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이라니 얼마나 찐한 영화기에, 농을 던지며 격정적인 신파 정도 예상하고 사실 큰 기대 없이 상영관에 들어섰다. 나올 땐 좀 머쓱했다. 3D, 4D가 흔한 시대에 영화가 가능케 하는 영상적 체험의 기본은 무엇인지를 보여주며, 영화기술이 아닌 영화의 존재 이유에 대해 담담한 존경을 갖게 하는 영화였다. 색다르지만 기교를 부렸다기보다 정직하게 표현한 게 느껴졌다. 몸짓을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잡아서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이나, 머릿속 잔상을 표현하는 방식 등 직접적이고 꾸밈 없었다. 투박하거나 뻔한 느낌이 들까봐 피하게 될 것 같은 것들인데 그런 건 상관없다는 듯 자신만만했다. 그게 오히려 스타일이 됐다.

 

현실에서 그저 흘려보내거나 가볍게 부정하고 넘어가는 순간, 느낌을 영화가 붙잡아주는 것을 보면 고맙고 위안이 된다. 안토니오와 엠마의 첫 만남부터 몇 순간을 거치기까지 영화가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저 관조적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폭발. 감추고 위장하며 이끌어가다가도 어느 순간 터질지 모를 아슬아슬한 줄타기임을, 알면서도 모른 척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게 일상 아니겠는가. 산레모 야외에서 엠마와 안토니오의 정사 씬은 글로 풀 수 없이 이미지로밖에 전달이 안 되는 영화적 장면이다. 역시 익스트림 클로즈업을 사용했던 인상적인 하녀의 정사 씬과 비슷한 표현인데도, 두 정사가 확연히 다른 세계 속에 있는 것을 생각하면 흥미롭다.

 

영화는 단순하고 직설적인 이야기를 한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던 루소의 메시지가 관람 내내 머릿속을 떠돌았다. 도시, 세계화, 자본, 이윤의 세계와 대비되는 초록, 자연, 자유, 사랑. 이 두 세계의 대조를 보여주는 방식이 노골적이리만치 극명해서 살짝 불편할 뻔도 했다만 배우들이 충분히 완충 역할을 했다.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결정적인 순간에는 언어가 아닌 다른 어떤 것, '감感'이란 말이 그나마 비슷할까 싶은 것으로 커뮤니케이션한다. 이 또한 두 가지 세계의 대비를 재현하는 방식이리라.

 

사랑보다는 자유에 관한 이야기라는 게 더 맞을 듯싶다. 사랑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정도. 진정한 사랑이란 나를 해방시키고 자유롭게 하는 거라는 메시지에 살짝 반발도 생기는 건, 우리네 삶이란 아이 엠 러브에서처럼 완전한 속박이나 자유 어느 쪽도 아닌 그 어느 중간쯤에서 타협하며 사는 일이기 때문이다. 행복은 사람을 슬프게 하는 말이라고 했던가. 그래서 사실 가장 마음에 남는 장면은 이다의 품에 안겨 엉엉 울던 에도의 외로운 옆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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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8 23:39 2011/02/18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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