나오지 않아 (실재로 회사는 이번건은 협상대상이 아니라고 잘라말하고 있습니다.) 대화를 위해 파업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파업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대화가 가능할까요? 1월2일에 한국경제TV에 매출10조원과 순이익1조원을 달성한 1조쿨럽 8개 기업을 발표하였습니다. 여기에 현대자동차가 당당히 그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왜 님은 현대자동차 최고경영진에게 순이익1조원을 남기는 회사가 주기로 한 그깟 푼 돈을 주지 않아 물량에 의존해 생활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부품협력업체 직원들의 생활을 새해 벽두부터 힘들게 하느냐고 준엄하게 꾸짖지 않는지요? 

 

합리적인 통합의 리더십이 어느 한 쪽만을 편드는 것은 아닐겁니다. 님이 역설하시는 그러한 리더십은 사회적 강자를 향해 "당신들이 먼저 양보해보라"라고 외칠때 가능한 것입니다. 기억나는 영화의 장면을 떠올리며 글을 마무리 합니다. '황산벌'이란 영화에서 당나라군대가 기벌포에 상륙했다는 보고를 받은 의자왕이 귀족들에게 사병과 군량미를 내놓으라고 하자 귀족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가 우들 나란가? 너들 부여씨 나라제." 그리고 백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지금 우리사회에서도 명사만 바꾸면 의미심장한 말이 됩니다. 부디 헤아리시길 간곡히 바랍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80년대와 싸우자

草綠同色

부제 : 80년대와 싸워야 한다!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이다. 대통령선거는 우리처럼 천박한 정치 환경에 있는 민중들에겐, 그들이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합법적인 정치행위 중에서 가장 큰 것이다.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있는 시점에서 ‘반 한나라당 연대’라는 해묵은 정치구호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민주대연합’, ‘평화개혁세력 대결집’, ‘진보진영 상설연대체’ 등의 다양한 명칭으로 표현하지만 결론은  한 마디로 한나라당이 되면 ‘나라 망한다’ 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진보라 개혁이라 부르짖는 사람들이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한나라당이 집권하는 것을 막아야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 민중의 삶을 뭉개고 있는 주범은 바로 양극화이다. 비정규직의 등장과 급속한 확대는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정글의 법칙’ 속으로 밀어버렸고 사교육시장의 급속한 팽창과 강남불패로 대표하는 부동산문제는 민중의 삶을 도탄과 허탈에 빠지게 했다. 결국 우리가 그토록 목이 터져라 부르짖었던 민주주의는 ‘그들만의 리그’체제가 되어 버렸다.


누가 이런 일을 저질렀는가? 미국의 강요와 사주를 받은 매국노 수구 꼴통집단 한나라당이 주도한 것인가? 민주화 세력들은 이를 막기 위해 발버둥을 쳤는데 힘이 달려 이 정도 수준에서 저지하고 있는 것인가? 그 주범은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시대를 끝장내고 ‘신자유주의’라는 철기군이 되어 돌아 온 역전의 용사들이 아닌가? 그들은 ‘분배’ 대신에 ‘성장’을, ‘평등’대신에 ‘경쟁력’과 ‘효율’이라는 카드를 들어 지난날 자신이 했던 말을 간단하게 뒤집지 않았는가? ‘신성장동력’이라는 마르지 않는 샘을 찾는다는 허울 아래.


그들은 80년대의 주역이다. 부마항쟁과 광주항쟁, 87년 민주화 투쟁을 통해 이 땅에서 ‘군부파시즘’이라는 악의 축을 도려내었다. 그 반석 위에 차례로 권좌에 올랐다. 자기가 한 만큼 보상(?)을 받았다. 아니 그 이상의 영예를 누렸다. 역사가 밑진 게 없다는 얘기다. 어느 영화에서 나오는 대사가 생각난다. “마이 무웃다 아이가? 고마 해라.”


나는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나은 사회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들과 한 판 싸움을 벌려야 한다고 본다. 누군가는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 얘기 한다. 그러나 그것은 최소한 ‘최선’과 ‘차선’의 의미를 구분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신자유주의’라는 우산아래서는 별 의미가 없다, 초록이 다른 색이 아닌 같은 색임을 민중의 정치의식으로 알 때 최소한 ‘선진강국’이라도 되지 않을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백설공주와 파업

사실은 왕비가 더 예뻤다!


“자네 혹시 백설공주가 뚱보였다는 얘길 들은 적 있나”

“예? 별소릴 다 하십니다. 백설공주야 미인이란 이유로 계모의 핍박을 받았던 프리마돈나 아닙니까?”

“허허, 이 사람. 넓은 세상을 돌아다녔다는 사람이 상당히 소식이 늦구먼. 이 유명한 사실을 모르고 말야. 자, 내 얘기를 들어 보게.

백설공주는 소문대로 미모가 빼어났던 게 사실일세. 하지만 몸매로 말하면 결코 그렇지가 않았어. 뚱보라면 과장이겠지만, 적잖이 풍만한 허리를 지니고 다녔다네. 아마 궁전에서 너무 잘 먹고 자라 영양과잉이 된 모양일세.

엄마가 죽은 뒤 새로 들어온 계모는 미인이었지만 성격이 매정했지. 특히 자기보다 예쁜 여자를 그냥 두지 못하는 여자였지. 자네도 알겠지만 그 여잔 누가 제일 예쁜지 알려 주는 신기한 거울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거울의 대답은 언제나 백설공주였지. 화가 난 계모는 백설공주를 내쫓고 죽여 버리려 했지.

그런데 얼마 전에 실은 계모가 더 아름다웠다는 사실이 밝혀진 거야. 그 여자의 몸매는 황홀할 정도였다는군. 그럼 거울은 왜 엉ㅌ리 대답을 내놓았을까? 이유를 조사해 본즉, 그 거울은 뭐든 길게 늘여서 비춰 주더라는 거야. 자네도 본 적 있겠지? 사람이 늘씬하고 키가 커 보이는 거울 말야. 그러니 풍만한 백설공주는 아름다운 몸매의 미인으로 비쳤고, 아름다운 왕비는 삐쩍 마른 빗자루처럼 비쳤던 게지. 백설공주가 좀 더 날씬했더라면 못된 계모의 핍박을 피할 수 있었을 텐데. 아니면 거울이 정확하게 비춰주는 것이었거나. 하긴 그래서 얘깃거리가 되긴 하는 거지만 말야.”


이 글은 이진경씨가 지은 『논리 속의 철학 논리 밖의 철학』(새길)에 나오는 이야기를 인용한 것이다. 거울이 키가 커 보이는 것이 아닌 사물을 정확하게 비춰주는 것이었더라도 왕비의 오판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거울을 ‘언론’으로 바꾸어 놓으면 어떨까? 이것이 바로 언론의 사회적 기능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언론이 ‘실재’를 어떻게 비추냐에 따라 그것을 보고 사고하는 우리의 판단은 분명 그것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파업은 잘못된 행동인가?


우리나라 헌법 제33조 ①항은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정의한다. 이 처럼 파업은 헌법에서 노동자에게 보장하는 합법적인 기본권이다.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노동자에게 부여한 신성한 권한이다.


그런데 현대자동차 파업을 바라보는 우리 언론의 보도를 보면, ‘19년째 파업’, ‘또 파업’, ‘경제손실 1조원 국가경제 초비상’ 등으로 묘사하고 있다. 누가 봐도 공정하지 않다. 마치 왕비가 거울에서 비춰주는 백설공주를 본 느낌을 전하고 있는 것 같다. 이는 바로 ‘증오’의 눈빛이다. “이 놈들이 또 나쁜 짓을 하는 구나”고 생각하게 만드는 기사들이다. 이런 기사를 본 순간 사람들은 파업가담자를 범죄자로 생각한다. 그 순간부터 파업이 가지는 사회적, 법적의미는 모두 허공으로 사라지고 남는 것은 수많은 죄인뿐. 파업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가진 거울에 대고, 우리는 매일 ‘거울아~거울아~’를 부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6월 26일과 27일에 kbs울산방송국에서 보도한 ‘현대 vs 도요타’와 ‘분규 vs 무분규’ 보도는 파업이 가지는 의미를 노, 사, 지역사회의 입장에서 균형감 있게 입체적으로 보도한 훌륭한 기사였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보도가 현대자동차 사내방송 혹은 사보인지 조차 분간하기 어려울정도로 편향적인데 반해 이 기사는 총체적 관점에서 ‘파업’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본질은 현상을 통해 나타난다. 현상을 비춰주는 거울에 따라 ‘여론’이 때로는 사악한 왕비가 되기도 하고 공정한 심판자가 되기도 한다. ‘사실’을 정확하게 투영하는 거울을 만들어 올바른 ’사회여론’을 조성하는 것 또한 건강한 시민의 몫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