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먼과 자본주의의 역사

2004/09/16 22:06

 "[비나리]  왕꽃선녀님 : 노래불러줘, 노래"에서 일부 발췌


 
흡혈귀 전설은 우리나라에는 존재하지 않는 전설이다. 북구에 흔한 전설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흔한 귀신이나 도깨비 얘기에 사람의 피를 먹고 그로 인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전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흡혈귀가 지금처럼 흔한 전설로 변한 데에는 시대적 배경이 존재한다. 귀신 얘기 중에서 가장 자본주의와 잘 어울렸던 얘기가 바로 드라큐라 얘기이다. 20세기의 경제사를 얘기할 때 꼭 기억해야 하는 숫자들이 몇 개가 있다. 1929와 1945 그리고 1974 같은 숫자들이 그렇다. 1945는 2차대전이 끝난 시기이고, 이때부터 1974까지의 30년을 ‘영광의 30년’이라고 한다. 무얼 해도 잘 되었고, 자본주의가 후기 산업사회로 전개되면서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신화를 만들던 시기이다. 우리나라의 경제적 발전의 배경은 바로 이 시기에 벌어진 2차 세계노동분업 과정에 성공적으로 편입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우파들이 좋아하는 숫자이다가 1945에서 1974까지에 해당하는 연도들이다.

 

반면에 1929는 대공황의 숫자이다. 플로리다에 대한 투자붐이 깨지면서 발생한 미국발 대공황이 마샬 플랜으로 막 일어나기 시작하는 독일 경제에 1차 타격을 주고, 여기서부터 다시 발발한 농업공황이 일본을 덮치고 결국 우리나라까지 영향을 주게 된 세계적인 대공황이 여기에서부터 출발하게 된다. 케인즈라는 우울한 보헤미안에게 미국 최고의 자문관 자리를 주게 된 계기가 이 대공황 시절이다. 자본주의는 본질적인 투자붐을 제어할 수 없고, 그래서 소비에트 경제가 더욱 우수하다는 사회주의의 1차 경쟁력을 대부분이 지식인들이 별 무리없이 수용하는 데에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것이 이 1929년의 공황이다.

 

박정희의 경제정책, EPB 시스템이 바로 이 1929년에 충격을 받은 유럽 지식인들이 만든 소위 mixed economy 정신에 있다는 얘기는 박정희 시절을 그리워하는 우파 경제학자들이 어지간해서는 얘기하지 않는 지적이지만, 실제로 우리나라의 경제정책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의 교묘한 선을 타던 프랑스의 경제계획 시스템이나 가장 좌파적인 시스템을 채택했다고 하는 이집트의 경제정책 보다는 훨씬 더 사회주의 시스템에 가깝다. 그래서 세계은행에서는 이 시절의 한국 경제를 ‘동원경제(national mobilization)’이라는 붙여준다. 정치적인 담론을 탈탈 털고나면, 이승만은 훨씬 더 자본주의적인 경제를 그렸다고 한다면, 박정희는 그보다는 훨씬 더 사회주의적인 경제 운영에 매혹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역설적이지만, 경제계획이라는, 전혀 자본주의답지 않은 경제계획의 첫 그림을 그렸던 사람은 말기의 이승만이다.

 

이렇게 세계적으로 사회주의 시스템이 자본주의 경제에 새로운 돌파구로 등장하게 될 계기를 만든 1929년이 만든 대중 스타가 두 개가 있는데, 첫째가 채플린 현상이다. 스타인 백의 분노의 포도를 비롯한 일련의 문학은 대공황이라는 현실 앞에서 자본주의의 비극과 비인간성 그리고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 휴머니즘에 호소하면서 서로가 사랑할 것을 요구한다. 그래, 남은 것은 사랑밖에 없어... 어쩌면 채플린을 가장 정면으로 계승한 사람은 우디 알렌이 아닐까라고 곰곰 생각해보게 된다. 맨하탄을 공간으로 지긋지긋하게 사랑하는 사람 없이는 단 1분도 숨쉴 수 없을 정도로 영혼이 ‘걍팍’한 사람들을 그리는 우디 알렌의 시각은 악랄하다 못해 지긋지긋하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대공황이 만든 최고의 스타는 드라큘라다. 드라큘라의 영화화가 이 때 만들어지고, 왜 내가 이렇게 어렵게 살아야 하는지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흡혈귀라는 코드는 그야말로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세상에 대한 이해를 대변하는 코드이다. 이후에도 흡혈귀 영화는 큰 공황이 있을 때마다 언제나 돌아온다. 1974년에도 흡혈귀 영화 붐이 있었다. 물론 공포영화는 여름이면 만들어지지만, 피를 빠는 흡혈귀가 유독 유행하는 여름은 공황과 관련되어 있다.

벰파이어와 샤먼의 차이는 접신의 기능이 가지고 있는 차이 정도라고 하면 지나친 단순화일까? 20세기의 최후로 달려가던 90년대가 죽음과 죽음을 잊기 위한 퇴폐가 극단적으로 강조되던 시기라고 하면, 21세기 초반은 어설픈 휴머니즘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2000이라는 숫자를 넘어들면서 더 이상 세기말 현상에 집착할 수 없는 예술의 고민이 여기에 있을런지도 모른다.

 

...(중략)...

 

일일드라마에 샤먼과 접신 그리고 내림굿과 씻김굿이 등장하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물론 여기에 자매가 사랑한 한 남자와 또 짝사랑하는 남자에 대한 얘기들 그리고 신데렐라식의 신분상승이 버무러져 있지만, 그래도 접신에 의한 변신이 저녁 드라마 한 가운데로 들어온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만큼 사람들이 살기가 어렵다고 느끼는 것 같다. 대공황의 한 가운데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흡혈귀에 대해서 열광하였던 것만큼, 접신에 대한 얘기가 살기 어려운 시절의 한 가운데를 통과하는 것 같다.

 

참여정부가 매일 같이 하나씩 만들어내는 기본계획들을 보면서, 우리나라에만 매우 특별하게 존재하는 이 기본계획이라는 것의 특징이 무엇일까 가끔 생각해보게 된다. 전체적인 계획경제는 이제 사라졌지만, 부문별로 만들어내는 계획체계는 이제는 부문별로 익숙하게 남아서 우리나라의 정책에 대한 기본틀로 자리를 잡고 있다. YS 때도 기본계획이 있었고, DJ 때에도 기본계획이 있었다. 2001년에 친환경농업기본계획이라는 5개년 계획이 등장했지만, 2004년 2월의 농어촌종합계획이라는 10개년 계획이 나오면서 6헥타르 7만호 정책으로 농정의 기본틀이 바뀌었다. 골프장도 지자체의 기본계획에 들어가 있다. 이 기본계획이라는 정책틀과 민주주의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가끔 질문해보게 된다. 기본계획에 대한 문제점을 제시할 때에는 불법이라는 말을 쓸 수가 없다. 법에 의해서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절차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기본계획에 불법은 거의 없다. 정부라는 레비아탄이 움직이는 방식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기본계획이다.

 

정책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일반 시민이 도대체 뭔가 문제가 있다고 느끼면서도 체계적으로 문제점을 제시하기 어려운 것은 대부분의 정책이 기본계획과 실행계획 그리고 연간계획이라는 틀을 가지고 움직이기 때문에, 도대체 이게 왜 이래라는 말 한 마디를 하기 위해서는 이 정책의 기본틀을 이해해야 한다는 어려운 점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담당 공무원에게 한 마디도 더 추가하지 못한다. 반면 기본계획과 법령까지 한 번 읽어보았다면, 담당 공무원이 대단히 친절하게 돌변하거나 아니면 그야말로 약한 모습을 보이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강한 모습을 보이는 변신을 경험하게 된다.

 

시대가 어렵기는 어렵다고 생각을 한다. 접신과 샤먼이 일일드라마에 매일 밤 저녁상을 찾아오는 걸 보면 확실히 특별한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

정치권과 남자들이 국가보안법 가지고 거대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동안 밥상 앞에 앉아있어야 하는 사람들이 무당의 접신들인 모습을 보면서 시대를 읽고 있다는 걸 과연 상상이나 할까? 누가 뭐라고 해도 위기의 한국 사회라는데 동의하고 싶다. 유쾌한 접신이 사회의 유쾌한 돌파가 되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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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juniyaho 2004/09/17 00:23

    이 글 재밌구먼.... 잘 읽고 가요.

    perm. |  mod/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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