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던 20대 중반에는 송곳처럼 살리라 마음 먹었었다.

 

평소의 삶은 송곳의 몸통처럼 둥글더라도, 세상의 부조리에는 날카로운 끝으로 가차 없이 구멍을 내는 그런 송곳 말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반 십 년이 지난 지금을 반성하자면

 

송곳은 커녕 칼국수 반죽도 못 자르는 밀대가 되어 버린 듯하다.

 

체제에, 부조리에 反하는 듯하나 실은 그것을 넓게 펴는 밀대 말이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나는 지금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송곳이 쉽게 지나가도록 얇게 만드는 중이다.'라고 합리화하고 있다.

 

그렇게 때에 찌들어가던 중 우연히 지승호의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라는 김규항 인터뷰집을 읽게 되었다.

 

지금도 종종 사용하는 내 닉네임이 'B급좌파'인데, 이는 김규항 선생이 2001년 낸 칼럼집에서 그대로 표절한 것이다.

 

그만큼 그 당시에 나는 김규항의 시대정신에 매료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만난 그의 올곧은 정신에 회개(?)하게 하는 중이다.

 

이제부터 펼쳐질 이야기는 서평인 동시에 나름 신앙고백인 셈이다. (혹은 간증이라고 하나?)

 

 

김규항 선생은 이 인터뷰를 통해 '잘 살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신 그 '잘'이라는 기준을 지금 세상의 가치관과 다르게 갖자고 말한다.

 

나 역시 그러한 생각을 하고 살았다.

 

여전히 잊지 않는 내 꿈이 바로 세계평화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군축을 통한 세계평화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이를 두고 허무맹랑한 공상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리스도교 신자인 나로서는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다.

 

사람이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고, 심지어 하늘에까지 올라간 걸 믿는 나는

 

모든 국가가 총과 칼을 버리고 행복하게 사는 것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아직 이런 생각을 안 하고 산다는 것이다.

 

'아직'이 아니라, '전혀' 안 하고 살고 있다. 오히려 평화보다는 긴장된 국가 관계를 선호하는 편이 더 강하다.

 

때문에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동료들이 필요했다. 세상을 바꿀 새로운 생각을 가진 인재들이 필요했다.

 

이러한 지극히 '파시즘'적인 생각으로 난 교사가 되었다.

 

그리고 작년에 이어 올해 급훈도 '세계평화'이다.

 

그러나 현재의 나는 아이들에게 이러한 상상을 할 수 있는 교육을 제대로 못하고 아니, 안하고 있다.

 

공부 잘 해라,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 등은 기본이고,

 

이제는 좋은 대학 가려면 지금부터 열심히 해야 한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등의 철저히 세속적인 이야기를 서슴치 않고 있다.

 

그것도 나도 모르는 사이 자연스럽게 말이다.

 

그야말로 내 송곳이 내 손을 찌르고 있는 형국이다.

 

그와중에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를 읽게 되었다.

 

내 뒷통수를 후려 갈긴 이 인터뷰 말미에 김규항 선생은 이렇게 마무리 짓고 있다.

 

"'잘사는 게 뭐냐'는 질문을 잃어버리는 순간, 지배계급이나 부자들의 가치 기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그저 가련한 인생이 되는 겁니다.

 

 하지만, '잘사는 게 뭐냐'는 질문을 잊지 않을 때, 거꾸로 그들이 불쌍해지는 거죠."

 

그동안 나는 보물지도를 잃은 해적선처럼 산 것 같다.

 

그의 표현대로 도발성을 잃은 예술가이고, 책으로만 사유한 반쪽짜리 지식인인 셈이다.

 

 

21세기 광야에 울려퍼진 세례자 요한의 외침을 들었으니 이제 회개하고 다시 왼쪽으로, 다시 아래로 움직이련다.

 

다시 정신차리고 송곳으로 살겠다.

 

이를 위해 김규항 선생이 말한 것처럼 자기 성찰, 영성적인 삶도 함께 하겠다.

 

체게바라도 '진정한 혁명가는 사랑이라는 위대한 감성에 의해 인도된다.

 

살아 있는 인류를 향한 위대한 사랑을 구체적 사실로 전한시키기 위해 매일매일 투쟁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에서 사람들과 함께 한 예수의 삶으로 다시 돌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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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30 22:38 2010/03/30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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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무  2010/04/11 23: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계평화, 저와같은 꿈을 꾸고 계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