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라고 생각하고 손 잡어."

 

   욕 좀 해야겠다. 그지같은 새끼. 따져 보면 2년이 다 되가는 일이고 가끔 생각나긴 했지만 요 며칠 간 끈덕지게 기억이 안 떨어져 짜증스러워 죽겠다. 아빠랑 손 안 잡는다고 빼는 걸 다시 잡던 넘이나, 그 옆에서 웃고 있던 새끼나, 그럼 오빠랑은 손 잡냐고 하던 새끼나.............................. 이 손 저 손으로 넘겨지던 내 손을 생각하면 진저리가 난다. 그 일을 다시 떠오르게 만든 최근의 또 그지같은 계기 덕분에 요 며칠간 손을 하루에 십수번씩 씻고 있다. 사람이 사람 손 잡는 게 뭐 대순가? 닳는 것도 아니고 뭐 어때? 나도 생각은 졸랭 쿨하다. 손 한번 잡혔다고 정색하고 충격받을 만큼 어리숙한 게 아니라고 왜 미리 변명을 하고 있는가. 손 좀 잡은 게 성폭력이라고 지랄이냐는 상상된 반응에 대해 미리 검열하게 되는 거다.

 

   없는 친절과 애교를 끌어내가며 정말로,  업계 선배로서 존경하는 마음으로 가까워져 보려고 애썼던 사람들인데, 거기다 노조 투쟁 어쩌고 저쩌고 얘기까지 감동하며 다 들어줬더니 나와서 저 지랄? ㅆㅂ. 더한 일이 있어도 이래저래 뒤처리가 깔끔하면 그래 사람 사는 세상에 있을 수도 있는 실수, 넘어갈 수 있다. 아직까지도 열받는 건 인턴 나부랭이라 스스로 괜한 분란 만들기 싫은 마음에 대처도 못했던 거. 다담날 아침엔가, 한놈이 "왜 오늘은 안 웃어? 아가씨는 원래 말할 때 잘 웃어주고 그러는 건데." 그랬었다. 별 대꾸없이 넘어갔지만 좀 께름칙했던 그 말, 그 말뜻이 정확히 뭔지 이제서야 갑자기 문득 깨달았다. 뒤늦게 폭풍분노.

 

   그때 내 각오는 그 인간들보다 힘을 가질 수 있게, 당당히 PD로 입사해서 스태프로 만나면 개싸가지로 막 대하고 마구 괴롭혀줘야지, 그 때 각종 개드립들 은근히 소문 내서 실컷 씹히게 해줘야지.. 하는 거였는데, 그럴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져 가고 어떻게 복수할 수 있을까. 복수 이런 거 나도 생각 잘 안하는 사람인데..  그 사람들이 눈물이라도 흘리든 편지를 쓰든 어떻게든 진정어린 사과를 전해준다면야 되겠지만 그럴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고. 주위 친구들이 나이가 들고 일하는 이들이 늘어가면서 각종 업무 관계에서 벌어진 성폭력 사례나 지분대는 남자들 얘기를 들을 때마다, 혹여나 내가 좀 더 예뻤다면 얼마나 더 시달릴까 하는 생각에 진심으로 감사해지기까지 한다.

 

   이 세계에서 제대로 일하려면 남자가 되야겠다는 생각을 그 때 처음 했다. 진심으로 남자가 되고 싶었다. 꼭 그 때문만은 아니고 일부러 드라마틱하게 만들고 싶지 않지만, 그 이후 나는 머리를 짧게 잘랐고, 머리가 길어서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를 때마다 그때 그 일을 생각한다. 그리고 대한민국에 사는 그저그런 여자가 겪는만큼의 각종 일상적 성폭력과 한번의 범죄 비스무리한 걸 경험하고 이따위 일들에 무감해지려고 마음먹는 만큼 점점 더 쌩한 여자가 되어간다.

 

  토스당하듯 여기서 저기로 넘어가던 내 손, 무력했던 나... 짜증나. 다신 그런 상황에서 어물쩡 넘어가지 않으려고 했는데 막상 닥치니 쉽지 않았다. 이번의 그날도 그냥 취했으려니 이해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되바라지게 쏴주든 술잔 하나를 던지든 했으면 속이 시원했을까? 그도 편치 않았을 거지만. 너그러운 척 하고 넘어갈 만큼 난 쿨하지 않다는 것만 시간이 지날수록 확실해진다. 짜증나. 신경쓸 인연이 있으면 이래서 피곤해.........

 

   I wanna hold your hand.  When I touch you I feel happy inside... 왜 세상은 아름다운 노래를 그냥 두지 않으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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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6 16:49 2011/04/06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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