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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에게 재산 물려주고 뒷전에 앉아있지 않는다

자식에게 재산 물려주고 뒷전에 앉아있지 않는다
October10, 2004
 
이 세상을 떠날 때 내 재산을 누구에게 줄까. 재산이 많든 적든 한번쯤 생각해 볼 만한 숙제다. 대부분 배우자나 자녀에게 재산을 남기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부모의 재산이 고스란히 자녀에게 간다는 고정관념이 흔들리고 있다.
자녀에게 준 재산을 되찾기 위해 소송을 제기한 부모들의 얘기를 가끔 신문에서 읽을 수 있다. 큰 재산을 자녀에게 줬던 부자도 있고, 작은 집 한 칸을 넘겨 준 어려운 부모도 있다. 세금을 피하기 위해 자녀의 이름으로 샀던 부동산을 되돌려 받으려는 부모와 내놓지 않으려는 자녀 사이에 긴 법정 투쟁이 계속되기도 한다.


아들이 부동산을 살 때 자신이 현금 얼마를 주었다는 사실을 세무서에 신고하여 아들로 하여금 증여세를 내게 했다는 ‘심술궂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지만, 자녀에게 재산을 준 것을 후회하는 부모가 꽤 많다.

그 이유는 자녀에 대한 부모의 기대가 충족되지 않기 때문이다. 효도를 기대했던 부모가 효도하지 않는 자녀에게 배신감을 느끼면서 갈등이 일어난다. 집을 넘겨주면 부모를 모시겠다던 자녀가 최소한의 부양도 하지 않아 생계조차 어려운 절박한 부모도 있다.

자식이야말로 노년을 보장해 주는 가장 안전한 보험이던 시대가 흘러가면서 일어나는 부작용이다. 자식의 성공이 부모의 안락한 삶을 보장해 주던 시대는 간 것 같다. 이제 부모는 자식이 얼마를 벌고 있는지, 얼마나 부자인지를 알 길이 없다.

“당신 아들 연봉이 엄청나다며?”라는 질문을 받고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 “네 연봉이 얼마라는데 사실이냐?”라고 물을 수 있는 부모가 많을까. 아들의 연봉을 묻는 것은 ‘사생활 침해’로 간주되는 세상이 됐다.

사정이 이쯤 되니 부모들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절대로 살아 생전에 재산을 물려 줘서는 안된다”는 것이 요즘 부모들의 철칙이다. 자식이 노년보험이라는 공식이 깨지듯이 부모의 재산은 곧 자식의 재산이라는 공식도 깨지고 있다. 내 뜻대로 내 재산을 쓰고 가겠다는 노인들이 등장하고 있다.

유산이나 생명보험금의 전부, 또는 일부를 의미 있는 사업에 기증하자는 운동도 일어나고 있다. 지금까지는 주로 장학금에 유산을 내놓는 경우가 많았지만 환경 보호, 문화 진흥, 가정법률 상담, 미혼모 자녀 보호, 의료 지원, 농어촌 돕기, 금주 운동이나 금연 운동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관심을 세계로 돌려 보는 것도 바람직하다. 최근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는 ‘유니세프에 유산 남기기’ 운동을 시작했는데, 열악한 환경에서 생존을 위협받는 세계의 어린이들에게 유산을 남김으로써 생명을 나누는 뜻 깊은 일을 하자고 호소하고 있다.

유니세프는 개발도상국의 어린이들을 위해 영양실조 치료센터 운영, 의약품 공급과 보건사업, 오지마을의 식수 개선, 교육 지원, 재해나 전쟁 지역의 어린이 보호 사업 등을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6ㆍ25 전쟁 이후 40여 년 간 유니세프의 지원을 받았던 고마운 경험을 되살려 1994년부터는 세계 어린이들을 돕는 지원국으로 나서고 있다.

유산 기증을 위해서는 유언장 작성과 보관, 유언 집행인 지정 등 법률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야 한다. 유언장 남기기 운동, 자녀들에게 유산 안 물려주기 운동 등을 벌이는 단체들도 있는데, 모두가 재물을 어떻게 뜻 있게 쓸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재물은 한 가족의 소유가 아니라 사회의 것, 공공의 것이라는 의식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자신이 땀 흘려 이룩한 재산의 일부가 개발도상국 어린이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쓰여진다면 사후에라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재물이 부모에게서 자녀로, 또 그 자녀로 이어지지 않는 것을 섭섭해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부모 자식 사이에 재산 싸움이 일어나는 현실을 개탄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갈등은 한국의 부모 자녀 관계가 지나친 의존에서 벗어나 정상화하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

이 세상을 떠날 때 내 재산을 어디에 남길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은 나의 생을 정리하는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굉장한 사람들만 증여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적더라도 증여를 함으로써 누구나 굉장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일보 장명수 칼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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