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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의도<소풍>

내가 처음 느꼈던 할아버지들에 대한 거리감과 거부감, 그리고 낯섦은
어디에서 시작되는 것일까?
그러나 나는 봉도각 노인정의 문을 두들겼고, 그렇게 첫만남을 가졌다.
나는 할아버지들과 친구가 되고 싶었고, 그들은 기꺼이 나에게
손을 내밀어 주셨다.


시골 마을 노인정의 이야기를, 그것도 노년의 할아버지들만을 담은
다큐멘터리에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 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이 작업을 멈출 수 없었다.
내가 느꼈던 할아버지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
나의 짧은 방문으로도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연거푸 하시는
할아버지들의 모습.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그 이면에 자리잡은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늘 자식자랑을 할때면 목소리가 커지는 할아버지들의 자식에 대한 사랑. 별것도 아닌 것으로 싸우고 또 화해하는 할아버지들의 일상.
또 인생을 마감해 가는 시점에서 느끼는 감정.
언제 돌아가실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죽음에 대한 담대함과 삶의 낙천적인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일반인들이 노년기라 하면 한가지의 색깔로 일반화
하려고 한다는 얘기를 책에서 본적이 있다.
그랬다. 나 역시 그랬다. 무겁고 진중한 색깔인 회색과 검정색. 그리고
노년의 색깔로 대표되는 실버의 색으로. 봉도각의 할아버지들 개개인의
색은 달랐다. 다양한 모습과 개성을 가지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단지 할아버지인 것이 아니라 변호용이고 홍진유이고 남용조였다. 각각 이름을 가지고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각기 다른 색깔을 가진
인간이라는 거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한 인간의 모습들인 것이다.
봉도각 할아버지들의 모습을 봤을때 우리 노년의 모습도 조금 더 담대해지고 인간의 변해가는 모습으로 인정하고 싶었다.
지금 할아버지들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이해하고, 기억해야 되지 않을까.
그 시대를 대표하는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그 시대를 살아온 시골의
순박한 노인들의 모습을 기억하고 싶다.

할아버지들의 존재 자체가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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