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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

- 용산에서 노무현 그리고 김대중까지 죽음과 기억의 정치학>

 

당대비평 기획원원회 엮음. 산책자

 

2009년

사람들은 노무현은 그토록 애도하면서

왜 용산 열사들과 쌍용차 노동자들의 죽음은 그토록 쉽게 잊는 것인가?

 -나의 물음에 답을 던져 준 책

 

P.66

대안이 부재한 상황에서 스스로 저항과 운동을 조직할 자율성이 이전에 비해 약화된 대중들은 촛불 시위와 같은 간헐적인 시위 이외에 자신을 조직화하지 못했다. 여전히 대중들은 자신들의 '또 다른 구원자'와 '대변자'를 갈구했던 것이다. 이런 와중에 발생했던 노무현의 죽음은 대중들로 하여금 '민주주의의 순교자', '서민의 대변자'로 그를 불러냄으로써 상황을 반복했다.

 

P.67

나는 노무현의 죽음을 슬퍼하고 그를 지키지 못해 미안해하는 대중들을 힐난하거나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대안 없이 주어진 조건에서 가능한 선택지였다. 다만 대중들의 슬픔을 이해하는 것과 별개로, 우리는 '아름다운 순교자'를 기억하는 것이 결코 대안이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대중 그리고 대중운동에 필요한 것은 구원자가 아닌, 새로운 정치를 구성하기 위한 자기 조직화이다.

 

P.101

마땅이 애도되어야 할 대상이 애도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엉뚱하게도 바로 옆의 어떤 것이 누가 봐도 너무 과하게 애도되고 있다면, 그 과열된 애도 행위의 배후에는 정작 애도해야 할 것을 애도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슬픔이 감춰져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

혹시 용산참사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애도의 (의식적)미수행이 아니라, 애도의 (무의식적) 불가능함에서 비롯된 일종의 정신적 방황은 아니었을까.

 

P.105

한국사회 대중들이 갖고 있었던 뉴타운이라고 하는 애정의 대상은 더 이상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환상에 불과한 것임이 용산 참사로 인해 생생히 드러났다. 한데 문제는 대중들이 이러한 상실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 있었다. 대중들은 한번 품은 뉴타운에 대한 환상과 애착을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용산을 직시할수록 뉴타운의 꿈이 신기루였음을 인정해야만 하기에, 대중들은 용산이라고 하는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하기를 거부한다.

 

P.121

물론 이 상실감은 노무현으로 표상되고 있는 , 그러나 노무현이 아닌 노무현, 곧 민주공화국의 이상이다. 그래서 대중들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은 잃어버린 노무현이 아니라 실은 민주주의의 부재이며, 이 민주주의가 여전히 현존하지 않는 한 그것은 앞으로도 계속 점유를 향한 우울증자의 충동을 추동하는 힘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민주주의를 향한 우울증적 충동이 점점 한국사회에서 애도 의식이나 촛불집회와 같은 집합 의례의 형식으로만 살아남아 단지 광장에서 대중들이 모였을 때만 현존할 뿐, 그것이 현실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정도로까지 힘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P.124

우리에게 광장의 애도는, 그래서 여전히 의심스럽다. 이 애도가 만들어낸 사회적 현실이라는 것이 노무현 때처럼 두 세계의 갈등이든 아니면 김수환이나 김대중 때처럼 한 세계를 향한 화해와 통합이든, 이 모든 애도의 광장에는 '종교'만 있을 뿐, '정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더 이상 '죽음'만이 아니다. 이제는 '애도'역시 우리에게 문제이다.

 

P.223

생각해보면 오히려 추모받아야 하는 이들은 노무현이나 김대중이나 용산 철거민 열사들이 아닌 살아있는 우리들인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의 궁핍과 무지와 나약함인지도 모른다. 살아서도 도대체 살아있다는 실감을 느끼지 못하고 사는, 그래서 어떤 우상이 필요한, 어떤 허위가 필요한, 어떤 감상이 필요한, 어떤 대리만족이 필요한, 우리 시대 모든 이들의 죽음이 추모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죽음들을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단 하나 그 모든 죽음의 수행자인 이 시대의 지배적 구조인 신자유주의 질서에 저항하는 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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