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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아내의 생일... 난 술을 마신다.

아내도 이제 40을 넘기니 생일이 그닥 기다려지거나 반가운 날은 아닌 듯 한다.

가족들끼리 생일날 해야함직한 일(?)들을 치르고  명주씨는 동네 친구 아짐들과 술먹으러 나갔다.

애들에겐 영화를 틀어주고 난 혼자 맥주를 먹는다. 아까 고기집에선 소주를 먹었다.

내년이면 나도 50이다. 생일은 반갑지도 않고, 고작해야 평소 사고 싶었는데 가격 때문에 망설이던 것을 지를 수 있는 핑계가 생기는 정도나 좋다면 좋을까, 뭐 딱히 좋을 것도 없는 날이다. 그나마 요즘엔 사고 싶은 것도 없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가끔 듣던 대사 중에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는 관용어구가 있다.  너무나 바라던 일이 이루어진 경우에 나옴직한 대사다. 그들은 진짜 금방 죽어도 괜찮은 걸까? 

나이를 먹다보니 요즘은 진정으로 꿈꿔본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 말이다. 영화에서처럼 무슨 극적인 소원이 성취된 거랑은 거리가 멀다. 그냥 지금 살고 있는 이 순간이 너무 좋고, 이렇게 더 살아도 좋겠지만, 좋을만큼 좋아봤으니 더 살아도 딱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면 죽는다고 그리 미련이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상상 말이다. 

행복을 미루지 말라고 하는데, 그리고 나 스스로 그럴려고도 하고, 애들에게도 그렇게 얘기하곤 하는데, 정작 행복을 미루기라도 하고는 있는 건지., 그 조차도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자괴감이 들 때도 있다. 내 성격상 그런 자괴감도 많이 들진 않지만 말이다.

행여 암에 거린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은 없는 나이가 되어간다. 이미 됐다고도 볼 수 있고 말이다. 막상 암에 걸리면 이런 한가한 소리 못하겠지 후후. 암에 걸리면 죽음이 더 무서울까, 병원비나 생활비, 아이들의 앞날 등 맞닥뜨린 현실이 더 무설울까?

후자는 오히려 어쩔 수 없을 것 같고, 죽음만이라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어서 나도 덜 힘들고 주변 사람들도 덜 힘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여든다섯의 나의 늙은 어미니는  오래살다가 자식 앞세우는 건 아닌지 걱정을 하신다. '어머니 까짓 거 그럼 좀 어때요? 어머니 자식으로 살아서 행복했고, 우리 아이들의 아빠로 살아서 행복했고, 누구의 남편으로 살아서 행복했고, 무엇보다도 '나'로 살아서 행복했는데요 뭐. 더 살아도 이보다 더 행복하게 살 것 같지도 않은데요 뭘. 조금 아쉽기도 하지만 이 정도면 됐어요' 이렇게 말 할 수 있으면 더럽게 좋겠다. 어떡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도라도 닦을까? 푸헤헤

오랫만에 술먹고 글쓰니 참 실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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