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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다들 고생하셨어요. 영상원 원재입니다.
김이찬 감독님! 어제 드라마 제작 관련해서 제가 드린 말씀, 전혀 생각도 않하시고 계시겠지만, 저는 계속 걸려서요. 오히려 전 감독님 뿐만 아니라, 여러 단위에서 드라마, 다큐 등이 만들어져 인터넷 뿐만 아니라, (주류영화제를 비롯해서) 각종 영화제, 상영회, 공중파, 케이블 등의 다양한 채널을 타고, 그때마다 활동가와 제작자들은 달려가 선전과 교육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어제 감독님의 작품은 당장 만들어진다면 규모 등에서 시간을 요할 것 같아 다른 형식을 제안해 본 것입니다.
여하튼, 기대됩니다. 이번 광고 패러디도 물론이고요. 혹시 드라마 작업 들어가면 연락주세요. 함께 할 수 있는 일은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도 하나 올려봅니다. 이 글은 한미 FTA가 체결된 후 평범한 사람의 일상을 상상적으로 구성해 보라는 심광현 교수의 제안으로 지난 주에 썼던 글입니다. 부끄러워 컴에만 두었었는데 어제 회의에서 고무되어 활동가분들과 공유해 보려 합니다. 훌륭한 글은 아니지만, 이 글을 바탕으로 얼마든지 각색이나 다른 포맷으로 전환하셔도 되고요. 저도 단편 드라마 (10분 내외) 시나리오로 한번 각색해 볼까 합니다. 주의집중 단계에서 써먹을 수 있도록요.
그럼, 오늘 오후에 또 뵈요.
한미 FTA 체결, 그리고 평범씨의 하루
전 화기 소리가 깊은 잠을 깬다. 금속과 같은 소리는 점점 커진다. 밤새 일하고 이제 겨우 잠들었는데 단잠을 깨우는 이 소리가 정말 듣기 싫다. 한미 FTA가 체결되기 전, 대학을 다닐 때 가졌었던 핸드폰 소리의 컬러링이 그리워진다. 팔의 무게가 천근만근으로 느껴져 수화기까지 팔을 들기조차 싫다. 하지만 다시 걸려온 번호로 전화를 걸게 되면 초당 수백 원하는 전화비를 감당할 수 없다. 지금 전화를 받지 않으면 분명 AIG보험은행사에서 준 문자수신기로 연락처가 남겨질 것이고, 연락을 하지 않아 일을 처리하지 못하게 되면 내 책임으로 돌릴 것이다. 억지로 받는다. 아니나 다를까. AIG보험은행사에서 걸려온 전화다. 상냥한 목소리는 오늘까지 보험료를 내지 않으면 4등급으로 낮출 수밖에 없다고 한다. 잠을 번쩍 깨고 하루만 참아달라고 애원했지만 소용이 없다. 그나마 설계사는 짤 릴 각오를 하고 하루 말미를 준거라나. 오늘 일과 시간이 끝나기 전까지 반드시 계열사 은행으로 이 달치 보험료를 내어야 딸 아이 아토피 연고 보조금을 지급하겠단다. 어쩔 수 없다. 임대주택청약적금이라도 깨야겠다. 아내가 화를 내겠지만, 처라도 지금 나라면 이 선택뿐이었을 것이다.
지 금이 몇 시지? 시계는 3시를 가리키고 있다. 억지로 자리에서 일어나지만 새벽인지 오후인지 구분을 할 수도 없다. 2007년 체결된 한미 FTA 이후에 미국과 일본, 유럽, 심지어 중국의 폐기물 산업들이 국내에 자리를 잡은 이후부터 맑은 날씨와 공기를 볼 수도 맡을 수도 없다. 특히 시도 때도 없이 불어오는 중국 황사가 심한 날이면 하루 종일 캄캄한 채 살아야 한다. ‘유해폐기물협약(바젤협약)’을 미국 기업이 어겼으니 법정에 고발해야 한다며 서명을 받으러 왔던 시민단체 회원이 생각났다.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오히려 기업 활동을 방해한다며 미국폐기물회사는 ‘국제투자분쟁조정센터(ICSID)'에 시민단체와 이를 방조한 환경자원부를 제소했고 결국 벌금 수백억 원을 물어야 했다. 이 벌금은 아직도 세금 명세서에 나온다. 어디 이 뿐이랴. 노조활동 방조했다고 제소, 천연기념물 항목을 줄이지 않았다고 제소, 대학생 몇몇이 동아리 방에서 할리우드 영화 디브이디를 봤다고 제소, 심지어 우리나라에 진출한 미국 기업이 망하자 한국의 제도가 미비해서 그런 것이니 책임지라며 제소한다. 한미 FTA 이후 한국은 완전히 미국의 금고가 된 셈이다. 이 모든 재판은 판판히 한국 정부가 졌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서민들 지갑에서 빠져 나간다. 제소 충당 세금만 수십 장에 이를 정도다.
앗! 쓸데없는 괜한 생각을 하다가 벌써 시간이 삼십분이나 지났다. 서둘러 집을 나서야겠다. 아직 잠이 덜 깼나보다. 부질없는 생각을 하는 것을 보니. 어차피 하루살이 인생인 것을. 하지만 생각할수록 답답하고 열이 받는다. 나름대로 수천만 원을 들여 대학까지 나왔는데, 그것도 한미 FTA 이전에는 잘 나갔던 교대를 나왔는데 교사는커녕, 학원 강사도 못해먹고 있는 내 처지를 생각하면 울화가 치민다. 그때 공부를 못해 미국으로 도피 유학 갔던 친구 놈은 한국으로 돌아와 국내 미국대학분교 대비반 학원을 강남에 차리더니 일 년에 수십억 원을 번다. 그나마 나는 군대에 있을 때 한미 FTA 체결이 터져, 하사관 2년 해서 모은 돈으로 졸업이나 할 수 있었던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나와 비슷한 형편의 동기들 중에 졸업한 놈은 겨우 두어 명뿐이니 말이다. 한미 FTA 체결이 터지고 논이 다 넘어가자 아버지는 농약을 드셨다. 어머니는 홧병에 쓰러지셨고 형은 나보고 제대하지 말고 하사관을 하라고 조언을 했다. 그래서 4천만 원이라도 벌어 둘 수 있었다. 그때 그러려니 했던 동기들은 다 졸업을 제대로 못했다. 미국으로 간 돈 많은 놈들을 제외하면 말이다. 하지만 4천만 원은 돈도 아니었다. 겨우 졸업은 했지만 이미 들어선 미국 대학 분교들 때문에 교직에 나갈 수가 없다.
입 학 할 때만 해도 우리 집안에 선생 났다고 춤추시던 어머니 생각이 난다. 그땐 나름대로 국립학교라고 학비도 쌌는데.. 지금은 오히려 前국립대학 출신이라고 학원에서도 받아주지 않는다. 싼티나는 것처럼 느껴져 학원 이미지 버린다나. 그렇다고 공립초등학교에서 일하자니, 지금 수위 정도의 수입도 기대하기 힘들다. 그나마 형이 소개해 준 아파트 수위자리로 연명하는 내 신세를 생각하면 울화가 치민다. 하긴, 형은 아직 그 성질 못 버리니까 안 된다 한다. 정말 큰 일이 나 봐야 자존심 다 버리고 강남에서 미국분교대학 대비반 학원하는 친구에게 강사 자리 알아 달라고 엎드릴 거라나. 정말 그 짓은 못하겠다. 그 놈이 어떤 놈인데.. 그 놈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 속여서 논 다 팔게 하고 거기에 아파트 세워서 부자 된 놈이다. 뭐 우리 아버지만 그렇게 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말하자면 아버지의 원수나 마찬가진 거다. 형은 그런 속절도 모르고 나만 만나면 빨리 술 사들고 그 놈 찾아가라고 난리다.
울 화가 치미니 좀 정신이 든다. 목이 타 아내와 딸을 부르니 아무 대답이 없다. 마루로 나가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려다 그만 둔다. 물이 거의 없다. 1리터 한 병에 3만 원인데다가, 딸애가 아토피라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고 인터넷 정보 사이트에서 알려 줘 나나 아내는 물을 거의 마시지 못한다. 병원에 데리고 가지도 못하는데 이렇게라도 딸에게 도움을 줘야 마음이 편하다.
몸 도 마음도 천근만근이라 좀처럼 발을 떼기 힘들지만, 딸 생각하니 서둘러 AIG 보험은행사에 가야겠다는 의지가 생긴다. 피붙이가 무섭긴 무섭다. 자식 3명 나으면 보조금 준다고 해서 나름대로 나아보려 했지만, 환경 호르몬 때문에 더 이상 아이를 갖기 힘들다고 했다. 그나마 겨우 얻은 이 딸애도 아토피 때문에 너무 고생이 심하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아토피로 친구들이 고생은 했어도 치료약이나 연고를 구하기 힘든 것은 아니었는데... 지금은 한 개에 수십만 원 한다. 그나마 난 보험이 3등급이어서 1/2 가격에 살 수 있는 게 다행이다. 한미 FTA 이후에 재정 형편에 따라서 보험 등급이 나뉘어졌다. 그땐 막 졸업한 상태라 뭐가 뭔지 잘 몰랐는데, 보험 3등급 미만이면 감기약도 수십만 원을 줘야 구할 수 있다. 그나마 나는 나와 내 처가 돈을 버니 3등급을 유지할 수 있다.
그 러고 보니 다행히 오늘은 아내에게 일이 있었나보다. 이렇게 혼자 있을 때면 횡한 마음이 들지만 그래도 일이 있어 돈을 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께 감사드려야 한다. 더군다나 아내는 몸 파는 일은 안 하지 않는가! 엊그제 동료와 소주 한 잔을 하는데 한미 FTA 이후 윤락가에 아이 데리고 나와 있는 젊은 주부가 그렇게 많다고 한다. 홀아비 노동자인 그 친구가 모처럼 윤락가에 갔었는데, 옆에서 인형이랑 노는 아이를 보고는 차마 얼굴을 들지 못하고 그냥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갔다고 꾸지람을 했지만, 누가 그 놈을 비난하랴. 또 누가 그 젊은 주부를 비난할 수 있을까. 다만 내 아내가 그렇지 않다는 것에 감사드릴 뿐이다.
아 내는 고등학교 친구가 소개하는 집에 식모로 나간다. 일이 매번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 나가면 집에 큰 도움이 된다. 최소한 보험 3등급을 유지하는데 아내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더군다나 한 달에 수백만 원을 내야 하는 유아원에 아이를 보낼 수 없는데 아내가 식모를 하면서 아이를 볼 수 있는 것도 다행이다. 하지만 앞으로 초등학교에 아이가 들어갈 생각을 하면 갑갑하기만 하다. 질 낮은 공립학교에 보낸다 해도, 한 달 수십만 원을 어떻게 마련할까. 백 여 만원 하는 중학교 고등학교는 또 어찌 보낼까? 수 천 만원의 대학 보낼 상상은 지금 하기도 싫다. 차라리 공부를 못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이 아비 심정을 아이가 이해해 줄까? 그래도 아내는 자기도 열심히 벌면 되지 않냐며, 희망을 가져보자고 한다.
신 입생 환영회에서 처음 만났을 때 아내와 친해졌다. 만나면 만날수록 너무 훌륭한 교사감이라는 생각에 오히려 내가 존경을 했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해서 한미 FTA 체결 전이기는 하지만, 그 어렵다는 강남 학교로 발령도 났었다. 그때만 해도 우리 연애 전선이나 결혼 전망도 장밋빛이었다. 하지만 한미FTA가 터지고 나자, 전교조였던 아내는 0순위로 짤리고 말았다. 강남의 대부분 초중고등학교는 미국 법인이 다 사갔기 때문이다. 솔직히 지금에 와서는 아주 조금 아내가 원망스럽기도 하다. 그때 전교조 탈퇴했으면 지금처럼 고생하지는 않았을텐데...
아 내가 교사로 일할 땐 나름대로 우리 부부는 오페라와 발레 팬이어서 심심치 않게 공연도 보러 다녔었다. 지금도 처음 수위를 할 때 수위실 바로 옆에 있는 집 라디오에서 흘러 나왔던 <나비부인>의 “어떤 갠 날”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촌스럽게 왜 울었는지.. 지금은 오페라나 무용은 물론이고 수 만원하는 연극 관람도 꿈꾸지 못한다. 가끔 영화를 보러 나가지만, 정말 할리우드 영화는 보기 싫다. 스크린쿼터가 없어지고 그나마 일 년에 두어 편 만들어지는 한국 영화는 꼭 보러가려 했지만, 아이가 생긴 이후에는 한 번도 못 갔다.
지 금 중고등학교 애들한테 한국 영화가 한 때엔 아시아에서 제일 잘 나갔다고 말하면 아무도 믿지 않는다. 이 아이들에게 한국 영화는 골치 아프고 재미없거나 저질 영화일 뿐이다. 영화는 미국에서만 만들어지는 줄 아는 아이들도 있다니 무슨 말을 더 할까. 하긴, 나도 ‘한류’란 말이 있었는지 가물가물하다. ‘한류’하면 교과서에서 배운 ‘두레’나 ‘솟대’같은 단어처럼 느껴진다. 그나마 텔레비전에서 하는 2000년대 초반 영화를 보는 재미에 산다. 그런데 5분 상영하고 5분 광고하는 채널밖에 없어서 한 편을 2-3일에 나누어 봐야한다. 그러면 어떠리. 10년 전 그 유명했던 장동건과 전지현을 볼 수 있는데. 나름 영화광인 아내는 지금도 강동원만 보면 마음이 설렌다고 한다. 그래서 비교적 중간 광고가 별로 없는 영화 채널 하나만이라도 신청하자고 하지만 한 채널을 한 달 보려면 수 만원을 내거나 수 천만 원하는 일체형 텔레비전을 구입해야 하기 때문에 망설이고 있다. 그 텔레비전을 사면 텔레비전 회사가 보유한 채널들을 그래도 싼 가격에 볼 수 있기 때문에 없는 형편이라도 구미가 당기긴 한다. 물론 공짜 채널이 없는 건 아니다. 미국 000채널은 어떤 텔레비전에서라도 볼 수 있다. 난 이 채널이라도 보자고 하지만, 아내는 결사코 반대한다. 국어보다 더 중요해진 딸의 영어 공부를 위해서라도 난 봤음 하지만, 아내는 우리가 이런 나락으로 떨어진 게 다 미국놈들 때문이라면서 아직도 미국과 관련한 것이라면 화부터 낸다.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미국과 관련 없는 게 지금 어디 있을까? 하나에서 열까지, 머리에서 발끝까지, 심지어 대통령이나 장관도 미국 유학을 다녀오지 않으면 될 수 없는 세상인데. 아내는 나보다 더한 이상주의자다. 하긴 그러니 내가 이렇게 무능력한 남편이어도 참고 살아주는 거겠지.
은 행 일과 마감 시간인 5시가 다 되가는데 버스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한시라도 빨리 은행에 가려고 이 회사 소속 버스 전용 차선이 있어 거의 막히는 일이 없는 미국회사버스를 탔는데 낭패다. 전용차선에서 막히지 않고 달렸으면 십 분이면 갈 거리인데, 도통 움직이질 않는다. 십 분마다 두 배의 요금을 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점점 마음이 다급해진다. 돈도 돈이지만, 은행 마감 시간이 지나면 보험료를 못 내는 게 더 큰 문제다. 3등급에서 4등급은 하늘과 땅 차이이기 때문이다. 아이 아토피 약도 두 배를 내야 살 수 있고, 감기라도 걸리면 거의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10분 구간에 만 원으로 비싸긴 하지만 지하철을 타는 건데, 잘 못 했다. 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있다며 정부가 외국계회사에게 지하철을 넘겼을 때 노동자들이 파업하는 걸 보고 이기주의자들이라고 했던 내가 지금도 부끄럽다.
그 건 그렇고 왜 버스가 이리도 가질 못할까? 기사에게 누군가 물으니 기사양반도 잘 모르겠다고 한다. 라디오를 틀어보라고 하자 어차피 소용없을 거란다. 그래도 틀어보라고 승객들이 아우성이라 기사는 궁시랑 거리면서 라디오를 켠다. 이리 저리 돌리지만 온통 영어 방송뿐이다. 그나마 한국 방송은 광고전용방송으로 도대체 무슨 일 때문에 미국버스전용차로도 막히는 일이 있는 건지 보도하지 않는다.
4 시 30분이다. 이렇게 기다릴 수 없어 내려달라고 했다. 달려가면 겨우 시간을 맞출 수는 있을 것도 같다. 군대 제대 이후 처음으로 쉼 없이 달려본다. 차도는 온통 꽉 막혀있다. 오랜만에 뜀박질을 하는데다 백층짜리 빌딩들이 덮쳐 오는 것 같아 어지럽다. 빌딩 2-3층마다 있는 피트니스 클럽의 외국인들과 성형미인들의 런닝머신 속도를 힐끔 보면서 달리니 더 멀미가 날 것 같다.
시 간은 왜 이리 빨리 갈까. 드디어 멀리 AIG 은행 빌딩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도 빌딩이 다가오지 않는다. 백여 층의 빌딩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엄청나게 크고 화려한 광고 스크린이 겨우 눈에 들어 온 것을 다 왔다고 착각한 것일까. 인도가 사라진지 오래기 때문에 차도를 꽉 매운 차들 사이를 이리저리 피하면서 빌딩이 있는 언덕을 넘는다. 언덕만 넘으면 빌딩이 바로 앞이다. 야트막한 언덕일 뿐인데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오로지 딸만 생각하자. 아내만, 나의 식구들만 생각하자. 오늘까지만 내면 4등급은 면할 수 있다.
언 덕을 넘어서니 차가 왜 막혀있는지 알겠다. 한미 FTA 이후 게릴라가 되어 산으로, 지하로 들어갔던 농민들이 도심 시위를 나온 것이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어디서 그리들 숨어 있다 쏟아져 나왔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하지만 그 신기함도 잠시, 수천 명의 경찰들과 또 수백 명의 AIG 은행 사설 경찰들이 농민들을 에워싸고 있다. 난 건물 안에 용무가 있는 평범한 시민일 뿐이라고 애원하듯 소리치며 경찰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그때 갑자기 경찰들이 대치하고 있던 농민들에게 달려들어 무자비하게 곤봉으로 내리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우리 가족이 우선 살고 봐야지. 숨을 돌리고 시계를 보니 다행히 몇 분 남았다.
고 개를 돌려 은행 빌딩으로 들어서는데 어디선가 많이 본 얼굴이 농민 무리에서 보인다. 아버지? 아버지가 아닌가! 분명히 군대에 있을 때 농약을 마시고 돌아가셨다고 했는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어 봐도 분명 아버지이다. 다시 보니 아닌 것도 같다. 시위대로 다가가려 했으나 전면의 대형 시계가 보인다. 이제 1분 뒤면 은행 문은 다친다. 아니야. 보험등급은 다시 돈을 내면 되지만 아버지가 맞다면 지금밖에 기회가 없지 않는가! 아버지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아버지는 개처럼 끌려가고 만다. 아. 어떻게라도 하고 싶지만, 주변의 팔짱을 끼고 서서 바라보고만 있는 수없이 많은 시민들 사이에서 선뜻 나설 수가 없다. 점차 아버지는 멀어진다. 결국 시계는 5시를 가리킨다. ‘띵동’ 문자가 온다. “보험 4등급 처리 되었습니다.” 눈물도 나지 않는다. 개 같은 내 인생. 개 같은 한미 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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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m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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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구체적인 상상이 담겨있군요.재현하는데 많은 공력이 들겠지만, 몇가지 사건들로 압축하여 잘 다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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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애초 시작이 글로써 읽힐 것만을 생각했기에, 영상으로 그대로 옮기자니, 거의 블럭버스터 수준이 되었습니다. 몇가지 정보와 감성을 전달할 수 있는 압축적이면서 비슷한 사건으로 다시 엮어 볼까합니다.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