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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역희 레포트 2005/09/24
  2. 경제학개론 쪽글 2005/09/13

신역희 레포트

from as a student 2005/09/24 17:56

 30분만에 날림으로 쓰기....이렇게 써도 되나;;;;

머리가 아니라 손이 가는대로 쓴 알 수 없는 내용의 독후감.

물론 논리도 없고, 근거도 없다. 주장만 있을 뿐 ㅋㄷㅋㄷ

내가 봐도 열라 재수없는 레포트....푸푸풋

야, 손!! 너 재수없어~

 

김호경, 『종교, 과학에 말을 걸다』를 읽다


지난 한가위 연휴 동안에 파키스탄 가족의 집에 가게 된 일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그들 가족과 손님들이 기도를 하는 시간이었고, 우리는 인사도 제대로 못한 채 여성들만 함께 모여 있는 방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한국의 문화 속에서 만나던 파키스탄 사람들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한국 속의 작은 파키스탄에 온 듯한 기분을 느꼈던 순간이었다. 기도 시간이 끝나자 방안의 여성들 중 가장 나이 많은 분이 우리를 붙들고 이슬람 교리를 설파하셨다. “나무는 누가 만들었나요. 흙은 누가 만들었나요. 물고기는, 새는, 사람은?” 물론 그녀의 바램은 신이 만들었다는 대답을 듣고 싶었겠지만, 나의 신앙은 달랐다. 기독교인도, 불교인도 아닌 나에게 종교는 중요치 않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당신의 종교를 존중하고, 만물에 신이 깃들어있다고 생각한다고, 그러나 그것이 내게 종교가 아니라, 철학이라고 대답했다.

이 책, 『종교, 과학에 말을 걸다』는 내가 느끼기엔 종교도, 과학도 아닌, 사상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다. 서구사상의 역사에서 종교와 과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전부나 다름 없기 때문에, 곧 사상의 역사가  혹은 과학의 역사와 일맥상통하게 되는 것이다.

서구사상사에서 보통 중세는 신학의 시대이자, 암흑의 시대라고 한다. 그리고, 근대는 신학의 부정과 인간에 대한 긍정에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고대는 어떠할까. 서구철학사상의 앞페이지를 장식하는 자연철학자들은 그 이전의 시대인 주술과 신화의 시대에서 우리가 아는 한은 최초로 신을 배제한 우주를 설명하려고 시도했던 이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이러한 시도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 의해 오랜기간 잊혀졌다.

중세 1000년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신학적으로 계승한 시기이다.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가 그 역할을 수행했던 주역이다. 이들에 의해 플라톤의 이데아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제1원인도 하나님으로 수렴되었다. 물론 그들의 철학이 왜곡되었다기보다는 그들 철학 자체가 가진 수렴점이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그렇다면 근대는 어떤가. 중세가 신학의 시대이고, 근대가 과학의 시대라고 하지만, 꼭 그렇게 이분될 수 있을까. 물론 코페르니쿠스에서 출발한 천동성의 부정으로 대표되는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의 이동은 획기적인 변화였겠지만, 과연 근본적으로 무엇이 변화되었는지는 재고해볼 여지가 있다. 책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과학은 근대의 신앙이었다. 중세에 신이, 혹은 성경말씀이 곧 진리였듯이 근대에는 과학이 곧 진리 그 자체였다. 그러나 20세기 초반으로 와서 그러한 과학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은 이미 깨어졌다. 과학은 많은 사람이 믿고 있는 일종의 믿음체계일 뿐이었고, 지금도 역시 그러하다.

그렇다면 저자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종교와 과학은 둘다 세계와 인간을 탐구하고자 하는 노력이었고, 둘다 같은 맥락context 속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화해가능하다는 것인 듯하다. 종교가 지금까지 해왔던 과학에 대한 도전은 자신의 거울에 대한 도전이었다는 것이다. 헤겔 식으로 말하자면, 종교라는 these가 과학이라는 antithese를 종합하여 synthese를 향해가자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그러나, 저자의 논리대로 가더라도 결국 종교와 과학은 둘다 modern의 요소로 한정지어지는 것이 아닐까. 저자에게는 chaos였던 근대 이후(post-modern)의 시대에 저자의 해법은 신학자로서의 저자의 한계는 아닌가.

체계로 세상을 설명하는 시대는 지났다. 설명되지 않는 불안정한 세계 속에서도 샤르트르는 인간의 실존을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오히려 주술과 신화가 다시 돌아온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무슬림 아주머니가 이야기했던 것, 나무를 누가 만들었나를 이해하고자 함은 여전히 근대에 갇혀 있음에서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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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24 17:56 2005/09/24 17:56

경제학개론 쪽글

from as a student 2005/09/13 11:39
 

시장의 공간에서 마약문제 등에 개입가능한가??

 


고전경제학에서 상정하고 있는 “합리적 선택을 하는 개인”이라는 인간관은 J. Bentham(1748-1832)의 공리주의 철학에 기초하고 있다. 여기서의 공리는 utility를 의미하며 개인의 쾌락의 총합이 곧 국가 전체의 쾌락이 된다는 것이다. 이때 개인의 쾌락은 가치를 따지지 않으며 이는, “효용이 같다면 제도용 핀과 시는 똑같이 유용하다”라는 Bentham의 말에서도 드러나듯, 마약의 문제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즉, 이러한 Bentham의 공리주의를 엄밀하게 적용하면 금연운동, 마약단속 등은 모두 사회적 utility를 감소시킨다. 이는 Marie Esprit Leon Warlas의 『순수경제학요강』(Elements d'economie politique pure)에서도 드러난다.


그러나 여기서 몇가지 문제가 도출될 수 있다.

1. 시장실패(market failure)로서의 외부효과(externality)

Adam Smith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는 국가의 개입없이 시장 자체로 사회적 부가 증대되고 정부의 개입과 규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본 사상으로 하고 있지만, 정부의 개입이 필요한 경우들이 있다. 그중 한가지가 외부효과인데, 이는 한 사람의 행위가 제삼자의 경제적 후생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말한다. 마약의 문제가 외부효과일 수 있는 이유는 영국의 Lotto 당첨자의 예와 같이 혼자서 오랜 기간 대마초를 재배 및 흡연해왔고, 문제가 되지 않았을지라도 그가 Lotto에 당첨된 후에는 공인의 위치에서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었기 때문에 외부효과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즉, 개인의 쾌락이 혼자만의 쾌락에서 그치는 것이라면 전체의 쾌락 총합에 플러스 요인이 되겠지만,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면 한 개인의 쾌락 증대가 타인의 고통을 증가시키면서 오히려 전체 쾌락의 총합을 감소시킬 수 있다. 흡연권과 혐연권의 논쟁 역시 이에 해당할 것이다. 즉, 국가의 개입이 가능하다.

2. 비가치재(demerit goods)

비가치재란, 소비자가 그것이 주는 효용, 또는 쾌락을 과대평가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말한다. 시장의 세계에서 상정한 합리적 인간은 이론적으로는 합리적 판단을 하고, 또 개개인의 쾌락 정도는 누군가 측정해줄 수 없는 문제이긴 하지만, 현실에서의 인간은 경제학에서 상정한 ‘합리적 개인’과 같이 합리적인 판단을 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로써, 마약 역시 비가치재로 분류할 수 있다. 개인이 때때로 불합리한 행동을 한다면, 누군가는 개인의 선택을 규제해야 한다. 즉, 국가가 과대평가되는 쾌락만큼의 비용을 요구하게 되면 비가치재의 소비를 줄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비가치재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면 ‘합리적 개인’이라는 경제학의 대전제를 부분적으로 부정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어디까지 규제할 수 있는가는 결국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집단적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결정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비가치재의 거래 및 소비에 관한 간섭은 국가나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참고자료

1. N. Gregory Mankiw, 『맨큐의 경제학』, 교보문고

2. 유시민, 『유시민의 경제학 까페』,돌베개

3. 유시민,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푸른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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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13 11:39 2005/09/13 1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