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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신학과 종교신학

2005년 일종의 신학적 '전향'(그다지 분명한 건 아니었지만) 이후로 나의 신학적 관심은 크게 두 갈래로 진행되어왔다. 하나는 주로 불교적 존재이해에 관심을 두는 영지주의적 종교신학이라 부를 수 있겠고, 또 하나는 정치와 대중의 문제에 관심을 두는 민중신학적 정치신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 두 개는 충돌하는 면이 있다. 영지주의(역사적 형태의 영지주의만이 아니라 그러한 경향을 통칭하는 표현임)는 반-대중적인, 대중을 떠나서 깊은 영적 비밀 속으로 들어갈 것을 권면한다. 아무리 대승적 교리와 모두가 부처임을 강조하는 선불교라 하더라도 여하간 스님들은 속세에 계시지 아니한다. 대중 혹은 중생이 부처요, 하느님임을 알기 위해서는 그들을 떠나 깊은 영적 수행 속으로 침잠해야 하는 것이다.

 

반면, 민중신학은 대중을 강조한다. 크게 대중의 고통을 증언하자는 흐름과, 대중의 구성적 역능(안병무는 이것을 민중의 '자기-초월'이라고 부른다.)에 복무하자는 두 흐름이 있고, 나는 명백히 후자쪽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는 민중이다. 또 자기초월적 민중은 역사를 변혁하는 그리스도이다.

 

사실 궁극에 다다르면 이 두가지가 충돌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스피노자를 통해 이 두 길이 다른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스피노자에게 있어서 신을 아는 현자가 되는 길은 또 한편으로는 집단적이고 정치적 구성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깨달음의 극치는 사실상 내가 내가 아니라는 것, 내가 곧 세계(신)의 한 부분이며, 그 자체라는 것을 아닌 것이다. 결국 개인주의와 탈속주의는 극복된다.

 

그러나 그 '궁극'은 나에게도 아직 '가지 않은 길'이며, 여전히 이 양자는 충돌하고 있다. 다만, 지금 나는 이 충돌을 '비극'이 아닌 '즐거움'으로 받아들이고 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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