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쿠바의 연인

오늘은 엄마... 를 보았다.

 

엄마...

 

딸들이 엄마한테 섭섭하고 서운하고

더 달래고 싶고 안기고 싶고 그런 거

엄마한테 못 받아서 그런건가.

그렇게 말하면 우리 엄마 엄청 상처받으신다.

사실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갈구한다.

우리 언니가 한창 정신분석을 할 때쯤에

정신분석의 레파토리가 그렇듯 엄마와의 관계,

엄마에게 무엇을 서운하게 느꼈던가 그런 것을 같이 얘기한 적이 있었다.

나도 언니도 어린 시절 어느 순간은 외갓집 또는 친가에 가 있었는데,

그 기간이 어린 우리에게는 엄청나게 긴 시간이었고,

마치 엄마는 일하느라 우리를 어딘가로 오랫동안 맡겨놓은 사람, 그렇게

기억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 얘기를 들은 엄마는 상처를 받았다. 사실 그 기간은 엄마에 의하면 한 달 남짓한 시간이었을 뿐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일을 하지도 않았고, 온전히 우리를 키웠다고 하셨다.

기억에 있는 순간부터 엄마는 일을 하였고, 우리는 늘 우리끼리 놀았다.

그게 특별히 싫다고 느끼지 않았는데, 굳이 엄마의 역할을 끄집어냈고, 또 엄마한테 서운하다 느꼈던 것은

어쩌면 이론 때문일지도 모른다. 지금 네가 누군가한테 무언가를 갈구하는 것,

너의 어린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이야. 네 엄마가 널 그렇게 만들었어.

그렇게 하고 나면 마음이 편한가. 그렇게 하고나면 뭔가 치유되는건가.

 

영화와 상관없는 얘기로 흐른다.

엄마는 그냥 엄마다. 커서 보는 엄마는 영화에서의 엄마처럼

여자이고, 또 엄마이다. 가끔은 여자로서 함께 대화를 나누고

아빠한테는 미안하지만 함께 아빠 흉을 보고,

아내로서의 고됨은 이제는 더이상 싫다 하시고

그럼 엄마는 누구에게 여자인가. 궁금해지기도 하고.

 

영화 속의 러시아 속담.

네가 처음도 아니고 끝도 아니다. 그리고 인생은 계속된다.

그리고 되돌아서 걸어가는 러시아 여성들의 이야기.

(내가? 네가? )

 

문득 그래, 싶었다.

하지만 처음도 아니고 끝도 아니지만, 다음은 언제 오냐고 묻고 싶었지만,

인생은 계속된다. 그리고 난 그 러시아 여성들처럼 돌아서서 말없이 걸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쿠바의 연인

 

끝나버린 혁명의 공간, 쿠바.

생태도시 아바나 속에도 사람들이 살고,

정부를 비판하고, 억압당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해보이는 사람들이 산다.

 

어쩌면 한국과 쿠바는 양 극단에 서 있을지도 모르겠다.

소비할 것이 넘쳐나서 소비를 위해 정신없이 일하고 사람들 사이를 헤쳐나가야 하는 곳

소비할 것이 없어서 일은 하는 척 하고 낡은 차를 발로 밀고 가는 곳

 

어떤 곳을 지향할 거냐고?

한국도 쿠바도 아닐 수 있지만,

극단의 한국에서 지향해야할 모습은 쿠바다.

소비의 세상에서 1초 1초 헐떡거리는 공간에서 그나마 숨 쉬고 살려면

쿠바처럼 살아야 한다.

여기는 쿠바가 아니니까.

 

그러면 새로운 공간이 새로운 시간이 여기에도 생길 것이다.

새로운 관계도 생길 것이다.

한국에서 알지 못하는 사람과 사람과의 새로운 관계.

모순 속에서 피어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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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7 20:29 2010/10/27 2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