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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4/02
    '심상정 단일화' 찬성한다(4)
    평발
  2. 2008/04/02
    '쳄발라'라는 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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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8/04/02
    봄비, 경쾌한 피아노가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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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8/04/01
    [책]아나키즘, 그게 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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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8/04/01
    IT산업의 (보이지 않는) 굴뚝
    평발
  6. 2008/04/01
    [책]쿤/포퍼 논쟁
    평발

'쳄발라'라는 악기

 

난 그런 악기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 바흐의 골든베르크 변주곡을 맨날 글렌 굴드것만 듣다보니 식상해졌다. 그래서 뭐 유명한 연주가가 있나 싶어 웹서핑을 했더니, 웬 걸, 골든베르크 변주곡이 쳄발라라는 악기를 위해 작곡된 것이라는 설명이 있지 않나?(이는 어느 바흐 전기작가가 소개한 에피소드에 따르는 것이지만 더 알아보니, 신빙성이 떨어지는 아름다운 창작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쳄발라가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비도 오고, 점심먹고 산책도 못가니 뭐.

 

하프시코드, 클라브생, 클라비쳄발로라고도 하며 16~18세기가 그 전성기였다. 모양은 그랜드피아노와 비슷하나 피아노는 현을 해머로 치지만 쳄발로는 무두질한 가죽 등의 발목()이 재크를 건반의 뒤끝으로 밀어올려 현을 퉁긴다. 음 하나하나의 음절을 자유로이 변화시킬 수 없으므로 음의 높이나 음질이 서로 다른 음렬()을 만들어 놓고 기구적()으로 이들을 여러 가지로 조합해서 소리를 내어 음질이나 음량의 대비감()을 얻는다.

(아! 당최 무슨 말인지 알길이 없다.)

표준형은 음렬이 4열, 건반이 2단이며 상단에는 보통의 음높이를 지닌 음렬과 8도가 높은 음렬이, 하단에는 상단의 음과는 음질이 다른 보통 음높이를 지닌 음렬과 8도가 낮은 음렬이 배열되어 있다. 음렬은 스톱(보통 페달식)으로 어느 한쪽의 음렬을 고를 수가 있다. 현 끝에는 펠트 등을 닿게 하여 여운()이 짧은 음으로 변화시키는 장치(류트 스톱)도 있다. 소형의 것으로는 버지널 스피네트라고 하는 같은 기구로 된 것이 애용되었다. 피아노는 쳄발로 제작자에 의해서 쳄발로 본체()를 사용해서 발명되었는데, 원리적으로는 쳄발로가 발전된 것은 아니다. 19세기에 부활되어 현재 독일의 노이페르트와 슈페어하케의 악기가 유명하다. <네이버 백과사전 중>

(난 끝까지 읽어봐도, 그게 뭐?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백문이 불여일청이라고 했던가? 그래서 결국 들어보기로 했다.

골든베르크 변주곡을 쳄발라로 연주한 것이다. 참고로 내가 골든베르크 변주곡을 처음 접한 것은, 예전에 어떤 대중가수가 샘플링을 해서 사용했던 것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딱 그것만 화제가 되지 않았나 싶다.

짧은 공부로 보자면, 변주곡은 일종의 주제곡(여기서는 사라방드의 아리아가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름만 익숙한 이 곡이 뭔진 모르겠다^^)에 대한 다양한 변주 그러니깐 기본적인 뼈대는 같지만 연주를 달리하는 것을 말한다(고 본인은 접수했다).

뭐, 음악이라는 게 들어서 즐거우면 그만이고 관심이 꽂히면 더 찾아보고 즐기면 되니깐. 사족이지만 나는 클래식 음악평론하는 사람이 참 무지막지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연주자에 따라 이런 게 좋고 나쁘고 등 하는데, 뭐 나같은 사람이 그것을 다 찾아서 일일히 비교할리 만무하지 않나?

게다가 클래식은 찾기도 힘들다고!! 어쨋든, 나중에 더 공부할 셈치고, 이제가지 웹으로 찾아낸 내용들만 잊지 않기 위해 올려놔야 겠다.

1. 쳄발라로 연주하는 골든베르크 협주곡(구스타프 레온하르트 연주, 1953년 연주)

-1. 변주곡 1

 

-2. 변주곡 2

 

-3. 변주곡 3

 

2. 그 유명한 글렌 굴드의 변주곡 연주 모습 (변주곡 1에서 7까지. 그러니 앞의 3곡은 비교가 되겠군)

 

 

햐~~ 몰랐는데, 쳄발라라는 악기 되게 이쁘네. 뭐랄까 누군가 귀에다가 속삭이는 느낌같이 살랑살랑댄다고 할까.

암튼, 오늘은 쳄발라라는 악기를 알고 가는군.

참, 이런 뻘짓을 하고 있지만, 마음만은 '진보신당' 화이팅!!(나름 열심히 선거운동중이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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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경쾌한 피아노가 제격이다

뭐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생각해보면 살아가는게 다 그렇지 않나? 참, 지금 나오는 곡은 '노영심의 학교가는 길'이다.

(돈되고 여유가 되면 노영심 앨범을 사주는 센스!)

아침 출근길에 비가 내리는 줄 모르고 나왔다가, 집에 얼른 가서 우산을 꺼내 왔다.

아직 애연가인 나는, 비오는 아침 출근길에 빼어든 담배가 참 좋다.

그리고 버스-전철-버스의 난코스를 대비하고자 라디오를 귀에 꽂는다. 이러저리 돌리던 채널에 잡힌 것이 바로 이 피아노 곡이다.

 

이 역시 어쩌다보니 듣게 되었고, 출근하는 내내 꽂혀 있다. 뭐 굉장히 이쁜 소품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은 역시 할일이 쌓여있고, 난 겁에 질린 체 어떻게 하면 이런 일들을 안하고 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 고민중이다. 허허~~

그래도, 오늘은 노영심의 피아노가 있으니까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흐흐

다들 총선이 머지 않았다는데 분위기는 영 거시기 하다. 주변 지인들에게 나름 선전을 하고 있지만 글쎄다. 그냥 투표 자체가 별로 의미가 없다는 분위기다.

진보신당을 알리려면, 투표는 반드시 해야 한다 라는 주장에 덧붙여 '왜 진보신당인가'를 덧붙여야 하는데, 앞의 것을 설득하고 나면 시간이 없기 마련이다. 그럼 정작 투표를 하러간 그 놈은 누굴 찍는 거냐구!!  뭐 알아서들 하겠지.^^

 

암튼 아침이다. 봄비다. 누군가, 나의 5시간을 사가서 '너 맘대로 그 시간을 쓰시요'라고 해줬으면 좋겠다. 아무런 부담도 없이 뒹굴어 본 게 언제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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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아나키즘, 그게 뭐!!

1. 왜 읽었나?

예전에 학교에 적을 두고 공부할 때 알던 타 학교 선배의 아이디엔 '아나키즘'이 들어가 있었다.

꽤나 냉소적이었던 이선배에게 아나키즘은 '나 신경쓰고 싶지

 

- 이호룡 지음, 서해문집

- 가격은 9500원

- 디자인은 깔끔하고 이런 저런 사진자료들이 많이 보기 좋음.

않은데엔 신경쓰지 않겠다"는 독고다이의 정신과 배째라의 마인드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랬던지라, 개인적으론 아나키즘하면 그 선배가 떠올라 '게으른 인간들을 위한 정치적 알리바이'로 냉소해왔다.

물론 아나키스트 하기락 선생은 매우 좋아한다. 내가 하기락 선생을 알게된 것은 나름 '아나키즘'에 대한 책을 끄적일때다. 이른바 재야쪽 철학서에 간간히 등장했던 하기락 선생이 궁금했다. 이름도 특이하고 그 선생의 책도 도서관에선 찾기 어려웠다.

기억이 맞다면, 하기락 선생은 '하르트만의 자유'라는 주제로 박사논문을 썼다. 그리고 하르트만의 존재론과 관련된 책을 번역했다.

그리고, 유명한 베른슈타인의 '마르크스주의의 수정'을 번역했다.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아나키즘 관련 서적도 번역했다.

재미있는 것은 모두 '대구'에 위치한 출판사에서 책들이 나왔다는 것인데, 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책을 구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1999년이었나? '티셔츠혁명당'이라는 일단의 집단이 나온적도 있고, 레인보우페스티발때 흑기가 펄럭일때도 있었지만, 아나키즘은, 앞서 이야기한 선배의 영향으로 관심사 밖으로 밀려났다.

 

최근에 도서관을 가서 눈에 띄지 않았다면, 적극적으로 찾아서 볼 일이 없었을 책이다. 뭐, 책의 입장에서건 나의 입장에서건 운이 좋았다고 할까?

 

이 책은 우리나라의 아나키즘 수용사다. 어떻게 아나키즘이라는 정치이념이 수입되었고, 일제시대를 거치고 분단체제를 살아왔는지 보여주는 책이다. 그래서, 아니키즘에 대해 보는 시각이 교정되었냐구? 미안하지만 NO.

 

일단 이 책에서 거슬리는 것.

 

- 저자는 아나키즘의 우월성을 견지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감없이 보인다. 곳곳에서 '이는 아나키즘의 사상이 타당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혹은 '아나키즘의 영향권 하에 있었다'는 식의 표현이 보이는데, 솔직히 동의하기 어렵다.

- 그러다 보니, 일종의 공상적 사회주의와 아나키즘에 대한 구분이 모호하다. 내가 볼때 일제시대 초기 사회주의자들은 아나키즘에서 과학적 사회주의, 즉 공산주의로 흘러간 것 같은데 저자는 공상적 사회주의 대신 아나키즘을 외삽시킨다.

- 나아가, 아나키즘이든 공산주의든 모두 사회주의의 다양한 종류하고 해석하면서도 아나키즘과 공산주의를 너무 칼로 물베듯 하거나, 혹은 공산주의자의 어떤 주장에 대해 '아나키즘의 사상을 원용'했다는 식의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 그러다 보니, 한국 아나키즘 역사에서 너무 주류적 입장만을 서술하지 않았나 싶다. 이를 테면, 근대에 들어서 해방정국에서 1970년까지 한국 아나키즘은 곧 유림과 동일시된다. 뭐, 자료의 부족도 있겠지만 허허.

 

개인적으로 나는 저자가, 왜 아나키즘이 일제시대에선 공산주의자에 대한 테러에 열을 올릴 수 밖에 없었고 해방후엔 구친일파 세력과 결탁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사상적 한계'라는 견지에서 해석해주길 바랐다.

 

그런데 맥락속에선 언제나 아나키즘이 옹호되는 입장인지라, 일제시대때 공산주의계열 독립운동가에게 테러나 일삼던 아나키스트에게 오히려 반발감만 생겨버렸다. 이게 저자의 진짜 의도는 아닐텐데 말이다.

 

저자의 이력을 보니, 서울대 나와서 계명대로 대학원을 갔다가 서울대로 다시왔다. 계명대는 앞서 언급한 하기락선생이 제직했던 학교다. 제대로 아나키즘을 배웠다는 말이다. 그러다보니 과잉 감정이입일까? 정치적 판단들에 대한 설명보다는 감정적 동의만을 강요하는 듯한 문체는 끝끝내 내가 넘을 수 없는 벽이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나키즘의 공산주의 박멸사를 보고 싶다면 함 들쳐봐도 좋겠다. (689)

 

 



 

2. 건더기들

-좌우대립의 흑백논리가 판치는 한, 좌우를 통합할 수 있는 사상은 나올 수 없으며, 평화적 민족통일도 이룰 수 없다. 민족통일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상 체계를 수립하고 그 속에서 민족을 통합할 수 있는 길을 찿아야 할 것이다.(10-11)

일견 타당하다. 그럼에도 아나키즘이 그런 통합적 사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오버라고 본다.

 

 

- 아나키즘이 한국에 처음 소개된 것은 1880년대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신문인 <한성순보>를 통해서였다. 당시 신문은 아나키즘을 포함하여 사회주의에 관한 기사를 보도했는데, 그 내용은 주로 암살 활동에 관한 것이었다.(16)

 

- 1910년대까지 한국인들이 수용한 사회주의에는 공산주의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 주류는 아나키즘이었으며, 1920년대 초까지 공산주의에 대한 이해는 초보적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대중운동의 성장으로 공산주의가 두각을 나타내면서 사회주의계는 아나키스트계와 공산주의계로 분화했다. (30-31)

 

- 아나키즘과 공산주의의 분화는 결국 조선노동공제회의 분열과 최초의 공산주의 노동단체인 노동연맹회의 창립(1922년 10월)으로 이어졌다. 공산주의자들이 점차 조선노동공제회를 주도하게 되자 아나키스트들은 이에 반발했다.  집행위원이던 아나키스트 고순흠은 공산주의자 신일용 일파와 연합하여 공산주의자 신백우 일파를 축출하고자 했으나, 오히려 자신 축출될 위기에 몰렸다.  이에 고순흠은 조선노동공제회를 탈퇴했고, 1922년 7월 신백우 일파의 윤덕병과 이수영을 칼로 찌른 뒤 조선노동공제회 간판과 서류를 불태웠다. (37)

 

지하철에서 책을 보다가,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뭐냐, 이 사람은!!

 

 

- 한국인 아나키스트들의 반공산주의적 입장 또한 민족주의자와의 연합을 매개했다. 한국인 아나키스트들은 공산주의 세력의 성장에 위협을 느끼고 있었고, 그들의 반공산주의적 입장은 공산주의에 대한 적대감으로까지 나아갔다. 그 적대감은 공산주의자와의 투쟁을 최우선시하고 당시 공산주의 세력과 대립하고 있던 민족주의자들과 연합하게 만들었다.(51)

 

-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은 문예 부문에서도 나타났다. 김화산은 1927년 3월 <조선문단> 제5권 제3호에 <계급예술론의 새로운 전개>를 발표하여 공산주의 문예론을 비판하고 아나키즘에 입각한 문예론을 제시했다. ...김화산은 1927년 다시 <뇌동성 문예론의 극복>을 발표하여 "문제의 핵심은 사회혁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술 그 자체에 있다"며 문학을 선전수단으로 삼는 공산주의자들의 문예론을 비판했다.(54) 

사회적 리얼리즘을 문예활동의 프로파간다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사회적 실상을 담았다는 이유만으로 '선전도구'라고 한다면 예술만을 따지는 사람들은 관념론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뭐, 요즘에도 예술가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예술이나 문화활동의 자율성을 주장하기 바쁜데, 솔직히 그런 자율성이 자신의 정치적 무지와 무능력을 합리화하는 알리바이로 삼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 하지만 일제강점기 한국인 아나키스트들의 민족주의운동과 공산주의운동에 대한 실제 태도는 각각 달랐다. 이론적으로는 민족주의와 공산주의 모두를 비판했지만, 민족주의자들에 대한 반대운동은 거의 전개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부 아니키스트들은 민족주의자들과 연합하여 민족해방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산주의에 대해서는 시종일관 반대하면서 반공산주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했다.(121) 

그런데, 이유가 뭐냔 말이다. 아무래도 아니키즘의 낭만적 수용과 수용대상의 계급적 차이 때문이 아닌가 싶은데 확인할 방법이 없다. 당시 아나키즘은 있는 집 자체의 취미거리 였나? 에잉... 어쨋든 저자는 공산주의의 전체주의적 사상이 문제라고 하는데 글쎄다. 너무 헐렁한 알리바이가 아닐까?

 

 

- 국민문화연구소 관계자들도 아나키즘을 복원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들은 516쿠테타 이후 모범적인 자유공동체를 건설한다는 계획 아래 전국농촌운동자협의회를 설치하고, 이를 연락소로 삼아 수산운동을 전개했다.  ... 수산운동의 목적은 유휴 노동력을 활용하여 잘사는 농촌을 건설하는 것으로, 농촌계몽 운동의 성격을 띠고 있었으며 아나키스트 사회 건설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었다.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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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산업의 (보이지 않는) 굴뚝

 

이런 이야기는 들을 적 있다.

 

2004년에 부안 방폐장 건설 반대투쟁을 할 때가. 당시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공사 였던가?)의 홍보물에는 핵발전소가 석탄이나 석유보다 더욱 환경친화적이라며 난리를 쳤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당시 평범한 부안주민들마저 알고 있었던, 사용가능한 '핵'을 얻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것이었다. 뭐 씨알도 안먹혔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당최 핵발전소라는 것도 시동을 걸려면, 석유에너지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리저리 해도 석유에너지에 대한 의존도는 좀처럼 낮아질 수 없다는 문제의식. 곧! 에너지 소비를 낮추는 것외엔 대안이 없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오늘 또 이런 이야길 보았다.

 

<경향신문>에 난 기산데, 우리가 굴뚝없는 산업으로 알고 있는 iT산업 역시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잡아먹고 있다는 사실이다.

 

구글 검색 1건에 전구 45분을 켤 수 있는 에너지가 소비된다!

 

믿기나? 난 이 기사를 여러번 곱씹어 보았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편리함이라고 여기는 모든 물건들은 이렇게 에너지를 많이 사용해서 만들거나, 유지하는데 많은 에너지가 든다.

 

결국 불편함을 감내하는 것이 에너지를 절약하는 방법이라는 것.

 

미래를 생각하며 살아가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추세다. 내가 진보넷에 이렇게 블로그를 운영하기 위해 드는 석유에너지는 과연 그 효율을 제대로 내고 있는 걸까? 헉.. 하고 나니 무서운 질문이다.

 

오일피크에 대해 이런 저런 경고들이 나오고 있다. 위기는 내 자식들을 겨냥하고 있다. 나만 빠져나가면 되는 세상이 아니기에 더둑 경각심이 든다.

 

(사족) 세상의 모든 허위와 편견을 까발리겠다는 책이 있었다. 그 책에선 지구온난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당장 지구의 온도가 상승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지구가 생겨나고 지금까지의 과정을 살펴보았을 때 결코 위험한 수준이 아니다. 지구는 온도의 상승과 하강을 반복해왔다. 그러니 지금 올라가고 있는 지구의 온도도 곧 내려갈 것이다."

 

읽어 보고, 그래프도 보고...'끄덕, 끄덕'하고 말았다.

 

그리고 순간!! 그 온도가 내려간다는 지점의 조건이 혹시, 인류가 없어진다는 조건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젠장! 인류가 살아남지 못하고 지구의 온도가 내려가면 무슨 소용이냐구!

 

하긴, 그런것을 생각하지 않으니까 경제학을 할 수 있는 거겠지. 경제학도들이 일반 사람에 비해 이기적인 이유를 알 수밖에 없군. 음하하, 타도하자 경제학과!!



IT산업 ‘굴뚝만 없을 뿐’ 항공업보다 환경 더 파괴
ㆍ구글 1건 검색 소비전력이면 전구 45분 켜


‘비행기보다 위험한 컴퓨터?’

대표적 친(親)환경 산업으로 여겨져온 정보기술(IT) 산업이 실제로는 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항공 운수 산업보다 더 심각한 환경 문제를 안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독일 주간 슈피겔은 최신호에서 IT 산업의 에너지 소비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지구 전체 발생량의 2%로 항공기가 배출하는 온실가스와 같은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문제는 항공산업이 바이오 연료 사용 등 온실가스 절감에 노력하는 반면, 급성장 중인 IT 산업은 직접적인 오염물질 배출이 없다는 이유로 환경 문제에 둔감하다는 데 있다.

IT 산업이 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이유는 막대한 전력 소비량 때문이다. IT 산업은 대용량 서버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엄청난 전력을 쓰고 있다. 인터넷 접속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서버는 24시간 쉼 없이 작동해야 하고 중요한 정보 손실을 우려해 항상 ‘열 받지 않도록’ 냉각팬을 돌려야 한다.

독일 뮌헨 지역 대학의 전산망 연결을 위해 지어진 라이프니츠 컴퓨터 센터는 2011년 도입을 목표로 슈퍼 컴퓨터를 주문했다. 이 슈퍼 컴퓨터를 유지하려면 ‘짐을 가득 실은 채 멈춰있던 400t짜리 고속열차가 시속 300㎞를 낼 때’와 같은 양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지금도 한 달 12만유로(약 1억8700만원)에 이르는 이 센터의 전기요금은 슈퍼 컴퓨터가 도입되면 더욱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구촌에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전산망 운영 업체들은 수만대의 서버를 운영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인 IDC에 따르면 2000~2005년 사이 네트워크 서버의 전력 소비량은 2배로 늘어났다. 비평가들은 이를 ‘열풍기’에 비유하며 에너지 절약형 컴퓨터의 개발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인터넷 검색엔진 구글에서 1건을 검색할 때 소비되는 전력이면 에너지 절약형 전구를 45분 동안 밝힐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 IT 기업들은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주된 목적은 ‘환경 보전’보다 ‘비용 절감’이다. 구글은 최근 인터넷데이터센터를 미국 오리건주 댈즈 댐 인근에 새로 지었다. 캘리포니아주에 지불하는 돈의 5분의 1 가격에 수력발전으로 생산된 전기를 이용하기 위해서다. IBM은 160여개의 전산센터를 7곳으로 통·폐합했다.

슈피겔은 ‘굴뚝 없는’ IT 산업이 오히려 지구 온난화를 부추긴다는 점은 산업화 초기의 철강 산업을 연상시킨다고 전했다. 철강 산업과 IT 산업 모두 초창기 폭발적인 성장과 그 과실만 주목받았을 뿐, 이들 산업이 유발하는 오염과 자원 소비에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 정환보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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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쿤/포퍼 논쟁

1. 왜 읽었나

 

- 스티브 풀러, 생각의 나무, 2007.

- 가격은 12000원

- 얇은 편인데 굳이 양장본으로 만들어 어색하다

- 솔직히 표지 디자인도 후지다

이런 책은 문고판으로 나와도 좋을 듯한데.

- 하기사 풀러의 '지식인'도 양장본으로 번역되어 나왔다

- 역시 이런 책은 조금 팔아도 이문이 남아야겠지?

이 책은 쿤과 포퍼를 통해 지식인의 문제를 거론한다. 다시 말해,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이 자신의 저작물과 어떤 연관을 통해 인식되어야 하는가라는 매우 도덕적인 문제다.

 

나는 개인적으로 쿤을 인식론상의 혁명자라는 상으로 기억한다. 그도 그럴것이 내게 과학은 지나치게 거만했으며, 모든 것을 아는 척 했지만 나에게는 문턱이 높아서 도저히 내가 알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쿤의 이야기는 과학자의 세계를 종교집단과 유사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정상과학에서 쌓이는 오류들이 결국은 혁명적 변환을 통해 교체된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로왔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오랜 시간동안 지속되어 왔음을 고백해야 겠다.

 

그에 반면, 포퍼의 경우에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이라는 책으로 기억된다. 개인으로 사회과학방법론에 대한 공부를위해 '역사주의의 빈곤'이라는 책을 읽은 것을 제외하고는 유일하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포퍼의 맑스 비판은 과도했다고 여겨졌다. 왜냐하면, N개의 맑스가 있는데 굳이 소비에트 맑시즘을 대상으로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때문이었다.

 

그리고나서 이런 생각들은 고정관념이 되어서 오랬동안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이 그런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놀라운 책을 만날때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한 번 읽어보시라'고 권하는 것 말고는 없겠다. 개인적으로 쿤이나 포퍼, 그리고 마흐 등의 과학철학자에 대한 이름이 낯설다면, 뒷부분을 읽어도 괜잖겠다는 생각이다. 특히 '관념에 책임지는 법'이라는 장에서부터는 과학철학 논쟁과는 별개로 읽을 수 있을 정도다.

 

90년대 후반을 달구었던, '안티조선' 운동과 지식인 문제가 너무나 쉽게 사라져 버렸다. 요즘 총선철을 맞이하여 폴리페서 등과 같은 신조어가 난립하고 있지만 본질적인 지식의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는 셈이다. 누군가와 이런 문제를 스티브 풀러라는 매개를 통해 이야기 하고 싶다.



2. 건더기들

 

 

"오늘날 비판의 시선이 하이데거와 같이 세계사적인 패배자들과 관련된 지식인에게 단호히 쏠려 있다는 것은 어쨌든 놀라운 일이다. 아롱과 같은 비판자들은 세상에는 어떤 완전한 선도, 결백한 행위자도 없으며 가장 윤리적인 행동 방침조차 나름의 대가와 희생자를 필요로 한다고 주장하는 정치적 현실주의자가 되는 경향이 있다. 이는 흔히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 이후에 '더러운 손의 이론'이라 불린다."(166)

 

"우리는 공리주의 도덕 철학자들이 소극적 책임, 즉 우리가 하지 ㅇ낳은 것에 대한 책임의 근거로 여긴 후자의 상황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 만일 어떤 특정한 방식의 행동이 다수를 이롭게 하고 소수에게만 피해가 될 수 있다면, 그때 우리가 그렇게 행동하지 않은 것은 나쁜 행동을 한 것과 마찬가지가 되어비린다. 이런 정신에서 사르트르는, 고의로 정치에 무관심했지만 안전한 위치에 있었던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1871년 파리코뮌의 진압을 막기 위해 어떤 행동도 하지 않은 것을 비난했다."(167)

 

"발생론적 오류는 어떤 관념의 타당성을 평가하는데, 그 기원을 고려하지 못하게 하려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좀더 미묘한 기능을 하는데, 즉 입증 책임을 이를테면 아인슈타인의 유대인 혈통이 자동적으로 상대성이론의 평가와 관련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전가하는 것이다"(178)

 

"로티의 주장에서 중요한 것은 '존재와 시간'이 너무나 심오하여 그 저자가, 특히 일단 나치가 하이데거를 합법화의 수단으로 이용하기 시작했을 때, 최소한 그들을 막으려 노력하지 않음으로써  초래한 결과의 비열함보다 우선한다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필생의 계획의 고귀함이, 그의 소극적 책임에 대한 대실태의 변명이 된다는 로티의 생각은 옳은가?"(181)

 

"나는 (1968 학생운동 동안) 프린스턴 대학 학부생들의 세미나에 초청된 것을 기억합니다. 그때 나는 계속 이 말만을 되풀이했습니다. "그건 내가 한 말이 아닙니다! 그건 내가 한 말이 아닙니다! 그건 내가 한 말이 아닙니다!" 그리고 마침내 내 제자 중의 한 사람이 ... 모든 학생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견지에서, 이 책이 매우 보수적임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모든 학문 분야 중 가장 엄격하고, 어떤 환경에서는 가장 권위주의적인 것이, 어떻게 가장 새롭고 창조적일 수 있는지 내가 말하고자 했던 핵심입니다."'구조 이후의 길'에 재수록된 쿤의 마지막 공식인터뷰(1995)

 

 

"더구나 쿤은 순수한 연구의 규범들을 지키지 못했다 하여 동시대 과학을 비판하는 것은 자신의 임무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뿐 아니라, 다른 어느 누구도 연구를 그러한 목적으롯 ㅏ용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적절한 실례는 쿤의 과학이론에서 비판적인 이론을 전개하는데 가장 체계적으로 시도한 라베츠를 틀 수 있는데, 그는 옥스퍼드 대학출판부에서 1971년 발행된 책의 저자이기도 하다. 라베츠는 1970년대 영국 사회의 최전선에서 과학의 사회적 책임을 위해 싸운 미국 출신의 학자로, 처음에는 코페르니쿠스 혁명에 대한 공통의 관심사에서 출발해 30년 동안 쿤과 서신 왕래를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쿤은 라베츠의 정치적 관심과 활동에 불편해하기 시작했고, 그런데도 그는 계속해서 쿤에게 조언과 추천의 편지들을 요청해왔다. ... 그러나 걱정을 표시한 지 5년 후 쿤은 라베츠에게는 알리지 않은 채, 그가 정치학에서 장학금을 포기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과학사 및 과학사회학 교수로 임명하려는 펜실베니아 대학에 반대하는 편지를 보냈다."(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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