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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의 어둠이 사방을 에워싸고 별들만 숨을 쉬는 늦은 밤이 되어서야 나는 충남 홍성 문당리에 위치한 마을회관에 당도했다. 이곳은 오리를 이용한 유기농법으로 국내에 꽤나 알려진 지역으로 그 유명세를 보여주듯 환경농업교육관이 건설 중이었고, 그 옆으로는 손님맞이를 위한 번듯한 한옥도 갖추고 있었다.
마을회관 안으로 들어서니 평화캠프 첫째 날 저녁 프로그램인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그 끝나지 않은 얘기들」순서가 한참 진행 중이었는데, 우글우글 방 안에 모여 앉은 캠프 참가자들이 이의정씨의 발표에 귀를 쫑긋 모으며 빔 프로젝트로 쏘아올린 한 쪽 벽면을 집중하고 있었다. 나도 살짝 입구근처 자리를 잡고 얼른 이 후끈한 분위기에 묻혀 보려고 애썼다. 발표자인 의정씨는 지난 7월 군입대를 거부했는데, 명동거리에서 1인 시위를 진행했던 캠페인 사진들을 보여주며 열심히 자신의 병역거부운동에 대한 설명을 펼치고 있었다.
병역거부와 인권 감수성
한국사회에서 병역거부운동을 보면, 어느 새 10년에 가까운 오래 길을 걸어왔고, 드디어 작년에는 정부가 대체복무제 도입까지 운운할 만큼 커다란 성장을 해왔다. 그만큼 ‘총을 들기 싫어’서 병역을 거부하는 것은 더 이상 우리에겐 낯설지 않은 일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의정씨는 이런 사회의 변화에 또 다른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의정씨는 사회가 부여한 신체적 남성으로서의 삶을 완전히 뒤집고 여성으로 살아가겠다는 자신의 결정을 징병 거부를 통해 사회와 소통하고자 했다. 의정씨 입장에서 군대를 가야하는 것은 단지 주민등록번호 ‘1’로 시작하는 이유인데, 이는 성적 정체성은 철저히 버림받은 채 극대화된 남성사회로 국가가 강제로 ‘징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의정씨가 명동거리에서 “내가 남자로 보입니까? 이래뵈도 나는 여자랍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1인시위를 할 때 이를 대하는 시민들의 표정을 찍은 사진들을 확대해 보여 주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의정씨를 마치 외계인 혹은 혐오스런 벌레를 발견한 것 같은 인상을 짓고 있었다. 의정씨는 좀 더 관심을 두드러지게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자신이 직접 제작한 유인물을 건넨다고 했다. 내가 왜 병역거부를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리기 위해 의정씨는 철저하게 우리 사회의 소수자의 언어와 몸짓으로 다수를 구성하는 당신들에게 먼저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더 이상 거짓으로 살아가지 않겠다는 의정씨의 양심의 울림일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여성과 남성의 이분법적 기준이 어떤 식으로 성적 소수자의 인권을 침해하는지 알리는 용기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반면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인권 감수성은 없어 보인다. 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일까? 1인 시위에 임하는 의정씨의 사진 속 표정은 의외로 무척 여유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실천하는 것이 아름답다
병역거부 운동이 ‘젠더’의 주제까지 촉발하게 된 점들을 둘러보았다면, 다음 날 우리는 군사주의를 강화하고 전쟁을 지속시키는 사회적 시스템을 이해하는 시간을 보냈다. 미국의 군산복합체의 실상을 알 수 있는 영화 <전쟁 주식회사>를 감상하고, 비인도적 무기들을 둘러보는 공부도 했다. 어이없게도 한국은 매년 전 세계 2만명 정도가 이것으로 인해 사망하거나 불구가 되고 있고, 한국에도 엄청난 양이 살포되어 있을 바로 그것, ‘지뢰’를 금지하는 국제협약에 아직도 가입하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한국전쟁 전후 한국사회는 도대체 어떤 방향으로 전쟁의 상처를 지워버리려 했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전쟁이 지속되는 사회시스템을 거부하거나 저항하는 운동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첫 번째로 미국에서 커다란 흐름을 이어 온 전쟁세 거부운동과 평화세 제정운동에 관한 것이었다. 이는 전쟁에 쓰이는 세금납부를 거부하는 대신 전쟁을 통해 확대재생산되는 빈곤, 전쟁후유증, 실업, 교육 등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쓰이도록 지역단위의 공동체를 중심으로 ‘대안세’를 만드는 운동이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우리는 미국의 모병제 현황과 젊은이들의 인식 전환 및 이와 연계된 반전평화운동에 대해서도 알아봤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을 치르면서 전쟁세 거부운동뿐만 아니라 징집 거부운동(Anti draft movement) 역시 흥행하고 있어 보였다. 캠프 참여자 중 미국인이었던 제프의 말에 의하면, 미국 사회는 끊임없이 젊은이들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한 프로파간다를 생산하는데, 이를 테면 제일 잘 나오는 군인모집광고 테마로 애국주의, 직업교육, 모험, 도전, 사회적 지위를 이용하는 것 등이라고 했다. 외국인들의 경우, 시민권 획득을 미끼로 삼기도 하고 범죄자 경우에는 범죄면책을 위한 기회로 삼도록 하기까지 한단다.
마지막으로 책『군대가 없는 국가 27개의 국가와 사람들』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았다. 이 책은 저자인 일본 도쿄 조형대 마에다 아키라 교수가 직접 27개국을 돌아다니면서 수집한 정보를 엮은 것으로, 아직 국내 번역판이 출판되지는 않은 책이라는 점이 아쉽긴 하다. 군대없는 국가라고는 하지만 코스타리카와 일본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중립적ㆍ평화적 관점에서 군대가 없기 보다는 아직은 미국 등의 강대국에 종속된 위치로 인해 군대를 보유하지 못하고 있는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점이 우리에게는 군대가 없는 세계에 대한 무한한 상상력을 품기 어려운 현실적 제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대신 나는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평화가 수족관 속 금붕어처럼 입만 벙긋벙긋 하는 것이 되면 그건 평화가 아니다. 퍼덕퍼덕 살아 움직이는 평화가 되려면 그건 반드시 현실 속에서 구현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에서부터 출발해야 할까? 거창하게 ‘군대를 없애자’라는 일면식 사고방식과 주장만으로 사람들의 동의를 구하긴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일상에서 내가 실천할 수 있는 평화를 찾아야 한다. 다시 거꾸로 돌아가자. 살상무기를 생산, 제조하는 기업의 제품을 거부하는 소비자가 되고, 그 기업을 지원하는 로비스트나 우리의 세금을 전쟁비용에 들이붓는 정치인들을 찾아내고, 전쟁을 찬양하며 늘 왜곡 보도에 전념하는 언론을 비판하는 등의 일은 조금만 열의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시작할 수 있는 ‘평화운동’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전쟁광은 결코 우리에게 멀리 떨어져 있는 유령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한다면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실천이 아닐까?
까다로운 운동, 비폭력직접행동
둘째 날 오후 평화캠프는 어쩌면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비폭력 트레이닝’을 진행했다. 조별로 ‘비폭력’이란 무엇인지 문장을 만들어보기도 했고, 전체가 모여 어떠한 행동을 놓고 이것이 폭력에서부터 비폭력까지 어느 정도를 통과하는지 프리즘을 만들어 토론하기도 했다. 이런 프로그램은 내가 알고 있는 단순한 행동이 다른 문화와 환경을 갖춘 조건 속에서 살아온 사람에게는 폭력으로 작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그래서 폭력과 비폭력을 구분하는 절대적인 척도가 있을 수는 없으며, 끊임없이 소통과 협력을 통해 비폭력의 영역을 정교하게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참고로 내가 속했던 ‘열무국수팀’에서 토론한 ‘비폭력은 ***다.’ 결과를 소개한다. 이는 언제봐도 배시시 웃음이 새어나오는 추억의 문장들로 남을 것 같다.
비폭력이란 *** 이다.
1) 생명이 있는 것은 해하지 않는다.(언어 및 물리적 포함)
2) 위협과 공포를 최대한 유발하지 않는다.
3) 생각이나 수단의 다양성을 인정한다.
4)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항상 명심.(절대화하지 않는다.)
5) 변화의 가능성을 믿는다.
6) 결과와 성과보다는 과정을 즐긴다.
7) 권력, 발언권, 희생, 영웅시 분위기 등을 개인에게 몰아주지 않는다.
8) 가능한 여러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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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원으로 마음을 읽고 소통하는 평화
지금까지 평화캠프에서 벌어진 ‘평화’를 숨가쁘게 소개했다. 필자의 글솜씨가 부족한 데다가 너무 길지 않은 글이 되기 위해 글 속에 묻혀버린 평화캠프의 그 수많은 크고 작은 이야기들이 존재했다는 것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고 토로하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댕강 내용을 잘라먹었다고 해도, 입맛 다실 이야깃거리 하나는 남겨두었다. 무엇일까? 그것은 동심원 이야기이다. 평화캠프의 이색적인 점 중에 하나는 동심원으로 만들어지는 의사결정체계였다. 나이가 많다고, 캠프의 경험이 풍부하다고 해서 함부로 캠프의 운영원칙을 결정할 수 없는데 그렇다보니 당연히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는 것도 통하지 않는다. 오로지 전체가 참여하는 민주적인 토론을 통해 캠프의 질서와 약속들을 만들어나가는 새로운 대화의 틀을 형성했다. 가끔은 다른 이로부터 자신이 원하는 무형의 선물을 받고 몸짓으로 표현하는 것도 했다. 동심원을 통해 힘에 의한 지배가 없고 오로지 자신의 마음을 투명하게 열고, 타인의 마음을 배려해 나가는 가운데 소통하는 방식을 익힐 수 있었던 것이다.
평화캠프는 3박4일동안 진행되었지만 나는 그 중 일부만 참여하는 ‘불운’을 겪어야만 했다. 물론 처음 이 곳에 도착해 총총한 별빛을 보며 가슴 설레었던 순간이 쉽게 잊혀지지 않는 것 만큼이나 나는 이번 평화캠프에 참여했던 날들이 평화를 찾아가는 긴 별들의 여정을 다녀온 기분이다. 동심원으로 빨려들어가 몽환적인 기분으로 평화를 찾아헤맨 나는 이제 우리가 어떻게 현실 속에서 구체적으로 평화와 호흡할지를 고민케 했다. 중요한 것은 평화 그 자체가 진리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 어떤 절대적인 기준도 원칙도 없으며, 다만 우리는 보편적으로 만들어가야 할 평화를 위해서 끊임없이 성찰하고 소통해야 한다. 그리고 폭력과 비폭력에 대한 상이 사람마다 다르고, 인권 감수성 역시 사람마다 천차만별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이제 우리는 세상을 조금 더 까다롭고 엄격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소수자의 이름으로, 피억압자의 이름으로, 비폭력의 이름으로 살아갈 세상은 평화가 또한 현실에서 정치적인 것들과 긴밀하게 맞물려 있음을 상기시킨다. 메이드 인 '2008 평화캠프', 이번 캠프가 나에게 남긴 것들은 이렇게 평화운동의 중요한 또 하나의 원천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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