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 선언은 전설류를 제외하고 내가 가장 많이 반복해서 읽은 책이다. 결정적인 이유는 짧아서다. 두서 해만에 다시 읽으니 느낌이 많이 다르다. 마르크스의 저작을 펴본 것조차 오랜만이다. 그전이라고 해서 많이 봤던 것도 아니지만 이전에 소화했던 내용도 구체적으로는 거의 잊은 채 마르크스는 굉장한 천재고, 강렬하게 말하는 사람이구나 정도의 인상만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르게도 마르크스는 참 따뜻한 인본주의자라는 생각과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고 또 되게 멋있었다. 하하. 그런 느낌은 에리히 프롬의 책을 읽은 후 더 강해졌다. 비정규직 노동자나 삼성의 세븐일레븐 노동자나 나같은 구직자까지도 포함해서, 노동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사회인이라면 모두 빠질 수밖에 없는 번민이 결국은 마르크스가 말하는 노동과 소외, 해방의 문제였던 거다. 이전에는 기써서 공부하려고 노력했던 게 이제는 몸으로 와닿는달까.

이전에는 글쎄, 저렇게 낮게 싸우는 사람들을 두고 이런 말들이 다 무슨 소용인가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스스로의 존재와 정체성조차 불안한 상태에서 그 불안이 타인의 삶과 세상에 대한 몰두만으로 해갈될 줄 알았던 때, 마르크스의 문제 의식을 나 자신의 실존 속에서는 느끼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이번의 독서 후 내가 바라는 진짜 행복이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즐겁게 잘 사는 것일까, 이런 문제에 대해 좀 더 자신이 생기고 마음이 편해졌다. 입바른 소리를 해주는 좋은 친구와 대화를 나눈 것 같이 가슴이 따뜻하게 벅차고 고맙다. 이전에는 다소 의무감으로 읽었는데 나이가 드니 자발적으로 더 만나보고 싶은 맘이 굴뚝같다. 마르크스는 엄청난 몽상가지만 천재적이고 실천하는 이였다는 점에서 확연히 구분된다. 인간의 인간적 본질과 인간다움이 개별적 실존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한 그의 말이 아마 가장 중요한 부분이리라. 내게도 남에게도 좋은 노동을 하며 즐겁게 살아야겠다.

나이가 들어서까지 마르크스주의에 빠져 있는 건 바보다, 라고 어느 학자가 말했다지만 나는 언제 어떤 이유로든 마르크스주의를 쉽게 폄하하는 사람은 바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난 마르크스주의가 뭐라고 할만큼 방대한 그것에 잘 알지도 못하고 빠져 있지도 않아서 뭔 자격이 없지만 그래도 그렇게 말하고 싶다. 나는 원래 뭘 읽거나 볼 때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기보다 좋은 부분만 골라 편하게 받아들이는 편이지만, 마르크스는 받아들일 만한 좋은 부분이 특별히 많으며 앞으로도 충분히 내 가치관과 삶의 방향에 건강한 지침을 줄 거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학자나 마르크스주의 운동가가 될 생각은 없으니 내가 보기에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를 두고 일어나는 논쟁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논쟁적인 태도는 내 삶과 실천에 대해 가지면 될 일이지 이미 죽은 사람이나 그가 쓴 책에 머무르는 비판은 소모적이기가 쉽지 않나. 그러나 꼭 한 가지, 이전에 자유주의자인 벌린의 자유론을 읽으며 생각했던 문제인데 확실히 마르크스의 기본 관점에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은 있다.

그의 말처럼 '진정한' 자아와 욕망, 자유라는 걸 상정하는 게 옳을까?

 

---------------------------------------------------------------------- 공산주의 선언
 


"너희들은 우리가 사적 소유를 폐지하려 한다고 기겁을 하고 있다. 그러나 너희들의 현존 사회에는 그 사회 성원의 십분의 구에게 사적 소유가 폐지되어 있으며, 사적 소유는 오로지 이들 십분의 구에게 사적 소유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존재한다. 따라서 너희들은, 우리가 사회의 압도적 다수의 무소유를 필수 조건으로 전제하는 소유를 폐지하고자 한다고 우리를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너희들은 한마디로, 우리가 너희들의 소유를 폐지하고자 한다고 우리를 비난한다. 물론 우리는 그렇게 하고자 한다."

"사람들은 사적 소유의 폐지와 더불어 모든 활동이 멈추고 전반적인 게으름이 만연하게 될 것이라고 항변하여 왔다.
그렇다고 한다면, 부르주아 사회는 오래 전에 태만 때문에 망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니, 그 사회에서 노동하는 자들은 벌고 있지 않으며 그 사회에서 버는 자들은 노동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모든 의심은 자본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자마자 임금 노동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동어반복으로 귀착된다."

"노동자들에게는 조국이 없다. 그들에게 없는 것을 그들로부터 빼앗을 수는 없다."


----------------------------------------------------- 에리히 프롬, 마르크스를 말하다

"마르크스의 목표와 그가 꿈꾼 사회주의의 내용이라며 제시되었던 상이 오늘날 서구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과 거의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많은 물질을 획득하고 안락과 생활의 편리를 누리고자 하는 소망에 따라 움직이고 있으며, 이 소망이 제약을 받을 때는 위험요소를 없애고 안전을 지키고자 하는 욕망이 앞설 때뿐이다. 사람들은 생산과 소비라는 양대 영역에서 갈수록 국가와 대기업 및 그들의 하수인들에 의해 통제되고 조종되는 삶에 만족해하며 적응하고 있다. 체제에 순응하게 된 그들에게서 개성이라곤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마르크스의 용어를 빌려서 말하자면, 그들은 튼튼한 기계에 봉사하는 무능한 '상품인간'인 것이다. 20세기 중반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이야말로 적대자들이 그린 마르크스주의적 사회주의의 이상과 거의 구분하기 어려울 형편이다."

"자본주의 경제학의 일차적 명제는 삶과 인간적 욕구의 폐기이다. 덜 먹고 덜 마시고 책을 덜 사고 극장과 무도회장 또는 술집에 덜 갈수록, 생각하고 사랑하고 이론을 세우고 노래하고 그림 그리고 검술 따위를 덜하면 덜할수록 더 많은 돈을 저축할 수 있으며 좀먹지도 녹슬지도 않는 보물(자본)이 더 커지게 된다. 존재하기를 덜할수록, 삶을 덜 표현할수록 더 많이 소유하게 되며 소오된 삶, 소외된 존재의 저축은 더 커진다. 경제학자는 삶과 인간성에 반해서 빼앗은 모든 것을 화폐와 부의 형태로 돌려준다. 인간이 하지 못한 모든 것을 화폐가 인간을 대신해서 한다. 화폐는 먹고 마시고 무도회장과 극장에 갈 수 있다. 기술과 학업, 역사적 보물, 정치권력을 획득할 수 있으며 여행도 할 수 있다. 화폐는 이 모든 것을 인간을 위해 전유하며 모든 것을 구매할 수 있다. 화폐는 진정한 풍요이다.(경제학·철학 수고)"

"그는 인간이 자신의 개인성을 파괴하고 인간을 사물로 전락시키며 물건의 노예로 만드는 일에서 해방되는 데 관심을 두었다.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은 수입의 배분방식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생산방식, 곧 개인성의 파괴와 인간의 노예화를 겨냥한 것이었는데, 그 노예화는 자본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만든 물건과 상황에 의한 인간의 노예화를 가리킨다."

"그는 인간의 인간적 본질이 개별적 실존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함으로써 칸트의 원칙을 확장시킨다. 마르크스의 견해와 공산주의적 전제정치 사이의 대비가 이보다 더 근본적으로 표현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마르크스는 인간의 인간다움은 그의 개별적 실존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마르크스는 이런 새로운 형태의 소외되지 않은 사회에서는 인간이 독립적으로 홀로 설 수 있으며 더 이상 소외된 생산 및 소비양식에 의해 불구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인간이 진정으로 자신의 삶의 주인이자 창조자가 되고, 따라서 생활수단을 생산하는 대신 생활 자체를 자신의 주요한 일로 삼기 시작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마르크스에게 사회주의는 그 자체로 삶의 충족이 아니라 이런 충족을 위한 조건이었다. 합리적이고 소외되지 않은 형태의 사회를 건설하면 인간은 비로소 삶의 목적을 가질 수 있을 것인데, 그 목적이란 그 "그 자체로 목적이며 자유의 진정한 왕국인 인간 능력의 발현"이었다. …… 마르크스의 비전은 인간에 대한 믿음, 역사 속에서 발전되어온 인간 본질의 진정한 잠래겨에 대한 믿음에 기초해 있었다. 그는 사회주의를 인간의 자유와 창조성의 조건으로 보았지, 그 자체가 인간 삶의 목표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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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8 19:24 2011/02/28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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