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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어바웃] 셧다운제?…“우리 그냥 놀게 해주세요!”

셧다운제?…“우리 그냥 놀게 해주세요!”
셧다운제 반대 게임 집회 연 청소년 4인 인터뷰…’10대들의 유쾌한 반란’
 
2011/11/16 16:04  이동섭 기자 noctisk@
 

 “술이나 담배가 나오는 노래는 불건전하대요. 오락실이나 멀티방은 탈선의 온상이래요. 노래방은 18세 미만 출입 금지 업소래요. 너희들은 이런 거 할 때가 아니래요. 이제는 게임까지 막아요. 해도 되는 건 공부뿐이에요.”

 

 지난 12일 늦은 11시, 청계천 앞마당에서 10대들의 집회가 벌어졌다. 오는 20일부터 발효되는 게임 셧다운제에 반대한 청소년들이 한바탕 게임판을 벌인 것이다. 촛불을 들지도, 피켓을 들지도 않았다. 대신 그들은 조이패드와 키보드, 마우스를 잡았다. 셧다운제가 시행되는 시간 동안 ‘대놓고’ 게임을 하겠다는 것이다.

 

 게임어바웃은 ‘셧다운? 닥쳐!(Shut down? Shut up!)’란 이름으로 진행된 이번 집회를 준비한 진보신당 청소년위원회 준비모임 4명을 만나 셧다운제에 대한 청소년들의 살아있는 생각을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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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부터 이장원, 두호, 한민성, 김로디 >


 

‘노는’ 집회? 그것 참 신기한 일일세

 

 준비모임 위원장을 맡고 있는 한민성군(19세)은 “그냥 게임이나 하자”라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고 운을 뗐다. “계획을 구체화 하는 과정에서 셧다운제를 실시한 여성가족부 앞에서 하게 되었다. 청소년을 통제 대상으로 규정한 것에 반대한 것이다”며, “시간을 밤중으로 고른 것도 상징적이다. 늦은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백여 명 남짓한 사람이 모여줬다”고 말했다. 꽤나 성공적인 행사였다는 자평이다.

 

 이어 “셧다운제를 통해 여가부는 청소년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말한 한 군은 다른 여가 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준비 또한 없다고 지적했다. 청소년이 마땅히 즐길 만한 다른 문화 콘텐츠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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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샘 게임 집회, 100여명 이상이 참가했다고 한다 >

 

 실제로 지난 8월에는 아케이드 센터 및 멀티방 등의 복합게임물유통업소가 청소년 유해업소로 지정, 오는 2012년 9월부터 출입금지령이 내려지게 된다. 같은 법안에서 인터넷 신문과 인터넷 뉴스 서비스도 청소년 유해매체물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도록 변경되어 사후 연령확인의무와 본인확인제도까지 의무적으로 실시되게 된다.

 

 노래방과 PC방에 시행되고 있는 강제 귀가 제도에 이어 온라인 게임에는 셧다운제가, 아케이드 센터에는 출입금지령이, 인터넷 매체에는 본인 확인 및 연령확인 제도라는 족쇄가 채워지는 것이다.

 

 “청소년에게는 문화를 즐길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다. 입시지옥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는 것이다”고 말한 한 군은 청소년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아직까지 ‘보호받아야 하는 미숙한 존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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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소년이 아니시네요” >

 

 여성가족부 페이스북에서 있었던 해프닝을 이야기 하면서 “그래서 청소년이 나서서 이야기하겠다는 것 아닌가”고 말한 한 군은 “교육 문제도 그렇고, 셧다운제도 그렇고 청소년이 당사자이자 수혜자고,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청소년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조직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셧다운제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한 군은 얼마 전 수능 트위터 사건으로 일약 유명세를 탄 인물이다. “트위터 봇(자동 전송 기능)을 사용하고 나왔는데 시험장에 경찰들이 오더라”며 웃은 한 군은 “이 점만 봐도 사회가 청소년에 대해 가진 의식을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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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군은 트위터 사건으로 고발당하기도 했다 >

 


셧다운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요.

 

 김로디 당원(가명, 17세)은 셧다운제에 대해 “밤새 게임을 하는 것이 건강권을 침해하는 것은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인데 청소년에게만 차단 조치를 취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정말로 게임이 유해하다면 게임이 아닌 다른 대체재를 주어야 하는데 이런 시설은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실제 여성가족부는 지난 2011년 예산안 발표를 통해 청소년 정책 및 역량 강화에 178억원을 투자하고 (전년대비 4억 증가) 청소년 방과후 활동 지원에 155억을, 수련시설 건립에 9억을, 유해환경 개선 및 보호 종합정책 추진에 15억을 투자, 2011년 기준 연인원 2백30만명 가량을 수용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보충학습을 기본 공통과정에 포함시키는 등 여가 활동을 즐길 수 있는 장소가 아니라 또 다른 학업을 위한 장소로 변모하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게임 중독의 주 계층이라고 밝힌 초등학교 고학년생과 중, 고등학생에 대한 관련 커리큘럼이 거의 없는 수준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대책은 되지 못한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게임 시위에서 아이디어 뱅크 역할을 한 두호군(19세)은 “청소년들에게서 게임을 금지하기 이전에 청소년들이 게임을 하는 이유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입시가 청소년층에게 주는 과중한 스트레스는 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유례없는 사회 현상이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청소년들의 여가 선용 활동은 '공부와 관계없는 딴짓'으로 치부 당한다. 여가 활동을 즐길만한 사회 인프라 역시 극도로 제한되어 있다. 예산 배정조차 거의 받지 못한 청소년들에게 여성가족부가 홍보하는 래프팅, 승마, 야구 관람과 같은 여가 수단은 꿈일 뿐이다.

 

 그들의 목소리가 단순히 공부를 하기 싫다거나 사회 시스템에 반발하는 치기 어린 투정에서 오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청소년 복지 제도에 대한 본질부터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는 것인가?

 

 이장원 부위원장(19세)과 한민성 위원장은 “청소년 관련 정책은 대부분이 ‘금지령’에 기반을 뒀다”며 “커피를 마시지 못하게 한다거나, 청소년들의 SNS 접속을 막는 등의 행동은 청소년을 주권을 가진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고 말했다. 셧다운제는 ‘이상한’ 발상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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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민선 아이연대 사무국장, ‘셧다운제는 청소년 통제 아니다’ >

 

 또한, ‘건강권과 수면권 보장을 하기 위해 다소의 인권을 침해해도 좋다’고 발언한 여성가족부 공식 페이스북 답변을 인용하며 “인권을 지키겠다면서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 건강권과 수면권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수능시험을 위시한 대학 입시제도부터 철폐해야 될 것”이라며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시종일관 밝은 분위기에서 진행된 인터뷰였다. 하지만 인터뷰를 마치고 넌지시 “셧다운제 찬성이나 이런 모임 하는 단체는 비싼 오피스텔도 지원받고 매일 통닭도 먹고 그런대요” 라고 말하며 리필을 잘 해준다는 싸구려 식당으로 가는 이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일말의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제 성인이 되어 사회로 나아갈 이들은 더 이상 셧다운제와는 관계가 없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은 모든 청소년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바를 이룰 수 있는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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