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23일 새벽 4시

 

사실 투어에 참여할 생각 따윈 없었다.

투어에 대한 기억은 늘 그다지 좋지 않았고, 아무래도 썩 내키진 않았다.

 

새벽 4시, taksi, becak 을 외치는 사람들 사이를 황급히 벗어나 지도 속 여행자 숙소가 많은 거리에 들어섰다.

새벽 4시는 한국이라면 무척 이른 시간. 이곳도 이른 시간이긴 마찬가지이지만, 아침 일찍 간단한 아침거리 장사를 시작하는 할머니, 간간히 집 앞에 나와있는 사람들. 골목은 그다지 무섭지는 않았다. 역에서 걸어 첫번째 만난 골목 입구에서 만난 이는 이미 full이니 들어갈 필요 없다 한다. 이런......

다시 걸어 두번째 골목에 들어섰다. 역시나 모든 집의 문은 닫혀 있고, 문 앞에는 full 이라는 야속한 단어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골목골목을 걷다보니 긴 여정으로 쌓인 피로가 점점 밀려와 어깨도 아프고, 어디에서든 빨리 쉬고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러던 차에 어느 게스트 하우스(조금 좋아보이는) 문이 살짝 열려 있어서 들어갔더니 역시나 아무도 없다. 에라, 여기서 쉬다가 주인 오면 어차피 방이 없을테니 그 때 나가자 하고 한 30분 앉아 쉬었을까. 주인이 들어오고, 새벽부터 제 멋대로 들어와 앉은 불청객은 바로 쫓겨날 수밖에.

다시 골목을 빙글빙글 도는 찰나에 한 여행사 앞 사람들이 숙소를 찾냐고 하며 자신들이 싼 숙소를 알아봐주겠다면서 지금은 모든 숙소가 다 차 있으니 일단 투어에 다녀오라고 한다. 어차피 가려했던 보로부두르. 프람바난까지 포함하면 아침 식사 포함 70000Rp.(지금 생각해보면 비싸지만, 그땐 뭐 괜찮네, 싶었다.... 아직 현지 물가에 대한 감각 제로 상태) 5시에 출발해서 보로부두르에 2시간, 그리고 아침 먹고 프람바난에 가서 또 두 시간 정도 있다가 오는 일정이다. 그래, 뭐 투어도 나쁘지 않아, 애써 버스 타고 가지 않아도 되고, 좀 편하게 가자 이런 마음도 들면서 바로 오케이하고 투어용 미니버스(승합차)에 올랐다.

 

함께 투어에 오른 외국인은 나를 포함해 5명. 물론 가는 길에는 정신없이 자느라고 누가 있는지 몰랐고, 도착해서도 비몽사몽 남들 가는대로 걷다가 보니 한 명을 빼고는 다 동양계다. 서로 출신지를사용자 삽입 이미지 파악하고 보니 대만, 홍콩, 일본, 한국(나), 그리고 터키. 정말 각지 출신의 나홀로 여행객들이 모였다. 보로부두르의 외국인 입장료는 15달러. 고백하자면 학교 도서관 출입을 위해 발급받은 청강생 학생증으로 학생할인을 받아 8달러에 들어갔다. ㅋㅋ;;

투어 가이드 비용이 75000Rp. 5명이 나누어 내기로 하고, 의무적으로 입어야하는 사롱을 입고 가이드를 따라 갔다. 보로부두르는 내 예상과는 달리 커다란 하나의 건물이었다. 난 커다란 여러개의 건물을 상상했었는데, 그건 프람바난이 더 가깝다. 

층층이 오체투지를 하며 오르는 해탈의 길. 그것이 보로부두르에 오르는 방법. 하지만, 지금은 관광지로서의 역할을 주로 하고 있는 곳이다. 가장 아래 칸의 조각은 한겹 더 벽돌로 둘러쳐져 볼 수가 없다고 한다. 몇 가지 이론이 있는데, 옛날 옛적에 그 그림들이 너무 에로틱해서 한 겹 더 둘러쳐서 못 보게 하였다는 설과, 보로부두르가 서 있는 언덕이 점점 부실해짐에 따라 건물을 더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 아래 층을 보강하였다는 설, 그리고 한 가지가 더 있었는데, 뭐 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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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다음층부터는 층 별로 싯다르타 부처의 전생, 그리고 생애와 해탈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그 다음의 부처 그런 이야기들이 조각되어 있다. 모든 이야기를 다 들을 수는 없었지만, 몇 가지를 집어 가이드가 해설을 해 준다. 꽤 꼼꼼한 설명에 우리 모두 푹 빠져 들었다. 나도 예전에 들었을 법한 이야기들이었지만, 새삼 재밌고 흥미진진. 기억에 남는 한 이야기는 왜 왕자 싯다르타가 마지막 여인과 혼인하였나 하는 것. 역시 세 가지 정도의 설이 있는데, 첫번째는 결혼에 크게 뜻이 없던 왕자가 여인들에게 실망하지 않도록 선물을 하나씩 주었는데, 마지막 여인에게 줄 선물이 반지밖에 남지 않아  그것을 주어 혼인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 두 번째는 신데렐라 이야기처럼 여인의 손가락이 반지 사이즈와 꼭 맞아서. 세번째는 오직 그 여인만이 왕자 싯다르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문득 해품달의 무녀 월의 절대 굽히지 않는 당당한 기세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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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의 탄생 설화 : 보리수나무 가지를 잡고 서 있는 마야 부인

 

5000년 만에 한 번씩 새로운 부처가 나타난다 했던가. 그렇다면 새로운 부처가 오기까지는 아직 2천년은 더 기다려야 하는 것. (응? 부처가 태어난 해는 언제? +_+ -> BC624년) 나라별로 이 다음 부처의 이름이 조금씩 다른데, 이곳에서는 Matreya(아마도....)로 부른다. 아마 우리 나라로 치면 미륵이 아닐까.

어쨌거나 부처 이야기는 이걸로 접고.

나는 별로 아는 바가 없었지만, 보로부두르 하면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것이 꼭대기 층을 제외한 위쪽 3개 층에 있는 스투파이다. 프람바난에 있는 힌두교 상징물 락마와도 비슷하게 생겼는데 담고 있는 내용은 전혀 다르다. 스투파는 부처의 옷을 깔고 그 위에는 발우(그릇), 거기에 짚고 다니는 지팡이를 꽂아놓은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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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꼭대기층인 10층의 돔 안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한다. 불교의 이상인 해탈의 끝은 공(空), 비움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십우도의 끝도 마지막 그림은 늘 아무것도 없는 '공'이다. 가이드의 설명은 생각보다 꽤 만족스럽고 재미있었지만, 투어 자체는 역시나... 내가 왜 투어를 싫어하는지 다시금 상기하기 시작하였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과 보폭을 맞추다보면 어느 순간 내가 서 있는 공간 자체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진다. 그것은 아는 이와 여행을 할 때도 마찬가지인데, 그에게도 온전히 나의 관심을 쏟게되니 여행지가 어디인가는 딱히 중요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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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 보로부두루 쓰고 나니 정말 지치네..

프람바난은 그냥 사진으로 몇 장 올리고, 패스. 힌두교 사원은 가이드의 설명을 들어도 이해가 어렵기도 하고, 이미 보로부두르를 다녀온 터라 완전히 지쳐서 좀비상태로 걸어다녔던 터다. 사진도 몇 장 안 찍었다. 후후

(프람바난 가기 전에 작은 규모의 불교사원 한 곳에 더 들렀다. Candi Mendu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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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로부두르도 그렇고 이곳 프람바난도 마라피 화산의 폭발로 다 무너지고 오랫동안 파묻혀 있었다. 그것을 유네스코에서 복원하여 현재의 상태로 만들어놓았지만, 프람바난의 경우 찾지 못한 벽돌이 많은지 곳곳에는 새 벽돌로 메워져 있고, 새 벽돌에는 조각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오리지널은 오리지널대로 최대한 보존, 그리고 잃어버린 조각들은 새로 만들지 않는다는 원칙. 그리고 사원 주변에는 이렇게 복원되지 못한 돌들이 여기저기 쌓여 있다.

아, 스투파와 락마의 차이를 설명하다 말았구나. 힌두교 사원에 있는 락마는 연꽃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형상인데, 스투파와 아주 흡사하게 생겼다. 마치 같은 상징물에 해석만 다른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 그런데 이 락마는 남성과 여성의 성기를 상징하기도 한다. (링가와 요니)

 

그리고 finally came back to Yokja. 아무래도 소개해주는 여행사 사람이 커미션을 먹었을 것이 분명하지만 다 귀찮다. 이미 좀비상태, 빨리 씻고 좀 누웠으면 하는 바람 뿐. 하룻밤에 80000 Rp로 오케이하고, 긴긴 하루를 끝낼까 했는데, 아직 3시............................. 기도시간을 알리는 노랫소리(아마도 꾸란을 암송하는 소리)가 들린다. 투어 따라 다니랴 설명 알아먹으랴 머리 속도 북적북적, 피로가 어깨, 팔, 다리에 층층이 쌓인다. 10kg가 넘는 아이를 하루 종일 안고 다녔으니 안 쓰던 근육들이 화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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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수퍼맨 레스토랑에서 대낮부터  낮술....ㅋㅋㅋㅋ 무슬림 국가에서 이 무슨....... 제일 싼 야채커리밥을 시키고 제일 큰 빈땅 맥주를 주문하니 서빙해주는 아저씨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린다.그나마 혼자 맥주를 마시기엔 이렇게 한가한 낮시간이 나을지도.

술 값이 너무 비싸서 이렇게 쓰다가는 환전한 돈이 금새 동날 것이라는 불안감이 엄습하지만, 이번에는 천원, 이천원에 목숨걸지 않고 먹고싶은 건 마음 껏 먹겠어! 라는 되지도 않는 다짐을 하며 맥주를 들이킨다.

 

이날 저녁... 온통 마을은 정전이 되었고, 선풍기조차 틀 수 없는 방안은 미친듯이 덥고 창문을 열었더니 모기가 달려든다. 도저히 못참겠다 싶어 문을 여는 순간, 아앗! 문고리에 엄지손가락을 베었다. 상처가 꽤 깊다. 문고리가 분명 녹으로 덕지덕지 ... 이거 여행와서 파상풍 걸리는 거 아님?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면서 연고 하나 챙겨오지 않은 스스로를 탓한다. 밖에 나가서 losmen(아마도 여관?) 주인에게 상처를 보여주니 밴드를 붙여준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질 않아 편의점에 갔더니 다행히 요오드를 판다. 평소에는 요오드 알러지가 있어 쓰지 않지만 마음의 안정을 위해서 요오드 투입! 후후후.... 혼자서 참 쇼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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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5 14:26 2012/02/05 1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