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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찾아서


 
 
고통을 찾아서
 

1.
진지함과 의미와 무거움을 요구하는 이유는
모든 사람에게 모든 행복이 주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모든 고통이 나누어지기를 바라기 때문이야.


2.
한 시대를 진실하게 산다는 것은,
개개인의 비극 속에 뛰어 들어가
개개인이 비극적 주인공이 되고,
비극 그 자체의 한토막이 되어야 하는 상태가 아니라,
비극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는 간격을 유지하면서
비극의 한 토막이라도 규명해보는 일이다.
오규원. 꽃피는 절망.
이 말은 지극히 지식인 적이라고 생각해
현명하고 조용한 자들이 적당한 거리에서 지루해지는 그런거
그것 역시 비극 그 자체의 한토막이다.


3.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자유주의 경제를 주장하고 있을 때,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딸이 굶어 죽는 것을 본 마르크스가
골방에서 사회주의 이론을 써 내려간 사실처럼,
한 시대를 사는 우리가 대면하는 삶의 모습과 고통의 크기는
모두 다를 수 밖에 없다
보는 시각과 대응방식의 차이에 대한 이러한 것을
칼만하임은 지식사회학이라는개념으로 설명하는데
이건 '중산층'인 누군가가 낮은 곳으로 접근할 때 혼란을 감소시킨다.
-서구 이성중심의 개념. 자신을 어느것에도 닿지 않고
어느 것에도 뭍어나지 않는 객관적인 존재로 상정. 별로군요.


4.
다큐멘터리 the weather underground의 누군가 인터뷰:
"우리가 했던 그런 폭력적인 방식의 투쟁은 어쩌면
우리가 가진 중산층으로서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것 이었을지도 모른다."


5.
[계급성과 계급의식은 일치하지 않을수도 있잖아요]
계급의식이 '전복을 꿈꾸는 강도'를 말하는 건 결코 아니다.


6.
스트리트 펑크와 예술학교출신 펑크의 반목


7.
yippie가 되기를 원하는 elite


8.
누구도 완전히 등을 돌리지 못한다.
세상을 저주하고, 증오하고 부정하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세상의 가치를 완벽히 거부하지는 못한다.
가령 자본가나 부자를 혐오하면서도
그들의 지위나 성공의 일면들을 한 편으로는 동경한다.
그들의 비싼 개와 예쁜 인테리어와 고급 핸드백을.
그런 자신의 비굴이 혐오스럽고 자신의 혐오스러운 부분과
부자들의 모습중 어느 부분이 닮아 있기 때문에 더욱 완강하게
거부해 보려고 노력하는 거


9.
몇년 굴러먹어 고도로 진화된 클러버들이
이국 취미에 눈독을 들여서 구미를 통해 들어온 동양신비사상을
사랑할 때 기분이 좀 안좋아지는 이유가
표면적인 문화같은 달콤한 것만 쏙쏙 빼먹어서 그런건가 싶었다.
네팔의 옷과 음악과 향에 심취하면서도
네팔의 정치적인 상황이나, 네팔 노동자의 한국에서의 대우 같이
쓴 현실에는 고개를 돌리는 그런 것 말이다.
(어떤것이 누구에게 달고 쓴가 하는 것도 역시 취향의 문제지만.)
근데
네팔옷도 좀 입고 향도 피우고 음악도 듣고 차도 즐겨 마시고
이주노동자 문제도 적절히 관심을 가지는 부유한 좌파를 봤는데
역시 기분이 좀 안좋아졌다.
'낭만파'들이라서 싫어하는게 아니냐 해서
일 순간 싫었던 모양새들을 떠올려 보니
맞는 부분들은 꽤 있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10.

일본의 건축가가 옴진리교에 대해 쓴 글을 보았다.

옴진리교에서는 머리카락을 자르거나 목욕을 하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신성한 힘이 사라진다고 해서 그것을 금지했고

사람들은 지하실에서 천으로 대강 둘러싸고 동물처럼 구르며 지냈다. 바닥에는 포동포동한 회색쥐들이 떼를 이루며 다녔다고 한다.

그는 옴진리교에 '생활의 양식'이 없음을 꼬집었다.

미국의 셰이커 교의 경우 그들의 생활의 양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모든것을 자급자족했으며, 외부세계와가치관이 달랐으므로

식사,의복과 가구에서도 외부와 다른 고유한 특징이 있었다.

그러나 옴진리교에는 그런양식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그는말하는데,

내가 보기엔 옴진리교에도 일관된 흐름이 있다.

목욕을 금지해서 몸을 지저분하게하는것을 신념으로 가지는 종교는

신도들을 타인과 사회로부터 떨어뜨릴 것이고

공간을 구획하지 않는것은 생활의 규칙성에서 벗어남을 뜻한다.

(어린애들 버릇고친다는 주말 sbs프로그램에서

'생각하는 의자'를 구석에 두는 것도

특정 장소를 구획하는 것이 질서를 부여해주는 데서 기인한다)

옴진리교는 결국

죽음을 향한 종교라는 일관된 흐름아래에서 마땅히 자멸했다.

 

어쨌든

생활의 양식이 존재하지 않는 종교와 이념과 사상은

결국 죽은 종교와 이념과 사상이 될 뿐이다 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좌파들도 신혼 가구로 앤틱 가구를 구매하는가?

스키니 진과 디올옴므를 예쁘다고 생각 하는가?

sg 워너비의 노래를 즐겨 듣는가?

 

 

11.

'우리안의 소부르주아성' (구멍)

내지는 인류의 공통된 방향성

9번의 부유한 좌파에게 느꼈던 불쾌감은
그런것이 원인인 것 같다.

어떤 좌파는 네팔과 이주노동자의 정치 상황에도 관심을 갖지만,

구미에서 들여오는 역오리엔탈리즘에 행동을 빚진다.

어쩌면 오리엔탈리즘 뿐만 아니라 맑시즘이니 아나키즘이니 하는

사상의 조류 역시 구미에서 들여오는 것이므로 그런식으로

가는 것이 불가피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20대에는 맑시즘과 아나키즘에 관심을 가지며

락큰롤을 들으며 반항하고 술마시며 이리저리 굴러본다.

30대 중반 이후에는 등한시했던 난폭한 자연을 어머니로 여기며

인디언 음악과 생태와 노자 장자 선 인도종교가에 관심을 가진다.

한국에서도.

중국에서도.

일본에서도.

프랑스에서도.

아메리카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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