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年前에 신세진 홍제암 어른을 뵈러 해인사 근처엘 갔을 때 버스 안에 마주친 한 인생이 나에게 물었다:

해인사 밑에 있다는 부산다방이 어디 있능교?
부산다방?
그 표정이 나를 아프게 했다
당신이나 나나, 이 지상에서 아늑한 곳을 찾긴 글렀군
때묻은 무릎을 외로 꼬고 앉아 다 식은 쌍화차에
날계란을 풀어 먹으며 대추를 건져낼 수 있는 한갓진
부산다방이 어디 있겠는가 가끔 이런 노래, 오실 땐
단골 손님 안 오실 땐 남인데, 손이 한적할 땐 근처
국립공원 자락에 가서 연필 깎는 칼로 쑥부쟁이나 잘라와
물김치해서 밥 먹는 꿈!
상처에는 상처의 마음, 마음에는 상처의 꿈, 대낮에
티 위스키 한 잔 우우. 밟힌 풀은 서러워요 하지만
애처러움이여 이 꿈 같은 한 시절 내가 그곳에
서 있나벼 그러나 애처러운 깰 수 없음이여, 아늑한
사내 등에 기대 잔시름 부려놓고 싶은 하지만,
애처러움이여
버스에서 내려 나는 홍제암 그이는 부산다방 이같이
어딘가를 찾아가는 의욕도 필경은 쓸쓸하게 되고 말겠지만*
마지막 의욕조차도!

*杜子美의 五言絶句 中에서.


   유행에 한참 뒤떨어진 간판을 가진 다방이나 허름한 식당을 지나칠 때면 연애하고 싶었다. 혼자 들어가는 게 민망하기보다 쓸쓸할 곳들. 그곳에 함께 갈 수 있을 누군가 그리웠다. 며칠 전 밤거리를 배회하다 들어선 카페는 30대 후반 쯤은 넘긴 이들에게나 어울릴 법한 곳이었다.친구와 가난한 지폐를 세며 맥주를 몇 병 마셨다. 비틀즈와 유재하를 들으며 음악과 술이 흐르는대로 감상에 젖었다. 말없이 술을 마셔본 게 얼마만일까. 내 나이와 썩 어울리지 않는 공간과 잊혀진 시간이 그리운 것은 일종의 도피감일까? 무엇으로부터? 언젠가부터 센티멘털리즘을 드러내지 않도록 스스로를 강박적으로 다그치는 나를 본다. 그게 미숙함의 증거가 될까봐 두려워서인데 두려움이 다시 미숙함의 증거가 되는 순환. 며칠 후 부산에 간다. 부산다방에 가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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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6 20:10 2011/01/26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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