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여행기를 끝까지 쓰리라 마음먹었었는데, 또 끝맺지를 못했다.

프로볼링고 행 버스를 탄 것까지 썼나. 그럼, 프로볼링고에서 두 여인네를 만난 이야기에서 출발해야지.

 

족자에서 인터넷을 뒤질 때 프로볼링고에 내려서 토토여행사를 이용하지 말고, 버스터미널을 벗어나 미니버스를 타라고 하는 충고를 이미 보고 왔기에, 토토여행사 앞에서 나를 붙잡는 아저씨를 가볍게 넘겨주고, 터미널 밖으로 나왔다. 이제 버스가 어디있는지 찾아야하는데, 아... 막막한 기분... 일단 눈앞에 보이는 화장실부터 가고 보자.

 

(여기서부터는 당시 적었던 메모)

아리, 에카

Luckly 프로볼링고 버스터미널 화장실 앞에서 자카르타에서 온 아리, 에카를 만났다. 그들도 브로모에 가는 중. Bromo! 덕분에 편하게 미니버스를 탔고, 미니버스 안에 타고 있던 4명의 청춘들과 함께 같은 집에 묵게 되었다.  코펠, 버너, 봉지커피, 라면.... 과 함께 여행하는 청춘들. (즉, 가난한 ㅋㅋ) 뭔가 맛있는 거라도 사주고 싶지만, ....  야간 등반을 위해 뭐라도 사놓아야겠다.

 

청년들의 이름은 토판, 타오픽, 와유, 그리고 아지스. 이들의 이름 외우느라 정말 한참이 걸렸다. 낯선 이국 땅의 이름들은 왜 그리도 외우기가 어려운지. 이걸 들으면 또 친구들은 나이탓이라고 하겠지.

 

28일 새벽 3시.

일출 등반을 위해 일어났다.

7시부터 자려고 누웠지만 거의 자지 못하고 밤새 추위와 불면에 뒤척였다. 세상에, 이렇게 춥다니 ㅠ.ㅠ

가방 속에 얇은 담요까지 챙겨넣었다. 이렇게 고생하는 여행이라니, 딱 체질이다.

 

일출등반만 하고 올 줄 알았더니 역시 젊은이들.

몸으로 때우는 것이 체질이라 다들 지프 타고 다니는 코스를 몽땅 '잘란잘란'(걷는다는 뜻의 인도네시아어)'으로 해결한다. 물론 나에게는 미리 알려주지도 않고 ㅋㅋ

뭐 어차피 나도 원하는 바였으니 잘 되었기는 하지만 생각보다 엄청 빡세더라.

딱 브로모 화산 칼데라 구경하는 것깥지 에너지가 남아있었다. 사바나, 어디까지 가야하는지 모를 사바나를 가겠다고 했을 때, 멈췄어야 하나? 사바나는 걸어도 걸어도 나오지 않고 진정 사막의 모래바람이 무엇인지 체험  삶의 현장을 찍고....

윽, 방금 물이 안 나온다는 비보가..... ㅠ.ㅠ

샤워를 해야하는데, 화장실도 가야하고.... ㅠ.ㅠ

이 무개념 청년들 별로 신경도 안 쓰고 TV 보기에만 열중 중이다. 난 속이 탄단 말이다~

근데 이 청년들 꽤나 재미있다. 캐릭터들도 어찌나 분명한지. 분명 토판이 주도했을 법한 것이 산도 좋아하고 항상 나서서 라면을 끓이고 이것저것 챙겨준다. 반면 토픽, 그는 그냥 온통 장난기로 가득하고... 아유는 건실한 무슬림 청년같은 느낌? 사바나 가는 길에 아유가 기도하는 모습은 어찌나 이쁘던지! 무슬림이 되고 싶을 정도로!

어쨌거나 이들, 그리고 나이가 좀 있어뵈는 두 여인, 아리와에카. 힘든 것에 불평도 없이 모든 순간에 즐기기에 여념이 없다. 이렇게나 여러 사람이 모여 같이 움직이는데도 그 빡센 일정에도 다들 열심. 사바나를 보려고 몇시간을 걸어가고 작은 들꽃들에 그저 즐거워하는 남성들이라니! 역시 신선하다. 모처럼 보는 대학시절의 모습들에 왠지 엄마 미소가 계속.... 후훗. (그나저나 화장실은 언제 해결해주지?)

하기사 사실 길을 잘 모르거나 예상보다 오래 걸린다해도 누구 탓은 아니니까. 다들 모르면서 그냥 덤비는거니까. 그럴 수 있는 여행이기 때문에 힘들기도 하지만 이런 이상한 조합이 만들어지기도 하는 것일까. 암튼 제일 신기한건 내가 이 조합 속에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타오픽은 꽃다발(화산 분화구 근처에서 주민들은 사바나에서 자라는 꽃들을 엮어판다) 을 사기도 했는데, 누구를 주려고 사는 것일까 무척 궁금하여 물어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렇게 말 잘 안 통하는 이들 속의 외로운 외국인이 되어 하루를 보냈다. 소수자, 뭔가 내가 원하는 것을 제대로 말하거나 실행할 수 없는 것이 계속 아쉽고... 아앜! 온 마을이 단수사태!

(결국 이날 온통 모래바람을 뒤집어 쓴 채로 잠을 자야했다. 물론 역시 뼈속까지 스며드는 한기 때문에 거의 잠을이루진 못했지만. 새벽에 잠에서 깨어보니 물이 나오기 시작하여 샤워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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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모에서의 이야기는 좀더 자세히 쓰고 싶지만, 일단 적어두었던 메모를 옮겨 적는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더 자세한 이야기를 쓰려고 덤볐다가는 밤을 새야할지도 모르니까.

네 명의 청년, 두 명의 여인, 이들과 함께 이틀밤을 보낸 작은 게스트 하우스, 밤이면 미친듯이 창문을 흔들어대고 휘파람 소리를 내던 바람, 그들이 끓여주던 인스턴트 미고랭, 일출을 보러 산을 오르던 길에 본 쏟아질 것 같던 별들, 그리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산, 들, 공기, 안개.... 그 모든 것들을 쓰려면 밤을 새고 모자라 다시 충동적으로 인도네시아행 비행기에 올라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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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4 00:34 2012/04/04 00: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