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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05/05/27

"당신의 자유를 우리의 자유를 위해 사용해달라"

[아시아 민중의 인권현장] "당신의 자유를 우리의 자유를 위해 사용해달라"
인도네시아의 또 하나의 식민지, 웨스트 파푸아의 외침
 
"내용만큼이나 그녀의 목소리가 중요합니다" 청중 중 한명이 도나(Donna, 웨스타 파푸아 여성과 아동의 권리증진을 위한 연합의 활동가)에게 발제문을 계속 읽어 내려가 줄 것을 요청했다. 여기저기서 격려의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영어를 잘못해서 혹시라도 자신이 상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까 걱정이 된다"는 도나의 떨리는 목소리 위로 2005년 웨스트 파푸아(WEST PAPUA)를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과 여성들의 삶의 흔적이 드리워졌다.

회의가 열리고 있는 장면. 왼쪽에 걸려있는 것이 웨스트 파푸아의 기 ‘모닝 스타’다.


참혹한 땅 웨스트 파푸아, 인도네시아 자국 군에 살인과 협박 면허 부여

우리에겐 그저 파푸아 뉴기니(PAPUA NEW GUINEA) 정도로 알려져 있는, 지도에서조차 그 국명을 잃어버리고 인도네시아 령으로 표기된 웨스트 파푸아는 19세기 네덜란드의 식민통치를 거쳐 지금은 인도네시아의 식민지로 살아가고 있는 땅이다. 웨스트 파푸아의 참상을 세계에 알리고 40년에 걸친 독립투쟁을 지원하기 위한 5번째 국제회의가 2005년 4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필리핀 마닐라 필리핀 대학교(Universty of Phillippines, UP대학)에서 열렸다. 아시아와 태평양 인근 국가 등 과거 식민상태를 경험했거나 이 국가들의 독립을 꾸준히 지원하고 있는 15개국(동티모르, 아체,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 영국, 아이슬란드 등)에서 40여명의 인권 활동가들이 참석한 이 국제회의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행사를 저지하기 위해 필리핀 정부와 필리핀 대학교 등에 압력을 가해오면서 4일 내내 팽팽한 긴장과 보안 속에서 치러졌다.

국제회의는 15개국에서 40여명의 활동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진행됐다.


국제 연대는 작은 회의실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열정' 속에서 시작됐다. 웨스트 파푸아에서 삼엄한 경비를 뚫고 필리핀으로 날아온 베니(Benny)는 "인도네시아는 대규모의 이주정책과 발전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웨스트 파푸아를 철저히 파괴하고 있으며 웨스트 파푸아의 역사와 문화를 다룬 책들을 모두 금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인도네시아 군과 경찰은 파푸아인에 대한 살인과 협박, 납치 면허를 가진 것처럼 활개를 치고 있다"고 웨스트 파푸아의 상황을 설명했다. 도나는 웨스트 파푸아 여성들과 아이들의 참혹한 현실을 소개했다. 도나는 "보건의료와 법, 경제적, 사회적인 면 등 모든 일상에서 위기가 발생하며 최근 몇 년 사이에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매해 1600여명 이상의 여성들이 아이를 낳는 과정에서 의료서비스가 부족해 죽어가고 있으며, 아이들은 초등교육도 제대로 받을 수 없다. 또한 일상적인 강간과 납치 등의 위험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다"며 국제사회의 연대를 호소했다.


논쟁보다는 '실천'에 무게 둔 국제회의

두개의 기조발제가 끝난 뒤 참석자들은 곧바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이 몇 시간에 걸쳐 쏟아져 나왔다. 장시간에 걸친 회의였음에도 누구 하나 자리를 뜨지 않는 진중함 속에서 참석자들은 논쟁보다는 구체적 실천을, 거대한 계획보다는 가능하고 지금부터 시작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논의했다. 이것은 동티모로의 독립 투쟁을 지원하기 위한 '동티모르를 위한 아시아태평양 연대회의(Asia-Pacific Conference for East Timor, APCET)'의 결성과 활동을 통해 그들이 터득한 '운동의 지혜'였다. 또한 현재 식민지 상태 혹은 수탈을 겪고 있는 민중이나 이들의 활동을 지원해왔던 활동을 토양으로 한 '고민'이었다.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토론은 진지했다. 참석자들은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고 제안했다.


3일간의 회의를 통해 참석자들은 아시아와 태평양의 인근 국가들의 인권침해에 종합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아시아태평양연대회의(Asia Pacific Solidarity of Coalition, APSOC) 결성을 결의했다. 또한 '웨스트 파푸아를 위한 국제연대 준비위원회(Steering Committee of the International Solidarity Meeting on West Papua)'를 중심으로 한 국제적 캠페인의 시작을 선언했다. 참석자들은 웨스트 파푸아의 독립과 현재 웨스트 파푸아에서 발생하고 있는 인권침해를 근절하는 것이 목표임을 분명히 했다. 참석자들은 웨스트 파푸아를 점령하고 살해와 고문, 강간 등 참혹한 인권침해를 일삼고 있는 인도네시아 군의 전원 철수를 주장했다. 또한 웨스트 파푸아의 정치적 수인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석방을 요구했다. 국가와 집에서 가해지는 모든 종류의 폭력으로부터 웨스트 파푸아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국제사회의 강력한 지원과 국제적 법률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 역시 참석자들의 목소리다. 참석자들은 12월 1일을 '웨스트 파푸아 국제연대의 날'로 정하고 앞으로 인도네시아의 인권침해 사례와 증거 수집, 교육자료 편찬, 이슬람사회와 국제사회에 대한 로비 및 연대 활동 등을 강화해나갈 것이다.


결연한 고백 앞에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63년 인도네시아의 점령이래 인구의 10%가 살해되고 매일마다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 웨스트 파푸아의 현실을 다시금 인지하고 참석자들은 아쉬운 이별을 고했다. 특히 위험을 무릅쓰고 다시금 핍박받는 땅, 웨스트 파푸아로 돌아가야 하는 베니와 도나에 대한 걱정은 참석자들 모두에게 묵직한 무게였다. 이미 자카르타 공항에서 인도네시아 공안경찰이 혐의를 찾기 위한 시도를 하고 베니가 조만간 체포될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다행히 베니와 도나는 아직까지는 건재하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나는 웨스트 파푸아의 미래에 대해 매우 비관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회의는 그런 나를 바꾸었고, 나는 이번 회의를 통해 매우 큰 힘을 받았습니다. 회의 결정에 따라 나는 모든 것을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라는 고백과 함께.

세계의 무관심과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수탈의 역사를 살고 있는 웨스트 파푸아는 말한다. "당신의 자유를 우리의 자유를 증진시키는 데 사용해달라(Please use your freedom to promote ours)"고. 또한 한국 사회가 무엇을 했으면 좋겠냐는 어리석은 질문에 답한다. "그것은 오직 당신(한국민중)만이 알며, 할 수 있는 것들을 지금 하라고(Only you know. Please now do what you can 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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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놓고 정원에 갈 수 있는 것, 그것이 내겐 독립"

[인터뷰] "마음 놓고 정원에 갈 수 있는 것, 그것이 내겐 독립"
도나(웨스타 파푸아 여성과 아동의 권리증진을 위한 연합 활동가)
 
도나-위험하다는 것은 알지만 올 수밖에 없었다는 웨스트 파푸아 활동가. 안전을 위해 얼굴부분을 모자이크 처리했다.


웨스트 파푸아의 독립을 지원하기 위한 제5차 국제회의가 지난 4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는 두명의 웨스트 파푸아 활동가들이 참석해 웨스트 파푸아의 참상을 세계에 알렸다. 그 가운데 한 명인 도나를 인터뷰했다.

도나는 파란색이 좋다고 했다. 그 색이 자신에겐 '희망'을 상징한다며. 2001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다는 도나는 그저 자신을 평범한 '웨스트 파푸아에 사는 두 아이의 엄마'라고 소개했다.


◎ 당신이 하는 일과 당신의 조직을 설명해달라

나는 웨스트 파푸아 여성과 아동의 권리증진을 위한 연합(Association for the Empowerment of Papuan Women and Children)의 활동가다. 우리는 여성과 아이들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 일하며 특히 독립을 위해 일한다. 구체적으로 우리는 여성의 실태에 대해 조사하고,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웨스트 파푸아인으로서의 '자기결정권'을 갖기 위한 교육의 시행을 주장하고 그 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이 자리에 참석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나는 내 나라가 독립될 것이라는 꿈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 위험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피해갈 수만은 없다.

◎ 지금 웨스트 파푸아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내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여성과 아이들이며, 그들이 적절한 교육을 받고 자신의 권리를 갖는 것이다. 또한 자기 결정권을 갖는 것이다. 당신도 알다시피 파푸아인이 계속해서 사라져가고 있다(파푸아인의 인구증가율은 0.3∼1.5%에 불과하며, 인도네시아에 의한 학살과 대규모 이주정책으로 인해 파푸아인은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우리가 만약 여성과 아이들을 계속 잃는다면 우리는 다시 그것들을 찾을 수 없다.

◎ 당신에게 있어서 독립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독립을 한다고 해도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하는 여성과 아동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만약 우리가 자유롭게 모든 분야에서 일할 수 있다면, 좋은 건강을 가질 수 있고, 마음 놓고 정원에 갈 수 있다면 그것이 내겐 독립이다. 그런 날이 온다면 여성과 아동의 문제도 풀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 웨스트 파푸아 문제와 관련해 한국사회가 무엇을 하기를 바라는가?

이미 발제 때도 언급했다. 제발 당신의 자유를 우리의 자유를 증진시키는데 사용해달라고. 파푸아의 상황과 문제에 대해 고민해라. 그리고 한국 사회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선택해라. 무엇을 할 수 있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오직 한국 사회만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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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동티모르 웨스트 파푸아

[해설] 또 하나의 동티모르 웨스트 파푸아(West Papua)
수탈의 역사와 독립 투쟁을 중심으로
 
1. 빼앗긴 웨스트 파푸아

1883년부터 네덜란드, 독일, 영국이 뉴기니아 섬을 두고 쟁탈전에 들어가는데, 네덜란드가 섬의 서쪽 지역을, 영국이 섬의 북동부를, 독일이 남동부를 차지하게 된다. 섬의 동쪽 지역은 1975년 '파푸아 뉴기니'로 독립 하지만, 섬의 서쪽 지역은 계속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는다. 네덜란드는 1952년 유엔헌장 73조에 따라 파푸아인의 자결권을 인정하고 탈식민지화 과정을 거쳐 독립을 보장해 주기로 약속한다. 이에 대해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의 동인도를 인도네시아에 이양한다는 헤이그 협약에 따라 뉴기니아 섬의 서쪽 지역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다. 그러나 헤이그 협약에 의하면 인도네시아에 이양할 동인도 중 웨스트 파푸아는 제외되었고, 네덜란드도 인도네시아 정부의 요구를 거절한다. 뉴기니아 섬의 서쪽 지역은 독립을 준비하며, 1961년 12월 1일 나라 이름을 '웨스트 파푸아'로, 나라의 상징인 국기를 '모닝 스타(morning star)'로 정하고 의회를 창설한다.

회색으로 표시된 인도네시아 영토 가운데 가장 동쪽에 있는 섬이 웨스트 파푸아. 동쪽으로 노랗게 표시된 지역이 우리가 알고 있는 파푸아 뉴기니.


당시 인도네시아 대통령 수카르노는 군사적 방법을 통해서라도 웨스트 파푸아를 지배하려 했고, 미국이 적극 인도네시아를 지원한다. 미국은 1950년대 수마트라와 북 술라웨시(North Sulawesi)에서 발생한 지역봉기를 지지하여 인도네시아와 관계가 좋지 않았다. 게다가 인도네시아가 소련과 동유럽으로부터 무기를 구입하자 인도네시아와의 관계회복을 원했던 것이다. 미국 케네디 전 대통령은 당시 네덜란드 외무장관에게, 인도네시아를 달래지 않으면 공산주의 국가가 될 것이므로 웨스트 파푸아인들에게 자결권을 인정하기 전 일정 기간 인도네시아의 지배를 인정하자고 주장한다.

결국 인도네시아와 네덜란드는 1962년 8월 15일 뉴욕협정을 체결한다(1962년 9월 21일 유엔 사무총장 비준). 그 내용은, 네덜란드가 그해 10월 1일 권력을 유엔임시행정위원회에 이관하고, 유엔임시행정위원회는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인도네시아에 권력을 이관하며(1963년 5월 1일 이관), 6년 안에 자유롭고 공정한 방법으로 독립 또는 인도네시아 지배 여부에 대한 의사를 웨스트 파푸아인들에게 물어 보자는 것이다. 위 협정에는 웨스트 파푸아 성인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주인도네시아 미국 대사관이 웨스트 파푸아인의 80%-90%가 독립을 원한다고 보고하자, 미국은 유엔에게 인도네시아의 지배를 확고히 하기 위한 방안 모색을 요청한다. 유엔은 그 요청대로 인도네시아 군인들이 선발한 1022명에게만 투표권을 부여하기로 결정한다. 인도네시아 군인은 이들에게 '우리는 (독립이 아니라) 인도네시아를 원한다(I WANT INDONESIA)'에 투표할 것을 강제하고, 이에 반대할 경우 헬리콥터에 태운 뒤 떨어뜨리겠다고 협박한다. 1969년 8월 2일 투표 결과 인도네시아 지배가 만장일치로 통과된다.

이와 같이 웨스트 파푸아는, 자신들의 자결권을 행사할 겨를도 없이 미국과 유엔의 각본에 따라 인도네시아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전 유엔사무부총장이었던 나라심한(C.U. Narasimhan)은 4년 전 "그 투표는 속임수에 불과했다. 그 당시 유엔은 웨스트 파푸아 문제를 가능한 한 빨리 해결하려고 했었다. 그 누구도, 웨스트 파푸아인 100만명의 인권이 짓밟히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2. 인도네시아 식민지 지배

1) 공동체, 문화 파괴

웨스트 파푸아는 240여개의 부족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부족마다 언어와 문화를 가진, 세계 문화적으로 매우 소중한 가치를 지닌 곳이었다. 그런데 인도네시아는, 1963년 5월 1일 웨스트 파푸아를 지배한 뒤 '개발' 이데올로기를 주장하면서, 인도네시아 문화를 침투시키고 인도네시아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것을 강요했다. 인도네시아는 웨스트 파푸아의 역사, 문화, 종교 등이 기재된 책을 금지했고, 그들의 축제나 경제 관행들을 모두 금지했다.

또한 인도네시아 정부는 인도네시아 내 인구밀집 지역에 있는 주민들을 웨스트 파푸아로 이주시키는 정책을 시행하고, 군인들은 웨스트 파푸아 고원 지대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의 마을을 불태우거나, 원주민들을 살해하거나 숲으로 내쫓고 있다. 강제이주정책은 웨스트 파푸아인들의 문화를 파괴할 뿐 아니라, 그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 현재 웨스트 파푸아에 원주민 비율은 25%에 불과하다.

2) 인권침해

군대는 웨스트 파푸아에서 정치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불법 벌목, 상권보호, 보호야생동물 밀매 등을 통해 막대한 부를 챙기고 있다. 그리하여 군대는 고의로 지역문제에 개입하고, 존재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사람을 살해하거나 폭력을 유발하는 등 분쟁을 조장하고 있다(현재 군경 병력은 1만 5천에서 2만명이나 된다). 또한 과도한 군경의 투입은 체계적이고도 구조적으로 인권침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웨스트 파푸아인들은 평화적인 저항수단으로 독립의 상징인 모닝 스타(morning star) 국기를 게양하는데, 인도네시아 정부는 무력으로 이를 탄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무수한 사건들이 있으나 대표적인 예를 들면, 인도네시아 군대는 1998년 비아크(biak) 섬에서 평화적으로 모닝 스타 국기를 게양하려는 사람들에게 발포하여 8명을 사망에 이르게 했고, 2004년 12월 1일 자야뿌라 외곽인 아베뿌라에서도 국기 게양식을 위해 모인 사람들 향해 발포하고 국기를 밟아 찢어버렸다.

2000년 12월 7일에는 신원불상자가 자야뿌라 경찰서에 공격을 하여 경찰 1명이 사망했는데, 인도네시아 경찰은 독립운동을 활발히 진행하는 고원 지역 출신 학생들의 기숙사를 급습하여 그들을 체포한 뒤 고문을 하여 2명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 2004년 10월 인도네시아 군대의 폭격을 피해 숲으로 피난간 주민들이, 식량과 추위를 막을 옷이 부족하여 53명이 한꺼번에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점령한 1963년부터 지금까지 웨스트 파푸아인 10만명(전체 인구의 10%)이 살해당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망사건에 책임이 있는 군인과 경찰들은 사실상 면책특권을 누리고 있다.

파푸아인들의 저항. 뒤에 보이는 국기가 모닝스타. [출처] www.westpapua.ca


한편, 웨스트 파푸아 독립을 위한 정치토론이나 모닝 스타 게양식 참여 등은 반란죄나 국가 모독죄에 해당한다. 앰네스티 미국지부가 2005년 2월 1일 발표한 성명서에 의하면, 1998년 후반부터 독립 운동을 이유로 재판을 받고 있는 웨스트 파푸아인이 최소 72명이라고 한다.

웨스트 파푸아 여성들의 인권침해는 매우 심각하다. 인도네시아 인구 정책에 따라, 여성들은 피임을 강제 당하고 있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여성의 몸에서 피임기구를 빼줘야 하는 영구 피임의 경우, 의료진이 이를 제거할 줄 몰라 건강을 해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군경에 의한 강간 사건도 많이 발생한다. 학교에 난입한 군인들이 어린 소녀들을 끌고나가 강간하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다.

3) 자원수탈

웨스트 파푸아에는 지하자원이 매우 풍부하다. 세계에서 구리, 금광으로 가장 큰 회사인 프리 포트(Freeport)는 인도네시아 군대의 도움으로 원주민들의 땅을 빼앗고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다. 영국 회사인 브리티쉬 페트롤리움(British Petroleum)은 2005년 3월 인도네시아 정부로부터 웨스트 파푸아 북쪽에 있는 빈투니 베이(Bintuni Bay)에서 천연가스를 개발할 권리를 인가 받았다. 세계에서 마지막으로 보존되어 있는 다우림 중 하나가 웨스트 파푸아에 있는데, 인도네시아 군부와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벌목 회사들이 빠른 속도로 이 지역에서 벌목을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군대는 이들 기업의 안전을 위하여 일부러 분쟁을 조장한 후 그 지역 안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3. 웨스트 파푸아인들의 저항

웨스트 파푸아인들은 인도네시아의 침략과 계속되는 생존권 위협에 저항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투쟁해 왔으나, 인도네시아는 그들을 무력으로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있다.

웨스트 파푸아인들이 1960년대는 파푸아 독립운동(FPM, free papua movement)을 결성하고, 낡은 총과 창, 활, 화살, 도끼 등을 이용하여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정부는 확고한 지배를 보장하기 위하여 필요 이상으로 진압하고 지도자들을 사전에 제거하였는데, 1963년부터 1969년 8월 이른바 국민투표가 있기 전까지 6년 동안 인도네시아 정부 때문에 사망한 웨스트 파푸아인이 약 3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약 2만명의 웨스트 파푸아인들이 2000년 자야뿌라에 모여 의회를 구성하고 인도네시아 정부 당국과 대화를 시도하며 외부에 웨스트 파푸아 문제를 전파하기로 하였으나, 인도네시아 군대는 2001년 11월 의장인 데이스 엘루이(Theys Eluay)를 살해했다.

웨스트 파푸아인들은 웨스트 파푸아가 평화로운 땅이 되기를 소망하며 평화적인 방법으로 독립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정부는 동티모르에서 그랬던 것처럼 온갖 수단을 동원해 이들의 열망을 짓밟고 있다.

웨스트 파푸아인들은 전 세계 민중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우리의 자유를 위하여, 당신들의 자유를 보태달라(Give your freedom to promote ours)"고.

파푸아 아이들의 미소가 위기에 처해 있다. [출처] www.westpapua.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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