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22일

 

원래 티켓팅을 한 출국날짜는 19일이었으나 모든 채비를 하고 공항까지 와서 출국일자  변경을 해야했다.

수수료를 거의 30만원 가까이 내고.....ㅠ

대사관에서 발급해준 아이 여권의 생년이 출생증명서의 생년과 다르게 기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여차저차 우여곡절 끝에 22일 다시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왔다. 그 도장 하나 받기 위해 인천공항까지 왔다갔다하고 화가 날 법도 한데 화는 커녕 제발 이번에는 통과시켜주세요 하는 간절한 마음 뿐이다. 품에 안은 아이도 뭔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는지 칭얼댈 준비를 하고, 다행히 서류를 다 갖춘터라 오래 걸리지 않아 도장을 받아 나올 수 있었다.

티켓팅을 하고 들어갈 때도, 나중에 인도네시아에서 비자를 받을 때도 가는 곳마다 통과가 간단치는 않다. 국적이 다른 어른과 아기, 애엄마도 아닌데 애를 데리고 가니 당연히 이상할 수밖에. 인천공항에서 도착비자를 신청하고 왔었어야 바로 자카르타 공항에서 입국 수속을 밟을 수 있었을텐데, 출입국에서 두근반 세근반 하니라고 다 잊어버리고 자카르타 공항에서 비자를 받기 위해 줄을 섰다. 약간 헤매는 사이 줄은 금방 길어졌고, 창구는 여러개인데, 실제 오픈한 창구는 하나뿐... 어깨에는 여행짐을 매고, 앞에는 아이를 들쳐매고, 한 손에는 아이 용품까지 들고 줄을 서 있으려니 1분이 한 시간은 되는 것 같다. 인천에서 입고 온 옷을 채 갈아입지도 못하고 한참을 그렇게 기다리고 있으려니 점점 땀도 삐질삐질 흐르고, 아이도 땀을 줄줄 흘리면서 짜증을 내고 허부적 거리다가 못 참겠는지 막 꼬집기까지 한다. 조금만 참아, 제발... 그렇게 어르고 얼러서 겨우 비자를 받았다. 

7시간 비행을 어떻게 참아줄지 걱정을 했더랬다. 다행히 아이는 7시간 중 5시간을 잤다. 중간에 깨서는 기내식으로 나온 과일 이유식을 맛있게 잘 먹어주었고, 그러고는 비즈니스 클래스로 자꾸 가고 싶어해서 몇번 가게 두었다 데리러 들어갔더니 역시 함부로 들어오지 말라는 지적이 돌아온다. 좀 빈정상하긴 하였지만 당신은 일등칸을 타는 일등시민이니 마음껏 그 쾌적함, 조용함 누리시오 할 수밖에... 사실 비행기를 타자마자 뒷자리에 앉은 승객 한 분이 아이와 좁은 좌석 하나에 힘들게 앉아 있는 나를 배려하여 승무원에게 퍼스트 클래스에 빈 좌석이 있으면 옮겨줄 수 있지 않느냐고 물어보았었다. 물론 씨알도 안 먹힐 소리... 빈자리가 많긴 참 많더라....

그렇게 가고 싶은 곳도 못 가게 하고 억지로 또 들쳐업었더니 그제서야 아빠, 엄마를 찾으며 울먹거리다 잠이 들었다. 아이를 데리고 있다보니 그나마 여기저기 울어대는 아이들이 있는 것이 마음이 편하고 안심이 된다.

 

자카르타 공항의 출구에서 아이 아빠의 형을 만나기로 하였다. 그런데 공항의 출구는 어찌나 많은지... 이건 도저히 그냥은 만나질 수 없는 구조다. 다행히 핸드폰 번호를 가져온 터라 전화를 걸어 KFC 앞에서 만나자고 이야기하는데, 의사소통이 어려워 한참을 이야기했다. KFC 앞에서 조금 기다리다 보니 어떤 이들이 나를 향해 걸어와서 말을 건다. 분명 이 사람들이 맞을텐데 불안해서 자꾸만 당신이 00의 형이 맞느냐 하고 자꾸만 확인을 하였다. 아이는 그가 낯설어서 나한테서 떨어지려고하지 않았고, 가방을 뒤져 여름옷으로 갈아입히는 사이 아이를 마중나온 친척들이 더 많이 왔다. 그 중에는 꼬맹이들도 있어서 라셸은 금방 꼬맹이들이 맘에 들었는지 별 탈없이 친척들을 따라가 주었다.

한참을 서서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잘 지내겠지. 오히려 한국에서보다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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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4 22:04 2012/02/04 2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